멜팅팟 melting-pot 차이-반복-생성

고성만展 / KOSENGMAN / 高聖萬 / mixed media   2015_0415 ▶ 2015_0421

고성만_150321-11.12.13_혼합재료_162.2×130.3cm×3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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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415_수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인사아트센터 GANA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관훈동 188번지) 1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100평의 전시장을 4밀리미터 두께로 양면 가공한 O.H.P필름(가로 30CM*세로 42CM)을 눈높이 위치로 전시장 백색 벽면에 편평하게 한줄 로 부착 또는 천정에 일렬종대나 횡대, 원형으로 설치한다. 전시 공간 전체를 같은 사이즈의 다른 이미지필름을 전시 하며 필름의 작품점수는 70점으로 이는 광복70주년과 맥 을 같이 한다. 투명필름의 투과성은 교류와 전달, 개방과 소통을 의미한다. 한 뿌리에서 각각 서로 다른 방향으로만 자라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마치 들뢰즈의 리좀(Rhizome) 나무 같은 우리 민족의 상황을 나타낸다. 필름작품의 각각 다른 원본 이미지는 캔버스에 아크릴릭 이나 믹스드 미디어 재료 등을 사용하여 최근 5년간 제작한 것이다. 제목: Decreation 이라는 의미는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Creation의 반대 되는 의미로, 어느 이데올로기나 종파나 전쟁 등에 더 이상 속하지 않으려는 자주적 의지이다. 회화의 고유성과, 빛의 공간성, 시간성, 영원성, 은 캔버스와 다른 매체의 확장성과 연결성의 콜라보적 실험으로 우리 현실의 삶속으로 이미 깊숙이 들어와 "삶이 실체(이데아)와 분리되어 버렸다"는 시밀라크르적인 시대 관점에 관한 인식이다. Illusion 은 Reality 와 함께 리좀(Rhizome) 의 끝없는 확장을 넘어 오히려 진실을 Reality적 피상성으로 보이게 한다. 리얼리티를 내세운 허구는 진실처럼 교묘한 조작으로 보여 지기도 하지만 점점 더 중심을 잃고 각자 분리된 세계에서 소통망으로만 상호 연결된 가상사회를 형성 해가는 이때, 이민의 노마딕은 중간자적 인식과 경험주의 주체실험의 증인이 되어간다. 본전시의 "차이-반복-생성" 의 "생성"은 창조와 구별된다. 창조가 "무 에서 유 로 의 변화" 라면 생성은 특히 "있음에서의 변화"를 말한다. 태고부터 존재 해왔던 북두칠성의 상징과 영원성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었다. 우리조상들은 칠성판 위에 죽은자를 실어 본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장사 치루는 행위로 보았다. 북두칠성은 우리의 현실의 삶과 미래를 기원하는 연결고리 였으며 영원한 고향이며 메타포 이다. ●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한 또 다른 공간과 , 확장성의 혼종실험으로, 세상을 어우르며 함께하는 다중체 (multiplicite) 의 아장스망 (agencement)적 존재론 을 남기고 싶다. ■ 고성만

고성만_150401-1~7_혼합재료_162.2×130.3cm×7_2015
고성만_150401-17_혼합재료_130.3×162.2cm_2015

차이와 반복, 그리고 새로운 생성에 관한 노마드적 사유 ●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고성만은 90년대 초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를 졸업한 후 뉴욕을 거점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뉴욕에 체류한 것은 단순히 미술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착하기 위해서 였다. 말하자면 이민자 신분으로 그림을 그리는 한편, 생존을 위해 사업을 꾸려나갔던 것이다. 그런 생활이 약 20년이나 이어졌다. 귀국한 후에 고성만은 홍익대 대학원 회화과에 진학, 그림을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회화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와 표현기법을 동원하여 작품을 제작했다. 따라서 이번 개인전은 귀국 후에 그가 실험해 온 다채로운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게 될 것이다. ● 한 작가의 작품세계와 그것을 배태한 의식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고성만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 점은 예외가 아니다. 비록 그의 작품 대부분이 추상표현주의 계열에 속한다 할지라도 이 작품들에는 작가의 내밀한 의식의 풍경이 삼투돼 있다. 물감을 흘리거나 뿌리고, 선을 수차례 반복해서 긋는 그의 행위 속에는 청년기를 통해 이 땅에서 겪었던 '질풍노도'와도 같은 의식의 회오리가 잠재해 있다. 80년대 초반 대학을 졸업할 무렵, 그는 친구들과 함께 출판사를 경영하며 목판화를 책의 표지로 사용하는 등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을 펼친 바 있는데, 이러한 그의 전력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즉, 그는 80년대를 통해 이 땅에 회오리쳤던 민주화 투쟁의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한 세대의 한 사람이며, 사회구성원 간의 갈등과 반목, 화해와 대립의 간극 사이에서 고뇌한 사람인 것이다. ● 한국에서 질곡의 세월을 보낸 그는 미국에 정착한 이후 인종의 도가니인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9.11 테러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인종차별을 겪는 등 타자와 자신의 관계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에게 있어서 뉴욕행은 그의 말을 빌리면, "비상구와도 같은 뜨거운 분출구" 였다. 그것을 추동한 것은 젊은 시절에 겪었던 독재와 민주화 사이의 분열적인 체험이었다. 새로운 땅에 대한 갈구는 작은 분단국 출신의 젊은이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과감한 도전을 유도했고 그렇게 해서 결행한 것이 바로 미국행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은 '돈키호테식 돌격-고래사냥'이었다고 회상한다.

고성만_150401-19_혼합재료_162.2×130.3cm_2015
고성만_150401-23_혼합재료_162.2×130.3cm_2015

추상표현주의 화풍의 고성만의 작품은 그것이 의식의 분출이란 점에서 특수한 미적 국면을 지닌다. 이는 비록 그가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형성된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그의 의식을 관류하는 개인의 감정을 담고 있다고 하는 점에서 차별성을 획득한다. 그 이유는 첫째 그가 사용하는 주 색채가 한국의 전통 오방색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 있고, 둘째는 검정을 주조로 한 작품들은 수묵의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국 고유의 미적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고성만의 이러한 노력은 오랜 미국생활을 통해 얻어진 자각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고향을 떠나본 자만이 고향을 알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로부터 배태된 그의 작업태도는 최근 몇 년간에 걸친 창작생활의 기본이 되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너무 아파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의미하는 의학용어 'ganglineuropathy'로 정했다. 이는 분단 70년의 현실을 빗댄 것으로 거기에는 힐링의 의미가 담겨있다. 즉, 현실은 남북을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분단의 상태이지만, 예술을 통해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자는 힐링의 관점에서 작품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고성만이 이번 전시를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대작에는 그의 말을 빌리면 '우리 조상들의 고향인 북두칠성에게 우리의 미래에 대한 염원을 기원하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 흰색 라이트 바가 화면에 장착된 일련의 출품작들은 최근 그가 겪은 충격에 기인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직접 육이오를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최근 우연히 지인의 안내로 아들과 함께 방문했던 파주 군사분계선 ,즉 38도선 근처에서 마주친 'STOP' 사인은 커다란 충격 이었다. 말로만 듣던 휴전선과 38선의 허리 잘린 강토의 비극을 직접 눈으로 보고 분단의 현실을 무엇으로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무엇으로 가슴이 너무 답답하였다." ● 그의 말에 의하면 화면에 장착된 흰색 라이트는 분단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는 추상표현주의 화풍으로 그린 캔버스 표면위에 이 라이트 바를 부착, 조국의 분단현실에 강한 애착을 드러내고 있다. 고성만이 이 일련의 작품을 통해 발언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사이에 배태된 자신의 노마드적 체험, 즉 자전적 스토리텔링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성찰에서 오는 강렬한 파토스이다. 그는 '북두칠성'의 작업의도를 "20여년의 한국과 미국의 시공간을 넘고 노마드적 울타리를 넘어 차이와 반복, 새로운 생성에 관한 사유"라고 말한다. ● 고성만은 이번 전시에 이제까지 자신이 제작해 온 약 70여 점의 작품 이미지를 O.H.P 필름에 담아 전시장에 횡렬로 배치, 설치와 미디어가 혼합된 형태로 선보일 예정이다. 그의 이번 전시는 이제까지 회화 위주로 행해온 전시형태를 다매체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향후 그의 전시 행보를 예측하게 하는 것으로 예술에 대한 이 작가의 전향적 의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윤진섭

고성만_American Dream_캔버스에 하우스페인트_130×162cm_2014

No Pain ● There is a rare disorder called "Congenital Insensitivity to Pain", also known as "Congential Analgesia", in which a person cannot feel physically painful stimuli. It is a nervous system disorder that prevents one from feeling the burning sensation of a hot stove, the bitter cold of icy water, or the pain of a broken bone. Although this loss of sensitivity to pain can seem beneficial, it has its drawbacks - it prevents the person from being able to take care of a problem that can seriously damage one's health. Ko Seng Man uses the term "Congential Analgesia" as a way to describe his alarming sense of unease toward his gradual loss of sensitivity to the issue of a separated Korea. To Ko, it is a familiarity that is met with both sadness and anger, toward a situation in which a feeling of powerlessness compels him to wail against an injustice. He mentions that the use of straight long bulbs in his work is a way of referring to the 38th parallel that separates the two Koreas. Ko sees the light that emanates from the bulbs as a way to imagine a positive perspective toward this situation - he calls it the "light of hope". Perhaps it is the possibly redeeming quality of light that Ko is drawn to. Light that reveals a sad truth, something that must first be brought up painfully, in order to begin the process of healing. Another reading could suggest that because the line is seen as a beam of light rather than a physical barrier, it can be passed through. The "light of hope" then, is also a permeable barrier. ● Ko's interest in the power of hope is seen in a different piece titled "The Big Dipper". Ko mentions how Koreans in ancient times used to pray toward the Big Dipper, acknowledging each star as a celestial manifestation of beneficent ancestors. The light from the stars would also provide directions and help with navigation to those who were lost during the night. Ko refers to the ancient practice of praying to these stars in "The Big Dipper", a multi panel work on canvas which includes the straight, long light bulbs used throughout the other works in the exhibition. In this piece, Ko seems to be making his own call for help - a prayer - in what he sees as a time of need. Perhaps his call for help goes beyond his personal desire for clarity in direction for future endeavors, extending to a prayer that he hopes will reach the hearts of Koreans, and the country as a whole, in what Ko sees as a time of uncertainty. ■ KOSENGMAN

Vol.20150415j | 고성만展 / KOSENGMAN / 高聖萬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