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적(無關心的) (이기적인 욕망이나 욕구의 동기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것)

이효숙展 / LEEHYOSOOK / 李孝淑 / painting   2015_0426 ▶︎ 2015_0506 / 월요일 휴관

이효숙_무관심적(無關心的)-오후2시_비단에 채색, 은박_80×130cm_201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갤러리 팔레 드 서울 2015 신진작가 공모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통의동 6번지) 이룸빌딩 Tel. +82.2.730.7707 palaisdeseoul.com blog.naver.com/palaisdes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성찰 ● 거대한 문명의 압도적인 힘은 우리를 굴복시킨다. 물의 흐름까지 정지시키는 거대한 댐, 중력을 무시하듯 도심에 우뚝 솟아있는 건물들, 산을 가로지르는 터널들... 현대는 효율적이고 빠른 삶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 내면서 자연의 시간과 점점 멀어져간다. 인류가 처음부터 자연의 시간이 느리다고 느끼지만은 않았을 거다. 봄이 되어 싹을 내는 나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잎을 틔우고 키워낸다. 새벽 동이 틀 때나 석양이 질 때 바라보는 태양의 속도는 이 거대한 지구가 얼마나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지 실감하게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더 빠른 속도와 생장을 원하며 그를 위해 자연에 변형을 가한다. 동식물의 발육과 관련하여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생산량을 내는 것이 유전자 조작의 핵심이며 거대한 산업이 되어간다. 다양한 운송기계들은 더 빠른 시간에 적은 연료로 많은 것을 운반하려 한다. 인간은 이렇게 자연을 조작하고 기계를 창조하여 자신의 힘을 초월하는 힘을 길러왔다. 그러나 스스로도 직접 조작 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가지려는 근원에는 인간의 소유욕이 근간을 이룬다. 더 안락한 생활을 가져다 줄 것들을 제작하고, 그것을 소유, 특히 남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서로 다투어 자연의 시간을 거역하고 문명에 따라 재편되는 시간 속에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은 거부할 수 없다. 욕망의 속도가 빨라지고 그것을 부추기는 광고나 브랜드 이미지와 유행이 시시각각 변하여도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몸은 그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다. ● 이효숙은 자연을 거스르는 삶과 대비되는 자연의 소소한 장면에서 일상성을 발견하며 내면을 성찰한다. 작품에는 아기자기한 풀꽃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종종 작고 여리지만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게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며, 자연의 운행에 역행하지 않으면서도 강하게 살아나가는 법을 터득하였다. 바람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동물이나 사람의 발에 밟혀도 죽지 않는다. 스스로가 생장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가서 뿌리를 깊게 내린다. 오히려 자연을 따르면서 생장하고 번식한다. 그리고 태양을 따라 꽃을 피우고, 바람을 따라 씨를 보낸다. 이처럼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 관계망을 맺어가며 생명을 꾸려나간다. 작가는 인간의 시야에서 벗어난 외딴 장소의 여리지만 생명력 있는 초목들에 주목한다. ●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으로 우리의 해석이나 삶과는 관계없이 있어왔고, 존속할 것이다. 나름 그것들도 생명을 유지하려는 방향성이야 있을 테고, 나름의 치열함으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며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풀꽃들은 미래의 일의 대비하여 미리 축적하지 않으며, 남보다 크고 화려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작가는 이러한 들풀들을 바라보며 인간에 대한 반성을 시작한다. 여린 풀들이 무심히 스스로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역설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을 발견한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자연에 비하여 욕망에 의해 비틀어진 인간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효숙은 이러한 인간의 덧없는 이기심을 버린 사심 없는 시선으로 본 자연을 작품에 담았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핵심인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자연이자 우리의 숨겨진 다른 본성에 비추어 바라본다. ●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그것을 인간 편의중심으로 가공하여 삶을 편리하게 해 왔다. 안분지족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은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 내면의 자연마저 파괴하여 스스로를 자연에서 분리해 버렸다. 작가는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자연에 인위적인 힘-화분 모양의 선-을 살짝 얹어 놓아 인위적인 것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구속하는지 실험적으로 보여준다. 길가에 핀 들꽃을 화분에 담아 인간의 삶으로 옮겨오는 순간, 자연으로서의 싱싱한 아름다움은 사라져버린다. 인간의 욕망과 집착에 의해 보잘 것 없이 변형되는 자연에 대한 화두를 제시한다.

이효숙_침묵(沈默)_비단에 채색, 금박_91×117cm_2015

하지만 자연의 가르침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의 해석일 뿐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다루는 자연도 우리가 관찰하는 대상 혹은 인간 문명과 대비되는 어떤 것으로 상정하였다는 점에서 타자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가르침은 문명과 이성에 지나치게 강요당하는 부분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 실제로는 자연은 평온한 무욕의 상태가 아니라, 폭력과 치열함으로 점철된 세계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적 수준에서 헤아릴 수 없으므로 각자마다 자연에 대한 해석과 시각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와 개인마다 자연에 대해 다양한 관점들과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이며, 실제로는 그 다양한 해석들은 개개인의 마음 속 자연의 울림일 것이다. ● 이효숙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해석의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소박하게 핀 작은 꽃과 풀에 차갑게 개입한 은색 선으로 된 그릇 형상. 차가운 반짝임은 보석이나 금속의 속성이며, 인간이 언제나 욕망하는 대상이다. 보석이 아니더라도 오늘날의 많은 상품들, 상품을 둘러싼 포장들은 반짝이며 우리를 유혹한다. 한편 그릇이란 무언가를 담고 틀을 규정하는 것이며, 무형의 것을 담아 다루기 편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릇의 형상은 나아가 사람들의 편견, 혹은 인간적 생각이라는 한계를 상징하고 있다. 무엇을 담기 위한 그릇은 선으로만 나타내어 물질적인 질량을 가늠할 수는 없다. 화면 안에서 이 화분 혹은 그릇은 어떤 것도 담을 수 없는 빈 그릇인 동시에,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기도 하다. 우리의 생각의 틀, 혹은 욕망의 틀이란 이처럼 어떤 형태, 어떤 입장에서 타자와 대면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모든 것을 담으려 하지만, 어떤 것도 담을 수 없는 공허한 망상의 경계인지도 모른다.

이효숙_무관심적(無關心的)_비단에 채색, 은박_97×130cm_2015

우리의 욕망이 바라는 것은 소유와 집착에 있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와 평안에 있을 수도 있다. 이효숙의 작품에서 여린 풀꽃들은 욕망과 대비되는 평온함을 주는 대상이다. 작가는 하늘거리는 작은 풀들에 깃든 꽃다움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일견 화면은 소박하지만 편안하고 예쁘다. 욕망 없이 사물을 바라보겠다는 작가의 마음과 함께 대상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다. 아름다움을 꺾어서 소유하기 보다는 있는 상태 그대로 바라보기를 기대해본다. 손가락 두 개씩을 엮어 카메라 플레임을 만들어 보듯이, 들풀들이 화면 속에 그려진 가상의 화분에 담겨 있을 때를 상상해 본다. 그것은 끝없이 생장하고 확장되는 생명을 우리가 조작할 수 있는 한계 안에 가둬두어 소유하려는 욕망에 불과하다. ● 작품의 전체적 이미지와 구분되는 선으로 드러나는 플레임은 잔잔한 화면에 변화를 준다. 선은 “도대체 왜 전체적 조화를 깨뜨리는 선을 화면 위에 얹은 것일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는 장치다. 이러한 장치로 인해 완전한 자연으로서의 화면은 균형을 잃고 몰입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에서 작품을 읽게 한다. 그저 예쁘게 그려진 식물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 초목과 그릇의 관계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면서 작가의 주제에 다가가게 한다. 한편 플레임은 전체적인 작품의 구도에 생동감과, 작가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며,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찾을 때 볼 수 없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한다. 이러한 장치와 요소들은 싱그러운 들풀과 꽃의 미에 대한 감상에만 빠지지 않고, 이를 넘어서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게 이끌어 준다. 그 반성은 우리가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여기는 사고체계, 인간적 욕망의 발현에서 오는 사고 혹은 생활방식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이러한 성찰은 오늘날 가속화 되는 자연과의 분리, 인공적인 플레임(문명, 사고, 규칙, 영역 등)이 주는 중압감 속에서 고통 받는 우리 안의 자연을 숨 쉬게 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 이수

이효숙_침묵(沈默)_비단에 채색, 연필, 은박_90×50cm_2015

자연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많은 생물들과 공생하며 존재한다. 존재하는 그대로의 자연(自然)이다. 기교적이고 교활한 욕망이 없다. 나는 표면적으로 보여 지는 것들에 대해 지나친 집착과 욕망으로 삶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연(自然)은 나에게 무관심적(無關心的)인 삶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침묵....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행위이다....... 마음으로 마음을 본다.) ■ 이효숙

Vol.20150426a | 이효숙展 / LEEHYOSOOK / 李孝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