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연습 Reading practice

정주희展 / JEONGJOOHEE / 鄭朱熙 / painting.video.installation   2015_0530 ▶︎ 2015_0613

정주희_lonelycrowd_캔버스에 유채_193×13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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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월,화_11:00am~06:00pm / 수,목_01:00pm~07:00pm / 금~일_11:00pm~08:00pm

대안예술공간 이포 ALTERNATIVE ART SPACE IPO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432 붉은벽돌집 1층 Tel. +82.2.2631.7731 www.facebook.com/spaceipo

들어가며. ● 오늘은 한 여성 작가를 만났다. 공교롭게 그녀를 알게 된 바로 그 날이었다. 글이 급하게 필요하다며 지인을 통해 연락이 온 터였다. 그 날 따라 스케쥴이 비어서 당장 만나도 상관없다는 투로 의사를 전달했지만, 그렇게 급하다면서 또 당장 만날 수는 없다며 전화 건너 그녀는 스케쥴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그때 인상은 굉장히 바빠 보인다는 것이었는데, 아마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나보다, 생각했다. 약속은 늦은 저녁으로 정했고, 대신 나는 이메일을 통해서 작품 몇 점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오후 아홉시 반이 넘어서 나는 그녀를 만났다. 급하게 이쪽으로 온 탓에 그녀는 저녁을 먹지 못한 듯해서, 맥주를 한 잔씩 시켰고,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예중 예고 입시미술학원 몇 군데 강의를 나가고 있다고 했다. 전시가 당장인데도 글 하나 청탁도 못하고 일을 나가야 한다니, 이해가 잘 안되면서도, 한편으로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대학 졸업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5년인가...6년? 2010년도에요."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30대인데, 졸업이 늦었다. 미대의 경우 다른 대학에 갔다가 뒤늦게 다시 들어가는 만학도도 많고, 여러가지 사연이 있는 친구들도 없지 않으니,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늦게 졸업하셨네요. 자립하셨구나." "맞아요. 전 제가 돈을 벌어서 학교를 다녔어요. 몇 년 학교 다니다가, 몇 년 쉬면서 학비 벌고, 또 다니고. 여러가지 사회적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시간을 허비한 거죠. 그럴듯한 작업 하나 없이 말예요. 제가 둘째거든요. 사랑이든 뭐든 받기 위해서 해야만 했던 요망한 짓들이 있죠. 돈을 벌어서 학업을 한 것도 부모님께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가 들어야 하고 자신이 말해야만 하는 위치여서 그랬는지, 그녀는 약간 주저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더듬더듬 끄집어 냈다. 내용이 툭툭 끊기는 부분이 있는 것이 조금은 걸러서 이야기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늦은 시간이라 더 지체할 수는 없기도 해서, 바로 눈에 띄는 작업을 물었다. 일단 그녀의 포트폴리오 중에서 가장 말끔해 보이는 작품을 지적했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사진인지 그림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 유명한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그리드grid로 보이는 것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작업이었다. "Tallest 신작이죠? 여긴 어디에요?"

정주희_tallest_종이에 연필_39×27cm_2015
정주희_stop_종이에 연필_27×39cm_2015

신작에 관해서. ● "두바이요. 그냥 검색을 해서 뜨는 사진이에요." 그녀는 아랍에미리트라는 거대한 산유국 중에서도 특히 럭셔리한 모든 것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두바이를 쿨하게 구글링으로 찾았다고 하며 대답을 일축했다. 나는 속으로 약간 당황해서 더 물어 볼 말을 찾지 못했는데, 그걸 눈치챘는지 그녀는 몇 마디 덧붙였다. "문제가 두드러지니까요. 근래에 보도가 많이 되고." 나는 다른 작업 stop 에 관해서도 물었다. "보도사진이에요. 테러지역에서 자전거를 도망가듯 타고 나오는 사진이에요." "하지만 테러 자체가 제 작업의 주제는 아니에요." 굳이 두 신작이 중동 쪽과 관련된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뭔가를 캐물어보고 싶진 않았다. 그녀는 이 작업을 연필 소묘로 모호하게 그린 후, 전시 동안 하얀 그리드를 점으로 찍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본 것은 스케치였다.) 그리드를 만들기 위해서 점을 찍는다.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 위에 다시 리터럴한 그리드라니. 모더니스트는 모든 것을 극도의 순수함으로 환원시켜 버리기 위해서 그리드를 사용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는 그 순수함을 해체시키기 위해 그리드의 반복성을 중요하게 다뤘다. 여기선 후자일까? 그렇다기엔, 작가 스스로의 (그림으로의) 투사가 강해 보였다. "아무래도 그리드가 작업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아 보여요." "그리드는 그리드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이 작업을 세련되거나 날카롭게 그리진 않아요. 모호한 가운데 정확한 눈금, 잣대로 겹쳐서 보여지는데, 그것이 개인과 사회가 부딪치는 지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층위, 레이어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도 모호함...굴레라고, 순환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구요. 이번 전시에서는 그리드를 진행형으로 그릴 텐데요,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그리드에 속박되기도 하고, 한편으로 매저키스트처럼 해소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만의 그리드 사용법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그리드를 규격화라고 부르며, 그것을 사회 시스템의 문제와 결부시켰다. "제가 쭉 작업에서 이야기했듯이 시스템이 소비라던지 감정, 미의 기준을 규격화하고, 그것이 걸러지지 않은 채로 끊임없이 받아들여지니까, 무엇을 어떻게 삼키고 뱉고 할지 조차 모르는 거죠. 직접적이에요. 설명이 필요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리드가 싫기도 하면서 좋다. 그리드는 사회 시스템이기 때문에 개인을 주물하는데, 또 개인이 그리드 자체가 되려고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드에서 개인과 사회가 만난다. 이 뜻인가요?" "저는 사회나 개인이 소비, 소모되는 것을 굴레라고 생각해서, 공적이던 사적이던 똑같다고 생각해요. 정확히 말하자면 밀접히 연관되어, 경계가 모호해, 구분하기 어렵다는 거죠. 즉, 제 작업에서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은 아주 개인적인 것이에요. 하지만 (다든 사람들이 봤을 땐) 모호함이 담길 수 있는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개인이 뭔가를 꿈꾸는 걸 욕망이라고 한다면, 그 욕망을 평범하게, (코제브 식으로 속물적으로) 길들이는 게 그리드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똑같아진다는 건 중요한 지적인 것 같아요.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알고보면 너무 평범한 것들이고. 그걸 착각하게 만드는 게 그리드랄까요. 결국 그렇다면 그 그리드는 어찌 보면 '소비의 구조'쯤 되겠네요." "소비를 통해 자신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가 얼마나 깡 마른 것인지 생각해보면, 매우 대조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현대인은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수 많은 것들 중에 왜 하필, 돈을 지불해 대량생산되는 기성품을 선택했을까요. 사실 그들이 그것을 통해 보여지고자 하는 바는 횡의 지점이 아닌 종, 즉 수직적 위치를 대변하는 부분이 훨씬 큰데도 말예요. 그래서 역으로 우리는 더 그것에 매달리는 것 일 지도 몰라요. 수직적 이동은 절대로 불가하다는 것을 사무치도록 알기에 역설적으로 더 그것에 집착하게 되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나는 그녀의 간명한 소비론에 내심 감탄했다. 거미줄에 갇힌 곤충은 발버둥치면 칠수록 스스로를 옭아맨다고 하는데, 그녀에게 소비는 그런 것이었다. 벗어나려고 하면 할 수록 정확히 바로 그것에 다가가는 그 양가성. 아무튼 stop 작업에 쓰인 것은 공적인 이미지지만, 굉장히 사적으로 선택된 것이 분명했다. 나는 문득 그 개인적 선택이 어떤 연유에서 이뤄졌는지 궁금해졌다. 그건 이전 작업이 더욱 잘 설명해줄 것 같았다. 단번에 여성의 소지품을 그린 것처럼 보이는 그림을 가리키며 설명을 요청했다.

정주희_Packed age 3_유채에 피겨_90×90cm_2014_부분
정주희_Packed age 4_유채에 피겨_90×90cm_2015

팩드 에이지 Packed age. ● 사실 이 작업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될 정도로 대학생이 한 번쯤 해보는 작업일 것이다. 소지품을 모아서 사실적으로 그려보기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좋아하는 것을 화가는 그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미대생 중에서는 취향이 독특해 물건을 사 모으는 사람들이 꽤 되고, 여성 중에선 종종 정말 진귀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한 번쯤 그걸 그려보고 싶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개인 소지품으로 꽉 채워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 이 작업을 시작한 것은 독일에서의 전시 때문이었죠. 저의 개인적인 소지품을 여행가방에 꾸려 다른 나라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 관객들은 아마 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을 테니, 그 여행가방을 보고 저의 신분이나 취향이나 나이 등을 가늠하겠죠. 저를 노출시키고 그들이 저를 보게 하는 게 그때의 작업이었어요." 그녀는 뮌의 기획으로 독일의 쿤스트 페어라인에서 단체전에 참가한 이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때 했던 작업을 한 동안 이어나갔다고 했다. "재미있었던 건, 또래여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취향을 알아보고 분류하는 관객들이 꽤 있었다는 거예요." 실제로 그녀가 20킬로그램 여행가방에 채운 소지품의 값어치가 50만원이었다면, 또 다른 작품을 위해 채운 친구의 물건은 약 5억원이었다고 한다. 나는 어떻게 가방 안에 5억원이 들어갈 수 있는지 정말 놀라웠다. "이 그림엔 조그만 피규어가 붙어 있어요. 같은 작업인데 수평으로 놓이면 (조그만 사람이 그림에 서있는 모습이) 보이는 거에요. 정면으로 봤을 땐 안보이고 측면으로 봤을 때만 보여요. 그걸 지각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기름 위에 사람이 서 있으니 늪에 빠진 것 같거나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져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크라우스가 그리드의 수직성과 수평성에 관해 푼 썰이 떠올랐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자.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그리고 그녀는 덧붙였다. "사회와 개인이 서로를 소비하고 속고 속이는 굴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에게 소비는 곧 속이기이며, 그것은 곧 신분상승의 욕구와 밀접하게 닿아있다. 소비를 한다고 진짜 신분상승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을 '속이기'인 반면, 남에게 그럴싸하게 보여지기 때문에 또한 '속이기'다. '외모 꾸미기'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소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신분상승은 불가능한 사회에요.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끊임 없이 소비를 하는 거죠." 나는 물었다. "관련해서 특별한 경험이 있으세요? 보내주신 노트를 읽었어요. 서울 와서 친구 부모님들이 의사나 변호사 같은 사회 고위층이어서 계급차를 느끼셨다는 식의. 서울은 언제 오셨어요?" "6 25 사변을 겪은 후 나무와 흙을 주워다 집을 짓고 밤낮으로 일만하신 지금 100세 가까운 나이의 할아버지는 우리 리의 땅을 모두 소유하실 정도의 동네 유지셨고 땅 몇 마지기 팔아 올라온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는 식당과 다락방이 딸린 단칸방 에서 살 수 밖에 없었어요. 집에 친구들을 데려올 수가 없었어요. 전학을 간 첫날 실내화를 가져가지 않아 담임에게 따귀를 맞았죠. 그게 제가 도시의 삶과 도시사람들에 대한 기억의 처음인 것 같아요." 그녀는 숨이 차도록 빨리 말했다. 듣고 보면 신분상승의 꿈과 좌절은 애석하게도 그녀의 개인사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때부터 도시와 시골을 왔다갔다 하셨나 봐요." "방학 때마다 집에 내려갔죠. 농사일도 거들고." 그녀는 도시의 소비문화를 세차게 비판했다. 물론 그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도시에 살고 있지만. "현재 사회는 전반적으로 비만 상태라고 생각해요. 소비에 관한 한 정제되어 적당한 양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하이힐의 비정상적인 볼륨의 플랫폼처럼 부풀어오른 팽창 상태 상품의 수와 마케팅전략, 미디어 채널, 광고의 형태, 필요와는 상관없는 구매욕과 과시, SNS에 올리기 위한 삶의 편집과 전시, 적정 선을 넘는 금액의 힐링과 카드대금, 때로는 욕구불만이 될 정도의 인내과 대금상환 등등.." "모든 현상을 소비로 보시는 군요." 나는 약간은 냉소적으로 맞받아쳤다. "우리의 소비는 전체적으로 비대해요. 영양소로 따지자면 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된 뚱뚱한 모양새라고 볼 수 있어요. 음식 중에서도 불량식품 아폴로와 같이 네온핑크의 가공식품을 자꾸만 섭취하는 중이죠. 축적되는 지방이 언젠가 내장을 파고들어 우리를 질식사로 유도할지도 몰라요." 그녀는 말을 이었다. "여담으로 에어컨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에요. 없이도 여지껏 충분히 살았는데, 하는. 에어컨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던지, 만들어지고 나서의 파장이라던지. 그것 때문에 없던 질병도 생겨나고. 백신이 생겨나고...모든 것이 말이죠. 저는 아직도 여름에 죽부인을 껴안고 자요" "궁극적으론 기술이나 도시문화, 나아가 자본주의 소비문명에 대한 회의감 같은 것이겠군요." 나는 갑자기 사스Sars나 조류독감같은 바이러스성 신종플루를 떠올렸다. "신종플루 있잖아요? 이게 정확히 원인 규명은 안 됐다고 하지만, 환경변화와 생태계 파괴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게 중론이잖아요. 그러니까 새만 걸렸던 바이러스에 사람도 걸린다는 건데, 간단하게 말해서 돼지나 새와 인간이 거의 같은 유전자가 되고 있거나, 그에 준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죠? 왜겠어요? 비슷한 환경에서 살면서 비슷한 음식들을 섭취하기 때문이겠죠. 모든 것이 생산되고 소비되어야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데, 인간이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동물이 먹게 되고 약도 마찬가지고...인간이 먹는 약 중에 남아 폐기처분 할 것을 가축한테 사용한다면서요? 인구 수는 포화상태고 그에 비례해 욕망은 어떤가요. 남아나는 게 없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백신 같은 건 생명유지장치이자 독이랄까요?" 나는 갑자기 호기롭게 신종플루에 관한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쓸 데 없는 잡지식을 쏟아냈다. 자본주의로의 전지구적 통합은 유전자까지도 통합해버릴 수 있다는 음모론! 하지만 이를 통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 최소한 위기를 겪고, 인구 수가 대폭 감소할 수도 있다. 아마 최근에 기생수를 본 영향도 있겠지만, 나는 진정으로 환경이나 에너지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인간은 지구에서 사라져야 할지도. 아니면 적어도 기생수같은 작업은 없을까? "여기서 질문을 드리면, 이런 견지에서 본인 작업이 관객 혹은 사회에 어떤 의미가 됐으면 하시나요? 그러니까 작업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예컨대 작업이 사스를 해결해주진 않잖아요?" "일단은 구석구석 찾아내서 제 방식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문화로 직접적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자칫 잘못하면 파시즘처럼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CJ같은 기업이 '자칭' 잘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미술의 궁극은 역시 보여주기로 족한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보여주는 것이 좋을까.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며 말을 이었다. "일상 그 자체가 이미 충격이란 말이군요. 그래서 그걸 드러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점에서 Packed age 5(부제:옆집아저씨) 를 보는 것이 적당하겠네요." 옆집 아저씨는 특이하게 거의 레디메이드 오브제로만 이뤄져 있는데, 시뻘건 피빛 색깔의 앞치마와 그 앞의 흉기(?)가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작품이다. 뭔가 강한 이미지인 만큼 기대를 가지면서 물었다. "옆집 아저씨, 이 작업 이름이 특이하네요."

정주희_Packed age 5(부제:옆집 아저씨)_캔버스에 오브제_112×145cm_2015

옆집 아저씨. ● "이 작업은 참 애매한데, 이전 작업(Packed age)과 같이 보셔야 해요. 이 물건들이 개인의 취향인 거잖아요. 그러면서 사회적 계급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칼은 20년동안 쓴 칼이에요. 낡아서 뜯어진 앞치마와 장화가 이전 작업과 대비가 되는 게 재밌어요."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기도 한 오브제였는데 특히 색이 궁금했다. 분명히 일반적인 앞치마는 아니었다. "앞치마는 색깔을 칠하신 거에요?" "아뇨, 그 아저씨 앞치마를 그대로 벗겨온 거에요. 그리고 옛날에는 백정을 상놈이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이 아저씨는 구찌 허리띠를 메고 계세요. 구찌 허리띠를 차는 백정. 제가 작업실에 왔다갔다 할 때마다 눈에 띄었어요. 나훈아처럼 무스를 바르시고 멋있게 하고 계시는데, 피 묻은 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메고 도축을 하시잖아요. 그 모습을 몇 년 동안 봐 왔어요. 매일 볼 때마다 그분의 역할이 너무 이질적이었어요." 그녀는 옆집 아저씨와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말해줬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가 '구찌'를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여기엔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천한 신분일 수록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고, 벗어난 것처럼 보일 수록 충격적인 원점의 진실이 더욱 드러난다는 역설. 지젝은 어디선가 에일리언의 변신술을 가지고 그런 실재계의 개념을 설명한 적이 있다. 에일리언이 아무리 인간으로 변신을 잘 했다곤 하더라도, 촉수 한 두 개 정도는 절대로 감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소위 '언캐니'라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아마 옆집 아저씨의 앞치마에서 에일리언의 그런 촉수를 느낀 것이 아닐까.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면서 (일단은 대답을 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나는 빠르게 말을 마무리 지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제가 보기에 Packed age는 어쩌면 개인, 즉 작가 자신이 소비한 물건을 통해 개인의 소망이랄까요, 그런 소망상징이 굉장히 보잘 것 없이 유형화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적인 소망이 사실은 대중의 소망이었던 거죠. 그런데 같은 옆집 아저씨 같은 경우는 그 정육점 아저씨가 구찌 등 명품의 소비를 통해 감추고 싶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생계 등의 이유로) 신체 자체가 되어버린 사물이에요. 우리는 그걸 보면서 불편하게 느끼는 건 사실이에요. 정육점 같은 경우도 사실, 도축이라는 행위를 개인의 생활사에서 아웃소싱해버린 시스템이잖아요? 보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두 작업은 통하는 지점이 있어요. 분열증적 개인-대중이랄까요. 소비를 통해 대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싶지 않은 개인과, 그 소비를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동반되는(정육점 주인의 칼처럼) 부정적인 어떤 요소.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이란 생각이 듭니다." * * *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시간은 자정 12시를 향하고 있었고, 시켜놨던 맥주 두 잔은 벌써 소진됐다. 그녀는 미안해하며 중간중간에 직장 일로 전화를 받았다. "작업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저는 심리나 감정으로부터 작업이 시작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네가 하려는 이야기는 감정이 들어가면 안된다고. 개인이 느끼는 쇼크가 다르고 그게 저한텐 굉장히 중요해요. 개인이 받는 쇼크는 범주가 될 수 없잖아요." "저는 바로 말씀하신 그 부분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상대적인 쇼크요. 이런 쇼크들이 복합적으로 작업에서 고찰되어도 재밌을 것 같아요." "현시점에서 본인의 대주제랄까요, 다시 정리해주신다면 어떨까요." "소비나 정보의 비만 같은 주제에 관심을 두고 싶어요. 개인과 사회에 대해서 생각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 by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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