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아닌 모든 것 Everything about Nothing

유영은展 / YOOYOUNGEUN / 兪瑛恩 / painting   2015_0429 ▶ 2015_0504

유영은_빨대숲 in the Kitche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45.5×112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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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429_수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관훈동 119번지) 제1전시실 Tel. +82.2.734.1333 www.ganaartspace.com

기억이 만들어내는 환상 동화 ● 유영은의 회화는 기억의 저장고이다. 회상(reminiscence)이자 추억담(追憶談)이다. 기억은 개인의 역사와 자취를 형성하는 저장고이자 보물 상자와 같다. 개인의 기억이 과거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가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은 달라진다. 삶의 지향도 달라진다. 유영은은 기억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만나고 대화하며 스스로를 분석하고 상상한다. 작가에게 그리는 작업은 기억을 다시 쓰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 분리되고 단절된 요소들을 연속시키고 분리된 시간의 층위들을 하나로 응집시킨다. 분리된 기억의 조각들은 정돈되고 조율된다. ● 유영은의 기억은 일상의 사물에 근거한다. 기억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을 상기하고 재현하기 위해서는 상징물을 통한 은유(metaphor)가 필수적이다. 평범한 삶에 바탕을 둔 물건들은 구체적이고 실재적(實在的)인 사건들과 기억들을 발견해내도록 도와준다. 사실 기억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소유하는 기억의 흐름 역시 지속적인 것이 아니다. 결속이 와해되거나 약해진 지점은 누구의 기억에나 존재한다. 작가는 그 지점을 복구하기 위해 사물을 통한 회상을 이용한다. 특정한 사물은 특정한 공간과 장소, 시간에서의 경험을 되살려내 단절된 기억의 순간을 되살린다. 작가는 추상적이고 선험적인 삶의 가치와 의미보다 삶 그 자체를 사랑하기에 구체적이고 소소한 것들에 집중하고 사사로운 일상을 그려낸다.

유영은_빨대숲 in Positan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80.3×130.3cm_2014
유영은_Coffee of the thro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20×120cm_2015

평범한 삶에는 생명의 리듬이 존재한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반복되는 매일의 삶에는 결정적 순간이 존재한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지나치게 일상적이고 평범해서 소외되고 망각되는 것들을 낯설게 하고 거리를 두어 다시보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상의 이중성, 즉 평범함과 비범함의 공존이 드러난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일상생활에 관한 비평 Critique of everyday life』(1947)에서 주장했던 대로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이고, 가장 사소한 것이 가장 낯선 것이며, 신화는 사실을 환상적으로 반영시킨 것이다. 사소한 것은 놀라운 것이며 습관은 신화가 된다.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는 삶의 전환을 경험한다. 일상이 모여 한 개인의 역사가 된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들이 우리를 이루고 우리는 세계를 이룬다. 작은 존재들은 유영은의 회화 속 사물들이 그렇듯 쌓이고 쌓여 전체가 된다. ●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찾아내는 유영은의 전(全) 작업은 '빨대 숲, 기억하는 사물, 어떤 습관'이라는 세 개의 범주로 구성된다. 각각의 작업들은 작가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기억의 순간들을 암시하는 상징들로 채워진다. 작가는 자신과 같은 시공간에 한 번이라도 함께 존재했던 사물만을 그린다.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사물들,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듯 매우 평평하게 그려진다. 여러 층으로 중첩되기도 한다.

유영은_어떤 습관(드러내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0.9×65.1cm_2014
유영은_어떤습관(포장하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53×72.7cm_2014

'빨대 숲'은 유영은이 이십 대 중반부터 지속해 온 주제이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개인적이지만 결정적이었던 하나의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작가는 자전거를 타다가 전봇대에 부딪혀 매우 크게 다쳤고 한동안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트라우마(trauma)가 사라졌다고 생각할 무렵 작가는 우연히 빨대 뭉치를 보게 되었고 전봇대를 연상해냈다. 그런데 작가적 상상력은 상처와 공포만을 재생하지 않았다. '만약 탄성이 있고 부드러운 빨대로 만들어진 숲이 있었다면 어린 시절 자신이 그렇게 다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동화적 상상은 트라우마를 유쾌하고 즐거운 것으로 전환시켰다. 작가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빨대 숲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한다. 결국 '빨대 숲'은 작가가 만난 일상의 사소한 사물이며 기억의 조각이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이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치료약이다. 그것은 기억의 숲이자 삶의 숲이다. 과거의 삶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삶과 관계 맺는다. 관계맺음은 그것이 망각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이처럼 작가를 둘러싼 모든 사물들은 작가의 기억과 연결된다. 그것은 작가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동시에 작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 유영은은 마치 화면 가득한 인형 더미에서 하나의 인형을 찾아내고 골라내듯 무수한 기억의 숲에서 하나 기억들을 꺼내고 되새김질하고 그려낸다. ● 유영은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등장하는 중첩된 사물들은 연속적인 시간 구조를 해체하는데, 그것은 작가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정지되었거나 압축되었거나 재구성된 기억의 모습 그 자체이다. 유영은의 드로잉(drawing) 연작의 제목인 'Mixed Memories'가 암시하듯 기억은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적 상상력의 실현으로 존재한다. 또한 과거와 현재는 순차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연속적이다. 기억들 사이의 경계가 명확한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서로 겹쳐지기도 하고 뒤섞이기도 한다. 따라서 작가가 시간들 사이를 도약하고 뛰어넘어 숨겨진 기억의 층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깊은 심연을 피고 들어야 한다. ●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말했듯 기억은 예술의 척도이다. 예술은 기억을 보호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드시 작가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모방에만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기억을 파괴한다. 진정한 기억이라는 것은 상상력 속에 존재한다. 상상력은 흐릿해진 과거의 이미지(image)를 불러오는 데에 필수적이다. 상승된 기억 활동은 상상력이며 부유하는 정서적 경험들은 상상력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 이동을 한다.

유영은_아늑한 위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80.3×116.7cm_2015

작가적 상상력은 「어떤 습관(드러내다)」 연작(2010-ongoing)에 등장하는 촛불과 전구가 그렇듯 기억이 숨겨진 심연을 밝힌다. 되찾아진 기억은 선물이 되어 「어떤 습관(포장하다)」 연작(2010-ongoing)에서처럼 포장된다. 작업을 하는 작가적 행위를 상징하는 포장은 기억을 잊지 않고 소중히 보관함을 뜻한다. 결국 작가는 소중한 이 선물에 왕관을 씌운다. 작고 무가치해 보이는 한 사람의 한 순간은 그렇게 의미를 부여받고 기억된다. ● 작업이 진행될수록 유영은은 일상의 사물들을 그리는 데에서 벗어나 점차 풍경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삶의 기억은 물건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존재하는 공간과 풍경, 그리고 시간까지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시간, 특별한 공간 안에 존재하는 작가와 세계 속 사물-존재-들은 모두 작가의 작은 일상이자 기억이다.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이며, 개인적이지만 보편적이고, 일상적이지만 특별한 기억의 재현인 유영은의 회화는 작가가 존재함을 잊지 않게 하며 존재할 수 있게 이끌어 준다. ● 실재하는 일상에 근거함에도 유영은의 회화는 환상의 풍경을 보여준다. 작가는 초현실적인 환상 동화를 써내려가는 문학가와 같다. 일상이 만들어내는 환상 동화는 모순된 것 같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환상은 현실 밖의 것들을 눈에 보이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환상은 리얼리티(reality)에 대한 반응이다. 그런데 작가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기억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실재했던 것인지조차 모호해진다. 현존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다. 또한 기억 역시 실제 경험에 대한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연결점이다. 둘 다 내면과 외부의 치밀한 소통이다. 결국 기억에 근거한 유영은의 작업 역시 현실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녀의 회화는 환상이 그렇듯 일상에서 주관과 객관, 감정과 사상, 관념과 사물을 공존시킨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작가는 자기존재성을 확인하고 공고히 하며 자신을 만들어 간다. ■ 이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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