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u Tupapu

마나오 투파파우展   2015_0403 ▶︎ 2015_0607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5_0424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권여현_김아타_김원숙_김종구_박희선_오수환 엄태정_이두식_이중섭_신상호_정현_천경자_허윤희 외 아프리카 조각가들_파푸아뉴기니아 조각가들 꼭두_민화_송담스님_혜담스님

후원 / 경기도_남양주시

관람료 / 성인 5,000원 / 청소년 4,000원 / 어린이 3,000원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 무료 입장

관람시간 / 09:30am~06:30pm / 월요일 휴관

모란미술관 MORAN MUSEUM OF ART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경춘로 2110번길 8(월산리 246-1번지) Tel. +82.31.594.8001~2 www.moranmuseum.org

예술의 눈으로 영적인 것을 돌아보다 ● 올해로 개관 25주년을 맞이하는 모란미술관이『Manao Tupapau』展을 개최한다. 일상, 죽음, 종교, 신, 영혼 등의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모란미술관의 지형적 위치와 자연스럽게 연계되어 예술적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다. (모란미술관은 망자들의 안식처인 모란 공원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예술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모란미술관은 절묘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모란미술관의『Manao Tupapau』展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전시이다. 이 글은 이번 전시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이다.

엄태정_청동.기.시대-門-97-12 / 박희선_한반도-빛 (2/30) / 한국_감모여재도_19세기

1. 타히티어 "마나오 투파파우(Manao Tupapau)"는 "죽은 자의 영혼이 지켜본다"를 의미한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고갱이 그린 그림의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한편으로 영혼이 인간을 지켜보고 또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영혼을 지켜보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은 구분되고 있지 않다.

아이보리코스트_바울레 족 남녀상_제작시기 미상 / 한국_상여목인_20세기 파푸아뉴기니_가면_제작시기 미상 / 신상호_인물

2. 몸은 삶의 흔적에 대한 생물학적 증거만이 아니다. 몸은 문화의 옷을 입고 있다. 그러기에 생물학적 수명이 끝나는 곳에서 몸은 영혼, 정신, 기억, 회상 등으로 계속 살아간다. 삶이 죽음으로, 죽음이 삶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삶의 존재 이유는 발견된다. 예술은 이러한 삶과 죽음의 대위법을 연주하는 놀이다. 예술은 삶에 대한 의지이며 영원한 것을 향한 동경의 지표이다.

정현_무제 / 오수환_곡신 / 파푸아뉴기니_남자상

3. 죽음이 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죽음을 상정하기에 삶이 가능한 것이고 이로 인해 예술 또한 존재한다. 예술은 삶과 죽음의 문화적 형식인 것이다. 예술은 삶의 생성, 변화 그리고 소멸을 다양한 재현으로 기록한다.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삶과 예술의 관계는 단지 길고 짧음의 문제가 아니다. 니체는 삶을 예술로, 예술을 삶의 관점에서 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삶은 예술로, 예술은 삶으로 이어진다.

김아타_온 에어 프로젝트043-반가사유_15men / 혜담스님_수월관음도

4. 예술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예술이 인간 정신활동의 산물이란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술은 놀이이다. 그러나 이 놀이는 단순히 감각적으로 형태로 구성되지 않는다. 예술의 형태에는 '말할 수 없는' 정신이 재현되어 있다. 예술은 형태가 정신으로, 정신이 형태로 상호 침투되는 미학적 긴장의 장(場)이 펼쳐지는 곳이다.

천경자_아마존 야그아족 / 이중섭_아이들 부르키나파소_목 받침대 / 권여현_루 살로메 Lou Salome in magic forest

5. 예술의 표현은 정신과 밀접히 연관된다. 원시미술, 부족미술, 종교미술 등을 보라. 사실적 묘사를 생략하고 상징과 알레고리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는 삶과 맞닿아 있는 영적인 것 혹은 정신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현대미술도 예외는 아니다. 널리 알려졌듯이, 많은 현대미술 작가들은 부족미술에서 영감을 얻었다. 대표적인 한 예로 20세기 초 피카소의 작업실을 찍은 한 사진의 배경에는 다양한 부족미술이 놓여 있다. 피카소의 유명한「아비뇽의 처녀들」의 다섯 얼굴 중에서 세 얼굴은 아프리카 부족의 가면 형태를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한국_칠성도_20세기 / 허윤희_숲의 위로 / 이두식_축제

6.『Manao Tupapau』展이 갖는 의미를 여러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해석이 어떠하든 삶과 현실의 문제를 영적인 것의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전시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영적인 것의 아우라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망각된 삶의 흔적들이 전시된 작품들 사이에서 발견된다.

Manau Tupapu 마나오 투파파우展_모란미술관_2015

7. 삶이 자리잡고 있는 현실은 또한 영적인 것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영적인 것의 이름을 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인간과 신의 오래된 연관을 예술적으로 드러낸다. 니체는『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즐거운 학문』에서는 신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를 묻는다. "신이 아이처럼 길을 읽어버렸는가?" "신이 숨어버렸는가? 신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신이 배를 타고 떠났는가? 이민을 떠났는가?" 니체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신은 자연사를 하지 않았다. 인간이 신을 죽인 것이다. 니체는 "너희들과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 말은 일반적으로 서구의 문명이 새로운 전환점의 순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표현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와 관련, 니체의 의도와는 달리 이 말을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Manao Tupapau』展은 "우리가 신을 죽였다"는 말을 예술의 마음으로 돌아보게 한다.

Manau Tupapu 마나오 투파파우展_모란미술관_2015

8.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들 사이를 거닐다보면 예술 형식이 드러내는 영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얼핏 상호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은 전시 공간에서 저마다의 특별한 조형적 소리와 함께 합창을 이끌어낸다.『Manao Tupapau』展은 영혼이 노래하는 합창이다. 삶에서 이어진 죽음 그리고 신들의 평원에서 고요하고 장엄한 영혼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 임성훈

Vol.20150418g | Manau Tupapu 마나오 투파파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