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재현의 장치

김시하_이정배_차명희_한진수_홍지윤展   2015_0715 ▶︎ 2015_0720

김시하_Real fantasy_단채널_00:04:00_2014

초대일시 / 2015_071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한옥 GALLERY HANOK 서울 종로구 북촌로 11길 4(가회동 30-10번지) Tel. +82.2.3673.3426 galleryhanok.blog.me www.facebook.com/galleryHANOK

NON-재현의 장치 : 재현의 장치가 아닌 장치를 통한 구현 ● 작가들이 예술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떠한 대상의 재현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아를 장치를 통한 구현을 모색한다. 굳이 확대 해석하자면 작가적 심상이나 심미의식을 대상으로 설정한 후 그것에 대한 재현(representation) 또는 모방(imitation)으로 읽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오늘 재현(대상의)보단 구현(사유의)을 선택한 몇몇의 작가에게 더욱 눈길이 간다. 이들에게 있어 시각 행위란 생각의 소산을 실존과 초실존의 경계 없이 적절한 장치를 선택하여 구현함에 있다.

이정배_꿈에그린_한지에 피그먼트 프린트, 먹_88.5×131cm_2012
차명희_moving emotion_2011

견고하고 치밀한 사유를 구성하기 위해 가장 쉽게 부서질 만한 장치인 거품을 택한다. 거품의 면면을 다시 차곡차곡 유리볼 안에 담아 그들 각각의 개체성과 본체성을 유린시킨다. 정신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을 수반한 일련의 작품이 7미터의 크기로 완성에 다다랐다고 허술한 착각에 빠질 쯤 유감없이 낙하하여 모든 것을 부숴버렸다.(한진수_Queen of scarlet) ● 이보다 더 근원적일 수 없는 점, 선, 면의 구성과정을 움직임을 통해 보여준다. 화면의 정적과 붓질의 요란함이 동시에 전달된다. 각기 다른 구성 요소를 끌어안은 4개의 모니터는 이제 더 이상 근원적이지만은 않다. 점과 선과 면은 미디어의 힘을 빌어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정동(靜動)의 균형을 잃고, 회화의 기본 요소라는 숙명을 벗어던진다.(차명희_moving emotion)

한진수-Queen of scarlet_ 글래스 볼, 에어 컴프레서, 버블 주스, 염료, 플라스틱 튜브_650×250×25cm_2013
한진수_무제_2015

회화로만 머물기 벅찬 감정들. 시를 짓고, 이불을 짓고, 수를 놓아 탄생된 예술을 지어내는 행위들. 평면의 재현으로는 불가능했던 구현을 금홍의 방이라는 설정과 금홍과 이상의 만남과 헤어짐을 이불이라는 장치를 통해 표출해낸다. 현실적이며 뜨겁고, 함축적으로 냉철하다.(홍지윤_봉별(逢別)- 만남과 헤어짐) ● 작품의 제작공간과 이동된 다른 곳에서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창작원천자가 느끼는 낯설음. 현실과 이상의 거리감과 괴리감으로 확대되어진 심상을 직접 행위인 설치를 통해 재현해 내고 그를 다시 필름으로 담는다. 인위적 바람은 필름안의 상징으로 경계의 해체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고, 재현의 재현이라는 혼란을 야기하고픈 작가의 감각이기도하다.(김시하_Real fantasy)

홍지윤_봉별(逢別)-만남과 헤어짐_회화설치영상_00:02:50_2011
홍지윤_봉별(逢別)-만남과 헤어짐_회화설치영상_00:02:50_2011

사전 속 단어로만 현실을 풀어내긴 벅찬 일. 아직도 명제되지 못한 개념과 가치들에 대한 새로운 명명. 짐작, 느낌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내는 일. 이를테면 자본주의의 모양이라던가,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 실재 국립공원이라는 장치를 모델로 삼는다. 적어도 이 대목에선 국립공원은 대상이 아닌 장치의 기능만을 부여받는다.(이정배_Play) ● 아직도 이들의 작품이 사전에 설정된 대상이 존재하는 재현으로 읽히는가 되묻고 싶다. 이들이 차용한 대상과 유사한 구조는 단지 도구나 장치일 수 있다. 이제 시각예술가의 작품을 바라봄에 있어 대상이라는 전제조건을 지워야할 필요가 있다. 대상이 아닌 장치로 볼 때 우리는 더 많은 시각예술가가 사유를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최은영

Vol.20150715f | NON-재현의 장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