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_강미혜_송민선_권소영 층별 개인展

2015_0414 ▶︎ 2015_0426 / 월요일 휴관

최윤정_눈물섬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29-4(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색色)과 심(心)이 모인 경계 ● 최윤정의 세계는 밝고 따듯하고 화사하다. 최소한의 위험까지 제거된 모든 종(種)들이 바로 그 세계로부터 걸어 나와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사자와 호랑이, 곰조차 맹수의 공격성이 거세된 채다. 부드럽게 주름진 대지(大地), 또는 대양을 건너오는 얼룩말과 코알라와 영양 사이로 여러 종의 새들이 자유로이 날고 있다. 그들 중 어느 종도 다른 종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어떤 개체도 다른 개체들에 의해 소외되지 않는다. 종들 간의 대립, 개체들 간의 충돌은 없다. 그들이 세계로 걸어 나오는 내내 이 비현실적인 평화를 위협하는 어떤 현실적인 징후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 모두는 불화 없이 하나의 방향을 지향한다. 하늘과 대지는 파스텔 톤의 우아한 변화 안에서 모호하게 하나가 된다. 때론 대양과 대륙조차 서로를 배타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모든 종들의 공존이 조금도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다. 이 평화로운 행렬의 한 가운데 커다란 두 귀를 펄럭거리며 느릿하게 보폭을 옮기는 코끼리가 있다. 자주 등장하는 코끼리는 작가의 존재의 연장이자 분신이다. 이 신비로운 매개 작용을 통해 작가는 이 연대와 일치의 세계로 합류한다. 세계의 모든 '존재-형제들'과 하나를 느끼는 이상향과 교통한다. 그러므로 이들, 곧 코끼리와 사자와 얼룩말 등을 단지 스펙터클의 질료로 전락해버린 동물원의 측은한 식구들로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그토록 짓눌림과 두려움 없는 세계를 갈망하는 우리들, 극심한 심적 불안과 상시화된 스트레스, 마음에 켜켜이 누적된 트라우마로부터의 자유를 절규하는 현대인의 자화상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특히 최윤정의 공간이 왜 그토록 비현실적이며, 비현실적으로 밝고, 따듯하고, 화사해질 수밖에 없는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된다. 왜냐하면 이 세계야말로 평화를 강탈하는 요인들, 인간미를 고갈시키는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작가가 특별히 고안한 임상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존재를 타인들과 유리되도록 만드는 병적으로 확장된 자의식을 원상태로 복귀시키는 영혼과 감성의 회복실로 말이다. 최윤정이 화가와 시인의 직관으로 알아차린 사실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회화 작업(painting works)이 마음의 고조된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고, 영혼에 난 상처의 예민하게 돌출된 부위들을 공굴리는 것과 관련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기 위한 그의 시도는 크게 볼 때 두 개의 시각적 기제에 의해 지지되고 유지된다.

최윤정_눈물섬_캔버스에 유채_130.3×260.6cm_2014

그 첫째는 때론 흰색에 가까울 정도로 연하고 온화한 핑크 계열의 색이다. 최윤정은 자신의 색조를 "어두움을 가리는 기능을 하는 혼탁하면서도 빛을 닮아있는 색"으로 진술하고 있다. 실제로 이 세계는 충분치 않은 일사량과 그림자의 부재, 그로 인한 양보된 활기와 그러한 가운데서도 사물의 식별을 충분히 지원하면서 지나치게 눈을 자극하지 않는 온후함, 따듯함, 아련함과 경미한 몽롱함으로 설명될 수 있다. 또는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부조리한 현실이 아직은 다 도래하지 않은 미명의 시간대! 일본 작가 마리코 모리처럼 "극락은 핑크빛일 거야"라고 외치진 않더라도, 최윤정의 마일드 핑크(mild pink)가 그 깨지기 쉬운 세계를 냉정한 바깥 세계로부터 따듯하게 격리시키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 조절된 빛에 의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덜 분리주의적인 방식으로 사물들의 형태를 드러낸다. 동물과 식물들은 이 색조가 허락하는 낯과 밤의 중용, 빛과 어두움의 분기점 위에서 주변과 훨씬 더 연대적인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이로 인해 종과 종 사이, 개체와 개체 사이의 경계는 충분하게 완화된다. 실제로 각 개체들의 색은 부분적으로 그들의 자연색을 지니기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마일드 핑크의 헌혈에 의해 자신의 정체적 본성을 감퇴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색조혼합이 모든 개체들에서 일어남으로, 각각의 것들은 용이하게 서로에게 삼투되는 타자수용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색채심리학적 맥락에서만 보더라도, 이처럼 연하게 실현된 핑크는 모두에게 동정심으로 다가서는 박애주의자의 심성에 근사한다. ● 둘째는 수평성과 수직성의 절제다. 이로 인해 최윤정의 세계는 더욱 긴장 완화, 안정감, 휴식의 느낌, 그리고 느림과 관계한다. 지적 각성이 아니라 위로의 정서에 근사하고, 명징한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의 몽롱함에 다가선다. 이로 인해 긴장감, 스트레스, 순환장애가 보정된다. 최윤정의 회화들에 자주 등장하는 지평선이나 수평선 때문에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수직적 질서가 전적으로 부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더라도, 그의 회화에 등장하는 많은 것들은 수평적으로 배열되고 전개된다. 수평성은 조형적 특성을 넘어 그의 회화론 자체이기도 하다. 색과 빛, 톤과 묘사의 정도에 있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동등하다. 동일한 빛이 사물과 배경을 차별 없이 조명하며, 차등 없는 색조를 공급한다. 그의 회화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의미론적 위상이 또한 그렇다. 질서는 있으되, 그것들 모두는 (거의) 동등한 지위를 나누어가지고 있다. 동일한 지평에서 출발하며, 동일한 행보로 동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도 단지 다른 것들의 변두리로서만 남아있지 않다. 어떤 사물도 다른 사물들의 도구적 지위로 물러서지 않는다. 수평성은 조형적 특성을 넘어 그의 회화론 자체이기도 하다. 색과 빛, 톤과 묘사의 정도에 있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동등하다. 동일한 빛이 사물과 배경을 차별 없이 조명하며, 차등 없는 색조를 공급한다. 그의 회화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의미론적 위상이 또한 그렇다. 질서는 있으되, 그것들 모두는 (거의) 동등한 지위를 나누어가지고 있다. 동일한 지평에서 출발하며, 동일한 행보로 동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도 단지 다른 것들의 변두리로서만 남아있지 않다. 어떤 사물도 다른 사물들의 도구적 지위로 물러서지 않는다. ● 최윤정에게 회화는 '순수조형'이나 '탐미'의, 그러니까 현학주의나 장식욕구에 대한 무기력한 부응이 결코 아니다. 이 세계는 작가에게 특별히 불가피했던 비현실성과 몽롱함, 그러나 섬세하게 조율된 부드러운 신비주의에 의해 지지되는 세계다. 그의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들의 한 쪽 눈을 가리거나, 때론 화면의 도처에서 출몰하는 중첩된 동심원의 형태는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즉 현실과의 확고한 분리를 확증하는 기호에 해당된다. 그것들은 현재가 미래와 접촉하는 지점이기도 하고, 환타즘이 현실로 고개를 내미는 출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작가에겐 회화 자체가 이미 '다른 차원'과의 상관항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캔버스 자체가 이미 그것-다른 차원- 으로 향하는 출구이자, 그것이 도래하는 입구인 셈이다.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정화(淨化)하고 치유(治癒)하는 가능성의 통로! 작가는 자신의 회화론의 저변이 바로 정화와 치유라고 밝힌다. 정화는 이 세계가 싫은 게 너무 많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너무 많은 곳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치유는 한 인간으로서 사는 것이 너무 많이 피 흘리거나 체념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계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반응은 두 가지다. 대립하고 배제시키거나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포용하거나. 최윤정의 회화는 비판의 날을 세우고 고발장을 던지는 대신, 스스로 무장을 풀고 바리케이드를 걷어치우는 태도의 산물이다. 세계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전쟁과 승리가 아니라, 정화요 치유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작가가 긴장을 누그러트리는 톤, 따듯한 색조, 미명의 모호함, 수평적 질서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여기에 추가해야 할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작가가 훨씬 덜 이성적이고 더 열등한 존재들인 동물들을 이 세계의 대변자로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최윤정이 동물원의 발명자들이 아니라, 그곳에 수감된 존재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반증이다. (적어도 아직은) 그의 그림에서 동물원의 발명자들은 목격되지 않는다. 새삼 최윤정의 고백이 환기되는 대목이다 : "나에게 예술은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에 대해 명상하는 일입니다." ■ 심상용

강미혜_오륜기_캔버스에 유채_188×164cm_2013
강미혜_더 높이I_캔버스에 유채_130×196cm_2014
강미혜_더 높이II_캔버스에 유채_130×196cm_2014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한 올림픽은 경기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 간의 경쟁구도를 넘어 세계평화로의 염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오심논란과 편파판정등으로 올림픽 정신이 무너진 채 강대국 그들만의 리그로 전략해버렸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라는 올림픽구호는 마치 현대사회에서 개인 혹은 기업 간의 과도한 경쟁과 권력다툼 속 우리들의 외침과 같다. 이번전시를 통해 본인은 이러한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와 욕망을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고 있으며, 이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조적인 다짐인 동시에 인류에 대한 사랑과 평화, 즉 올림픽 정신과 마주하고 있다. ■ 강미혜

송민선_생각하는 사람_FRP, 우레탄도색, 마천석_32×20×37cm_2015
송민선_긴 하루_FRP, 우레탄도색_35×23×28cm_2015
송민선_기다림_FRP, 우레탄도색, 스테인레스 스틸, 마천석_35×11.5×36cm_2015

다르게 보기 : 반복 ● 사람의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매일 밥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직장에 가서 일을 하고, 화장실을 가고, 가끔 넋을 놓고 생각하기도 하는..모든 일상은 반복적으로 행해진다. 나의 작업은 어른의 세상을 아기의 형태로 비유하여 표현하는데, 이번전시에서는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반복"이란 주제로 다르게 보기를 구현하고자 한다. We live same routines everyday. (one day identical to the other.) Every day we eat, take a subway, take a bus, go to work, go to a toilet, and sometimes get lost in thoughts… Like this, we do everything repeatedly. My work's main theme is to metaphorically e×press the world of an adult in the form of a world of a baby, but in this exhibition, I wanted to look at the main theme differently with the topic "same routine."송민선

권소영_松_한지에 수묵_65×50cm_2015
권소영_松林_한지에 수묵_50×115cm_2015
권소영_억새_한지에 수묵_45×72cm_2015

풍경風景 ●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시의 편리함에 모여들어 살고 있지만 도시의 오랜 생활은 금세 지치고 사람들은 자연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나 또한 새로운 안식처를 갈망하다가, 산에 오르고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게 되었고 그 곳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직접 체험하며 만났던 자연의 존재들로부터 느끼는 감정을 담아 화폭에 옮겨낸다. 자연을 담기 위해 산에 오르다가 울창하게 뻗어있는 소나무의 질감과 솔잎의 날카로움, 강직함을 묘사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소나무는 예부터 우리 민족의 삶과 동일시되어 십장생의 하나로 건강과 생명력을 상징해 장수를 나타내고 지조와 절개,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이며, 민족의 삶과 정신을 담고 있다. 나는 소나무를 그리며 어떠한 역경, 시련 속에서도 어려움을 헤치고 사계절 푸르른 소나무의 강직함 속에서 지조와 절개, 용기와 희망, 긍정을 배우고 이를 보는 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 권소영

Vol.20150419b | 최윤정_강미혜_송민선_권소영 층별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