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연애걸다

박문종展 / PARKMUNJONG / 朴文鐘 / painting   2015_0513 ▶︎ 2015_0527

박문종_인물_종이, 골판지에 아크릴채색, 흙_105×85cm_2014

퍼포먼스 넋-건지기2 / 2015_0513_수요일_07:00pm_갤러리 그림손   참깨·들깨 / 2015_0522_금요일_07:00pm_목포문화예술회관

2015_0513 ▶︎ 2015_0519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 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 www.grimson.co.kr

2015_0522 ▶︎ 2015_0527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목포문화예술회관 전라남도 목포시 남농로 102(용해동 924-1번지) 특별전시실,1전시실 Tel. +82.61.270.8484 art.mokpo.go.kr

화가농부 박문종의 일과 놀이 ● 박문종은 왜 얼굴에 무수한 점찍기 혹은 점 찌르기를 반복하는 것일까. 당신과 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 그건 수많은 점이 수많은 방식으로 찍힐 수 있는 것처럼 고정되지 않은 것이고 막연한 것이다. 박문종이 점을 찍는 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을 그려내려는 것도 아니고 특정인의 특정한 표정을 표현하려는 것도 아니다. 박문종의 얼굴들은 작품을 보는 관객이 표정을 읽어내는 작업이다. 어느 순간 표정이 만들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곧 작품이 읽혀지는 순간이고 바로 그 때 작업을 멈추는 것이다. 관객에게도 그렇고 작가에게도 그렇다. 그 때까지는 불특정하고 우연적인 점들의 집적인데 어느 순간 크고 작고 불균등한 형태의 점들 혹은 얼룩과 틈들의 집적과 중첩 사이에서 얼굴이 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작가가 읽어내고 관객도 읽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작업의 묘미이다.

박문종_땅_종이에 흙_146×146cm_2014

"찌르기를 하다보면 수많은 망점이 생기게 되는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하던 수화선생의 점 같기도 하고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수장되고만 원혼 같기도 하고 이러한 물음은 살면서 누군가와 교감하는 수없는 증표와도 같은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점찍기가 두려우면서도 흥미로운 것은 많은 점들 속에서 우리 눈은 그 와중에 눈, 코. 입 특정 부위 몇 군데를 정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얼굴 특징이 잡히기도 하는데 아는 얼굴일수도 모르는 얼굴일수도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또한 찌르기 행위 속에는 주술적인 면도 있어(민간신앙에서 두통환자를 위해 사람형상을 땅에 그리고 머리에 낫을 꼽아 두는 행위) 자연스레 수반되는 감정이입이 발생한다. 텔레비전 사극에서와 같이 저주의 수단으로 초상이나 제웅을 만들어 놓고 바늘 찌르기를 한다할지 섬뜩한 장면이 연출되는데 한밤중의 점찍기를 (날카로운 꼬챙이를 이용, 임팩트 있는 흔적이 필요하다) 할 때는 무섬증이 들기도 한다." (박문종) ● 박문종 자신의 말이다. 무섬증이나 섬뜩함 혹은 이미지의 주술성의 문제는 박문종의「얼굴」연작의 특징과 그 의미를 얘기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라고 본다. 또한 그것은 그의 이「얼굴」연작이 바로 이런 측면이 맞닿아 있는 미술의 계(界) 이를테면 아르 브뤼(Art Brut/ 원생미술)나, '대지의 마술사'계열의 비서구권 원생예술, (로잘린드 크라우스와 이브-알랭 부와의 『비정형:사용자 안내서』에 표명된) '비정형 미학'의 세계 그리고 세월호 사건과 연관해서 팽목항이나 해남에서 이미 많이 하고 있는 '혼 건지기 굿'과의 연결 등 여러 흥미로운 방향의 조망과 탐색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바로 이 경계의 탐색이야말로 그의 예술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문종_흙장난_종이판에 아크릴채색, 흙_215×147cm_2014

전반적으로 박문종 작품은 구체성이 없고 비정형이고 비형상이고 모호하다. 형태 이전의 미학에 더 가깝다. 반죽 덩어리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비정형의 반죽. 따스하지만 않다. 서늘함이 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기억 속에서 웃음소리까지가 선명한 옛 마을 사람들을 호명해낸 것 같은 느낌. 수북사람만이 아니라 구례랄지, 해남이랄지, 아니 꼭 전라도만이 아닌 함경도 무산이랄지, 경상도 청도 사람, 조선팔도 사람 중에 흙에서 살다 흙에 묻힌 토종 조선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온 느낌이다. 노동 육체 생산 죽음 곧 삶과 죽음이 다 있다. 인생이 있다. ● 박문종의 작업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다. 그의 그림은 소비로서의 그림이 아니다. 소비로서의 행위도 아니다. 농사가 생산이라고 하듯이 나락 알곡 같은 것이고, 생산 행위로서의 힘을 불어넣어주는 미술이다. 자연은 사람을 소비하지 않는다. 사람을 북돋아 준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고 또 그 힘이다.

박문종_땅-대지_종이판에 아크릴채색, 흙_210×290cm_2015

박문종의 세계에게는 일과 놀이가 쌍두마차처럼 그의 몸속에서 함께 간다. 마치 풍물이 농사와 함께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제작과정 자체가 일이자 놀이이고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그 제작과정에 참여하고 싶은 충동, 생산하고자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그리고 그 결과물은 감상자의 감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의 작업의 이런 특성은 그의 성정과 아주 자연스럽게 합치된다. 그것이 박문종의 작업이고 삶의 태도이고 또한 그의 성정이다. ● 박문종을 2000년대 버전의 민중화가라 할 수 있을까. 몸을 낮추면서 자연과 민중과 장터 속으로 스며드는 새로운 버전의 민중화가 말이다. 자연과 민초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것. 이물감 없이. 가없이 부드럽게. 더없이 지극하게. 땅에 연애 걸듯이. 박문종의 작품들은 작가가 땅에서 일하듯이, 놀이하듯이 한 오롯한 사랑의 결과물들이다. (한국현대미술선027 박문종에서 발췌) ■ 성완경

Vol.20150512h | 박문종展 / PARKMUNJONG / 朴文鐘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