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가장자리 The Edge of Landscape

노승복展 / ROHSEUNGBOK / 盧承福 / photography   2015_0724 ▶ 2015_0808

노승복_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연동리 산 116-1 최씨의 수박밭_ 피그먼트 프린트_93×140cm_2015년 5월 23일 오후6시 22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811d | 노승복展으로 갑니다.

노승복 홈페이지_http://www.sbroh.org

초대일시 / 2015_0724_금요일_06:00pm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전시기간 중 휴관일 없습니다

스페이스 오뉴월 Space O'NewWall 서울 성북구 선잠로 12-6(성북동 52번지) Tel. 070.4401.6741 www.onewwall.com

기억 밖의 풍경 "모든 기억은 개인적이며 재현될 수도 없다. 기억이란 것은 그 기억을 갖고 있는 개개의 사람이 죽으면 함께 죽는다."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131쪽) / "오늘날 진정으로 살아 있는 자는 누구인가?" (슬라보예 지젝,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27쪽) 1. 사진과 기억 ●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사진은 인류가 기념/기억해야할 사건을 기록하는 행위로 전제한다. 글머리 위 인용문은 사진이 어떻게 개인의 기억을 집단의 기억으로 바꾸었으며, 더 나아가 국가가 사진 이미지를 이용해 역사적 기념비를 만드는 지를 말하기 위해 강조한 문장이다. 손택은 오늘날 죽음에 관련된 (사진)이미지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현상에서 탈락한 윤리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서 뭔가를 기억한다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사진만을 기억한다는 데에 있다. 이렇듯 사진만을 통해서 기억하게 되면 다른 형태의 이해와 기억이 퇴색된다"(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도서출판 이후, 2004, 135쪽)고 말한다.

노승복_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현리 698번지 펀치볼 박씨의 감자밭_ 피그먼트 프린트_93×140cm_2015년 6월 7일 오후 4시 15분

2. 보이지 않는 죽음 ●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우리의 삶은 '죽음'과 함께하고 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애도보다 죽음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추궁과 죽은 이의 숫자에만 집착한 것만 같다. 다시 말해 현재까지 우리가 겪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아픔은 죽음 그 자체도, 죽은 이에 대한 기억도 아닌 '통계에 의한 죽음'에 가깝고, 더불어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죽음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게 사실이다. 손택이 기억을 상기시키는 사진이란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기아, 재난, 전쟁과 같은 폭력적 이미지를 활용하는지에 관한 사유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한국이 겪고 있는 죽음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우리는 반대로 보이지 않는, 보여줄 수 없는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노승복_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산 24-1 박씨외 세명의 보리밭_ 피그먼트 프린트_93×140cm_2015년 5월 24일 오전 10시 49분

3. 풍경의 발견-애도의 과정 ● 노승복은 상징이 되지 못 한, 그리고 기억이 되지 못 한 죽음을 바라본다, 그가 처음부터 이러한 작업을 전개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초기부터 현재까지 자신이 겪는 개인의 문제를 작업의 주제로 삼아왔다. 사적 경험을 거대 담론으로 치환하지도 않았다. 대신 자신이 겪는 문제를 마주보려는 의지가 곧 작업의 계기로 삼았다. 이번 전시 「풍경의 가장자리」는 누구나 마주칠 수밖에 없는 '늙어간다는 것'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부모님의 병간호를 하면서 확인하게 되는 늙어버린 모습에서 작가는 자신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된다. 같은 시기에 갑작스레 영원한 이별을 고한 지인의 죽음을 마주한 노승복은 어쩔 수 없이 묘지를 향했다. 인정하기 어려운 이별 앞에서 그는 공동묘지의 수많은 죽음을 인지한다. 그리고 묘지 앞에 놓인 조화(弔花/造花/調和)를 발견한다. 영원히 잠든 주검의 장소에서 애도의 마음을 담은 가짜 꽃은 죽음만큼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대리석 무덤 표면에 맺힌 조화의 상을 사진에 담는다.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 지는 삶의 완성인 죽음의 현실과 영원히 시들지 않는 조화 사이의 대립은 일종의 관습적 의례만은 아닐 것이다. 조화는 어떤 형태로든 죽음과 삶,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이어주는 최소한의 성스러운 상징이니 말이다. 이렇게 노승복은 죽음을 쫓아간다.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고, 더불어 타인의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인의 죽음을 쫓다보니 자연스레 타인의 죽음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공동묘지만을 방문하다가 우연찮게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묘지를 발견한다. 조문을 의미하는 영어 condolence는 함께 고통을 나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잊힌 죽음, 버려진 무덤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풍경 속에 숨어있다. 노승복이 발견한 이 죽음의 흔적은 무조건적인 애도를 위한 작업은 아니다.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타인의 죽음을 대면하려는 작가의 고민이 현실 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을 선사한 셈이다.

노승복_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덕산리 469-4번지 김씨의 밭과 반남고분_ 피그먼트 프린트_93×140cm_2015년 6월 22일 오전 10시 24분

4. 한국 장례문화 ● 고려시대부터 인삼밭에 매장을 하는 경우는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혈연 중심의 가족묘지인 선산 문화가 발달한 것은 조선시대부터라고 한다. 선산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풍수가 좋은 묘지가 곧 복을 불러온다는 믿음 덕분으로 생과 사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우주관의 영향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당시 권세가들은 선산을 통해 토지를 소유하는 방법으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성내에 매장을 금하는 법이 만들어졌으나, 풍수가 뛰어난 장소를 선호하는 정서 때문에 규제를 어기는 일도 잦았다. 선산이 없는 서민들을 위해 성 밖에 임야를 제공해 매장을 허락하는데, 이를 집장지(集葬地)라 불렀다. 이곳에서는 선산과 달리 혈연을 따지지 않고 매장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노장(路葬)이란 장묘 형태도 있었다. 이는 미혼자가 죽었을 경우 길가에 매장하는 풍습을 뜻한다. 덕망 높은 승려, 나쁜 일로 죽은 경우 부모와의 연을 끊기 위해, 역병에 걸렸을 때, 그리고 전쟁에서 사망한 경우에는 화장을 치르기도 했다. 이러한 장묘는 '특수장'으로 분류되었다.(다카무라 료헤이, 「공동묘지를 통해서 본 식민지 서울: 1910년대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15, 2000. 9.) 한국에 공동묘지가 설립된 것은 일제 식민 정책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식민 정부는 선산 중심의 묘지 문화가 토지 정리 및 개발에 어려움을 준다는 이유로 공동묘지를 만들고 화장을 권장한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한국인에게 죽음은 현실에서 배척되기보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강압적인 근대화 정책에 의해 일상 속에 공존하던 죽음이 배척되면서 한국인에게 죽음은 서서히 현실 바깥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죽음에 대한 관습은 식민 정부의 통제에 의해 수량적인 것으로 번역되어 제도의 틀 안으로 흡수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예(禮)' 개념은 점차 희박해졌고 그 빈자리는 점차 위생이나 경제논리가 대체하게 되었다."(정일영, 「일제시기 장묘제도 변화의 의미-「묘지규칙」과 공동묘지를 중심으로」, 역사학연구 525, 2013. 12.)

노승복_남한강 공원묘원 도라지 밭_피그먼트 프린트_67×100cm_2014년 7월 20일 오후 2시 24분

5. 코호트 정원 (Cohort Garden) -격리된 풍경의 안과 밖 ● 논밭 사이에 대지예술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펼쳐진다. 인삼밭 위에 검은 차양이 원형으로 드리워진 안쪽에는 분묘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누구의 묘일까? 또 다른 사진에는 대형 공동묘지가 등장한다. 산을 개간하고 그늘 하나 없이 일률적으로 정리된 공동묘지는 심지어 살벌하게 보일 정도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인류가 공동생활을 하면서부터 삶 속에 우주관을 구축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우주의 중심에는 사원이 있었다. 생과 사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 사원은 인간의 탄생, 결혼, 죽음의 통과의례를 관할하면서 공동체와 교감하는 중심이었다. 그러나 근대의 시작은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진다. 신성한 삶의 바탕은 쇼핑몰과 고급주거단지로 대체되었고 신성은 도시의 주변부로 추방당한다. 상징과 의미로 세워진 존재론적 집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소유라는 자본 개념이 자리를 잡는다. 노승복의 풍경 사진 속에 숨어있는 무덤들은 단지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죽음만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인류학적인 접근도 아니었다. 그는 마주하기 어려운 죽음이라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묘지를 방문하면서 죽음이 산 자의 기억과 장소 바깥으로 추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 메르스 창궐 이후 자주 언급되는 용어가 코호트 격리다. 알다시피 이 용어는 동일집단군을 가리키는 군대용어로 동일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을 격리 치료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풍경의 개념에도 코호트가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에덴동산은 네 개의 벽 안에 만들어진 인공 자연, 즉 정원으로 그려진다. 우리는 자주 자연과 풍경을 혼용하곤 한다. 예를 들어 자연의 등가물로써 풍경을 사용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풍경이 자연의 상사물(semblant)이기는 하지만 풍경이 우리가 말하는 자연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풍경이란, 우리의 삶의 구조와 형태에 어울리게 재단된 자연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인간이 원하는 자연의 모습, 다시 말해 이상향을 재현한다. 풍경이 된 자연은 아름답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 도시에 재현된 풍경/공원은 제도에 의해 갇힌 자연이다. 노승복이 포착한 버려진 무덤들은 풍경의 바깥에 놓여있기에 이질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마저 제도의 영역 안에서 분류되고 기록되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문명의 한계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삶과 죽음이 과연 과학문명의 힘으로 통제될 수 있는 것인가? 어쩌면 풍경의 가장자리에 숨어 있는 저 초라한 무덤이 우리의 미래 혹은 구원일 지도 모를 일이다.

노승복_남한강 공원묘원 도라지 밭_피그먼트 프린트_67×100cm_2015년 4월 12일 오후 12시 25분

6. 노화(老化), 조화(弔花, 造花, 調和), 진화(進化) ● 노화, 조화, 진화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노화가 탄생과 죽음이라는 일원적인 시간의 한계를 지시하고, 조화는 삶과 죽음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마지막으로 진화란 노화에 의한 죽음을 생명의 퇴화가 아닌 진화의 과정으로 본다는 의미를 갖는다. 더불어 조화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의를 표하는 꽃이자 가짜 꽃을 의미하고 더불어 어우러진다는 의미의 조화로도 해석 가능하다. 이처럼 복수적인 의미로 생과 사를 관조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현실의 문제를 고민 없이 수용하느냐, 아니면 그것을 몸으로 체험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노승복은 후자를 택한다. 지금까지 그의 작업은 당면한 현실적 문제를 몸으로 체현하면서 극복해 왔다. 초기작인 "그것이-존재-했음(1996)"은 이미 타계한 가족 구성원의 영정 사진과 주변 사람들의 초상 사진을 통해 자아의 형성을 타인과의 관계로 탐색한 작업이다. 「풍경의 가장자리」는 이 작업의 20년 후 작가의 현재를 보여준다. 이번에도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세상을 관조하는 시선의 위치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육성(2001)"에서는 '반 지하'라는 낯선 공간을 극복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자신의 홍채를 촬영한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지각하려는 동물적인 반응의 과정과 촬영 중 녹음된 과장된 소리는 생존을 위한 몸의 소리를 들려준다. 소심증이 있는 아티스트의 사회생활 적응 연습(2004)은 제목 그대로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을 위한 미생의 꿈틀거림을 기록한 영상 작업이다.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작가는 이제 관념이 아닌 현실적 차원에서 타인, 늙어감, 죽음을 바라본다. 전시를 앞두고 과연 그가 무엇을 깨닫고 발견했는지는 작가 자신도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를 비롯해 살아 있는 자가 죽음에 대해 감히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장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 중 일부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 "인간이 사회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할지라도, 한 인간의 삶은 오로지 그 개인의 것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 세상을 떠올려볼 수는 있어도, 자신의 없음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는 없다. 이게 바로 인간 실존의 근본 상황이다. 인간에게 자신의 실존은 결정적 순간에 세계의 의미 그 자체다. 그리고 이 의미는 참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모순이다."(장 아메리, 『늙어감에 대하여-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돌베게, 2014, 181쪽) ■ 정현

The Landscape Beyond Memory All memory is individual, unreproducible – it dies with each person. (Susan Sontag,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Who is really alive today? (Slavoj Zizek,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 ● 1. Photography and Memory In her book,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Susan Sontag regards photography as an activity to record the incidents that humanity should commemorate and remember. The quotation above is a testament to how photography transformed individual memory into a collective one and how states created historical monuments using photo images. Sontag raises an ethical issue that is now missing in the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of photo images of death. She says, "The problem is not that people remember through photographs, but that they remember only the photographs. This remembering through photographs eclipses other forms of understanding, and remembering." 2. Invisible Deaths ● Our lives have been accompanied by "deaths" from last year until this year. To be more precise, it seems that instead of mourning death itself, we have been obsessed only with inquiring about the causes of death and accounting for the number of deaths. In other words, the death that we still fear and feel pain from is more like the "statistics of death," than death itself and the memory of the deceased. In fact, we were more acutely aware of the "possibility of our deaths" than death itself. What Sontag invited us to think about was the ideology of memory-invoking photography that uses images of violence, such as famine, calamity and war. In this context, what image of death is Korean society is faced with? Contrary to what Sontag said, we can say that we are now experiencing invisible death and the death that cannot be represented. 3. Discovery of Landscape - Procedure of Mourning ● The artist ROH Seung Bok stares at death that has failed to become a symbol and failed to enter into memories. She did not do her work from this point of view from the beginning. Her whole collection of works, however, from her early ones to recent ones, used her personal affairs as its theme. She did not replace her personal experience with a grandiose discourse, either. Instead, her willingness to see her own affairs face-to-face became the motive of her artwork. The inevitable, universal process of "aging" motivated the upcoming exhibition, "The edge of Landscape." In this exhibition, Roh looks back on her life, after observing the aging of her parents while she nursed them, and after hearing about an untimely death of an acquaintance at about the same time. She had to visit the graveyard. Faced with the death that she could hardly believe, she came to recognize the numerous deaths at the graveyard. She finds johwa (condolence flowers, 弔花 (johwa) / artificial flowers, 造花 (johwa) / harmony, 調和 (johwa), lain at the graves. The artificial flowers meant to mourn the deceased in eternal rest brought strange feelings to her, as death also did, and she took photos of the flower carvings on the marble tombstone. Given the fact the condolence flower is a sacred symbol linking life, death, and the memory of the deceased, putting an artificial flower at a place of death may be more than a mere ritualistic gesture. Thus, Roh traces death. It was an almost instinctive behavior, and a process to accept the deaths of others at the same time. While she was tracing the death of her acquaintance, she naturally came across the deaths of others. While visiting the cemetery, she happened to spot a seemingly abandoned grave. The word "condolence" in English also has the meaning of sharing pain. Forgotten death and the abandoned grave are hidden in the landscape as parts of nature. The artist's endeavor to trace death is not just for condolences. Her painstaking efforts to confront the unacceptable deaths of others paved the way for her journey to trace deaths in reality. 4. Korean Funeral Culture ● It is said that there were many cases of burials in ginseng farms during the Goryeo period. However, it was from th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that the culture of seonsan (先山, "ancestral mountain"), or family graveyard, became popular. The popularity of family burial grounds was due to the belief in geomancy that a good gravesite brings blessings, reflecting a cosmological view that does not separate life from death. However, there was also a practical reason behind the switch. The wealthy and powerful at that time are said to have utilized family burial grounds as a means to occupy more land. There was a law at that time which banned burials inside fortresses, but there were many violations of the law because of the preference for graveyards with good geomantic conditions. Those who had no family graveyards were allowed to bury their ancestors in the plots outside of fortresses, called jipjangji (collective graveyard, 集葬地). They could share the collective graveyard with other families. There was also the practice of "road funerals" in which those who died unmarried were buried at roadsides. Respected priests, those who died unfortunate deaths and died of epidemics, and the war dead were cremated. These cases were classified as special funerals. It was under Japanese colonial policy that public cemeteries were established in Korea.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set up cemeteries and promoted cremation in its judgment that the family graveyards stood in the way of land reallocation and development. As seen above, death was not separated from the life of Koreans, but a solid part of it. However, death was gradually removed from the realities of Koreans, as the compulsory modernization policy expelled death from their daily lives. The deep-rooted funeral custom was reinterpreted under the rule of the colonial government and absorbed into a framework of institutionalization. "Over the course of the changes, the funeral gradually lost its conventional concept as a ritual (禮), and was, in turn, dominated by hygienic and economic concerns." 5. Cohort Garden – Within and Without the Secluded Landscape ● A scene similar to the land art is made on a rice paddy. In a patch of ginseng field, a solitary tomb lies under the round shape of black awning. Whose tomb is it? Another photo shows a large cemetery. The meticulously well-arranged cemetery set up in the reclaimed side of a mountain, without any shade, creates a rather stark scene. Something that has been forgotten is that humanity tried to establish a cosmology for life from the start of its communal life. This cosmology holds that there was a shrine at the center of the universe. The shrine at the crossing of life and death was responsible for the ritual passage through birth, marriage, and death, while communicating with the human community. The beginning of the modern age, however, led to dissolution of that community. The foundation of sacred life was replaced by shopping malls and luxury residences, with the sacred expelled to the periphery of cities. The ontological meaning of houses embedded with symbols and signifiers evaporates, and the capitalistic idea of possession takes its place. The tombs hidden in the landscape photography of Roh do not represent deaths abandoned by their families. She never intended her work to take on an anthropological approach, either. While repeatedly visiting graveyards to overcome the unacceptable reality of death, the artist discovers that death was crowded out of the memories and the places of the living. ● Cohort segregation is a term now widely circulating since the outbreak of the 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epidemic. In the military, the term used to refer to the practice of segregating and treating those who develop the same symptoms. Coincidentally, there is a case of using the word cohort to refer to landscape. In Christian culture, the Garden of Eden is described as an artificial garden enclosed by four walls. We often call nature a landscape, and vice versa. For example, landscape is referred to as the equivalent to nature. Landscape is a semblant (semblance) of nature, but does not refer to nature itself. Landscape might be called a shape of nature, adapted to the structure of human life. It represents what humans want from nature; that is, an ideal of nature. Nature as a landscape appears to be free and beautiful, but the landscape/park reproduced in actual cities is nature confined by an institution. The abandoned tombs Roh captures cannot help but seem extraneous to its environment, as it lies outside the landscape. It testifies, however, to the stark limitations of civilization that even death can be recognized only when being classified and recorded by an institution. Are life and death things that can be placed under the control of scientific civilization? Instead, the humble tomb hidden in the periphery of landscape might be our future or salvation. 6. Nohwa (aging), Johwa (condolence flowers, artificial flowers, harmony) and Jinwha (evolution) ● Aging, condolence flowers, and evolution contain duplicate meanings. Aging refers to the limit of humans in the linear passage of time from birth to death, condolence flowers to the linkage of life and death, and evolution to the life process in which death from aging does not denote a degeneration of life but a process of development. At the same time, condolence flowers (johwa in Korean) can mean artificial flowers (johwa) and can also be interpreted as harmony (johwa). Accordingly, it might be natural to contemplate the double meaning of life and death. It is up to one's own choice whether to accept the reality without hard thinking or experiencing it in person. Roh chose the latter. Her work has shown, thus far, that she has experienced the problems of life in person and overcome them. Her early work, "It-Existed (1996)," is a product of her exploration of self-identity in relation to others through portraits of her deceased family members and those around them. "Periphery of Landscape" shows what the artist does now, 20 years after her earlier works. Though it does not reveal the artist herself, it exhibits how her contemplative point of view on the world has changed. In "Voice (2001)," the artist takes pictures of her own iris in the dark, in order to overcome her uneasiness with the semi-basement space. It shows the animal instinct to search for faint lights in the dark, and the exaggerated voices recorded during the filming represent the sound of the body making efforts to survive. As the title indicates, "Practices of A Timid Artist to Adapt to Society (2004)" is a film about an underpaid youth who struggles to survive in society. The artist, now middle-aged, takes a look at others, aging, and death from a realistic point of view, instead of abstract one. Before the exhibition, even the artist would not know what she had realized and found out about death. I would like to end this review by quoting a passage in On Aging: Revolt and Resignation, by Jean Amery: "Except that, for a human being, his or her life is never a public matter no matter how much it is socially determined. That we are here and can no doubt think thoroughly of a world without our being here, not however our own not-being-here, is the fundamental matter of our existence. In certain moments it comes to be for us the meaning of the world plain and simple, even if it is an unbearable absurdity." ■ Jung Hyun

Vol.20150724c | 노승복展 / ROHSEUNGBOK / 盧承福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