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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展 / KIMJIYOUNG / 金志泳 / painting   2015_0506 ▶︎ 2015_0511

김지영_Vist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130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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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50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ganaartspace.com

의식의 막(膜), 인식의 통로 ● 자의든 타의든,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고립감은 자아존중감을 상실케 하고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여 개인의 존중감이 박탈되었을 때 야기된 정서적 고립은 존재성 자체에 대해 심각한 물음을 제기한다. 사회에서의 일부로서 개인 스스로 다수인 전체를 존중하지 않을 때 표류(漂流)한다. 표류는 육지 혹은 섬과 이어지고자 하는 욕망의 외형이다. 김지영의 화면에 드러나는 '섬'의 이미지는 표류를 전제로 한 자신의 육체적 물질과 목소리를 반영한 음성학적인 주체의 드러내기이다. ● 김지영의 화면은 캔버스의 크기에 관계없이, 섬세하고 예민하여 다치기 쉬운 표면을 지닌다. 이 물리적 예민함은 물론 다치기 쉬운 감정의 반영이다. 대학졸업 후 미국에서 새롭게 시작한 학교생활은 작가로서 개인의 세계를 존중하는 축복받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인 충격에 처하게 하였고, 고립감은 이국인이 감내해야 할 당연한 것이었다. 집과 가족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정도의 차는 있을지라도 또 어떠한 형태든 고립을 경험한다. 이러한 예에 비견해 보건대, 그의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고립과 충격의 상흔이자 이에 대한 반동으로서 곧바로 튕겨져오른 존재감의 표현이다. 자신이라는 개인적 존재에 대한 자각, 집단에 속하지 못한 감정에서 출발된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서 인지된 개인의 정체성은 다수 속에 존재하는 개별성에 대한 인식이다. 김지영의 작업은 그 개별성이 사회에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연구하는 과정체로 존재한다. ● 생물이 세상과 접촉하는 첨단 부위인 피부의 표면, 살아 있음의 특성인 그 유연함이 오히려 상처받기 쉬운 살갗이 드러난 지점이다. 다른 세계와 접촉하는 엷은 막의 형태를 띤 장소로서 피부는 육체에 갇힌 정신이 세계로 통하는 통로이다. 김지영의 화면에는 바로 이 캔버스의 표면, 세계의 접촉지점에 표면으로서의 피부를 덮는 물질적인 캔버스의 피부가 존재한다. 기다란 캔버스는 흰색에 가까운 넓은 상단과 회색에 가까운 상단의 반 정도 넓이의 하단으로 구분되어 보인다. 두 면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추상적인 형태들이 중첩되고 교차하고 있다. 위는 넓은 하늘을, 아래는 바다를 연상시킨다. 결과적으로 하단에 형성된 부정형의 형태들은 섬들로 생각된다. 어떤 캔버스에서는 상단이 좁고 하단이 넓지만 시각적으로 하늘이나 바다로 구분되는 것은 다르지 않다. 그는 캔버스 내부에서 하늘이나 바다의 상징색을 취하지 않고, 또한 섬의 구체적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는다. 무엇 하나 정형화하지 않은 형태들은 모호함으로 독해되고 이쪽에서 저쪽을 규정짓는 타자적 시선을 생산한다. 화면의 내부로 이끄는 얇은 물감층은 이러한 경계를 물질로, 촉각성을 동반한 온몸으로 경험하게 한다. ● 그가 보여주는 캔버스 내부의 형태들은 얇은 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준비된 물감은 미디엄과 섞여져 화면 속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형성된다. 외부에서 구성되어 내부에 안착되는 과정은 오브제의 도입 혹은 콜라주의 실행 이후 별다를 게 없는 방식이겠다. 하지만 그것이 물감이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그것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일 터, 캔버스 내부에는 이미 균열을 사실화하고 촉각성을 이해의 통로로 삼게 되기 때문이다.

김지영_Vist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4cm_2015
김지영_Mirag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cm_2015

김지영의 화면에 존재하는 이 얇은 물감층으로 이루어진 막(膜)에서는 '간섭'이 일어난다. 얇은 물감층이 캔버스에 얹힘으로써 윗면과 아랫면이 형성되고, 그 내부에서는 빛의 간섭이 일어난다. 이는 흔히 캔버스에 스며들기를 기반으로 한 물감 쌓기에서 일어나는 중첩(重疊)과는 다른 현상이다. 투명한 물감 층은 캔버스 내부에서 진공되고 일부의 빛은 막의 윗면에서 반사된다. 미디엄으로 최대한 얇아진 물감층은 막인 탓에 빛의 일부가 투과하여 화면 깊숙이 스며들어 또 다시 내부에서 반사된다. 막의 윗면과 아랫면의 위상 차에 의해 형성된 빛의 반사는 간섭무늬를 만들어 낸다. 막의 두께에 따라 다른 색으로 나타나는 간섭무늬는 차곡차곡 쌓아올린 겹겹의 층에 의해 외부를 보여주기도 하고 내부를 드러내기도 한다. 외부와 내부의 공존 공간은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작가의 상징체로 우뚝 선다. 간섭무늬는 그 내부에서 다시 빛의 간섭에 의한 무한한 확장의 공간을 열어젖힌다. ● 개별화된 존재로서 형식화된 '섬'의 이미지는 또 다른 섬과 시각적으로 중첩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바다 위에 뜬 섬은 결코 붙어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적 주체의 각도에 따라 함께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 섬들은 결코 어느 지점에서 만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섬은 물의 아래에서는 육지의 어느 높은 산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물 아래 세계에서 섬은 결코 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밖에서 개별적 존재로 존재하는 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물'이라는 연결지점을 갖고 있다. 섬의 가장자리에 닿은 물은 그들 존재를 섬으로 있게 함으로써 그들을 전체로부터 분리시키는 방해물이다. 그럼에도 물은 또 이들 섬과 섬이 맞닿아 있는 유일한 표면의 접촉점이다. 그리하여 섬의 가장자리, 중심에서 물러난 외연인 물은 섬과 섬을 연결하는, 개별성을 상실시키지 않은 채 전체화하지 않으면서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 어린 시절부터 이사가 잦은 생활을 하였던 작가는 자신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자주 바뀌는 집과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의 어느 지점에 소속하기 어려웠던 생활은 스스로 경계인으로서 자신을 규정짓게 하였다. 작가 스스로 자신을 개별적인 섬이나 다수에 속한 육지도 아닌 그 어딘가에 속하는 존재로서 규정한 것은 외부와의 소통가능성을 위해 스스로 파편화한 때문이다. 부유하는 외연은 표류를 통해 다른 곳에 이르는 즐거움을 경험하게 한다. 이동과 이동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는 그것이 시간이든 공간이든 어느 곳에도 완벽히 속하지 않아서 가장 자유로운 지점이 되는 탓이다.

김지영_Grow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1×91cm_2014
김지영_Nowhere el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3×97cm_2012
김지영_Piec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53cm×2_2015

존재하지만 외부의 시각에서 인지되지 않는 틈, 그곳은 바로 작가의 이상향이다. 화면 내부에 존재하는 물질과 물질의 간극, 그 물질들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또 다른 물질. 그는 물감의 층을 외부에서 만들어 굳힌 다음 이것을 화면에 중첩함으로써 물체를 구축함으로써 물질을 현재화 한다. 그 물감의 층은 색을 지닌 투명성을 지닌 얇은 막이다. 이 막은 대상을 뒤덮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며 틈새를 벌린다. 명료하게 드러나는 형태는 무의미한 막에 의해 모호하며 희미한 추상 자체로 존재하게 된다. ● 그의 화면에서 바다 혹은 섬, 물, 바람이나 빛과 같은 상징으로 가득한 존재하지 않는 초현실의 상황이 펼쳐지고, 이 세계는 추상이어서 현실적 생명성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낸다. 때때로 섬에서 섬을 잇는 무지개가 나타난다. 그런데 그 무지개는 통상적인 휘어진 활의 각도를 따라 색이 분절되는 세로형 색띠가 아니다. 활처럼 생긴 무지개의 색이 가로로 분절되어 색층이 증식하여 무지개가 된다. 이 생경한 방식, 낯섦은 무지개도 구축되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스펙트럼의 인식 각도를 달리 하였을 때 무지개의 본질은 공기방울에 의한 빛의 산란임을 재인식한다. 빛의 반사에 의해 형성된 무지개는 견고한 다리가 될 수 없는 환상인 동시에 눈앞에 펼쳐진 몽롱한 현실이다. 그것은 섬과 섬을 잇는 가교이며 자연과 추상을 잇는 통로이다. ● 이렇듯 화면은 고요한 색채가 상징하는 안락함이나 서정성과는 거리를 둔 불편한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파편화된 이미지와 색채의 층만이 존재하는 그곳은 또한 캔버스 위의 그림이자 물감으로 이루어진 콜라주이며 부조이다. 촉각성에 기반한 시각적 장치로서 투명한 물감층은 대상을 산란시켜 화면에 외부와 내부를 구성한다. 그 모호한 경계와 혼성은 문화적 혼종성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국에서의 거주경험이 물질화한 과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 변화하는 정체성에 대한 경계인 특유의 불안이 틈새에서 드러낸 진실의 실체, 다원성이란 외부와의 연계를 위하여 스스로 파편화하는 것이다. 그 파편화의 상흔이 투명한 막으로 증식하고 있다. 불안한 화면, 그것은 바로 상상된 현실이자 외부에서 들여다볼 수 없는 틈새의 드러냄 때문이다. ■ 조은정

Vol.20150506g | 김지영展 / KIMJIYOUNG / 金志泳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