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사치 La Stravaganza

윤정원展 / YOONJEONGWON / 尹廷原 / painting.installation   2015_0424 ▶︎ 2015_0607 / 월요일 휴관

윤정원_La Stravaganza_혼합재료_400×120×120cm_2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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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424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스케이프 GALLERY skap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8-4 Tel. +82.2.747.4675 www.skape.co.kr

최고의 사치, 우주의 꽃 ● 머리 모양도, 입고 있는 옷도 저마다 제각각인 인형 수백 개가 매달린 대형 샹들리에가 눈부시도록 화려하다. 어떻게 하면 저토록 다양한 모습을 하나하나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날 입을 옷 한 벌을 정하지 못해 괜스레 마음이 분주한 아침시간을 언뜻 떠올려본다. 저 수많은 감각적 조합들이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담보로 만들어졌을까. 색은 물론 재료도 형태도 낯선, 그러나 하나하나 저마다의 스타일로 완성된, 사람을 닮은 인형들의 군집 사이사이를 비집고 심지어 점점이 알전구들이 빛난다. 사람의 형상과 빛은 어느 순간 구분을 잃는다. 아, 빛이 사람이로구나, 사람이 또한 빛이로구나. 「Flower of Uuniverse」라는 제목의 설치 작품들은 그야말로 우주의 꽃으로 피어난 감각의 제국이다. 윤정원은 꽤 오랫동안 사람을 닮은 인형을 다양한 재료의 조합으로 스타일링하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이 인형을 근간으로 스마일 플래닛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작품에 적용되는 패션 아이템의 디자인 작업을 수도 없이 지속해왔다. 각각의 인형에 반영된 개별적인 모티프들은 실제로 생산 라인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제품화되기도 했고, 커다란 사이즈의 조형물로 만들어져 하나의 조각작품이 되기도 했다. 윤정원의 이러한 작업 방식을 두고 많은 이들이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말했고, 혹자는 이것이 오히려 끝없는 자본주의적 욕망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했다. 버려진 재료를 재활용하기도 했던 작업 방식을 두고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도 읽힌다. 작가가 만들어낸 개별적인 인형의 초상을 극도로 선명한 사진으로 보여주는 근작, 「최고의 사치」는 일견 말 그대로 물신화된 상품을 소비하는 현대인의 사치에 대한 풍자로 이해되었다. 한편 이 작품은 상품화된 여성의 이미지가 자발적이고도 능동적인 주체로 변신하는 모습으로 읽어내려는 이들에게 기꺼이 페미니즘의 여전사가 되어주기도 했다.

윤정원_Two Dolphin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258cm_2014~15

한동안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윤정원의 작품을 이해해왔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또 그것 모두가 윤정원의 작품에 다다르는 좋은 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독해들는 윤정원 작품 전체를 관통하기에는 적잖은 난관에 봉착한다. 일단 윤정원이 만들어내는 여러 작품의 기본적인 모티프가 되는 개별적인 인형 오브제가 다름 아닌 '복(福)'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첫번째 과제다. 정신분석학적 욕망이나 여성성에 관한 담론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복'이라는 제목이 뜻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또 하나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일련의 회화 작업들이다. 인형 작업과 거의 동시에 계속 진행되었던 이 그림들 속에는 윤정원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인식되는 인형 모티프가 주인공이 되지 않는다. 동물과 사람과 천사와 광대가 어우러진 저 그림들의 정체는 또한 무엇일까. ●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다시 작가가 십 수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선보인, 일련의 작품들 대부분의 단위가 되고 있는 「복」 연작을 들여다본다. 무엇이 '복'인가, 작가에게 물었다. 작가는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는 일 자체가 행복이라고 과감히 말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일, 그것을 많이 하고, 또 계속하는 일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과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이다. 작가에게 복이란 손에 잡히는 대로, 무언가 시각적인 것을 그때그때마다 원하는 모양새대로 만들어내는 일, 혹을 그려내는 일에 다름 아니다. 무언가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도달하는 반성론이 아니라 애초에 거기 있던 그 개별적인 의미들을 시시때때로 숨 쉬게 만들어주는 일, 그것이 바로 윤정원의 작품인 것이다.

윤정원_Red Duck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14~15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작품에 쓰이는 재료 하나하나는 대체로 동대문의 재료상가에서 온 것들이다. 그것 자체로 하나의 완성품이지만, 애초에 그것의 용도는 무언가 다른 사물의 부품 또는 장식품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금빛, 은빛으로 빛나는 장신구의 재료들이 또 하나의 샹들리에로 변신한 최근 작품들을 보면 과연 저 수많은 재료들이 어디에 다 쓰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가늠할 수 없는 욕망의 가짓수만큼이나 다채로운 재료들이 존재한다. 100개, 아니 10,000개의 재료가 있다면 그것이 만들어내는 조합의 경우의 수만 해도 얼마인가. 결국 무언가 하고자 하는 본래적인 욕망과 상상력의 조합에 따라 무한대에 가까운 가짓수가 나온다. 이쯤에서 다시 애초의 모티프인 인형으로 돌아가 본다. 작가가 사람을 닮은 인형을 작업의 근원적인 단위로 선택한 건, 어쩌면 그것이 가장 사람의 모습을 닮아 있으면서도 우리들의 욕망이 가득 담겨 있는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친 것도 없이 세상에 나온 맨 몸뚱아리의 여인에게 그녀가 상상해낼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옷을 만들어 입히고, 액세서리와 가방으로 치장을 한다. 손에 잡히고, 눈에 들어오는 재료들을 가지고 그날그날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다른 모양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해진 규칙이나, 계산된 맥락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이 인형은 그 자체로 지나치게 사회화된 의미론을 가진 대상이긴 하다. 하지만 인형을 가지고 노는 어린 아이들도 그러할까? 아이들에게 이 인형은 그저 자기 자신을 투영해내는 스스로의 대체물일 뿐이다. 그 마음으로 벌거벗은 사람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작가는 맨몸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거친 세상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인형들은 어쩌면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지며 지독하게도 나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사람을 대신하여 우리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윤정원_Pink Bal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4~15

그렇다면 우리를 끝없는 욕망으로 이끄는 동력, 작가 윤정원이 그토록 많은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근거는 무엇일까. 작가는 그것이 다름 아닌 사랑이라 말한다. '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근원, 온전히 그것이 되고 싶은 열망 또한 동일한 지점에 놓여 있다. 윤정원의 회화 작품을 보면 사람과 동물을 막론하고 유독 그림 속 대상들이 입맞추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사람도, 천사도, 동물도 서로 구분 없이 행복하고 따뜻한 키스를 나눈다. 내가 원하는 세상을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이야 말로 삶의 근원적인 힘인 것이다. ● 「Make Heaven」이라는 제목의 회화 작품들이 사뭇 종교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지상의 모든 종교는 교리와 종파를 막론하고 사랑을 근원의 가치로 둔다. 그 무엇도 담보 삼지 않고, 기본적인 조건도 없으며 그 어떤 대상의 차이도 넘어서는 사랑 말이다. 윤정원의 그림 속에는 무한한 사랑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품어내는 대지의 신 가이아, 검은 피부의 천사는 물론 만물의 근원이 되어줄 것 같은 조물주의 모습을 보이는 도상이 함께 등장한다. 이 그림들은 어느 것 하나, 같은 것 없이 등장하는 대상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천국을 형상화하고 있다. 일반적인 종교화에서 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가치가 여기에 펼쳐진다. 이 길과 이 진리를 따라 사랑을 나누면 그들이 그려내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녀의 회화에는 인종의 구분도, 사람과 동물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윤정원이 만들어낸 인형들도 가끔 사람들과 함께 등장한다. 누군가 정해놓은 위계질서 따위는 애초에 발붙일 곳이 없다. 다만 그 안에 있는 생명가진 것들은 누구나 제 멋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을 뿐이다. 그 누구도 이 낯선 모습을 직접 목격한 바 없으나 그림 안에서 그들은 서로 그 어떤 불편함도 없이 공존하고 있다. 서로를 해하지도 않고, 어쩌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제 할 일에 몰입하고 있는, 마치 페스티벌과 서커스 공연을 즐기는 풍경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이 그림을 보며 번다한 세상의 규칙을 잊고, 축제에 온 사람들처럼 지극히 현실에 충실한 나의 모습을 잠시나마 만난다. 이 때 우주는 정해놓은 규칙이나 형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재 그 자체를 통해 스스로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면, 이제서야 「Flower of Uuniverse」 같은 작품들이 하나의 질서로 보인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주의 꽃을, 다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삶의 정수와 혼연일치가 되었을 때 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맨몸의 사람들이 서로 제 욕망에 충실하게 같은 공간을 수놓는 일, 윤정원이 하나하나 생명을 불어넣은 인형들이 마치 춤을 추듯 한 데 어우러져 서로를 불 밝히는 일, 그것이 바로 가장 아름답게 꽃피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랑은 아무 것도 아니어도 좋았을 우주 안에 그렇게 사람의 꽃을 피운다.

윤정원_La Stravaganza #5_Mixed media on paper, mounted on aluminum_150×100cm_2013
윤정원_La Stravaganza #4_종이에 혼합재료, mounted on aluminum_130×100cm_2013

그리고 이제 다시 애초의 그 인형으로 돌아가 보자. 작가는 최근 인형 하나하나를 초상사진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최고의 사치> 연작을 선보였다. 「복」을 바라보며 궁금증을 풀지 못했던 이들을 위한 작가의 배려일까. 이 작품들은 웬만한 사람 크기로 눈앞에 등장한 인형들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살필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금 궁금해진다. 사치란 무엇인가. 그중에서도 최고의 사치란 무엇인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보석들은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이 진짜 값비싼 것이 아니다. 재료 중에는 재활용한 것들도 다수 있는 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치와 함께 바로 떠올리는 명품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작가는 「복」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매일매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것이 바로 예술가로서 누리는 최고의 사치라 말한다. 그러니까 「최고의 사치」는 인형 하나하나에 구현된 감각적 사물의 결과물이 아니라, 매일매일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해내는 작가 자신을 그려낸 초상화이며, 우리들 모두가 투사해내야 할 자화상이기도 한 것이다. 알베르 까뮈의 스승이었던 철학자 장 그르니에는 "최고의 사치란 무상으로 주어진 삶을 얻어서 그것을 준 이 못지않게 흐드러지게 사용하는 일이며 무한한 값을 지닌 것을 국부적인 이해 관계의 대상으로 만들어놓지 않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삶을 흐드러지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 어떤 국부적인 이해관계에 한정시키지 않고 앞 뒤 잴 것도 없이 살아보는 것이다. 욕망을 대체하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을 있는 그대로 살아낼 일이다. 윤정원 작가는 요즘도 이전에 그렸던 그림 위에 덧칠을 하고 있다. 그 사이 손을 떠난 작품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와 어우러져 살겠지만, 아직 품에 남아 있는 작품들은 뭔가 계속 살아있는 다른 목소리를 부르고, 작가는 그 목소리에 응답하듯 계속 오래된 작품을 진행 중인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물론 어느 날 그 작품을 원하는 이가 나타나면, 그 작품은 또 그리로 가 그 현재에 유효한 새 삶을 살 것이다. 설치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모든 작품은 어느 날 어떤 모습으로 조금씩 변할지 모른다. 무언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즐거운 욕망과 함께 현재형이다. 윤정원의 작품은 말한다. 미련 없이 흐드러지는 일, 제각각 생명 있는 것들이라면 유기물이나 무기물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살아 있는 것으로서의 제 소명을 다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끝끝내 놓지 말아야 할 사치라고 말이다. 그렇게 사는 모습이 결국 한 데 어울려 서로를 빛내주는 '우주의 꽃'이 되어 피어나고 있다. ■ 황록주

Vol.20150424b | 윤정원展 / YOONJEONGWON / 尹廷原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