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2015-장욱진과 김종영

개관1주년 기념展   2015_0428 ▶ 2015_0816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5_0428_화요일_04:00pm

협력 / 장욱진미술문화재단_김종영미술관_내촌목공소

관람료 / 성인 2,000원 / 청소년 1,000원 / 어린이 5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YANGJU CITY CHANGUCCHIN MUSEUM OF ART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211 Tel. +82.31.8082.4241 changucchin.yangju.go.kr

장욱진과 김종영의 심플(simple) ● 1960년대 한국 미술계에는 '추상미술'이라는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현대성, 모더니티의 세련미는 서구의 합리적 이성주의로 향했다. 재현의 형식이 인간의 시각에서 탈각되어 정신과 합쳐졌을 때 추상의 의미는 이성의 선입견을 통해 가장 모던하고 세련된 형식이 되고자 하였다. 이에 많은 예술가들이 이른바 추상실험을 하였다. 자연과 일상을 그리는 화가 장욱진도 그러하였으나 그에게 '추상'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각실험이었다. 즉, 추상이 사물 속에 내재해 있는 정신적인 본질을 찾고자 한 것에 동의하지만 장욱진은 '사실'을 새롭게 보아야 하며,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순수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했기에 장욱진은 평생을 두고 일상성에서 '추상'의 의미를 발견해내고 그 안에서 삶을 살고, 삶의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자연 속에서 보편자의 정신을 찾고자 하였다. 장욱진의 추상은 사실을 바라보는 화가 그 자신의, 그리고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심상 속에 파고드는 정서적 간결함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간결함은 모든 사물을 사물답게 바라볼 수 있는 미적정서이자 동시에 사물에 붙어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적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장욱진에게 '추상'은 사물의 개념적 축약이 아니라, 사물의 근원으로 향하는 가장 자연적인 예술이었다. ● 김종영 또한 모든 사물로부터 발견되는 그것 자체의 자연적 순수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추상성'을 사유였다. 김종영의 추상조각은 형식상으로 크게 기하학적인 선과 유기적인 곡선형으로 나누는데, 실상 이러한 분류보다 그의 작품 속에 내재해 있는 추상성에 대한 조형의식 즉, 사물을 향한 사유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김종영의 추상은 형이상학의 개념이 아닌 자연과 생명, 일상의 환경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간결하고 순수한 조형의식이자 고요한 절제의 미로 읽혀진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과 생명, 일상의 삶이 엄격하고도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김종영은 사실에 입각한 장욱진의 추상성과는 사뭇 다르지만 단순미, 심플의 개념으로 서로 통한다. 자연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깨우치고자 한 자기 수행적인 삶, 생명에의 무한한 애정, 무위자연과 동양적 사상의 심취는 두 거장의 예술세계를 하나로 이어준다. '심플(simple)', 심플은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으로부터 시작된다. 거기에 소박함과 순수함이 함께 의미를 더한다. 장욱진과 김종영의 예술과 삶에서 보여준 '심플', 두 거장의 '심플' 정신은 예술의 가장 극점에 도달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그리하여 인간의 일상적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가장 훌륭한 예술정신 그 자체가 아닐까.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는 장욱진의 이러한 '심플(simple)' 정신을 잇고자 매년「SIMPLE」에 대해 연구,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전시로『simple 2015 장욱진과 김종영』을 선보인다.

장욱진_얼굴 A Face_캔버스에 유채_40×30cm_1957

1. 김종영의 심플, 사유의 원형"나는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든다는 것-이런 따위의 생각은 갖고 싶지 않다. 기술과 작품의 형식은 예술을 위해서 사용되는 방법이기 때문에 가능한 단순한 것이 좋다. 표현은 단순하게- 내용은 풍부하게-" 1) ● 김종영(金鍾瑛, 1915-1982)은 한국의 추상조각을 개척한 1세대 조각가로 엄격하고 단순화된 작품들로 순수한 추상예술의 세계를 선보였다. 김종영은 1930년 장발(1901-2001) 2) 이 지도하고 있던 휘문학교에 입학하여 그의 제자가 된다. 이후 동경미술학교를 입학하는데 스승 장발의 권유로 조각을 택하게 된다. 장발은 일찍이 한국 미술의 조각의 확장과 조각분야의 인재를 알아 본 선각자였다. 당시 한국인 최초로 동경미술학교에서 근대 조각기법을 배운 독보적인 조각가 김복진(1901-1940) 3) 을 통해 인체조각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의 이른 타계와 김종영의 두각은 한국 조각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1953년 런던 테이트갤러리에서 개최한 국제조각공모전에서 김종영은 구상조각「무명정치수를 위한 기념비」로 한국 최초로 입상하였으나, 이후 추상으로 방향을 바꿔 추상조각의 선구자가 되었다.

장욱진_무제 Untitled_캔버스에 유채_30×23cm_1974

"나는 일찍이 주로 인체에 한정되어 있는 조각의 모티프에 대해서 많은 회의를 가져왔다. 예술이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감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그후로 오랜 세월의 모색과 방황 끝에, 추상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내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숙제가 다소 풀리는 듯하였다. 사물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참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지역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과의 조화 같은 문제도 어떤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4) ● 김종영의 조형의식의 변화는 현대조각의 확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의 추상은 서구의 개념적 추상과는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김종영의 조각은 브랑쿠시의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작품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나, 브랑쿠시가 추구하고자 했던 정대칭의 완벽한 구조에서 벗어나 비대칭의 생명성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즉, 김종영은 심메트리(Symmetry, 대칭)가 작품을 평면화하고 운동성과 입체의 생기를 잃게 하는데, 반대로 아심메트리(Asymmetry, 비대칭)는 동적인 변화를 수반하여 조화롭게 만든다고 보았다.

장욱진_천막 A Tent_캔버스에 유채_37.5×45cm_1973

"지난 십 년 동안은 형체와 사물의 순수성을 탐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러한 실험적 노력을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은 사물의 전체와 종합성을 등한시했다는 데 불과하였으며, 지나친 단순은 매양 단조(單調)와 빈곤으로 되어버려 결과적으로 작품은 사물의 전체성을 갖추지 못한 부분적 작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나는 자연을 관찰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으며 인체나 식물에서 불순(不純)을 발견하지 못했다." 5) ● 서구 추상미술의 흐름에 대한 반성을 통해 김종영은 더욱 자연적이고 유기체적 작품을 제작한다. 그는 나무, 돌, 철, 금속, 석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였는데 각각의 매체가 가진 속성을 연구하고 또한 그것을 뛰어넘어 온전히 그의 예술정신에 합일시키는 수행적 태도를 보였다. 김종영의 심플은 각각의 질료가 가진 특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는 돌과 나무의 자연적 형상을 무시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추상성을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즉, 김종영의 단순함은 자연의 물체가 가진 가장 순수함을 발견하는 것이자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물질의 원형을 돋보이게 하는 예술행위이자 사유인 것이다. 그렇기에 김종영의 추상조각은 개념을 향한 서구예술의 순수함이 아니라, 자연과 합일된 동양적인 순수함으로 향했다. 이러한 견지에서 그의 조각을 '유기적 추상'이라 부른다. 그의 예술세계는 사대부 가문의 유교적 배경과 도가적 무위자연, 불교적 선사상에 영향이 있다. 그의 작품을 '불각(不刻)의 미'라고 부르는 것에는 또한 이러한 사상적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대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그 안에서 순수함을 찾고자 하는 김종영의 심플은 진정 심플함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김종영_작품 78-29_돌_27×20×14cm_1978

2. 장욱진의 심플, 그대로의 순수함"여름의 강가에서 부서진 햇빛의 파편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수면 위에 떠도는 아지랑이를 타고 동화가 들려올 것 같다. 물장구를 치며 나체로 뛰노는 어린아이들이 모습에서 적나라한 자연을 본다. 그리고 천진했던 어린 시절에의 향수가 감미롭고 서글프게 전신을 휘감는 것을 느낀다. 태양과 강과 태고의 열기를 뿜는 자갈밭, 대기를 치스치는 여름 강바람 - 이런 것들이 나 역시 손색없이 자연의 아들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럴 때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공허하지 않다." 6) ●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은 자연 속에서 예술적 이상을 찾고자 하였다. 그는 인간이 살아가는 온전한 자연을 표현하려고 하였고, 자연의 순수한 세계에서 욕심내지 않았다. 추상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개념화하거나 패턴화하지 않았다. 그는 온전히 자연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기에 그는 심플한 그림을 그렸다. "나는 심플(simple)하다"라고 직접 말하지 않아도 그의 작품이 온전히 이를 보여주고 있다.

김종영_작품 78-28_돌_27×20×14cm_1978

"내 평생에 가장 큰 죄를 위선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 그건 아주 고약한 거예요. 욕은 욕대로 맛이 있는 거요. 욕은 참 좋은 겁니다. 그러니까 욕은 자꾸 먹어야 그림이 되는 거고, 근데 요새 말은 위선으로다 뱅 돌려서 이상해. 환쟁이가 그런 말에 솔깃하기 시작하면 붓대 놓아야 한다구. (...) 화가면 화가, 학자면 학자 그래야지 요것도 좋으니까 조금 집어넣고 조것도 조금 섞어놓고 그럼 다 똑같애져요. 그 버릇, 그 버릇으로 그림도 그리지. 우리는 뭘 설정해놓고는 그림 못해." 7) ● 그는 평생 '심플함'을 외치며 심플하게 살았다. 체면보다 진정성 있는 순수함을 추구했고, 그 순수함을 작품에 온전히 쏟아 부었다. 순수하다는 것은 그가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부터 불필요한 선입견이나 위선들을 하나씩 걷어냈다는 말이다. 또한 심플하다는 것은 이것저것이 섞여 있는 상태가 아니라 많은 것들을 비워내고 단지 하나, 사물의 뼈대만 남았다는 말이다. 이 사물의 뼈대가 바로 장욱진이 평생에 걸쳐 완성하고자 한 순수함이다. 사물 그대로의 순수함, 인간 그대로의 자연스러움, 작품 그대로의 단순함이 바로 화가 장욱진이 추구하고자 했던 심플함이다. 이러한 심플함에는 그가 생명에 무한한 애정을 품었던 인본주의적 사상과 도가적 무위자연의 이상적 세계관, 그리고 불교적 깨달음의 비워냄이 모두 응축되어 있다. 동경 제국미술학교를 유학한 그가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벗어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심플한 삶을 살기 위해 평생을 치열하게 고뇌한 것은 분명 심플함을 진정으로 추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장욱진의 추상은 본질 그대로의 형상을 추구하는데 예술가이기에 특별하지 않은,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똑 같이 바라보이는 사물들을 사물들로 그렸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어린아이의 낙서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초상이 되기도 하고, 어느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순수한 그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영원히 늙지 않은 '일곱 살' 화가 장욱진의 심플은 정신적으로 맑고 깨끗한, 순수이상의 모습 그대로 친근하게 우리들 곁에 존재한다.

김종영_작품 74-9_나무에 채색_69×12×21cm_1974

한국 근현대미술의 선구자 장욱진과 김종영의 심플정신은 시대적 흐름을 넘어 현대에 고스란히 전승되어야 할 예술철학이다. 심플은 미술의 역사에서 개념을 걷어내고 비워내는 동양의 정신이자 한국 현대미술의 방향성을 제시한 시대의 미학으로 이해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자연의 식물이 땅 속에서 솟아나 하늘 위로 올라가듯이, 또한 바람이 불어 나무가 옆으로 흔들리는 듯이 자연의 이치에 맞는 심플함은 두 거장의 심미안을 통해 간결한 추상성으로 다가온다. 심플에 대한 이러한 추상성은 양식적인 차원이 아닌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조자이자 진심어린 예술가의 구도적인 순수함을 향한 의지일 것이다. 자연과 인간, 간결한 선과 색으로 모든 것을 표현한 화가 장욱진의 유화작품과 돌과 나무, 비정형과 유기적 추상을 선보인 조각가 김종영의 순수하고 간결한 조각들은 그러하기에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치열하고도 고독한, 철저한 자기절제와 수행을 거친 장욱진과 김종영 두 거장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순수성을 향한 예술의 강렬한 열정인 '심플'을 목도하고 있다. ■ 백곤

* 주석 1) 김종영,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 조각가 김종영의 소묘와 산문』, 열화당, 2005, p. 89.    - 원본『초월과 창조를 향하여』는 1983년 김종영 작고 1주기를 추념하기 위해 제작되었고,    이후 기 발표된 글을 하나로 묶어 2005년에 완성본이 출판되었다. 2) 장발(張勃,1901-2001)은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중퇴하고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1925년 귀국하여 휘문학교에서 미술학도를 지도하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설립하고 미술부 교수와 미술부장을 역임했다. 3) 김복진(金復鎭, 1901-1940)은 한국 최초의 서양조각을 도입한 조각가로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였고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鮮展)에서    사실주의 인체표현 조각인「나체습작」등으로 입선하였다. 4) 김종영, 앞의 책, p. 29. 5) 김종영, 앞의 책, p. 100. 6) 장욱진,『강가의 아뜰리에』, 민음사, 1987, p. 59. 7) 장욱진, 앞의 책, p. 115.

Vol.20150428a | simple 2015-장욱진과 김종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