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시선

이재용展 / LHEEJAEYONG / 李在鏞 / photography   2015_0429 ▶︎ 2015_0513 / 일,공휴일 휴관

이재용_고래불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00×160cm_2012

초대일시 / 2015_0429_수요일_06:00pm

작가와의 만남 / 2015_0509_토요일_05:00pm

후원 / 미진프라자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사진·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22 SPACE22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390 미진프라자 22층 Tel. +82.2.3469.0822 www.space22.co.kr

하나의 대상에게 보냈던 시선들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 기억에 관한 문제의식이다. 지나간 시선들을 기억을 통해 현재 안으로 되살리는 작업은 사진의 정지된 순간성에 계기적인 시간성을 부여하는 활동이다. 사물 혹은 사태의 정체성은 그것을 바라보던 시선 하나하나의 입장에서는 비교적 뚜렷한 윤곽을 지니는 것처럼 보이나, 차후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시간적인 계기가 공간적으로 변형 혹은 수렴된 결과로서 모호하게 나타난다. 과거의 파편적인 시선들은 기억을 통해 현재 안에 집결하여 '중첩된 하나'로 떠오른다. 겹치기(중첩)작업은 이렇게 사물을 보는 시각에 대한 인식론적 반성에서 비롯한다. ● 겹치기 작업은 하나의 오브제, 또는 형태의 변화를 갖는 대상을 촬영한 결과물들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시간적 계기 속에서 배열된 이미지들은 형태와 색채에 대한 고려를 통하여 취사, 선택된다. 먼저 표준 이미지를 바탕에 깔고 서서히 각각의 컷들의 농도 혹은 투명도를 조절하면서 원하는 조형과 색감을 탐색해 나간다. 이러한 재구성의 과정은 형사가 범인의 몽타주를 완성해 가는 방식과 흡사하게 선택과 배제가 반복 된다. 이에 따라 맑은(淸) 이미지와 흐린(濁)이미지가 교차하면서 전체적으로 수채화 같은 깊이를 갖는 반투명의 복합적 이미지가 출현한다. ■ 이재용

이재용_신두리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00×160cm_2013

대안공간 SPACE22는 오는 4월 29일부터 5월 13일까지 중진작가 지원전시, 아홉 번째로 이재용 개인전 『기억의 시선』을 개최한다. 이재용은 최근 소버린 아시안 아트 프라이즈(2012-13)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되었고, 『포스트-포토그래피』(Robert Shore지음, Post-Photography : The Artist with a Camera, Laurence King, 2014)와 같은 사진 전문 서적에 실리는 등 최근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는 베를린 아시아 미술관(Asia Art Museum of the National Museums in Berlin)기획전에도 참가할 예정이어서 앞으로의 작품 활동이 더욱 기대되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발표 신작인 「바다 시리즈」를 중심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정미소 시리즈」도 함께 선보인다.

이재용_marshall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00×200cm_2015

시간, 이미지, 기억의 푸가_이재용의「바다 시리즈 ● 시간은 지나가는 것인가, 멀어지는 것인가? 시간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흘러가는 것일까. 기억은 멀어지는 시간과 흘러가는 우리 사이, 어디쯤에 봉합되어 있는 것일까. 만일 사진이 찰나를 고정시킨다면 한 장의 사진을 기억의 저장소라고 해도 될까. 그렇다면 저장된 기억은 우리가 경험했던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되살아나는 것인가. ● 이재용작가가 2009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는 사진 연작, 『기억의 시선』은 위의 질문을 따라가게 한다. 사진 이미지의 집적을 통해 대상-풍경의 현존을 가시화한 이 작업에서 작가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하나의 대상을 수 백 장의 사진으로 기록한다. 이렇게 촬영 된 이미지는 정교한 후반 작업을 통해 한데 포개어진다. 지나간 시간의 단층들이 한 장의 사진 안에 퇴적되어 재구성 된 것이다. 현재의 감각에 의해 회복된 과거의 시간들은 물리적 시간이 갖는 선형적인 연속성에서 이탈해 작가가 환기해 낸 새로운 시간의 자장을 형성한다. 기억이라는 것이 반드시 물리적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배열되지는 않을 것이고, 변형되고 왜곡되거나 1시간 전보다 1년 전의 일이 선명하게 부각될 수도 있을 터. 또한 주체의 의지의 산물일 수도 있지만,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특별한 시공에서 촉발되어 의식의 영역으로 떠오르는 비의지적인 기억도 있겠다. 하나의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도, 그 기억이 보존되는 양태도 천태만상일 것이고 '늑대와 개의 시간'에 독해가 어려운 상으로 느닷없이 출현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가 체험한 내용이 아니라 그러한 체험의 기억을 짜는 일, 다시 말해서 회상(Eingedenken)하는 일' (발터 베냐민, 반성완 역, 프루스트의 이미지,『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2002, p.103) 일지도 모른다. ● 이재용은 『기억의 시선』에서 실재한 대상-풍경을 기록한 후, 하나의 기억-이미지를 만든다. 작가가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은 주관적이고 심리적이다. 시계가 제시하는 직선적이고 보편적인 시간과는 달리 작가의 감정과 관심, 경험의 함량에 따라 시간의 길이도 달라지는 것이다. 작가는 카메라에 의해 프레이밍되고 메모리카드에 무수하게 저장된 이미지에 다시 그물을 던진다. 수많은 컷들을 모니터로 주밀하게 살피며, 기억-이미지를 해체시키거나 이미지와 이미지를 반복해서 겹치며 결국 시간 밖의 초(超)시간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직 현상되지 않았던 기억의 잠상들을 일깨우고, 특별하고 순수한 잠재성을 보존하고 지속시키는 것이 이재용이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찰나의 순간에 경험한 구체적인 감각이미지들로 이뤄진 이재용의 사진은 흐르는 시간을 거스르기도 하고 멀어지는 시간을 생생하게 현존하게도 한다. 그래서 그의 기억은 그동안 숨어있었던 신비롭고 비상한 칼라와 함께 드러날 수밖에 없다. '베네치아라는 낱말만으로도 기억은 사진 전람회처럼 권태롭게 되었다. 그래서 전에 면밀하고도 서글픈 눈으로 관찰했던 것을 지금 묘사하는 데 필요한, 그 때 그 순간 가졌던 것과 똑같은 의용도 재능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 마르셀 프루스트, 김창석역,『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 되찾은 시간』(국일미디어, 2010, p.249) 프루스트의 말처럼 형용과 형언이 불가한 기억을 이미지화 하는 것은 사라지는 것을 붙잡아두려는 재현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재용의 시선이 번지면서 깊어지는 이유이다. 실체가 아닌데도 실재하는 것 같은 '이-미지(未知)'의 세계에 매혹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하게 떨어진 어떤 기억 때문이다. 마르셀의 기억을 일깨운 마들렌처럼 과거가 현재에 충격을 주고 현재의 감각이 다시 과거를 휘감으며 새로운 시공에서 변주되는 것. 이재용의 신작 「바다 시리즈」는 이처럼 시간과 이미지, 기억이 다변하는 푸가의 악장을 이룬다. ● 강원도 고성의 청간해변. 2015년 4월 24일 오후 5시에서 6시. 낮 동안 따뜻해진 모래 위에 진하고 길게 뻗은 내 그림자가 찍혀 있다. 그 날 남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청량했다. 그러나 저녁이 오면서 파도는 높아지고 기온이 빠르게 하강하여 해변을 좀 더 거닐고 싶었으나 오래 있지는 못했다. 맨발에 닿는 파도 거품의 감촉은 부드러웠던 것 같다. 이재용작가가 촬영한 바다가 이 바다인지, 여기쯤인지 가늠하려다 포기했다. 그가 찍은 바다가 청간이든, 고래불, 신두리, 망상이든, 내겐 아득할 뿐이다. 좌표를 설정하고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 바다 앞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가거나 바람의 방향과 함께 해류의 변화를 가늠하며 대략의 시간을 짐작해볼 뿐. 까마득한 옛날에 태양의 신 아툰은 성스러운 바다의 눈 위에서 휴식을 취했다고 하지. 하느님은 물과 물을 나누어 하늘을 만들었고, 담수와 짠물의 융합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말했다. 이 바다와 어쨌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북미와 힌두, 켈트와 마오리, 대서양과 태평양, 동해안까지, 바다는 세계 곳곳의 신화와 전설의 원형공간이다. 노래하는 바다, 성난 바다, 거친 바다, 깊은 바다, 먼 바다, 어두운 바다, 조용한 바다… 이 바다에 파피루스와 갈대로 만든 배로 탐험을 시작한 이집트인들과, 별을 따라가며 항해를 시작한 폴리네시아인들, 풍향계와 연으로 바람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고대 중국인들의 모험담과 무수한 신화와 전설은 누구에 의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일까. 자신의 고향 이타카(Ithaca)로의 여정을 남긴 율리시즈는 또 어떠한가. 지중해 곳곳을 뱃길로 전도여행을 떠난 사도 바울 등 바다의 기억은 이재용이 설치한 거울 속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끊임없는 움직임과 멈추지 않는 소리, 빛을 반사시키고 거울이 되었다가 얼음으로 수증기로 화하는 언제나 신비로운 존재를 어떻게 가시화할 수 있을까. 관객은 바다의 기억이 투영된 거울과 자신의 회상을 겹치면서 언젠가 이곳에서 보았거나 들었던 분명 실재했던 일들을 교차시킬 것이다. 기억이 이미지화 되는 것은 전적으로 보는(기억하는) 주체에 의해 달라진다.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일은 각자의 페넬로페적 여정일 것이기에. 이재용이 그 바다에 거울을 '닻'처럼 세워 둔 이유를 알겠다. 그 거울이 누군가에는 '돛'이 될 수도 있겠고, 또 누구에게는 '덫'이 될 수도 있겠지만. ● 이재용의 신작 「바다 시리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흘러가고 있는 신화의 공간에서 끌어올린 투명한 시간 이미지다. 바다를 향하는 저마다의 기억들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확장되고 반복되며 서로를 투사시킨다. 매순간 변화하는 물결처럼 바다를 바라보는 각각의 의식은 고정됨이 없이 유동한다. 시간이 없는 세계, '바다'라는 현재로만 존재하는 공간적 세계, 어제로부터 흘러왔을 물이 지금 현재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미래에도 흘러갈 내 앞의 바다. 따라서 이재용의 바다는 기억과 이미지와 시간이 무한 변주되는 음악의 공간이다. 스스로를 보존하는 기억, 지각되지 않는 기억, 잠재된 기억, 수면 아래로 침몰한 기억이 동시에 지속적으로 머문 세계-이미지가 이재용의 「바다 시리즈」에 흐르고 있다. ■ 최연하

Vol.20150429h | 이재용展 / LHEEJAEYONG / 李在鏞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