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 하던 일

연미展 / YEUNMI / 軟尾 / mixed media   2015_0425 ▶︎ 2015_0517 / 월요일 휴관

연미_어떤 일, 하던 일_신문에 흑연_280×78cm_2015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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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425_토요일_03: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문화공간 양 CULTURE SPACE YANG 제주 제주시 거로남6길 13 Tel. +82.64.755.2018 culturespaceyang.com

아침부터 밤까지 수많은 음절과 단어 그리고 문장이 하나씩 쌓여 어느덧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길고 무거운 불면의 시간을 보내고 겨우 만나게 된 짧은 수면 동안 다시 하나씩 힘겹게 비워내긴 하지만, 다음 날이면 다시 어김없이 다른 음절과 단어 그리고 문장이 쌓이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잠이라도 못 드는 날이면 허용 적재량에서 두세 배가 넘도록 쌓여 뇌를 둘러싸고 있는 막이 찢어질 것만 같다. 오늘 입수된 음절과 단어 그리고 문장은 다음과 같다. 원 없이 다 해보았다는 어느 드라마 작가의 절필 선언, 잠적한 무기수의 다소 로맨틱(?)한 펜팔 연인, 브라질에 도착한 대통령의 빨간 상의와 그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빨간 계단 그리고 1년 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을 대하는 어떤 이들의 무시무시한 반응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태롭게 쌓인 한 문장이 있었다. 40대 초반의 미혼인 여자 작가가 원인 모를 병으로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였다. 그 마지막 문장은 결국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마음에 생채기를 내었다. 내가 이처럼 그날그날 취득하는 모든 음절과 단어 그리고 문장들의 출처는 수많은 외부 매체에 있으므로, 궁극적으로 그것들이 '나'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나는 날마다 떠나고 날마다 새로이 찾아오는 그것들에 맞추어 그 날의 나를 규정하고 정의하곤 한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매체가 제시하는 이미지와 문장에 나를 대입하며 살아온 것 같다.

연미_어떤 일, 하던 일_신문에 흑연_280×78cm_2015

작가 연미는 거의 날마다 조우하는 매체, 그 중에서도 거대 대중매체와 우리의 '관계'에 대해 골몰히 생각하도록 하는 작가이다. 일반적으로 매체와 대중의 관계를 설명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전자의 특징에 대해 말을 꺼내곤 하는데, 그것은 근대적 매체의 일방적 말하기 방식이 지니는 폭력성이나 일부 매체가 자행하는 진실 왜곡과 축소 등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연유로 대중은 어느덧 매체를 불신하게 되었으며, 그들 사이에 음모론이 확산되어 언젠가 흑마술이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지배논리에 순응하는 소극적인 대처방식이다. 연미의 작업에서는 이에 대한 작가다운 대안들이 엿보인다. 물론 그 방법은 작가 연미의 것이므로, 모든 이에게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작품 속에서 그것들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

연미_1kg=₩60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5

작가는 기호가 지배하는 상징계의 근대적 논리를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전복시키고 있다. 연미가 택한 질료는 종이신문으로, 그것은 깔끔하게 정돈된 기호들(활자와 이미지)을 통해 가독성을 높이면서 객관적 정보(상징과 논리)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일한 매체(신문)를 활용하여 작업해오면서, 그 안에 국가(지역)별, 성향별, 목적별로 서로 다른 메커니즘(편집방식, 왜곡방식)의 차이가 존재하며, 그 기제를 통해 사실(팩트)을 서로 다르게 전달하고, 궁극적으로 독자들의 사유와 감정을 치밀하게 잠식하고 있음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채택한 것이 바로 - 21세기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 노동집약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신문의 텍스트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변형시키거나 부각시키는 것이다.

연미_썸머리 시티 Summary city_혼합재료_54×39cm×17_2013~5
연미_인터내셔널 International_신문에 드로잉_54×39cm×4_2010~5

그동안 시도해온 여러 방법들 중에서도 이번에 작가가 선택한 것은 크게 세 가지로, 1) 특정 이미지 혹은 단어를 남겨두고 신문의 나머지 공간을 연필로 빼곡하게 칠하거나, 2) 셀룰로오스 테이프를 붙이고 떼어내면서 신문지 위에서 문자들만 정교하게 분리해내거나, 3) 세부적으로 문자 위에 덧칠을 하면서 한글을 제3세계 문자(아랍문자)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더해 작가는 실내외에 가판대를 설치하기도 하고, 해외 각지의 신문지와 제주도 지역신문을 이용한 작업들도 선보인다.) 이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자동화에 성공한 윤전인쇄와 마법에 가까울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한 디지털 매체의 성과를 온전히 거스르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상징적 차원에서 보자면, 본래 의미의 명확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비정상적인 전복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연미_헤드라인 Headline_신문에 목탄_54×39cm×6_2008

하지만 우리는 작가가 '예민하고 불편한 사건들(혹은 인물들)'을 이성이 아닌 직관과 감각으로 포착하고 있다는 점과, 매체에 의해 의도적으로 망각되었거나 은폐된 이미지들을 새롭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미의 작업은 외부세계가 강요하는 보는 방식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주체적으로 이미지(혹은 텍스트)를 선별하고 있으며, 그녀의 예술적 개입(노동)은 이미 평면으로 밀착되어버린 사건과 사람(천암함, 세월호, 용산참사, 효순이와 미선이 등)에 새로운 물성을 부여하면서, 그것들을 촉각화(이를 테면, 번쩍이는 흑연의 질감과 셀룰로이드테이프로 긁어낸 문자와 문자가 떨어져나간 신문지의 질감 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서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인 촉각은 쉽게 잊히지 않는 감각이기도 하고, 타자와 공감할 때 가장 예민하게 작용하는 감각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작가가 만들어놓은 장치들을 통해 과거의 사건과 사람들을 다시금 소환하여 가슴으로 만나고 공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도무지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또 다른 상황과 사람들은 직관으로 통찰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미_스캔 대통령 Scanned President_신문에 흑연_54×39cm×3_2014
연미_스캔 진도 Scanned Jindo_신문에 흑연_54×39cm_2014_부분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인간을 놓고, 이성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이전에는 사람과 사람이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영적인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시대에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명확하게 둘로 나뉘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 옳을 가능성이 있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한다. (물론 이해되지 않는 불의의 상황도 분명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명확히 옳은 한쪽과 명확히 그른 반대쪽이 존재하며, 상대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무력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이는 역설적으로 사회참여적인 예술작업을 하는 몇몇 작가들에게도 해당된다. 물론 사회적 신념을 지키면서 예술적 가치를 창출해낸 훌륭한 예술가들도 많았지만, 게 중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이슈를 다루는 이들도 있었고, 프로파간다를 위해 예술적 상상력과 재능을 희생시킨 경우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거대 매체를 대하는 연미의 날카롭되 발랄한 태도를 옹호하고 싶다. 세상이 궁금해서 보기 시작한 신문이 어느덧 작품의 재료가 되었고,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소재를 고집하면서 터득하게 된 매체(더욱 넓게는 세계 전체)의 메커니즘이 동기를 지속적으로 부여하였으며, 이에 대한 예술가다운 대안 제시가 작품의 결과물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연미_어떤 일, 하던 일展_문화공간 양_2015

다행히도 연미의 작업에서는 강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아마 그녀 역시 다양한 옳은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 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이번에 문화공간 양에 설치된 작가 연미의 작품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지금은 교양서가 된 과거의 불온서적을 다시 탐독하는 것과 같은 작은 긴장과 떨림이었던 것 같다. ■ 김지혜

Vol.20150425d | 연미展 / YEUNMI / 軟尾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