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문의 집

최재용展 / ??? / ??? / photography   2015_0602 ▶︎ 2015_0628 / 월,공휴일 휴관

최재용_정조문의 집(鄭詔文の家) #1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40×60cm_2014

초대일시 / 2015_0606_토요일_02:00pm

주최 / 복합문화공간 에무_『정조문의 항아리』영화추진위원회 (사)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 기획 / 복합문화공간 에무 기획위원회 후원 / 사계절출판사_AGI Society_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주)인디플러그_(사)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센터 월간 사진예술_공익재단법인 고려미술관_국립박물관문화재단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_(주)카티정보_플랫폼_아트마케팅프로젝트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복합문화공간 에무 Art Space EMU 서울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B2 Tel. +82.(0)2.730.5514 www.emuartspace.com

조선 문화재 수집가인 재일교포 정조문(1918~1989). 경북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출신으로 1924년 6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갖은 고생 끝에 파칭코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였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조선 백자를 구입한 것을 계기로 소설가 시바 료타로, 역사학자 우에다 마사아키 같은 일본의 지식인들과 함께 일본 속의 조선 문화를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며, 도처에 산재해 있는 조선의 귀중한 유물들 약 1,700여점을 수집해, 일본의 古都인 교토에 「고려미술관」을 세웠다. ● 척박한 일본 땅에서 집념과 의지 하나 만으로 조선의 얼을 지켜내고자 했던 재일교포 정조문의 삶을 추적하고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자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 여 만인 2013년 초, 미술사학자인 최선일 박사의 주도로 황철민 감독(세종대학교영화학과 교수)와 최광희 영화 평론가가 뜻을 모아 다큐멘터리 『정조문의 항아리』를 제작했고,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에서도 조금씩 정조문과 그가 일본에 남긴 소중한 유산인 「고려미술관」을 재조명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 올해는 광복 70년, 한일수교 50년이 되는 뜻 깊은 해로 특히 최근 들어서 정부와 민간이 힘을 모아 해외의 우리문화재환수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고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정작 한국 정부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서 현재 「고려미술관」은 만성적인 재정 부족으로 인해 특별전과 교육프로그램 등 기존활동을 접어야할 상황에 처해 있다. ● 수많은 국보급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한국과 일본의 숱한 박물관에 비하면 그 규모나 내용 면에서 정조문의 「고려미술관」은 초라해 보일런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반드시 지켜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최재용_정조문의 집(鄭詔文の家) #2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40×60cm_2014

사진전 『80년 만의 歸鄕, 정조문의 집』은 전 재산을 털어 일본으로 유출된 조선의 유물을 수집하는 데 일생을 바친 정조문의 흔적을 사진가의 시각을 통해 기록하고, 고려미술관의 가치와 그 존재를 우리 사회에 보다 널리 알리고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특별히 기획되었으며 지난 2014년 4월과 10월, 다큐멘터리 『정조문의 항아리』의 추진위원인 사진가 최재용이 교토를 방문해서 정조문의 유산인 「고려미술관」 곳곳을 돌아보며 담장, 작은 돌, 크고 작은 나무, 수많은 항아리들과 석상들 하나하나에 담긴 그의 땀과 눈물, 의지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 간송미술관의 화려한 컬렉션에 모두가 열렬한 환호와 지지를 보내고 있는데 반해 일본 강점기에 차별과 갖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한국의 유물들을 지켜내고자 했던 정조문의 노력은 우리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정조문의 항아리』와 사진전 『80년 만의 歸鄕, 정조문의 집』을 계기로 문화재를 통해 독립운동을 한 정조문의 숭고한 뜻과 업적, 그리고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최재용_정조문의 집(鄭詔文の家) #3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60×40cm_2014

최재용의 '80년 만의 歸鄕 - 정조문의 집'에 부쳐... ● 사람이 살다보면 개인적인 빚을 지기도 하고 사회적인 빚을 지기도 한다. 개인적인 빚이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누군가에게 지는 빚을 말한다면, 사회적인 빚은 작게는 자신이 속해 있는 가족이나 지역 사회, 크게는 국가나 전 인류적인 차원의 빚을 의미한다. 이것은 개인적 행위의 의식과 무의식을 떠나 가족이나 지역 사회, 또는 국가나 인류의 구성원으로 사는 동안 상호간에 자연스레 일어나는 삶의 형태로 우리는 이것을 의식하며 살 수도 있고, 때로는 의식하지 않은 채 삶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개인적 빚이 일반적인 도덕이나 상식과 관련이 있다면, 보다 큰 의미의 사회적 빚은 그런 차원을 넘어 전 인류가 그 자체로 하나처럼 움직이는 유기체라는 자각이 일어날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재용_정조문의 집(鄭詔文の家) #4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60×40cm_2014

최재용의 '80년 만의 歸鄕 - 정조문의 집'은 다큐멘터리로서나 작품의 가치를 떠나 개인의 빚을 넘어선 사회적 빚에 대한 자각의 결실로 보여진다. 그것은 같은 피에 뿌리를 둔 같은 민족의 사정을 다룬 것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빚이 아닌 사회적 빚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이것이 단순하게 최재용의 사적 기억을 더듬어 작업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문화적 산물'이나 '문명의 자산'은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인류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그의 젊은 날의 기억이 단순히 개인적 기억에만 머물지 않고 개인을 넘어 이웃과 사회, 그리고 민족의 일원으로서 떠안은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의식으로 확대된 것이고, 그것이 '80년 만의 歸鄕 - 정조문의 집'으로 구현된 것이다.

최재용_정조문의 집(鄭詔文の家) #5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60×40cm_2014

이 사진전의 중요한 가치는 단순히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지나간 사실을 기록하는 차원이 아닌, 사회적 원인에 대한 개인의 날선 자각에 있다. 그 가치를 바탕으로 할 때 공적 다큐멘터리가 추구해야 할 지표는 분명해지고, 그것을 향한 사진가의 발걸음 또한 당당해지게 될 것이다. ● 우리는 최재용의 '80년 만의 歸鄕 - 정조문의 집'을 통해 사진이 단순한 기록을 떠나 그 가치가 사회적 다큐멘터리로 확장되는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2015. 6) ■ 김홍희

Vol.20150607k | 최재용展 / ??? / ???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