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멍이에요 I'm just a hole

황희진展 / HWANGHEEJIN / 黃喜珍 / painting   2015_0422 ▶ 2015_0428

황희진_나는 구멍이에요 I'm just a hole_장지, 분채, 대리석가루_130×13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324f | 황희진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가회동60 GAHOEDONG60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gahoedong60.com

to. 당신 ● 누구나 그러하듯 내 몸에도 10개의 구멍이 있어요. 어떤 구멍은 생존을 위해 열심히 작동하고 어떤 구멍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조차 잊고 그저 위치만 지키고 있으며 또 다른 구멍은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기도 하죠. 구멍들은 제각각의 소임을 다하려 제법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 이성복의 시집과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고 영화 그녀(Her)를 보며 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들을 하기도 한답니다. kbs 라디오 정만섭의 명연주 명음반을 들을 때 알지 못하던 피아노곡이나 4중주곡이 흘러 나와 가슴을 저미면 얼른 제목을 적어두고 쾅쾅거리는 난해한 교향곡이 소개되면 조금 참아보다가 곧 꺼버리고 팟캐스트 신형철의 문학이야기를 경청하며 소개되는 책들을 다 읽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시간의 한계에 안타까워해요. 30대에 접어들 무렵 예민하던 후각을 난데없이 상실하여 강한 냄새, 나쁜 냄새 등 간헐적인 냄새만 맡게 되었을 뿐 아니라 어릴적 꼬마일때도 안 흘리던 콧물을 겨울만 되면 줄줄 흘려 슬프게도 코찌질이가 되고 말았어요.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TV뉴스에서 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에 큰 쇼크를 받아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고기를 끊었지만 작은 미물이나 몸집이 큰 동물이나 똑같은 생명일진데 아직 그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해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는 내 몸의 단백질을 위해 이기적으로 섭취하고 있어요. ● 이렇게 위쪽 구멍들은 살아있고 살아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반면 아래쪽은 영 신통치 못해요. 가운데 구멍은 오직 성별을 구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묵묵히 존재할 뿐이고 그 앞과 뒤는 건강이 좋지 않다고 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며 나를 긴장하게 만들죠. ● 이러한 구멍들은 나를 '나'로써 만들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냄과 동시에 '당신'과의 교류에도 막중한 책임을 띄고 있기도 해요.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을 이해하고 아름다운 당신의 모습을 칭찬하며 낭낭한 단어들로 속삭이고 서로 교감하여 번식을 위해 힘써야 하는 게 그 구멍들의 본래 역할이기도 하죠. 그런데 구멍들은 나를 위해서는 애쓰는 반면 당신과 함께 해야 할 임무는 까맣게 잊어 버렸나 봐요. ● 그때는 알지 못했어요. 당신은 자신만의 고유한 역사가 있고 그 과거들이 지금의 당신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어처구니 없는 당신의 행동과 당신의 사상, 당신의 말들이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그런 당신 때문에 상처받아 가슴에 심장에 구멍이 뻥 뚫려서 놀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조건 도망치는 것 뿐이였죠. 그 구멍이 회복되기까지 절대적인 시간을 필요로 했고 적막하고 고요한 긴 세월을 보내는 동안 조금은 넓어지고 깊어졌어요. 그래서인지 이제는 겁이나고 두려웠던 당신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을 만나면 지금의 평온이 박살나고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 온갖 희로애락에 이리 체이고 저리 쓰러지겠죠. 그래도 이제는 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여전히 예민하고 아직은 나약하지만 작은 용기가 생겼거든요. ● 당신의 구멍들은 어떤가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우리는 어디에서 마주칠 수 있는거죠? 내 구멍들에서는 막 꽃이 피어 오르기 시작 했어요. 이 꽃들이 맞닿을 곳이 없어 서성이다가 마치 동백꽃처럼 급하게 몸을 떨구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구멍들이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게 아니라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서로 이해하고 교감하며 어루만지고 싶어요. 이리 살든 저리 살든 모두 허망하고 부질없다면 당신과 함께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당신. 내 구멍으로 들어오세요. ● from 구멍황희진

황희진_성(聖)스러운 구멍들 holy holes_장지, 분채, 대리석가루_112×145.5cm_2012
황희진_나는 구멍이에요 I'm just a hole_장지, 분채, 대리석가루_130×130cm_2014
황희진_성(性)스러운 구멍들 sexy holes_장지, 분채, 황희진_대리석가루_112×145.5cm_2015
황희진_영자 구멍 Emma's hole_장지, 분채, 대리석가루_100×80cm_2012
황희진_숙자 구멍 Linda's hole_장지, 분채, 대리석가루_100×80cm_2013
황희진_같이가자 lnterdependence_장지, 분채, 대리석가루_80×100cm_2010

Vol.20150422b | 황희진展 / HWANGHEEJIN / 黃喜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