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생-현재를 바라보는 여섯 가지의 시선

서유정_성연웅_이만수_이호영_전은희_김창균展   2015_0708 ▶︎ 2015_0713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5_0710_금요일_07:00pm

그림 안에서 시 읽기_시인 김창균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강릉시립미술관 GANGNEUNG MUSEUM OF ART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 219-7 Tel. +82.33.640.4271 gnmu.gn.go.kr

● 문득 고개를 들면 낯선 풍경들이 보인다. 시선을 둘러싼 풍경들 속. 풍경과 풍경 속에 또 다른 풍경들이 겹쳐진다. 겹쳐지고 겹쳐지는 풍경들 사이 그 속으로 나 있는 것은 길이다. 길은 풍경들과 풍경들을 연결하며 저곳과 이곳을 연결한다. 풍경들은 길로 하여 다르면서 같은 지점을 관통한다.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곳은 길 위다. 길은 풍경들을 연결하고 풍경들을 보는 지점을 만든다. 길을 통하지 않고 그 풍경에 다다른 적이 있던가. 풍경을 연결하는 것은 길이다. 길. 길은 유동하는 것이 만드는 궤적. 궤적을 가지는 선이다. 물길은 산의 높이에서 바다에로 향하고, 역사의 길은 과거에서 현재를 관통하여 미래를 향하다. 지금 여기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 속에는 수많은 방식과 방법들의 길들이 교차하고 엉켜 있으며 무수한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여기를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길이며 또한 길이 만들어 낸 풍경들이다.

서유정_The Day You Went Awa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15
성연웅_바람에실려_종이에 펜_25×32cm

시선 ● 지금 집 밖으로 나가 길을 나서면 길이 만든 풍경과 길에서 길로 연결된 교차로들이 보일 것이다. 그 일상에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지만 있어온 것들의 길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가령 길가에 세워진 건물. 그 건물은 어떻게 보는가. 그 건물을 형성한 길을 본적이 있는가. 건물은 건축이 걸어온 길과 목수가 걸어온 길, 미장장이의 길, 설계사의 길과 노동자의 길, 건축주의 길들이 엉켜 만들어진 교차로인 것. 여러 길들이 만나서 완공된 교차로인 건물. 완공되면서 그 건물 속을 살거나 드나드는 사람들의 길들이 엉켜있는 길들이 있는 교차로, 건물이다. 그러한 것들은 있지만 보이지 않는 사실들. 어쩌면 관념으로 보일 수 있는 길들과 길들은 어떻게 볼 수 있는 것일까.

이만수_봄밤1409_캔버스에 채색_162×131cm_2014

본다는 것은 살아 있기에 가능하다. 혹은 보여 진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증거 한다. 감각하는 것. 신경의 살아 있는 것. 바람이 지나거나 교차로의 신호등이 내 눈에 명멸함을 인지하는 것은 육신의 신경이 감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살아있는 것. 생을 몇 마디의 말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허나 감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 신호등의 불빛을 말하거나, 길에서 만난 보여 진, 감각되고 인식되어진 사실들을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 생의 근원들을 말할 수는 없지만 신경으로 전달되어 아프기도 하고 푸른빛들로 가득 채워진 풍경들을 표현하는 것, 생의 근원을 정의할 수 없지만 표면에 감각되어진 햇살의 따스함과 차가움은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 표면의 감각이 본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 깊은 무엇에 연결되어 있다고 말 할 수는 있다. 본질을 말할 수 없으나 감각되는 것들을 통하여 길을 여는 것이 생의 시선이다. 생은 어쩌면 감각의 표면 위, 길 위에 있다. 그러므로 길은 생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며, 생은 길의 한 가운데 있다.

이호영_길안 길-양재천_캔버스에 혼합재료_117×91cm_2015

그리고 ● 여기, 지금 여섯 가지의 시선들이 있다. 생을 바라보는 그 시선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향해 있지만 확실에 찬 말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여섯 가지의 시선들은 현재의 길속에 태어나 길 속에서 만나고 있다. 그 교차점이 이번 전시이다. 이만수와 전은희는 동양화를, 서유정, 성연웅, 이호영은 서양화를, 김창균은 시인으로서 문학의 길을 걸어 왔다. 지금 여기에 여섯 가지의 길을 교차하여 보여주고자 한다. 다른 길에서 탄생한 다른 사유, 시선을 한자리에서 교차하고, 그리고 소통. 그러므로 이 전시의 시선은 다르면서 같은 길. 다른 길이면서 같은 토대의 교차로. 지금 여기, 현재를 조망해 보기 위한 문제제기이다. 길을 걷고 걸을수록 만나는 것은 답이 아닌 질문과 질문들의 연속. 전시를 하면 할수록 전시 속에서 만나는 것은 현재를 바라보는 몇 가지의 시선들이다. 그 시선들이 때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공감의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생의 한가운데, 현재의 교차로에 서 있는 지금을 향하여 여섯 가지의 시선들이 여러분에게 말을 걸고자 한다. 살아 있는 생을 위하여. ■ 이호영

전은희_어떤 것들_한지에 채색_41×32cm×73_2015

천남성을 먹다 ● 천남성. / 이것은 식물의 이름인데 / 천상의 죄처럼 아름다운 이름이다. / 밤마다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하늘 귀퉁이에 / 부끄럽게 뜨다 마는 / 먼먼 조상을 앓고 있는 저들은 / 겨드랑이께 꽃을 품고 / 염증 많은 아버지의 뼈마디에 내려온다. / 민간요법처럼 기약 없는 날들이여 / 이것은 자주 옆구리께 담이 결리는 나에게도 / 풍 맞아 반쪽 몸만 성한 고모에게도 / 국수나 혹은 수제비로 온다 //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옮겨갈 때 / 근질근질한 독성을 염증에 붙이며 / 새삼 아련한 그리움이 있을 것 같은 저 먼 데를 편애하며 / 천남, 천남. / 하늘 남쪽에 뜨는 별자리 같은 데를 생각한다. (녹색평론 2012 봄호) ■ 김창균

* 천남성: 천남성과(天南星科 Araceae)에 속하는 다년생초.

Vol.20150708j | 길 위에서 만난 생-현재를 바라보는 여섯 가지의 시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