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연변

심학철展 / shenxuezhe / 沈學哲 / photography   2015_0522 ▶︎ 2015_0607 / 월요일 휴관

심학철_기억연변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3

초대일시 / 2015_0607_일요일_06:00pm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예술공간 세이 art space SAY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2가 2번지 2층 Tel. 070.8637.4377 artspacesay.blog.me

폐기된 기억들을 위한 수집 ● 심학철의 사진은 기억에 관한 작업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애잔하다. 지나간 과거를 다시금 불러들이는 기억의 행위는 그 대상들이 두 번 다시 실재가 될 수 없음을 전제로 하기에 멜랑콜리의 감정이 수반된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은 달콤하다. 그것은 자기방어기제의 작동 때문이다. 즉 과거라는 경험의 창고로부터 현재 혹은 미래의 '나'를 강화시킬 수 있는 유리한 조건들만을 추출해내는 의식작업이 기억행위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의 의식은 '나'를 불리하게 만드는 기억들을 폐기시키려(혹은 합리화시키려)는 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연유에서 지나간 과거는 하나의 완성체로 재현되지 않고 언제나 조각조각 파편화된 이미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망각을 통해 폐기해버린 기억들은 어떤 것들일까? 그것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어 한 번도 의미화를 시켜본 적 없는 삶의 이미지들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미래지향적인 가치관 속에서 '쓸모없는 것', '하찮은 것'으로 간주된 것들이며 현대사회가 오로지 요구하는 유용성 그리고 생산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들이다. 삶을 유지하는데 있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기에 추방해버린 기억의 파편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것들은 의식이 아닌 물질 속에 숨어 있다"라고 프루스트는 말했다. 프루스트에게 있어 그 물질은 육체(후각)였겠지만 혹자에게는 그것이 우연히 발견한 어린 시절의 장남감일 수도, 무심코 마주친 오래된 사진일 수도 있다.

심학철_기억연변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3
심학철_기억연변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4
심학철_기억연변_디지털 프린트_50×75cm_2009
심학철_기억연변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3
심학철_기억연변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3
심학철_기억연변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3
심학철_기억연변_디지털 프린트_50×75cm_2005
심학철_기억연변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4
심학철_기억연변_디지털 프린트_50×66cm_2009

심학철의 사진 속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대부분이 버림받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매점은 비어있고 놀이기구와 트럭은 엔진을 멈추고 서있다. 한 시대의 이념이자 삶의 지침이었을 정치포스터와 구호는 퇴색되었거나 찢겨져있다. 고즈넉해 보이는 공터에는 자기 갈 곳을 못 찾은 모형비행기와 해변에서 쫓겨난 듯 보이는 야자수가 어색하게 서있다. 부엌도, 공원도, 국경산책로도 한산하다. 인적이 없다. 이러한 버려진 듯한 분위기는 텅 빈 풍경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간혹 등장하는 인물 공간까지 침투한다. 이사 간 것 같은 휭 한 방에 가부좌를 틀고 정면을 응시하는 노부부의 표정이나 쓰러질 듯 간신히 서있는 늙은 양주의 자세는 어쩐지 우울하고 불편하다. 사진 속의 인물들은 부재의 풍경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쓸쓸하게 만들뿐이다. ●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귀한 것들을 지금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정지시키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사진으로 정지된 대상은 과거로 떠내려가 부재하게 될 운명에서 벗어나 훗날 우리로 하여금 망각되었던 삶의 부분들을 호출케 한다. 하지만 사진들은 그저 망각된 시간의 확인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때의 기억'이란 이미지로 펼쳐진다. 그 기억 이미지는 언제나 애틋하고 새삼스럽다. 그리고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 떠올리게 될 '아름다운' 기억에 대비하여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은 사진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선택받지 못한 삶의 파편들은 의식의 경첩 사이로 빠져나가 영영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사진을 찍는 행위와 기억의 행위는 서로 공모의 관계를 가진다. ● 심학철 작가가 사진 공간 속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은 선택받지 못한 기억의 파편들이다. 그 파편들을 찾아서 작가는 넝마 줍기를 한다. 폐기된 것들을 주워 담아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넝마 줍기는 또한 '수집'이기도 하다.수집은 대상이 갖고 있는 유용성에서 벗어나는 것으로서, 쓸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수집 그 자체를 위한 것이다. 수집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그저 보여주기'다. 심학철의 사진은 '그저 보여준다'. 진열장 속의 수집물처럼 '그저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쓸모없다고 여겨져 망각해버린 삶의 파편들을, 없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내 안에 거주했었던 기억들을... ■ 리유라

Vol.20150522c | 심학철展 / shenxuezhe / 沈學哲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