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night Sun: 밤에도 떠있는 태양

이정민展 / LEEJUNGMIN / 李庭旼 / mixed media   2015_0709 ▶︎ 2015_0722 / 월요일 휴관

이정민_Midnight Sun 03.1_한지에 혼합재료_46.8×46.8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1갤러리, 유중아트센터 4층 1GALLERY 서울 서초구 방배로 178(방배동 851-4번지) Tel. +82.2.537.7736 www.ujungartcenter.com www.1gallery.org

동시대 존재의 은유와 삶의 극지 ● 비뚤하게, 일그러진 원형이 떠 있다. 햇살이 산발한다. 선들의 날갯짓이 깃털처럼 가볍게 혹은 덩어리진 무게를 지닌 채 서정의 분동을 터트린다. 휘몰아치듯 돌아 나가는 이 선들은 하늘 위를 멈춘 듯 미끄러지고, 무채색 위주의 색 사이에서 간혹 드러나는 붉고 파란 색채는 특유의 서정에 파장의 그림자를 투과한다. 이 모든 조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모를 에너지를 함축한 채 불명확한 존재감과 가공할 대상을 가시화 시킨다. ● 바탕의 선과 공간의 호흡은 행위로부터 발현된다. 행위는 곧 흔적을 남기며 흔적의 여운은 다시 폭풍이라도 들이닥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선사한다. 특히 이리저리 흩어진 듯 질서를 갖춘 구성은 그 불안감 속에서도 찾아야할 것, 넘어서야할 것, 끌어안아야 할 것 등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지시한다.

이정민_Midnight Sun 06.1_한지에 혼합재료_51.7×83.6cm_2014

이처럼 이정민의 작업은 작가만이 느꼈을 법한 세상 무언가에 대한 찰나의 인상과 감춰진 어떤 계기가 화자 개인의 주관에 수용된 다양한 감정들로 피어나고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미지는 명료하지 않다. 그리기 보단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모호한 여백을 통해 미지를 상상하게 하면서 그 발원이 구체적으로 현실의 어디쯤에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 형식상 그의 작품은 감각적, 즉흥적, 순간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간접성, 복수성이라는 판화만의 고유한 프로세스를 대입하면 적절한 문장이 아니지만 화면에 부유하는 흔적들은 감정을 쏟아놓기에 계산이 우위에 설 자리가 없음을 지정한다. 응축, 리듬, 분출이라는 세 개의 명사 아래 산탄 같은 흔적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그렇기에 그의 그림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감정적 공유이지 눈에 드러나는 시각적 이해는 아닐 수밖에 없다. ● 형식과 관련해 이정민의 그림에 녹아 있는 삶의 단락과 공간성, 경험의 시간성 역시 그의 그림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관점이랄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시각화된 표면에 기억과 경험의 기표들을 얹히며, 작화적 시점에서 진행되는/ 되어 온 기억의 잔류를 존치시키면서 '보이지 않는 힘'을 재조립한다. 유선의 출렁임을 통해 "삶 속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인 총체이자 힘, 그 영향을 받는 존재들을 은유한다."

이정민_Midnight Sun 07_한지에 혼합재료_75.8×55.7cm_2014
이정민_Midnight Sun 13_한지에 혼합재료_75×75cm_2015

하지만 해독의 어미는 기호에 머문다. 자질구레한 내레이션은 희미한 대신 에너지의 파편화와 산발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거친 듯 정리된 화면은 삶의 단락과 공간성, 경험의 시간성을 가리키고 삶의 단락과 공간성, 경험의 시간성은 거친 듯 정리된 화면으로 재배열, 재해석이라는 과정을 통해 표면화 된다. 여기서 선과 공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하고 난해하며 끊임없는 용기와 극복을 요구하는 현실의 세계이자 그리드된 관계를 일컫는다. 또한 그가 거의 유일하게 묘사한 밤중의 태양과 몇몇의 형상은 메시지를 덧대는 바탕이자, 타자들에게 익숙하진 않으나 분명 지각 외, 또 다른 층위의 감성을 제공하는 밑동이 된다. ● 내용상 그의 작업은 나를 중심으로 주변을 포박한다. 그 내부엔 '살아가기'라는 거부하기 힘든 세상이 걸쳐있고, 미시적으론 존재와 부재, 거대함과 미약함 등이 이입되어 있다. 일례로 작품 「midnight sun 14」(2015)에 등장하는 태양과 새 날개 모양의 이미지, 그리고 「midnight sun 09」(2014)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토끼에서 엿보이는 구상성과 그 형상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지는 추상적 양태는 위에서 거론한 존재와 부재의 차이, 거대함과 미약함과 같은 도식을 증명한다. ● 나아가 「midnight sun 16」(2015)에서 엿보이는 서로 다른 층위의 화면 분할, 흐름과 순연의 이미지들은 해석의 자유로움과 지시성이 동시에 교합되는 양상 아래 현실과 탈현실, 나와 타인의 관계를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도록 한다. 다만 우린 그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상징적 기호들로 인해 그 내용을 쉽게 읽지 못할 뿐, 그것이 곧 삶의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질곡의 다른 말임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정민_Midnight Sun 14_한지에 혼합재료_50×100cm_2015
이정민_Midnight Sun 16_한지에 혼합재료_75×200cm_2015

사실 삶이란, 누구에겐 지독하기만 한 것이요, 살며 살아가는 짧고도 긴 여정 속에서 인간이 겪는 하나하나의 사건에 관한 편리(片利)와 내적 욕망 등이 얽히고설킨 미완의 거푸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정민 역시 동일한 범주에서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있음 역시 사실이다. ● 허나 특정한 지시도안마냥 존재하는 그의 그림에선 동시대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심리적, 현실적 풍경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단초는 많지 않다. 주제는 명확하나 서술은 세련되지 못하며 장애를 생성하는 것과 넘어서는 것, 현실인식과 극복의 메시지, 수용과 전복의 이미지들이 명징하게 파급시키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은유는 지극히 외피적이고 화면엔 지나치게 단순화된 주제의식만 떠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민의 그림들은 피해갈 수 없는 경쟁과 복잡한 세상에 유기체로 살아가는 나와 우리네 삶의 일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는 점,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인지하고 있는 냥 세상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려 한다는 점에서 가치구분은 유효하다. 특히 자신의 그림이 극복의 무대로써, 에너지를 공유하는 장소로써 위치되길 바라는 듯한 결론은 (다소 신파적이긴 해도)확장의 영역을 구축한다. 참고로 만약 향후 경험의 중첩과 미학적 깊이의 덧댐, 그리고 매체의 다양화가 이뤄진 작품을 필자가 접할 수 있다면 오늘의 비평은 보다 다른 언어로 적시될 것이다. ■ 홍경한

Vol.20150709h | 이정민展 / LEEJUNGMIN / 李庭旼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