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lorescence

이은영展 / LEEEUNYOUNG / 李銀英 / painting   2015_0623 ▶ 2015_0720 / 주말,공휴일 휴관

이은영_하나 그리고 둘_캔버스에 유채_100×140cm_2015

초대일시 / 2015_0630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루 ART SPACE LOO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110번지 Park110 빌딩 B1 Tel. +82.2.790.3888 www.artspaceloo.com

꽃, 끝없이 펼쳐지고 접혀지는 우주 ● 꽃이 가장 많이 그려지는 소재의 하나인 이유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 그래서 미의 상징이 되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꽃은 달력에 수록되는 이미지를 포함한 키치의 가장 주요 소재가 되고, 정작 '고급예술'에서는 기피대상이 되곤 한다. 아직 꽃에서 벗어나지 못한 작가는 아마추어 화가 취급을 받는다. 가령 나신의 여체를 즐겨 그리는 (남성)화가만큼이나 꽃을 그리는 '여류' 화가는 일상의 상식을 벗어나지 못한 채 성별 분업을 내면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키치를 비롯한 미술수업의 기초단계에 필수적인 꽃에는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보편성이 있다. 꽃은 '미' 할 때 떠오르는 아름다운 여성만큼이나 보편적이며, 양자는 중첩된다. 꽃과 아름다운 여성은 미를 대신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은영은 꽃이 상품으로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에 미술작가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전한다. 꽃이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상당부분 채워준다는 것이다.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은 어느 구간을 직선으로 가다가 다시금 순환하는 인생 및 자연과 비유된다.

이은영_yellow rose_캔버스에 유채_70×70cm_2014

그리고 어둠속에서 움튼 씨앗이 햇빛을 받고 자라나며 성숙하고 개화된 모습이 향유되는 과정이 작업 및 전시 과정과 유사한 면도 있다. 작품 하나하나가 오랜 어둠 속에서 준비기간을 거치고 빛을 본 꽃과 같으며, 그 꽃들이 모여 흐드러진 백화만발을 연출하는 것이다. 꽃의 전성기가 오랜 기다림과 준비보다 무척 짧다는 것도 그렇다. 화려하기 때문에 더욱 허무한, 열매의 전조지만 그 자체는 열매가 아닌, 무한히 투여되어야 노력들 그 모두가 예술의 과정과 많이 닮아있다. 예술을 '그자체로' 향유할만한 에너지가 결여된 자는 예술을 '통해서' 뭔가 얻으려하는데, 그러한 생각은 밑빠진 독에 물 붓는 듯한 허무감만 자아낼 것이다. 꽃이 선물처럼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아낌없이 준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러한 보편적인 특징 외에, 이은영이 10년째 꽃에 천착하는 이유는, 꽃 천지였던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지금 30대 초반의 작가인데,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 받았던 강렬한 인상은 추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 생각된다. ●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장미나 튤립은 누가 보살피거나 봐주지 않아도 피고 지는 야생화와 달리, 오랜 기간 실험과 시험을 통과한 육종기술을 통해 가다듬어져 일찌감치 상품가치를 획득했으며 그 종류도 다양하다. 작가는 화려한 꽃을 화폭 가득히 담아 꽃의 외형을 넘어서 그 에너지를 전달하려 한다. 한 떨기 꽃이 우주의 상징이라면, 화폭 가득한 꽃들은 작가의 바람대로 '우주의 에너지를 담은 것'에 해당한다. 작가는 꽃에서 강인함도 찾는다. 그자신이 기(氣)가 약해서 자면서 자주 가위가 눌리는 등,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에 대한 심리적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빛을 머금은 환한 꽃은 어둠 속의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게 한 상징—그래서 작가는 꽃에서 '삶의 희망'까지도 본다—처럼 다가온 것이다. 많은 사람이 꽃을 그리지만 이은영에게는 개인적 체험이 강하게 투사되고 있다. 그래서 작품은 꽃의 아름다움 보다는 생명력에 집중된다. 그러나 그러한 생명력은 짧은 개화 시기 때문에 역설로 다가온다.

이은영_white rose_캔버스에 유채_70×70cm_2015
이은영_white tulips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5

자크 브로스는『식물의 역사와 신화』에서, 식물에게 개화란 사실 그 식물의 쇠퇴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며, 종국적으로는 죽음을 예고한다고 본다. 달이 가득 차면 기울기 시작하듯이, 충만한 생명력은 그 반대의 여정을 생각게 한다. 화무십일홍, 메멘토 모리라는, 동서양의 상징이 있듯이 말이다. 이은영의 작품에서 꽃의 생명력은 꽃의 형태나 색 보다는, 붓질에서 발견된다. 캔버스 밖으로 뻗쳐 나갈 듯한 강한 붓질은 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섬세함이나 규칙성과는 거리가 있다. 작업실 한 켠에는 캔버스의 사각 공간을 탈주하려는 꽃의 실루엣을 담은 변형 화면이 수년째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이전 작업에서는 일정한 크기 캔버스를 여러 개 연결하여 창 같은 느낌을 연출하곤 했는데, 이러한 분할 작업들은 꽃이 가득한 느낌 외에, 밖으로 확장되려는 방향성을 지시한다. 특히 120x120cm 크기의 정사각형 캔버스의 경우, 질서의 정점에서 변형의 순간이 이어질 시점을 예기한다. 무언가의 정점은 짧은 평형의 시간을 뒤로 한 채 내려와야 할 시점을 말한다. ● 그림에서 흔히 사용하지는 않는 정사각형 구도의 화면에는 정중동의 미학이 느껴진다. 정지된 매체인 그림은 이렇듯 현실성과 잠재성 간의 역학관계를 잘 활용해야 한다. 또한 이은영의 작품 속 적지 않게 발견되는 정사각형 캔버스는 단자와도 같은 자족적 소우주의 느낌을 강조한다. 그 크기가 얼마이든 그것은 하나의 우주로 개화한 것이다. 한 캔버스에서 마무리되는 경우, 확장되는 엔트로피는 거친 붓질을 통해서 실현된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거한다면, 급격하게 전개되는 무질서는 죽음과 더욱 가까움을 알려주지만 말이다. 작업과정은 유화물감이 하나의 층을 이루고 그 위에 또 하나의 층이 덧붙여지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 사이에는 시공간의 간격이 있다. 의미는 처음부터 명확한 것이 아니라, 화석이나 지층, 또는 떨어진 꽃잎들이나 낙엽처럼 그렇게 물질이 중층적으로 쌓이면서 두터워진다. 특정한 꽃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붓질을 감추는 투명한 재현이나 최초의 소재에 충실한 계획적 과정보다는, 붓질 하나하나가 매순간 계속되는 선택 과정에 달려있다.

이은영_untitled-2_캔버스에 유채_33×33cm_2015

그것이 이은영이 자신의 작업에 부여한 규칙이다. 매순간의 선택이란 우연에 열려있는 여정을 말한다. 장미로 시작했지만, 끝은 장미가 아닐 수도 있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이다. 작가는 이렇게 꽃을 핑계 삼아 물감을 말렸다 올렸다를 반복하면서 차례로 쌓이는 과정이 인간의 삶과 유사하다고 본다. 작품은 두터운 물감의 음영이 보이고, 젯소칠 조차도 감추지 않고 남겨둔 화면은 첫 층위부터 마지막 층위까지 모두 드러난다. 공간이 축적되면서 시간성이 축적된다. 그것이 꽃이 피고 지는 시간성과 그리기 과정을 중첩시킨다. 붓질이 쌓이면서 꽃이 나오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작가는 겉포장에 치중하기 보다는 그리는 과정의 카타르시스를 추구한다. 이은영의 작품에서 치솟기도 하고 내려앉기도 하는 생명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식물이라는 소재, 그리고 작가가 최근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빛이라는 소재는 그 방향성을 암시한다. ● 자크 브로스는 생명의 에너지는 지상이 아닌 천상에서 온다고 말한다. 식물이 시작한 광합성 작용 덕택에 창조의 모든 기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태양은 인간에게 무조건 준다. 그것은 무한히 공여되는 선물이다. 태양에 의해 무한정 주어지는 빛 에너지를 붙잡아 계속 이어질 생태적 연결고리를 최초로 마련하는 것은 바로 식물이다. 자연과의 연관 고리를 현대인보다 더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원시인들은 식물과 인간의 유대관계를 의례적 차원으로까지 고양시켰다. 그것은 결혼식부터 장례식까지 관통된다. 제인 해리슨은『고대 예술과 제의』에서, 신부와 신랑의 화관은 그 결혼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며 그의 '아내가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 같기를' 바라는 뜻이 있다. 또한 매년 새롭게 오는 해와 함께 그들의 생명이 다시 태어난다는 뜻에서 생일에 화관을 쓴다. 마이클 조던은『초록덮개』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과 함께 발견된 수많은 꽃가루를 통해, 시신이 꽃으로 둘러싸였음을 추측한다. 그것은 이듬해 다시 피어나는 꽃처럼 재생에의 염원이 투사된 것이다.

이은영_untitled (in summer)_캔버스에 유채_121.2×160.6cm_2014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도『종교사 개론』에서, 식물을 살아있는 현실, 주기적으로 재생되는 삶의 표명이라고 본다. 그에 의하면 식물을 통해서 다양한 리듬으로 재생되고 숭배되며 고양되고 촉진되는 것은 삶 전체이며 자연이다. 식물의 힘은 우주적 삶의 현현이라는 것이다. 이은영의 작품에서 꽃이 피상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생명력을 강조할 때, 그것은 1회적 삶이 아니라 부활과 재생을 거듭하는 삶을 말한다. 부활에 대한 모든 신앙은 '봄이면 다시 살아나는 식물들에게 근거한다'(자크 브로스)고 지적된다. 상징을 비롯한 정신적인 것은 자연에서 온다. 이러한 연결망은 지고한 형이상학의 폄하가 아니라, 정신적인 것의 든든한 뿌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꽃의 생명력에 대한 작가의 경도는 '실재하는 것은 단지 자신과 동일하게 무한히 지속해나가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유기적이고 순환적인 형태로 생성하는 것'(엘리아데)이라는. 고대 이래 인간의 직관과 연결되어 있다. 순환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예술이나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엘리아데는 '모든 재생은 그때마다 새로운 탄생이며, 재생되는 형태가 처음으로 나타난 신화적 시간으로의 회귀이므로, 사람들은 우주 창조의 원초적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꽃을 비롯한 자연물이라는 소재는 변화와 재생이라는 특징을 통해, 아무리 반복해도 싫증날 수 없는 무한한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간 속에서 존재의 무한한 연장이 아니라, 깨달음에 있다. 이은영의 그림은 시작은 있지만 끝을 확정지을 수 없는 과정적 성격을 가진다. 형상은 질료의 흔적들로 이루어진다. 작품의 일부만 주목해본다면 혼돈스럽고 유동적인 흐름이 지배적이다. 꽃은 마치 이데아의 세계 속에 있는 원형처럼 질료를 조직하는 형상의 질서를 제공할 뿐, 과정의 최종적인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무의미한 붓질은 자제한다. 단지 꽃이라는 오래된 소재에 집중해서가 아니라, 형상과 질료 사이의 균형을 잡으려는 이러한 노력이 이은영의 작품을 다소간 고전적으로 만든다. 그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철학적 주제였기 때문이다.

이은영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97×260cm_2014

또 하나의 고전적 요소는 진리의 상징으로서 빛에 대한 관심이다. 최근에는 꽃 위에 빛을 더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작가는 '우리는 빛을 물리적으로 직접 보기보다는 어떠한 사물을 통해 이에 비추어지는 빛을 보고. 빛은 정신적으로는 진리, 선, 생명, 에너지, 사랑 등의 긍정적 의미'를 가진다. 이때 빛은 '자아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 어둠을 두려워했던 작가에게 빛은 희망과 성찰의 계기를 준다. 본래 빛은 진리의 은유로 간주되어왔다. 어둠속에 갇혀 있는 질료와 혼돈에 형상과 질서를 부여하는 빛은 형이상학의 오랜 주제였다. 한스 블루멘베르크는『진리의 은유로서의 빛』에서, 진리는 존재 자체에 비춰지는 빛이며, 빛으로서의 존재라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은영의 꽃은 빛이 비춰지면서 동시에 빛을 발하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에게 꽃은 하나의 둔탁한 색 덩어리가 아니라, 매순간 다른 강도로 빛을 투과하는 면들의 집합이다. 한스 블루멘베르크는 그리스 종교에는 자연신이 풍부하게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빛의 신은 없다고 지적한다. ● 빛이 신으로 포착되기에는 너무나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빛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이 존재하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하나의 매개체처럼 우주를 채우고 있는 밝음은 수축되고 집중되어 형이상학적인 단위로 대상화된다. 이은영의 작품은 단순한 '자연의 빛'을 넘어서서, '보편적 광휘'라는 종교적 초월의 기미가 있다. 그러나 그림은 가장 구체적(tangible)인 것이기도 하다. 이은영의 그림에 붓질 하나하나의 흔적이 남아있듯이, 꽃에 떨어지는 빛은 수많은 획과 얼룩이 되어 손에 잡힐 듯이 캔버스 위에 자리한다. 두텁게 칠해진 색 면은 마치 얇은 부조처럼 그자체로 빛과 그림자를 내포한다. 명암과 원근은 자연적 소재 뿐 아니라, 물감이라는 인공적 요소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밝고 어두움, 따스함과 서늘함, 밀집과 여백, 모방과 표현, 형태와 행위가 공존하는 화면은 음과 양처럼 상호보완적이다. 이러한 상호보완은 매순간 이루어져야할 역동적 과정이다. ■ 이선영

Vol.20150623b | 이은영展 / LEEEUNYOUNG / 李銀英 / painting

@ 60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