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감각

하동철展 / HADONGCHUL / 河東哲 / painting   2015_0514 ▶︎ 2015_0610 / 일요일 휴관

하동철_Light 88-8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198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30707d | 하동철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 휴관

송아트갤러리 SONG ART GALLERY 서울 서초구 서초4동 1685-3 아크로비스타 아케이드 B-133호 Tel. +82.2.3482.7096 www.songartgallery.co.kr blog.naver.com/haksoosong

빛은 … 내게는 오히려 하나뿐인 현실이며, 나는 그로 인하여 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하동철) ● 순도 높은 원색의 병치와 붓질의 속도에 의한 움직임 위에 수직, 수평 또는 사선을 추가하여 화면에 시각적 흔들림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빛이라고 명명한 하동철에게 빛은 본질을 향한 여정이었다. 깊이도 부피도 무게도 그림자도 없는 평면의 회화가 뿜어내는 어슴프레하지만 존재감 있는 빛으로 구성된 매스(Mass)는 평면이 아닌 공간으로 확산된다. ● 공간으로 확산된 빛의 덩어리는 어둠을 제거해나가는 빛이다. 빛은 그가 살아냈던 시대의 암울함 을 이겨낼 의지적 표상이었고, 초월적 실재, 플라톤적인 본질인 이데아(Idea)를 향한 의식의 구현이기도 했다. 이성으로는 플라톤적 세계관을 감성으로는 초월적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던 그는 양자를 다 수용하여 작품으로 풀어내고자 하였다. 철저한 자기 비움을 통해 만나는 빛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실재의 현존이었고, 그 빛을 형상화하는 방식은 철저한 수평, 수직의 그리드와 사선의 튕김줄을 통한 질서정연한 논리적 구조를 기반하고 있었다. 반응하는 눈에 의한 옵아트를 넘어서 그는 시간과 공간을 향하여 비물질적인 현실, 빛의 충만을 제공한다. ● 구조의 견고함과 치밀함, 패턴적 반복에도 불구하고 밀도 있는 빛의 매스가 그의 평면 안에서 감지되는 것은 예술을 향한 그의 구도자적 자세에서 비롯된다. 하동철은 회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삶 가운데 체험한 실재를, 삶의 흔적을 철저하게 나타내려는 치열함으로 평면에 비물질적 자취 를 남기는 것이다. ●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시지프스 신화처럼, 빛을 향한 열망은 하동철의 예술을 이끄는 동력이었다. 그 빛은 보이는 빛 너머까지도 확장되어, 평면의 회화가 공간 속에서 빛의 매스로 부유할 때, 우리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세상에 속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빛의 향연 속에 있게 된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 하루가 시작되듯이, 시지프스가 굴러 떨어진 돌을 다시 이끌어 올리듯이, 하동철은 경이로운 빛의 자취를 담고, 다시 담는다. 그것이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고 해가 지듯이, 빛은 예술의 매체를 넘어서 그에게는 영혼의 빛이었다. 영원한 진리를 붙잡듯이 그는 빛의 이미지를 담고자 하였다.

하동철_Light 88-6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40×180cm_1988

'예술이란 우주의 질서를 닮으려는 몸짓인가 보다. 나의 작업 은 단지 자연에 귀의하려는 강한 소망에서 시작되었고, 그 전 과정은 초월적인 순수이성에 대한 발돋움이며 보이지 않는 신 에 대한 강한 동경인 것이다.' ● '나의 표현 의지의 원동력은 항상 무한 공간 속에서 자신을 소멸하고 싶은 강한 충동으로 일관해 온 것 같다. 나는 작품에 서 일체의 일상성이나 물질감을 배제시킴으로써 궁극적인 환원의 상태, 즉 빛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 '나는 우주를 엄숙한 질서 위에서 파악한다. 우주를 형성하는 원소들의 생성과 소멸, 집합과 이산의 원리 앞에서 숙연해진 다. 순서, 순열, 조합, 집합의 수학적 조형 방법은 나에게 있어 참으로 분명한 길이며, 나는 그 안에서 정신적 평화와 안정감 을 느낀다.' (하동철) ● 빛이라는 우주의 질서를 신을 향한 동경 안에서, 순수이성적 방식으로 풀어내어 궁극적 환원의 상태에 도달하고자 했던, 그가 빛이라는 영원한 삶의 화두에 매달리게 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그가 살아온 삶의 기억과도 무관할 수 없다. 표현에 있어 비록 그가 배제하고자 하였지만, 인간은 삶의 일상과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다. ● '눈만 퀭한 시골 애들은 열대지방에나 있어야 좋을 것 같은 말라리아에 걸려 초여름부터 가을 바람 설렁일 때까지 학질에 시달렸다. 그때 우리는 벌겋게 들떠 한여름 땡볕에 나가 앉아 해를 쳐다보며 달달달달 떨었다. 해만 계속 쳐다보면 해의 윤곽은 보이지 않고 빠알갛게 보이다가 노래졌다가 뽀얗다가 새까매진다. … 어머니는 해쓱해진 아들이 안쓰러워 돌아서 등에 업는다. 먼동이 터오는 산등성 해목날을 향해 어머니는 무덤들 사이로 다자란 풀섶을 헤치고 산을 오른다. …어머니의 젖은 옷새로 따스하게 느껴지던 체온과 풀냄새, 그리고 숲 속으로 새어드는 여명과 감겨드는 안개…쓰러져 한나절 혼곤히 잠이 든 소년 곁에는 마당으로, 토방으로 마루 한가득 비쳐들던 햇살이 한 움큼 다가서 있고 토벽에 매있는 횃대에는 이슬로 휘질러진 어머니의 소복만 젖은채 걸려 있다.' (하동철) ● 죽음의 공포와 한기 속에서 젖은 옷새 사이로 느껴지는 어머니의 체온, 마당으로, 토방으로, 마루로 한 움큼 퍼져 있는 아침햇살 그것은 빛을 통해 빛으로 닿을 수 있는 빛의 감성이 아니었을까? 먹줄로 튕긴 우연성이 빛을 구현하는 조형적 요소가 되듯이 어둠과 면한 빛은 체온처럼 온기를 가지고 우리를 평화롭고 잠잠한 상태, 평온한 감각으로 인도한다. 평온감각으로 이끄는 빛, 삶과 영원을 향한 평온감각, 그것이 하동철이 씨름한 빛의 감성이다. 무게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빛은 공간 속에 실재하면서 부유하듯 평온감각을 형성한다. ■ 이지연

하동철_Light 88-19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1988

내 작업은 화면 자체가 지닌 물질성을 흔들어 보임으로써 화면의 비실체감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순도 높은 원색의 병치와 붓질의 속도에 의한 움직임 위에 수직, 수평 또는 사선을 추가하여 화면에 시각적 흔들림을 제시합니다. 나는 그것을 이른바 빛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표상된 빛의 이미지는 이차적 물성을 지닌 화면을 정신적인 세계로 이끌게 됩니다. (빛과 물질 사이에서 - 하동철 교수와의 대담, 김영호, 1995, 진화랑•진아트센터 개인전 도록 중에서) ● 처음, 주제로서의 "빛"에서 도달하게 된 과정과 상황을 되새겨 볼 때 개인과 사회 그리고 그 민족의 역사적 특수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특히 우리 민족이 겪어온 고난과 진통 그리고 격동의 역사 속에서 한 작가의 소망은 예술을 통하여 궁극적인 평화에 도달함이었고, 그로 인하여 보는 이들에게 밝음과 이상의 세계를 확신시키려는데 목적을 두었다. (빛-그 개념적 공간 연출, 빛을 주제로 한 13회 개인전을 마치고(1988. 11.1-10:갤러러 현대), 하동철) ● 작가는 시인 르네 샤르 René Char의 말을 그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증거가 아닌, 그가 지나온 행적의 자취를 남겨야 한다. 오직 자취만이 꿈꾸게 한다." (사물과 이데아, 쟝 랑크리 Jean Lancri, 2001, 판화 매체로서의 탁본 도록 중에서)

Vol.20150514i | 하동철展 / HADONGCHUL / 河東哲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