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의 시간들 Unattached Moments

김채린展 / KIMCHAELIN / 金彩隣 / sculpture.installation   2015_0814 ▶︎ 2015_0828

김채린_table mat for two persons_종이_25×56cm_2015

초대일시 / 2015_0814_금요일_07:00pm

전시영상 / movidick.com/Unattached-Moments

관람시간 / 11:00am~11:00pm

프로젝트 스페이스 공공연희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25길 98 카페 보스토크 1층 Tel. +82.(0)2.337.5805 www.facebook.com/cafevostok

전시장 입구에 전시 제목보다 먼저 'Just Because…'가 쓰여있다. 이 단어를 한국어로 옮기면 '그냥…뭐 글쎄….' 이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작가의 어린 시절 방문교사가 영어로 가르쳐준 표현 중 유일하게 기억나는 단어라 한다. 남에게 자신의 감정을 모호하게 표현할 때, 동시에 너무나 표현할 것이 많아 머뭇거릴 때 쓰기 유용한 표현으로 작가가 가장 많이 사용한 영어단어이기도 하다.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 'just because'는 작가의 필기체 그대로 네온으로 제작되어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관객에게 모호함, 혹은 호기심을 자극하며 전시의 시작을 알린다.

김채린_no title_네온 사인_15×105cm_2015
김채린_그..이후의 시간_컵받침, 나무_140×15×15cm_2015

몇 달 전, 작가는 위빙기를(weaving) 구매하여 코스터(coaster, 컵받침)를 짜기 시작하면서 그 무렵 헤어진 전 남자친구를 잊을 수 있게 되었다. 뜨개질처럼 보이지만 씨실 날실을 엮으며 피륙을 짜는 반복적 직조 작업을 위빙이라 부른다. 그녀는 일부러 가장 얇은 실을 구매하여 3~4개월간 수십 장의 코스터를 짜며 관계에서 떨어져 홀로 남은 현재의 일상을 준비했다고 한다. 켜켜이 쌓인 코스터의 높이는 애인을 잊고 분리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한 보이지 않는 시간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든 작품이다.

김채린_아침을 여는 방식_커튼, LED 랜프, 네오디뮴 자석_가변설치_2015

전시장 오른편 대형 유리창에는 흰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밖이 훤히 보이는 망사 같은 얇은 커튼은 쉽게 여닫을 수 있어 각자의 방식으로 창 밖의 불빛을 볼 수 있다. 유리창 넘어 주차장 벽에는 6개의 형광등이 육각형 형태로 설치되어 빛을 낸다. 작가에게 육각형은 어떤 의미일까? 육각형은 완전성을 내포한다. 안정적이고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튼튼하게 받쳐주는 도형이다. 벌집도 육각형이 아닌가. 수많은 육각형이 무한 확장되며 옆으로 붙을 수도 있는 그 육각형은 그녀가 여는 커튼 뒤에 딱 한 개만 있다.

김채린_서로에게 기대서서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5

전시장 중앙으로 들어오면 평범한 가정집의 내장재들 – 타일, 벽지, 카펫, 마루, 모노륨 등 – 을 한 조각씩을 떼어내 전시장에 기대놓았다.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않고 마치 가설물처럼, 입간판처럼 위태롭게 서로 기대고 있는 접변들은 경첩으로 연결돼있다. 우리가 집을 관념적으로 그릴 때 흔히 삼각형 지붕 모양을 그리는데, 「서로에게 기대서서」는 집의 상징적 모양이며 동시에 곧 부서질 것 같은 집이기도 하다. 작가는 재료를 선택할 때, 마치 결혼을 앞둔 커플이 신혼살림 집 실내장식을 결정하기 위해 내장재 샘플을 하나씩 하나씩 선택하는 기분으로 했다고 한다. 가장 즐겁고 설레는 순간의 결과들이 전시장 바닥에 너무나 헐겁게 놓여있다.

김채린_Monument of 2011-2013_비누, 일랑일랑, 아크릴_95×30×20cm_2015

전시장 끝에서 나는 하얀 연기를 따라가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른다. 스모그 기계가 뿜어내는 연기가 조금 사라지자 은은한 비누향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비누향의 정체를 살펴본 순간, 그 울퉁불퉁한 물체는 어느 사람의 일부분 – 남자의 등과 허벅지 – 이 비누로 조형되었음을 알게 된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작가는 우리에게 수수께끼 같은 조각 단서들만 던져놓았었다. '그냥…'으로 시작하여 기대놓은 내장재 조각들, 알 수 없이 쌓인 위빙 조각들, 커튼 사이로 보이는 육각형 불빛… 이 조각 단서들을 지나간 뒤, 한 번 더 궁금하게 연기가 시야를 막고, 드디어 연기가 사라지고 나타난 결말! 은은한 비누향기가 나는 남성신체의 일부였다.

김채린_form: self-스스로의_플라스터, 실리콘, 오크_70×28×30cm_2012~14

작가는 전시를 준비하는 처음에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했다. '사랑' 너무 시시한 주제 아닌가? 종교에도 가족에도 모두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예술에서까지 또 사랑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남아있나? 하지만 기우와 달리 작가는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조각 단서들로 우리를 한층 궁금하게 달구어 놓고 마지막에 작가의 극히 개인적인 경험 일부를 냄새로 우리에게 '야하게' 드러냈다. 여성적이고 수공예적인 과정을 통해 제작된 작품들을 지나 결론에 나타난 「Monument」 시리즈는 참 얌전하고 어여쁜 작가의 외모와 대비되어 놀라웠다. 그녀는 이제 한국에서의 결혼정년기 여성이 됐다. 작가로의 삶과 결혼한 여자의 삶이라는 두 가지 비슷하지 않은 선택 속에서 그녀는 많은 고민을 했나 보다. 그녀의 선택이 어느 방향으로 결정될지 예측은 되지만 관객이 더욱 궁금증을 느끼게 답하지 않겠다. 흩어져 있는 조각 단서들 속에서 스물스물 진실이 스스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 전시를 다 보고, 3층에 다락에 놓인 마지막 작품도 챙겨보길 바란다. 허락된 사람들만 올라갈 수 있는 공간에 2012년부터 14년까지 3년간 지속해서 형태를 변형시키며 진행한 작품이 놓여있다. 일부러 관객이 만질 수 있게 제작된 작품으로 직접 만져보면 당신이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임성연

Vol.20150814f | 김채린展 / KIMCHAELIN / 金彩隣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