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진_권인경展

2015_0428 ▶ 2015_0510 / 월요일 휴관

구이진_Red Study after Audubon 1_종이에 혼합재료_76×57cm_201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구이진『틈 속의 우연 Coincidence in the Gap』展 권인경『개인의 방 The private room』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29-4(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틈 속의 우연 Coincidence in the Gap ● 지난 작업들을 돌아보니 작업과 작업 (전시와 전시, 시리즈와 시리즈, 작품과 작품) 사이에 틈들이 보인다. 하나의 사이클이 끝나고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되기까지의 틈에서는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틈을 단순한 공백이라고 볼 수는 없다. 틈은 고유한 성격을 갖는다. 그 성격은 지속되는 것들의 반복과 변화된 차이들이 한데 뒤섞이며 형성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여러 만남들을 거치면서 어떤 것들은 남고 어떤 것들은 사라진다. 어쩌면 틈에서야말로 작업의 전체 과정 중에서도 가장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거기서 예측하지 못했던 어떤 우연과 접속되고 그것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다음 행로의 방향과 성격이 결정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구이진_나르시시스트 2_캔버스에 유채_130.3×89.4cm_2013
구이진_드레스입기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80.3cm_2009

각 사이클들의 명확한 개성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 서로 다른 차이에 의해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관통하며 연결하는 동일성이 없다면 창작의 정체성은 애매해진다.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아마도 스타일이라 부를 것이다. 그러니까 스타일이란 끊임없는 변화와 차이를 포함하면서 유지되는 동일성을 일컫는다. 스타일은 분명 내 몸 어딘가에서 나오지만, 반드시 외부에서 주어지는 우연을 통해 드러난다. 우연이란 자아의 예측이나 기대 밖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고 본다면, 스타일이란 당사자가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에 의해 발견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스타일에서 자아의 범주를 벗어나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자기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떤 작가가 자신의 스타일을 잘 안다고 하는 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그러니 발견을 위해서라면 지나간 사이클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냈던 생각과 의도들을 계속 고수하며 이어가려는 의지보다, 틈 속에서 새롭게 마주치는 우연들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습관에 연연하는 한 이것은 결코 해내기 쉽지 않은 일이다.

구이진_빨간 의자 3_캔버스에 유채_100×72.7cm_2014
구이진_아무도 아닌 이를 위한 근사한 빨간 모자 1_캔버스에 유채_91×72.7cm_2009
구이진_이야기 만드는 마녀들의 섬_캔버스에 유채_116.7×80cm_2011

예를 들자면 이미 익숙해진 방식으로 다음 작업을 구상하려 했던 어느 날 당황스럽게도 한 무리의 새떼가 느닷없이 그림 안으로 날아드는 이미지를 감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전에 새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진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말이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 사건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고 의지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틈이 생겼다. 새의 이미지가 갈라놓은 틈 속으로 새로운 우연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런 우연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일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그렇게 해보려고 애쓰는 것, 그러다가 실패를 맛보고서도 다음 우연을 기꺼이 기다리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의 반복에 피로해지지 않고 결국 즐기게 되는 것, 그것이 곧 작업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이런 창작이라는 과정을 통해 나는 삶의 어떤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것은 우연과 관계 맺기, 내가 아닌 나와 관계 맺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하는 내 삶과 관계 맺기 연습이다. ■ 구이진

권인경_Heart-land 6_한지에 고서 콜라주, 수묵채색, 아크릴_130.5×162cm_2014
권인경_Heart-land 4_한지에 고서 콜라주, 수묵채색, 아크릴채색_61×92.5cm_2014

개인의 방 The private room ● 처음에는 생경했던 하나의 공간은 인간이 그 안에 흡수되어 동화되면 서서히 인간의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특히 집은 지극히 인간들이 개입해 만든 사적 공간으로 내부에 거주하는 인간들의 확장공간이며 표현 방식이다. 집은 곧 내부 인간이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표본이 된다. 이는 세계의 질서가 압축된 곳이다. 바슐라르가 집을 '우리의 첫 번째 우주'라고 했듯 집은 인간의 최초공간이며 세계인 동시에 우주이다. 집은 인간이 뿌리내리고 있는 중심부이며 또한 회귀점이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단순히 머무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주라는 직접체험을 통해 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간다. 생택쥐베리는 성채에서 '사람들이 집에 살고 있다는 것, 사물이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는 그들이 사는 집의 의미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즉 인간의 본질은 공간과의 관계맺음 속에서의 거주 행위를 통해 규정된다.

권인경_Heart-land_한지에 고서 콜라주, 수묵채색, 아크릴채색_127×158cm_2014
권인경_기억의 심연 4_한지에 고서 콜라주, 수묵채색, 아크릴채색_24.5×33.5cm_2014

집은 인간의 역사를 포함하고 있기에 집의 변화 과정은 인간의 인생사이며 그 내부 공간에는 추억이 깃든다. 집은 인간과 함께 자라나며 성장해 가는 과정 속에서 바로 그 인간 자체가 된다. 집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 사적인 물건들, 배치의 형태는 내부 거주자의 삶에 맞게 꾸려진다. 집에서의 모든 것 하나하나가 곧 그 내부의 인간과 동일해 지는 것이다. 집은 인간의 사적 체험의 공간으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즉 닫혀있는 공간이라기보다 열려있는 공간인 것이다. 이는 집이 살고 있는 인간에 의해, 그들의 삶에 의해 변동되는, 살아가는 공간 (이는 뒤르크하임이 사용한 용어이기도 하다.)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사적 공간체험 방식이 바로 집이다.

권인경_여기로 돌아오다_고서에 전사, 수묵채색, 연필_17×11.5cm_2013
권인경_펼쳐진 집_한지에 고서 콜라주, 수묵채색_126×156cm_2013

어떤 장소의 가치를 발견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아의 영역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인간들은 그들이 속한 장소를 통해 그 안에 녹아들어 있는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엿본다. 집에서 본인만의 공간은 '개인의 방'이다. 지극히 사적이며 안전한 장소인 것이다. 방이라는 공간은 철저히 개인의 영역으로 자아의 구체적 실현이며 확장이고 때로는 안락함을 제공해 주는 안식처이자 동시에 외부공간으로의 출발지점이다. ● 나는 이 '방' 특히 '개인의 방'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상황과 상상을 통해 또 다른 영역으로의 전환을 꾀한다. 매우 폐쇄적인 듯 하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그 안에서 상상의 공간이 창출되고 외부영역과의 관계맺음 속에서 자아의 영역은 외부세계와 연결고리를 찾게 된다. 보호받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와 외부와 관계 맺고자 하는 소통 욕구의 이중 심리구조를 '개인의 방'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다. ■ 권인경

Vol.20150428h | 구이진_권인경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