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

라오미_조성훈_하정희展   2015_0522 ▶︎ 2015_0604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5_0531_일요일_06:00pm

제7회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 특별기획展

주관 /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운영위원회 후원 / 마을기업행궁솜씨

관람시간 / 12:00pm~10: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눈 ALTERNATIVE SPACE NOON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82-6 Tel. +82.31.244.4519 www.spacenoon.co.kr cafe.daum.net/artspacenoon www.facebook.com/artspacenoon

예술공간 봄 SPACE BOM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82-6 Tel. +82.31.244.4519 www.spacenoon.co.kr cafe.daum.net/artspacenoon www.facebook.com/artspacenoon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는 나혜석 생가터가 있는 행궁동의 주민들이 선각자 나혜석 선생을 기리며 행궁동역사문화예술마을을 만들기 위하여 지역의 작가들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마을축제입니다. ●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의 특별기획전 『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을 기리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공모를 통해 선정된 3인의 작가들(나혜석의 후예)이 나혜석의 작품 「무희(캉캉)」, 「화령전작약」, 「자화상」을 재해석함으로서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통로로써, 그리고 나혜석을 새롭게 이해하는 관점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3인 작가들의 작품은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운영위원회에 기증되어 건립되어질 나혜석 기념관에 설치될 예정입니다. ■ 대안공간 눈_예술공간 봄

라오미_노라를 노하라_순지에 분채_160×160×180cm_2015

인형의 家 ...노라를 놓아라/최후로 순수하게/엄밀히 막아논/장벽에서/견고히 닫혔던/문을 열고/노라를 놓아주게 ... 정월 나혜석의 작품 중 『인형의 家』(1921)라는 시이다. 여성의 자유와 해방 문제를 다룬 노르웨이 작가 입센의 '인형의 집'을 나혜석이 시로 재창작한 것이다. 이 시에서 정월은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갈망하고 있다. 이번 작품 「노라를 노하라」는 자유를 끊임없이 말했던 정월의 회화작품에 담긴 공간들, 농촌풍경, 독립운동시기, 화령전, 프랑스, 스페인 풍경, 유럽의 청람색 강한 광선, 백색 석조건물, 파초, 사슴떼 등을 서로 연결시켜 공존하게 했다. 그중 「화령전 작약」 (1934)을 살펴보면 자기반영적 후기 풍경화로 작약들이 강한 힘으로 뻗쳐오르고 있고, 굳게 닫힌 출입문은 어쩌면 끝내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 해석하기를 굳게 닫았던 문을 활짝 열어보았다. 그리고 화면아래 종이꽃으로 작약을 표현했는데, 겨울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작약은 선구자였던 정월과도 닮아 있다. ●「신생활에 들면서」 『삼천리』1935.2 펄펄 날던 제비/참혹한 사람의 손에/두 죽지 두 다리/모두 상하였네/다시 살아나려고/발버둥치고 허덕이다/끝끝내 못 일으키고/그만 척 늘어졌네/그러나 모른다/제비에게는/아직 따듯한 기운이 있고/숨쉬는 소리가 들린다./다시 중천에 떠오를 활력과 용기와 인내와 노력이 다시 있을지/뉘 능히 알 이가 있으랴(구고에서) ●「앗겨 무엇하리,청춘을」 『삼천리』1935.3 살이 포근 포근하고/빗은 윤택하고/머리가 까막고/눈이 말똥말똥하고/귀가 빠르고/언어가 명랑하고/태도가 날신하고/행동이 겸사하야/참새와도 갓고/제비와도 갓고/앵무와도 갓고/공작과도 갓다 ● 나이먹으면/주룸살이 잡히고/빗갈이 검어지고/머리가 희여지고/귀가 어둡고/눈이 흐려지고/말이 어둔해지고/몸이 늘신해지고/행동이 느러저/긔린과도 갓고/곰과도 갓고/물소와도 갓다 ... ● 정월의 문학작품 중 「신생활에 들면서」를 보면 제비는 정월을 대변한다. 다시 중천으로 날아오를 용기와 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앗겨 무엇하리,청춘을」은 정월의 나이 40에 토로한 고백으로 참새, 앵무, 공작과 더불어 제비를 젊음으로 비유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문학작품 속에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하던 정월의 모습, 늘어져 있거나 훨훨 날고 있는 제비를 이미지화시켜 내면을 표출했다.

라오미_세 개의 태양(mock sun)_순지에 분채_100×100cm_2015
라오미_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展_대안공간 눈, 예술공간 봄_2015

「자화상」(1927)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 일상과 예술의 마찰, 인습과 개혁의 갈등을 드러내는 이중적 자아, 자신의 분신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어둡고 흐린 색감과 침울한 눈이 인상적이다. 그 어두운 빛에서 정월의 인간적 고뇌가 짙게 느껴진다. 아마도 최린과의 연애사건이 발생한 즈음이 아닐까 한다. 그에게 다가오는 불행한 검은 그림자를 예감하고 있던 시기의 불안한 심적 상황이 이 그림에서 번져 나온다. ●「세개의 태양」에서는 나혜석의 내면을 제비, 공작 등으로 이루어진 상상동물로 표현하고, 자화상에서 보이는 정면을 직시한 시선을 거울을 한번 더 바라보는 구도로 자기자신을 바라보게 구성했다. 나혜석의 호는 정월인데, 간혹 삼일월로 풀어썼다. 이 호는 '세 개의 해와 한 개의 달'이란 뜻으로, 지금은 달이지만 세 개의 태양으로 거듭나고자하는 나혜석의 소망을 나타낸다. 또 정월에게 태양은 인격을 가진 한 주체로서의 각성과 이를 통한 자아의 해방을 상징하는 주요한 모티브로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 나의 기존 작업들은 현대인들의 꿈,욕망의 불로장생을 장생도형식으로 그려왔는데, 장생도를 보면 이상인 듯 하면서도 현실이다. 정월은 그녀의 욕망이 이상세계인 글,그림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인 삶에서도 투영되어 있다. 그래서 조형적으로 열린 구조의 형식으로 현실과 이상세계에서 정월의 욕망의 공간에의 이어짐으로 표현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는 나를 깨운 이상에는 내게서 뜨겁게 불이 일어 나도록 만들어라." 정월 나혜석의 시 『光』의 한 구절이다. 이번 기획전시를 통해 이제 정월을 알게 되고 나를 깨운 이상에는 더 활활 타올라야겠다. 또 이런 속담이 있다."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지만, 잠든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잠에서 깨어난 정월은 더 이상 잠든 척 할수 없었고, 눈에 보이는 현실을 자유와 해방문제를 이야기했을 뿐이다. 세 개의 태양을 품자. ■ 라오미

조성훈_거울_캔버스에 유채_100×75cm_2015
조성훈_거울_캔버스에 유채_100×75cm_2015_부분
조성훈_구여성과 신여성_혼합재료_12×18cm_2015
조성훈_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展_대안공간 눈, 예술공간 봄_2015

작가가 재해석한 나혜석의 자화상은 그녀의 성향에 대한 탐구로부터 출발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라는 가치는 그녀의 급진적인 성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일본 유학과, 결혼 후 세계여행, 그리고 이혼까지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그녀가 얼마나 진보적인 성향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그런 그녀의 성향은 종국 그녀를 여성인권 운동가로 이끌어갔다. 그녀는 후반 여권신장에 힘썼으며 여러 문학 작품을 통해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그녀의 삶의 방향, 그리고 진보적 성향을 바탕으로 그녀의 이상에 대해 상상해봤다. 그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이상향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넓은 의미로서의 양성평등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상이 지금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쩌면 실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이상이 실현된 곳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 작가는 거울이라는 매개체로 그녀의 이상과 지금의 현실이 연결되어있음을 표현하려 했다. 그것은 자화상의 제작 과정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데, 작가노트에도 나와 있듯이 자화상에는 세 명의 인물이 존재할 수 있다. 첫 번째가 바로 자신이고 두 번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이며 세 번째는 캔버스에 그려진 자신이다. 작가는 그 중 두 번째 인물인 거울에 비친 자신에 주목했다. 그 두 번째 인물은 첫 번째 자신이 세 번째의 자신을 그려내면 사라지게 되는 한시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그 인물이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첫 번째 인물과 세 번째 인물로서 그 가운데 연결고리인 두 번째 인물을 상상해낼 수 있다. ● 작품 안에는 하나의 거울이 존재하며 한명의 인물이 서 있다. 그리고 그 거울 안에는 거울 속의 자신과 그 자신의 얼굴에 덧씌워진 또 다른 자신이 존재한다, 우두커니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는 바로 작가의 모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얼굴에 그리고 있는 것은 바로 나혜석의 자화상에서 파생된 이미지이다. 뒤돌아 있는 작가의 알 수 없는 얼굴은 거울을 통해 드러난다.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도,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도 모두 거울 안에 들어있다. 거울은 앞서 말한 것처럼 첫 번째 인물과 세 번째 인물의 연결고리로서 존재한다. 그러한 연결고리로 인해 세 명의 인물이 하나로 중첩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을 나타내는 첫 번째 인물과 나혜석의 이상향을 나타내는 세 번째 인물이 거울로 인해 이어져 있으며 그러한 이음새 안에 그녀의 삶도 놓여있다는 것을 표현하였다. ● 「구여성과 신여성」 이 작품은 소품으로 제작되었다. 오만원권에 있는 신사임당 위에 나혜석을 그려 넣음으로서 지금 우리가 향하는 여성상에 무엇이 더 가까운가에 대한 작가의 답이다. ■ 조성훈

하정희_Alter(변하다)_캔버스에 유채_116.7×90.9cm_2015
하정희_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展_대안공간 눈, 예술공간 봄_2015

현대인들은 보이기 위해, 변하기 위해, 발전하기 위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얼굴과 몸 그리고 삶에 채우기를 하고 있다. "좀 더"라는 자극적인 무언가를 바라고 풍요라는 허울을 가지고 만족치 못한 자아의 결핍의 상태를 계속 이동하고 확인하고 상실과의 대면을 반복한다. 이는 욕망의 판타지와 희망이라는 두 가지 면을 생각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처럼 나는 작가 나혜석을 그녀의 작품과 인생을 통해 인간으로. 사람으로서 가지는 내적 갈등과 욕망 그리고 선택에 대한 용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창의적인 것은 모호함과 불안함 위를 거닐 게 하며 경계를 분명 하지 않게 한다. 또한 앞서게 하며 안전을 뒤로 하게 한다. 이는 용기 있는 자 만이, 용기만이 누릴 수 있다.나혜석이 사람으로 느끼고 선택하고 이겨 내야 했을 갈등과 번뇌 그리고 변화의 시점에서 그녀가 이끌어 냈을 용기를 생각하며 본인의 작업에 표현되고 있는 욕망의 블루 캐릭터로 나혜석의 내적 갈등을 표현하고자 한다. 본인의 조형언어로서의 인물들은 얼굴의 형상에서 눈,코,입이라는 정확한 인물의 '앎'의 소재를 소외 시키고 비어 있는 얼굴은 감정의 절제와 동시에 궁금증과 많은 감정을 담아 낼 수도 있다. 이는 고정적이지 않고 유연한 이미지 역시 담아 낼 수 있다. 블루의 화이트의 줄 무늬 몸을 가진 그들은(she/he) 성별을 알 수도 없고 나이를 알 수도 없다. 비인칭적인(she/he)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허덕이고 그것들의 상실과 상실의 대면 앞에서 애씀을 몸부림치며 보여준다. 또한, 그 상실위에 위로와 용기로 다시금 새로운 변화를 가진다. ■ 하정희

나혜석을 기념한다는 것은 나혜석의 '무엇'을 기념한다는 것일까? 7년의 시간을 걸어온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와 3년의 시간을 동행한 특별기획전 『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는 시간의 무게만큼 그녀를 기념하고 애도하는 다양한 활동과 결과물들이 수원과 대안 공간 눈 그리고 예술 공간 봄을 중심으로 쌓이고 있었다. 이미 2000년에 예술의 전당과 나혜석 기념사업회가 공동기획 한 『나혜석의 생애와 그림(2000.1.15.~2.7)』회고전은 그녀의 유작이 별로 없고 진위여부조차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충분한 자료 수집과 학계의 검증 없이 전시가 추진되고 대중에게 공개되었을 때의 문제점을 '화가 나혜석'의 저자인 윤범모는 언급하였다. ('화가 나혜석' p.216 참조) 이는 그만큼 그녀의 예술과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살려낸다는 것은 쉽지 안다는 반증이다. 기실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대면할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가? 오히려 그녀의 작품 그 자체보다는 당시 파격적인 연애와 결혼, 이혼 후 이혼고백서의 발표라는 사회적 발언과 저항이 사회행동예술을 떠올리게 하면서, 그녀의 예술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증폭시키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작품은 화재로 인해 유실되면서 제대로 남아 있지 못한 상황이다. 몇 안 되는 유작 또한 자화상과 풍경화가 주를 이루면서 그녀의 파격적인 언행에 비해 다소 평화로운 풍경의 이미지들은 그녀의 작품세계에 의문을 가지게도 한다. 허나 그녀의 작품을 실제로 볼 기회가 열려 있지 않는 상황 속에서 책의 도판이나 이미지만으로 그녀의 작업세계를 논한다는 것이 솔직히 많이 아쉽고, 그러하기에 다시금 그녀의 삶과 사회적 행적에 눈을 돌리게 된다. ● 그녀를 상징하는 최초, 선각자, 자유 등의 단어들은 이미 많이 회자되면서 여러 수식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그녀의 삶과 예술로 들어가면 무성한 잡풀과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맹수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서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자의 고단하고 외로운 삶의 고통과 신음소리를 만나게 된다. 사회적 인습과 가부장제의 관행과 싸우면서 받아야 했던 고통과 상실을 떠올리면 어느 때고 그 먹먹함이 종이에 닿은 먹물처럼 가슴속으로 빨려들었다. 이혼을 당하면서 자식과 재산 그리고 사회적 명예 등 모든 것을 잃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그녀는 자신의 자유와 사랑, 배신과 추락의 씨앗을 잉태시켰던 프랑스로 간절히 떠나길 원했지만 떠나지 못했던 이유가 다름 아닌 '더 이상 4남매 아이들을 볼 수 없을 것 같아서'라는 그녀의 고백을 읽으면서 '차라리 프랑스로 떠나 예술가의 길을 고집스레 걸어가서 보란 듯이 성공하지' 라는 부질없는 마음과 동시에 4명의 자식을 낳은 그녀의 몸이 본능적으로 새끼를 그리워하고 품어보고 키우고자 하는 사무치는 마음에 공감이 되는 이중적이고 분열적인 마음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녀의 사회적 언행의 부산물로 인해 받았을 아이들과 가족의 고통 또한 이해할 수 있기에 부당한 인습과 관습의 폭력은 결국 그 누구의 승리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나혜석과 그녀의 가족들은 보여주었다. ● 처음 평론의뢰를 받았을 때 마음에서 일어난 질문은 '나혜석을 기념한다는 것은 도대체 나혜석의 무엇을 기념하는 것일까?'였다. 이는 과거의 나혜석의 삶과 예술이 현재의 수많은 '나들'과 만났을 때 우리들에게 제각각의 의미로 해석되고 재탄생되는 순간이 모여서 만들어 질 것이다. 따라서 '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라는 기획전은 그러한 나혜석을 만나는 길의 시작점이면서 많은 이들의 동행과 순례로 만들어 가는 길이다. ● 3년의 시간동안 11명의 현대 작가들이 그 길을 함께 했으며, 이번 기획전에서 선정된 작가들은 라오미, 조성훈, 하정희 작가이다. 라오미 작가는 불로장생의 의미를 장생도라는 방식으로 그녀의 이상향을 작업하는 작가이며 '노라를 노하라'라는 작업에서는 「봄의 오후」, 「천후궁」, 「정원」, 「선죽교」, 「해인사풍경」, 「삼선암」, 「금강산 만상정」등 나혜석이 응시했던 풍경의 조각들이 화폭 가득 공존하면서 나혜석의 이상향을 재현하고, 나혜석의 상징인 제비가 라오미 작가의 손을 거쳐 탄생한 회색빛과 보랏빛이 빚어내는 풍경 속을 날아다닌다. 마치 나혜석의 모든 것을 담고 싶은 열망만큼이나 라오미 작가의 작품에는 제비와 달, 태양 등 나혜석의 기호로 가득했으며 이번 공모전을 통해 작가와 나혜석과의 교감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하였다. 그녀의 작업 방식은 나혜석의 삶과 묘한 지점에서 일체감을 가진다. 나혜석은 이혼 후에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홀로 살아가다 서울 어딘가에서 행려병자로 죽음을 맞이했다. 더구나 그녀의 호적에는 사망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다. 사회적 금기를 깨거나 인습에 저항했던 자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적 징벌은 그들의 삶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단죄를 의미한다. 하지만 나혜석의 외로운 죽음은 영생과 이상향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을 그리는 라오미 작가의 '불로장생'과 자유로운 삶과 예술을 위해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저항했다는 이유로 죽음을 허락받지 못한 나혜석의 '불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겹쳐지면서 삶과 죽음의 야누스적 의미를 보여준다. 조성훈 작가는 나혜석의 자화상을 모티브로 하였으며, 실존의 나와 거울의 나, 캔버스의 나는 작가가 기존의 작업에서 그렸던 수많은 '나들'이자 나혜석을 통해 다시 그려진 나이다. 또한 조성훈 작가는 오랜 시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방치되면서 만들어진 나혜석 자화상의 색감과 균열 등 시간에 따른 변화, '처음 이 그림을 그렸을 때 색은 그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점에 주목하고 실제로 가장 발색이나 변색이 잘되는 파랑색을 주 배경색으로 하고 시간에 따른 변화를 의도적으로 유도했으며, 공모를 냈을 때와 전시가 되고 있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미 변색은 진행되고 있었으며 나혜석 기념관이 건립되었을 때 이 작업은 실제 어떤 변형의 과정을 보여줄지 궁금하였다. 하정희 작가는 나혜석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용기'라고 하였다. 작가는 나혜석의 페미니스트라는 의미보다 그녀가 겪는 내면의 갈등과 욕망에 주목했으며 이는 다시 하정희 작가의 조형언어인 블루인간이라는 인칭의 구분도 얼굴의 구분도 없는 모호한 생물체를 통해 표현되었다. 나혜석의 '캉캉'의 실루엣을 닮은 블루인간은 남성 권위의 상징인 중절모의 억압 장치 속에서, 블루인간 스스로의 틀에 갇히기도 하고 외부의 검은 중절모의 위압에 눌리기도 하는 모습은 이중의 억압 틀을 보여주면서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는 여성 자신인지, 사회적 인습인지가 모호해진다. 검은 중절모에 둘러싸여 서로 뒤엉킨 욕망의 블루 인간들을 품은 또 다른 커다란 블루 인간은 중절모를 넘어서지 못하는 좌절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선명한 색의 대비와 움직임은 오히려 그러한 좌절을 딛고 당장이라도 어떤 춤이나 몸짓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주체로 보이기도 한다. 이번 기획전에 세 명의 작가는 나혜석의 풍경과 이상향, 수많은 '나들'과 시간성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자유에 대한 갈등과 욕망, 용기로 또 다른 접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기획전의 세 작가의 접점은 과연 나혜석을 만나는 길에서 새로운 변곡점이 될 수 있을까?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과 나혜석의 예술과 삶을 통해 새로운 작업을 만들고 비평가는 그러한 작품을 마주하면서 새로운 나혜석을 상상하며 함께 분열되고 확장된다. 이러한 세포분열이 단순히 물질적 양의 증가뿐만 아니라 생각의 확장을 동반할 때 나혜석의 동시대적 의미의 장은 확대될 것이다. 시간과 활동의 축적은 지층을 두껍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러한 지층은 반복 작용으로 인해 상상력의 공회전만을 양상 시킬 수 있기에 나혜석의 작품과의 물리적 만남뿐만 아니라 좀 더 의미의 확대를 상상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무언가를 기념한다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선별적이고 파편적인 기념이 되는 경우가 많다. ● 2014년 행궁동의 예술 공간 봄에서 코기족의 창조신화로 푸른빛의 신화의 세계를 펼친 콜롬비아 인디오 작가 호르헤 이달고는 "변형이란 식물, 동물 인간으로 한정되고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로부터 나왔다는 공감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에 변형은 결국 하나이며 다른 수많은 외형적 이미지의 차이일 뿐이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나혜석이 줄기차게 주장하였듯이 '사람'이라는 '하나'로부터 나왔으나, 우리 사회는 여성과 엄마로의 탈피와 변형의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억압 이데올로기의 작동기제가 어떠한 왜곡된 이미지와 역할을 구축하는지에 대한 세밀하고 비판적인 공공의 성찰과 공감이 부족하다. 외형적 이미지의 차이에 갇혀 결국 '하나'라는 공감을 놓치게 되면서 나혜석의 삶과 예술을 기념하는 것 또한 반쪽짜리에 불가한 것은 아닌가? 나혜석은 "나의 염원은 결국 남성의 존재를 도외시하고는 이루어낼 수 없다는 한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수벌이 없는 여왕벌은 무의미합니다. 아니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여왕벌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여 여성운동은 곧 인간운동임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여왕벌이 수벌의 보호와 연대 속에서 비로소 임무를 완성할 수 있다는 한계성을 인정하며, 남성과의 연대를 이룰 때 사람으로의 자유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그녀의 저항은 여성과 남성을 아우르는 '인간성의 회복'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 나혜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직관적으로 '현재 진행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는 그녀의 삶과 예술이 자유와 인간성 회복을 위한 '인간운동'이었으며, 잘못된 인습의 틀이 개인을 어떻게 억압하고 파괴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인 바로미터가 되었다. 자유를 소망하는 자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편견과 폭력의 현재 진행형의 맹위가 그녀의 삶을 대할 때 우리는 강한 현재성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다. 매의 눈으로 살피지 않으면 언제고 스멀스멀 올라와서 인간의 자유에 덧칠을 하면서 본질을 흐리게 하는 그 케케묵은 인습은 우리의 유전자의 코드 속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모두의 유전자 코드에 기록되어 환경이 조성되면 발현이 되는 것처럼.. ● 나혜석은 여성의 본질과 역할이 사회적으로 구축된다는 것을 비판적으로 인식했으며 구축을 전복시키기 위해 그녀의 예술언어인 글과 그림으로 저항하였다. 나에게 '나혜석'은 원령공주의 잘려진 사슴신의 머리를 연상시킨다. 생명의 본령인 사슴신이 인간의 탐욕으로 만든 화승총으로 잘려졌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사슴신의 머리와 몸의 결합과 재생을 바란다. 저마다의 가슴속에 있는 생명의 원초적 모습인 사슴신의 잘려진 머리와 거세된 자유와 생명에 대한 원형을 회복하는 것이 그녀를 기념하는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유와 인간성 회복을 위한 예술가들의 작업들이 앞으로도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 나혜석의 소망과 생명으로 부활하길 바란다. ■ 이미경

Vol.20150522g | 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