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렬적 교통, juxtaposition

정상현展 / JUNGSANGHYUN / 鄭相鉉 / installation   2015_0722 ▶ 2015_0805 / 월요일 휴관

정상현_타일 벽_스티커_360×385cm_201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50204j | 정상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5_0722_수요일_05:00pm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CHOSUN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4(소격동 125번지) Tel. +82.2.723.7133~4 www.gallerychosun.com

지극히 얇고 투명한, 이미지와 현실 사이에서 ● 정상현 작가의 작업에서 이미지는 묘하고 의미 분방한 것들로 작동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러한 이미지의 복잡, 다단한 현존재나 상태를 가시화시키기 위한 갖가지 장치들 혹은 이질적인 연결 접속의 장치, 실험을 통해 현실과 이미지, 실재와 가상의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상황들을 드러내려 했기 때문인 듯싶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현실 이미지의 존재들이란 그렇게 애매모호하고 복잡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그 작동 방식이 다소 예민하고 미묘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어쨌든 일상 곳곳에서, 수많은 매스 미디어가 토해내는 과잉 이미지들로 둘러싸인 이 세상을 현실의 삶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상과 현실, 온/오프 라인을 넘나들며, 그 어느 때보다 유래 없이 변화무쌍하고 가변적인 흐름을 만들고 있는 이미지의 현실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놀라거나 겁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지의 현실적인 존재 양태들을 조금 더 조곤조곤 주시하고 그 의미변화들을 생각하면서 실재적 효과들을 분별하면 될 일들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상현_삼면 이미지_알루미늄, 모터, 거울_114×413×12cm_2015

이번 전시는 이렇게 이미지를 둘러싼 혹은 이미지를 대하는, 작가의 익숙하고 완숙한 사유와 태도를 보여준다. 현실과 가상, 혹은 환영 사이를 유동하는 갖가지 이미지의 존재양식에 대해 섣부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실험적인 접근이 아닌, 오랜 사유 속에서 짐짓 여유 있는 태도로 느긋하고 완숙하게 이에 대한 생각들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작업들, 혹은 접근 방식들을 압축한 느낌이랄까, 작업에서 전해지는 단순하고 추상화 된 이미지들의 현전 방식이 깊이마저 더한다. 추상은 단지 단순화가 아니라 사유의 응축이자 또 다른 생성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이번 전시는 추상의 그것처럼 이미지의 현실적 존재를 다른 방식으로 현존시킨다. 그 고리가 되는 개념이 프레임인데, 기존 프레임 논리와는 사뭇 다른 차원이다. 이미지를 부각하거나 혹은 장식적으로 한정하고 제한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이미지와 이미지를, 이미지와 현실을 무한히 연결 접속시킴으로써, 오히려 현실의 또 다른 물리적 현존으로 자리하는 프레임 개념으로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이러한 프레임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다양한 현실과 상황들을 제시하는 식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이미지들의 자유롭고 이질적인 연결들로, 혹은 자유자재로 흩어지고 접속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사려 깊게 제안된 평면, 입체, 미디어의 기존 형식들을 통해서인데 이를 가시화시키는 응축되고 정제된 전시구성이 돋보인다. 이렇듯 정련된 형식들을 통해 밀도 있게 제시되었기에 오히려 이미지의 무한성의 강도가 더 강화되고 넓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수다한 이미지들의 변화무쌍함이 아니라 이미지 스스로로의 다양하고 묵직한 존재 양태를 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전하는 그런 느낌들 말이다.

정상현_숲_LCD모니터, HD플레이어, 영상 분배기_28×165×28cm_2015

이미지들이 쌓이면, 혹은 이미지들이 서로 병렬적으로 무한히 접해지면, 그렇게 프레임과 프레임이 만나면, 아니 프레임의 그 경계선들이 무한히 엷어지고 결국은 없어지게 되면, 이미지의 공간은 실재 현실의 공간을 이루게 되지 않을까. 이번 전시가 함축적으로 전하는 내용들이다. 다시 말해 개별 이미지를 분리시키고 한정시키면서 경계가 되는, 그런 프레임의 차원이 없어지게 되면 이 경우 말 그대로 현실 아닌가? 프레임이 무한해진다는 것은 이미지와 현실을 가로막고 있는 막이 엷어져 결국은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고 프레임으로 인해 바깥도, 내부도, 그렇다고 어떤 경계도 아닌 상황을 구축하여, 현실에 다름 아닌 그런 차원을 열어놓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시도하는 프레임의 설정도 이처럼 수많은 프레임을 통해 역설적으로 프레임 없음으로 향하게 되는 차원인데 이미지와 현실 사이에 놓인 지극히 얇고 투명한, 그렇게 결국은 그 간극조차 무화시킬 수 있는 그런 프레임 말이다. ●모나리자의 프레임 이미지를 평면으로 출력하여 이를 가능한 무한히 중첩시켜, 그 자체가 프레임이 아니라 또 다른 입체적 현실의 작업으로 변모시킨 「모나리자」를 비롯하여, 화장실 타일 벽 이미지를 스티커로 출력시켜 이를 미니멀 한 벽면 작업으로 펼쳐놓은 「타일 벽」이나 철판과 각목 이미지가 출력된 스티커를 중첩시켜 입체적인 조형 작업으로 변모시킨 「철봉과 각목」, 화강암 이미지를 출력, 제본하여 두꺼운 책처럼 만든 「화강암 책」 모두, 이미지를 한정시키는 프레임의 기능이 무화되면서 현실의 사물로 변모된 작업들로 이미지의 물성, 혹은 그 현실적 무게감을 드러낸다. 프레임의 존재 방식이 이미지를 보안하고 장식하고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을 병렬적으로 무한 연결시키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또 다른 현실성을 획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레임 속에 프레임을 배치하여 심연의 공간을 형성했던 작가의 일종의 미장아빔(mise en abyme)식 접근과도 다른데, 기존 작업들처럼 실재와 가상, 현실과 이미지의 구분을 무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긴 하지만 현실 너머의 텅 빈, 심연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의 병렬적 연결, 혹은 그 무화를 통해 그저 또 다른 (이미지의) 현실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현_철봉과 각목_스티커_6×155cm, 7×168×2cm_2015

프레임 속에 또 다른 프레임을, 혹은 다양한 프레임의 실험으로, 다감각적인 이미지의 현실성을 만들어냄으로써 현실과 더불어 끊임없이 교차하고 이어지는 열린 프레임을 생성케 하는 기존 작업들과 달리, 프레임 자체를 무한 반복시키거나 혹은 무화시킴으로써, 현실성을 드러내는 작업들로 읽혀지는 것이다. 아울러, 환영으로서의 이미지와 실재로서의 사물과의 관계성 역시 다르게 접합된다. 이전 작업들이 이러한 관계를 다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실험이나 유희의 성격이 짙은 것들이라면, 이번 전시는 허구적이고 가상적인 이미지 자체가 이미 또 다른 현실일 수밖에 없는 동시대 이미지의 현존 양식을 다소 묵직한 어조로 가시화시키고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작업들인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거울이 투영해내는 「삼면 이미지」나 여러 대의 LCD 영상 설치작업으로 바깥의 가변적인 풍경들이 모여 전체의 숲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숲」 역시 동시대 이미지의 현실을 드러낸다. 「삼면 이미지」의 경우 일상을 뒤덮고 있는 저 가변적인 한낱 이미지들이 유동하면서 또 다른 현실로 작동하는 상황 제시를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한 것들을 포함하여 이러한 이미지들의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현실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동시대의 프레임 장치, 테크놀로지를 가시화시키고 있고, 모호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겹겹이 중첩, 적층되면서 깊고 거대한 숲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숲」은 유동하는 현실 이미지들의 현존이라는 시각성 자체는 물론 비가시적인 기억과 무의식, 욕망의 차원까지 확장될 수 있는 이미지의 또 다른 맥락을 드러낸다. 두 작업 모두 특정한 프레임 구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앞선 작업들과 다른 방식으로 프레임의 역할이 가변적이고 이미지의 현실적 작동을 드러내는 특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모두 동시대 프레임이 가진 지극히 애매모호한 경계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장치, 테크놀로지, 매체라는 이 시대의 또 다른 프레임들의 어떤 역할들을 보여준다.

정상현_화강암 책_옵셋 인쇄, 제본 풀, 거즈_45×45×36cm_2015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설정한 프레임은 앵프라맹스(inframince)처럼 지극히 얇은 막, 지각이 불가능한 두께로 기능하면서, 이미지와 현실을 연결시키는 그런 것들에 가깝지 않을까? 물리적으로 지각할 수는 없지만 단지 상상으로서만 구분되는, 사이와 간극으로서의 역할들을 수행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프레임으로 연결되는 이미지와 현실은, 개념적으로는 구분이 되지만, 그 실재적 관계가 무화되는, 다시 말해 이미지가 곧 현실일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논리를 작동시킨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저 이미지들과 현실 사이에는 이처럼 지극히 얇고 동시에 투명한 막, 혹은 결국은 없음에 다름 아닌 한없이 무한한 프레임들이 자리하여 서로를 끊임없이 꼬리 물고 이어지게 하면서, 다시 말해 작가의 생각처럼 서로를 병렬적으로 교통시키면서 이미지이자 동시에 현실인 세상의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간극들 사이에 우리 또한 자리하기에 이미지의 현실이 그토록 생경하고 낯설었는지 모르겠다. ● 그동안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미지들의 변화무쌍한 현존, 가상적이고 허구적인 것들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것들로 작동하면서 묘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다양한 시각적 실험들을 펼쳐왔다.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작동시키는 시각장치들을 통해 현실 이미지의 역설적인 상황들, 이른바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시각적 미혹들을 드러냈던 것이다. 허구적인 이미지들이 오히려 현실을 마비시키는 그러한 상황들을 가시화시킴으로써 동시대 사회의 이미지를 둘러싼 시각방식 자체를 다시금 재차 되묻는 작업들을 펼쳐온 것이다. 여기서 작은, 그러나 의미심장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 듯하다. 현실과 무한히 교통되면서 반복되는 이미지들의 현존들 또한 또 다른 현실일 수 있음을 인식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번 전시는 이미지의 허구성으로 현실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어떤 식으로든 상관되는 이미지 무한한 변형, 증식 자체가 또 다른 현실의 삶일 수 있음을 신중하게 드러낸다. 저 지극히 얇고 투명한, 그렇게 프레임(없음)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다시금 주시하면서 말이다. ■ 민병직

Vol.20150722j | 정상현展 / JUNGSANGHYUN / 鄭相鉉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