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너머 안녕

구철회展 / KOOCHEOLHOE / 具哲會 / painting   2015_0603 ▶︎ 2015_0609 / 월요일 휴관

구철회_창 너머 안녕_장지에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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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철회 블로그_blog.naver.com/andart9

초대일시 / 2015_0606_토요일_12:30pm

제2회 춘추 청년미술상 수상展

주최 / 춘추회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강릉시립미술관 GANGNEUNG MUSEUM OF ART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 219-7 Tel. +82.33.640.4271 gnmu.gn.go.kr

새로운 세계 구축을 시도하는 구철회Ⅰ. 구철회의 작품세계를 단 한마디로 응축하자면 '어두움의 미학' 혹은 '슬픔의 미학'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 미의 근원을 하늘에서 찾고 있는데 하늘의 빛깔 중에서 특히, 회색과 붉은색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다. ● 그가 최초로 인식한 '색'은 아주 어린 시절 보았던 흐린 하늘의 먹구름 색깔 즉 회색이었으며, 최초로 죽음을 인식한 계기는 노을 지는 하늘의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느낀 공포였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흐린 하늘의 회색이 주는 우울함과 붉은 노을이 전해주는 죽음의 기운이 미적 감성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를 아마도 타고난 정서 혹은 취향이라 생각된다고 말한다.

구철회_Melancholia-흐린기억_장지에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5

Ⅱ. 그는 대화중 '단절' 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타고난 취향으로서의 어두움의 정서를 사회적으로 치환시킨 것이 단절이라고 했다. 그리고 소통의 희망, 그림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는 끊임없이 작품 속 어두운 정서를 사회적 관계 속으로 끌어들이려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폐허의 이미지를 통해 전쟁의 참상과 반전의식을 작품 속에 담아내려 하였고(작품명: 내일 이야기, 그날 이후),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자연의 파괴를 경고(작품명: Here & Now)하기도 하였다. ● 때로는 거대한 기하학적 구조물을 공중에 띄워 놓아,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 권력을 풍자(작품명: Apocalypse)하기도 하고, 2014년 개인전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더불어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여러 재앙적 사건사고들을 작품화(작품명: Remember!)하여 반복되는 참사와 이를 야기한 우리들의 망각에 대해 성토하기도 하였다.

구철회_Melancholia_장지에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4

하지만 필자는 미안하게도 그에게서 어떤 강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업을 했을 뿐이며, 그것은 스스로가 말했듯 '타고난' 취향이다. 어두움과 슬픔, 쓸쓸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단절과 소통,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어떤 '사회적 발언', 혹은 '예술의 역할'에 대한 강박은 아닐런지... ● 예술은 인간 내면의 표출이고 구철회의 작업은 그냥 구철회 그 자신이다. 오히려 작업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타고난' 내면의 충실한 표현에 방점을 두는 것이 더 설득적이지 않을까? 특히나 이번 전시에 출품될 작품을 보면서 강하게 드는 생각이다.

구철회_Melancholia_장지에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5

Ⅲ. 그동안 이어져온 일련의 작업 방향과 비교하여 볼 때 이번 전시는 구철회의 작품 전개에 있어서 하나의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기존의 작품에서 보이는 어두운 이미지의 상징적 형상들(폐허, 고사목, 콘크리트 구조물 등)과 불길한 느낌의 하늘이 등장하지 않는다. 한때 극단의 어두움을 추구하던 시기(2007 개인전)도 있었지만 지금 그의 그림은 힘을 뺀 듯 한결 여유로워지고 편안하다. 화면 구성은 더욱 단순해 졌지만 그림을 보면서 느껴지는 감정은 오히려 더욱 풍부해 졌다고나 할까. 여전히 그의 작품은 어둡고 슬프다. 그러나 기존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처절함은 빼고 쓸쓸함이 주는 한가로움을 더한 느낌이다.

구철회_창 너머 안녕_장지에 아크릴채색_90×150cm_2015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화면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보인 변화이긴 하지만 전술했듯 어두운 이미지의 형상들을 제거함으로써 실제 색채의 명도 뿐 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밝은 화면을 구현해 낼 수 있었다. ● 또 하나의 변화는 장식성이다. 그는 한때 모든 장식성을 거부하고 오로지 어두움만을 향해 달려가는 고장난 기관차 같았던 적이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작품은 반짝이는 별, 흩날리는 꽃잎, 화면 한쪽에 드리워진 파스텔 톤의 커튼 등을 통하여 훨씬 더 풍요로운 정서를 전달한다. 과도한 장식은 작품의 깊이감을 약화시키고 몰입을 방해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장식성은 작품을 저해하는 수위는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단순할 수도 있는 구도에 변화의 요소로 작용함으로써 화면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구철회_창 너머 안녕_장지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15

무엇보다도 이번 작품전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그가 지금까지 끝끝내 움켜쥐고 놓으려 하지 않았던 소위 '대 사회적 발언'을 놓아 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에게 또 다른 기회를 부여하려 하는 것 같다. 구철회 자신이 선택했고, 옳다고 믿었으며, 스스로를 옭아 매었던 그 "당위와 소명의 구렁텅이"(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예술관의 변화이며 곧 세계관의 변화이다. 기존의 세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는 뜻이다.

구철회_창 너머 안녕_장지에 아크릴채색_72.7×91cm_2015

사실 조형적으로만 본다면 최근 3~4년간의 작품과 이번 전시 출품작들 사이엔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의 외형에 드러난 미미한 변화로는 측정할 수 없는 많은 내적 변화를 일구어 냈다. 솔직히 필자는 그가 의식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추구했는지, 아니면 자연스럽게(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런 변화가 찾아 온 것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는 작가생활 15년의 기간 동안 머물렀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구철회의 새로운 세계에서 펼쳐 보이는 첫 번째 장이다. ● 앞에서도 지적했듯, 표면적인 변화는 크지 않지만 이미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선 그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그의 보수적 성향(예술창작의 형식적 관점에 있어서 자신은 보수적이라 말한다)에 비추어 본다면 당장 어떤 엄청난 조형적(형식적)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그와의 대화 과정 속에서 그의 변화에 대한 꿈틀거리는 욕망을 감지하였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가 규정지었던 당위와 역할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일 것을, 또한 그 세계가 기존의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세계가 더해져 더욱 더 풍성한 세계를 형성하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이 글을 맺는다. ■ ck. Greemy

Vol.20150603g | 구철회展 / KOOCHEOLHOE / 具哲會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