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course

박세희_배지오_심성은_이선희_최주연展   2015_0817 ▶︎ 2015_0821 / 주말 휴관

박세희_유목적풍경 nomadic landscape-dwelling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1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 휴관

UNC 갤러리 UNC gallery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86길 6 지산빌딩 B1 Tel. +82.2.733.2798 www.uncgallery.com

우리는 삶에서 무수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박세희, 배지오, 심성은, 이선희, 최주연 다섯 작가는 나와 타인, 나와 사회, 인간과 공간, 나와 기억 등 관계에 대한 다양한 언어로 접근 하고 있다. 상호간이라는 접두사 'inter' 와 긍정의 의미인 'course' 를 접합한 inter-course는 관계라는 것을 다섯 작가가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

박세희_유목적풍경 nomadic landscape-dwelling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20×80cm_2015

"우리는 우리와 마주한 사물의 세계로, 혹은 우리를 둘러싼 사물로서의 세계로 건축을 이해한다. 몸의 질서, 율동적인 움직임, 형태 특히 몸이 표현하는 다양한 동작들은 건축체험의 역동적인 배경을 이룬다. 건축물을 인식하고 사용 하는것, 즐기는 것, 건축물의 불편함을 참는 것, 측정하고 묘사하는 것, 만들고 변화 시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행위의 특성을 지닌 과정이다." (볼프강 마이젠하이머, 공간의 안무) ● 도시의 변화, 날것의 형태로 페허처럼 버려진 공간은 우리의 삶이 유동적이고 순환적인 구조임을 암시한다. 이동과 정착의 반복적인 삶의 패러다임 안에서 하나의 장소 즉 '곳'이 각 개인의 경험과 사유로 각자의 '공간'으로 인식의 과정을 거친다. 볼프강 마이젠하이머의 공간의 안무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터전에 침투하여 관계하고 경험을 통해 낯선 장소Place가 나를 에워싸는 공간space이 되는 과정은 하나의 공간에서 내주Dwell 하게되는 과정이 된다. ● 곳이 공간이 되는 관계는 다양한 공간의 안무를 통해, 예를들어 계단을 오르내르는 것과 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과 같은 매개의 물질을 통해 사유한다. 그 중, 창은 안과 밖을 연결한다. 이 창을 통해 밖의 이미지는 안을 지배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 우리는 내부에 있으면서 외부의 이미지에 잠식당한다. 이때 창의 역할은 시네마적인 역할로 그 공간에 대한 안과 밖의 통로이자 연결의 구조 속에 있다. '유목적 풍경Nomadic Landscape Vol2(거주를 위한 풍경)' 에서 각 방의 창에 설치된 또 다른 '어떤풍경'은 빈 공간과 만나 공명을 이룬다. 창이 공간보다 상대적으로 클 때에는 내부를 위한 시네마적 역할을 한다. 이 공간의 대안적 풍경이 광원의 움직임에따라 발광 할 때 방은 카메라옵스큐라 로서 창을통해 들어오는 빛을 머금는다. 이때 , 페허였던 곳은 공간이 공간되는 순간을 맞는다. 인류는 끝없이 떠남과 머뭄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잠시 머무는 어떤 '곳' 또한 누군가의 공간이 되었다가 다시 페허같은 날것의 곳 이 되기도 한다. 이 구조가 함께 맞물리는 공간이 우리가 살아가는 유목적 풍경이다. ■ 박세희

배지오_Precarious_종이에 펜_29.7×21cm_2015
배지오_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_인형, 천, 스테인리스강_48×82×7cm×2_2015

또 다른 상처로 오늘을 뒤덮고 희미한 내일을 맞이한다. 현실과 타협하려던 이성적 판단은 무너졌고 끝없는 불안 속에서 내게 조금 더 간절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던 긴 터널 속의 어두움이 내 안의 불꽃을 흐릿하게 했고 그 길고 지겨운 싸움에 지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그 시절, 그 힘겹던 존재의 갈등 속에서 반복적이고도 습관적으로 자신의 단점과 잘못에 대해 어린 날에 사랑 받지 못한 탓이라고 말하는 나를 발견한다. 지탱하기 어려울 만큼 큰 고독으로 가득 찼던 어린 날로 돌아가 만약 내가 그 작고 여렸던 나를 대면 한다면 꼭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로 행동은 본능에 의해 결정되며, 갈등의 존재로 세 가지의 자아가 갈등을 빚으며, 6세 이전에 기본적 성격구조가 결정된다는. 프로이드적 관점으로 6세 이전에 억압됐던 내 리비도가 무엇일까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이번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편으로는 이것 또한 스스로로 인해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라 생각했었기에 예술이란 형태를 통해 스스로가 변화되며 합리적인 신념을 갖길 바랐었던 점도 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수줍고도 슬펐던 나를 끄집어내어 흔들리는 그 입사귀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었는지를, '무서리 내리는 달밤의 고통을 이겨 낸 원초적인 것'을 미리 살피고 싶었던 것이다. 현재의 이 허망한 존재에 대한 물음, 그 물음 이전에 열거 되어야 할 더 많은 것들을 꺼내 놓으며 나는 더 이상 환영할 수 없는 이상 앞에 눕는다. ■ 배지오

심성은_Shining as Stars_혼합재료_94×51cm_2014

사람은 자신의 틀 안에 맞춰서 살아간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 틀은 타인의 잣대에 맞춰진다. 위의 작업은 무작위의 꽃을 알파벳으로 암호화하여 텍스트를 정상적으로 읽을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꽃은 본인에게 친숙한 오브제로 집착과 동시에 끊임없이 꽃을 다루는 무의식적인 태도와 연결된다. 본인은 내부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 하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 선택을 유보한다. 이처럼 타율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모습에서 자유와 책임의 부재를 직시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의 가치관과 기준에 대해 심사(深思)하게 한다. ■ 심성은

이선희_기억, 시간, 밀도_실, 사진, 메모, 드로잉, 목재구조물_가변설치_2014
이선희_기억, 시간, 밀도_실, 사진, 메모, 드로잉, 목재구조물_가변설치_2014_부분

과거의 이미지-기억은 주체적인 경험에 의해 우리의 감성에 자리한다. 비록 각기 다른 부정확하고 모호한 기억일지라도 지나간 시간과 공간 속에 '우리'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기억, 시간, 밀도」는 수행적 의미의 '뜨개질'과 '텍스트'를 작업을 매체로 삼아, '사람의 기억도 직조해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했다. 개인적 기억이 담긴 스냅사진과 동시대 기억을 구축하고 있는 신문 이미지들을 태피스트리 방식으로 기억을 규칙 안에서 엮어내는 한편, 기억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보다 구체화된 형식과 내용으로 주제를 드러낸다. 또한 개인이 기억이 사회 문화적 상황과 매개되어 사회 안에서 공통된 우리의 기억을 만들어 나간다고 믿는다. 그 결과 기존에 선택했던 뜨개질의 엮기가 구조물 형태로 표현되는데 영향을 끼치며 시냅스로 이루어진 커넥텀의 집, 기억의 집을 지어내고 있다. ■ 이선희

최주연_제목없음_합성수지_121×111×80cm_2015
최주연_제목없음_합성수지_121×111×80cm_2015

본인은 특정부위, 특히 얼굴을 확대시킨 인체작업을 한다. 인체의 모습을 비정상적으로 변형시킨 본인의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무엇인가 메시지를 얻게 된다. 과장되게 부각된 얼굴로써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아의 주체성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고 팽창된 페르소나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일률적인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조롱하는 듯이 비웃는 듯한 얼굴은 사실 가짜 웃음이 아니라 진정한 웃음을 되찾고 싶다는 본인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몰라요.'의 바보 같은 웃음이 아니라 웃어 줄 수밖에 없는 본인의 작품 앞에서 역설적으로 관객들은 사회와 자신에 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 최주연

Vol.20150817g | Inter-cours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