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그림 Running Painting

강원제展 / KANGWONJE / 姜元濟 / painting   2015_0818 ▶︎ 2015_0824

강원제_Running painting series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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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제 홈페이지_www.kangwonje.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사이아트 스페이스 CYART SPACE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안국동 63-1번지) Tel. +82.2.3141.8842 cyartspace.org

시선과 사유의 흐름 그리고 시각 주체의 위치에 대하여 ● 강원제 작가는 시각과 이것을 인식하는 주체의 문제를 고민해 왔다. 그의 초기 작업들은 결합된 사물들 혹은 생성된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을 대상으로 하여 시각 주체가 그 이미지들과 마주치는 상황을 통하여 이를 점검하였고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 주체의 시선의 흐름과 이에 따른 장면의 변환과정을 통하여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는 작업 혹은 전시마다 일정한 컨셉에 의한 조건을 설정하고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한다. 만나게 되는 대상과 자신의 시각 프레임이 마주치면서 발생하게 되는 우연성과 필연성의 간극 사이에서 작업을 유지해가면서 자신의 의식적 시선과 무의식적 감각을 여기에 이끌어내고 이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확인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 작가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사물을 본다는 것은 선택적이고 의지적인 활동이자 동시에 무의식적인 감각이 개입되는 복합적인 행위라고 보기에 그 시각적 기록물인 작업은 자신을 들여다 보는 매개물이 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강원제_Painting 1_캔버스에 유채_38×38cm_2015
강원제_Painting 2_캔버스에 유채_38×38cm_2015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보게 되면 흐르는 그림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여러 개의 캔바스가 옆으로 이어져 있고 각각의 캔바스마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그 캔바스들이 연결된 부분에서 각각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주는 작업을 해 놓은 점이다. 작가는 이를 통하여 의식의 흐름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연결부분은 시선이 머무를 때마다 그리고 생각이 어느 곳에 머무를 때마다 자신의 의식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에 대한 순서뿐만 아니라 시선과 의식의 전환과정의 사이 공간에서 연장되는 무의식적인 흐름을 그려낸 것일 수 있다. ● 작가는 이에 대해 여러 가지의 장면에 나타난 시선들과 생각들에 대해 동일한 주체라기 보다는 또 다른 나의 시선들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이질적인 장면들과 상이한 표현방식들이 뒤섞여 있는 화면들은 그렇게 다른 시선들이자 다른 환경이 담겨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다름은 다중 주체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타자적 환경들과 교감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내적 변화들일 가능성이 더 많다.

강원제_Painting 3_캔버스에 유채_38×38cm_2015
강원제_Painting 4_캔버스에 유채_38×38cm_2015

한 작업이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는 경계 부분에서는 이미 이전 작업의 이미지가 다음작업과 영향을 주고 받기 시작하고 다음작업에서도 이전 작업의 이미지가 일부 연장되고 있는 것이나 터치방식과 컴퍼지션이 달라지면서 구상의 방식이나 추상적 화면으로도 변화하게 함으로써 시선이나 생각의 이동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것은 내면에 드러나지 않은 잠재되었던 의식의 층위들이 외부의 시각적 자극과 부딪히면서 나타난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 물론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 되어 있고 타자적 욕망이라는 라깡적 견해에서 보면 인간 내부의 내적 변화라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쉽게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아마도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결합시키거나 생성되는 이미지들 그려가는 가운데 시각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대상으로부터의 이미지들뿐만 아니라 일체화된 장면과 장면 혹은 시선과 사유가 흘러가는 과정들을 기록함으로써 그 결과물로서의 작업을 메타적 차원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까지의 작업 과정처럼 그가 늘 관심을 갖고 있었던 바와 같이 현 시점에서 작가 자신의 주체적 위치를 확인하는 최적의 길이기 때문이다. ■ 이승훈

강원제_Painting 5_캔버스에 유채_38×38cm_2015
강원제_Painting 6_캔버스에 유채_38×38cm_2015

캔버스 위에 하나의 이미지를 저지른다. 마치 물을 엎지르듯 그림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책임지듯 그 다음의 이미지를 찾아나선다.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물 또는 평범한 풍경이 될수도 있고, 내면의 감정들을 배설하는 거친 물감 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 잘못된 부분을 수습하기 위한 붓질이 되기도 하며, 무분별하게 떠오르는 상상된 이미지가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화면의 조형성을 위해 의미없는 선이나 도형을 그려넣을 때도 있고, 이전의 것과 전혀 다른 호흡 또는 재료들로 이미지를 이어 나가기도 한다. ● 이렇게 일관성 없이 중구난방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까닭은 삶이 일맥상통하게 살아지지 않듯이 나라는 존재가 고유명사로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의 나와 오후의 나, 혹은 여기서의 나와 저기서의 내가 매번 다르듯이 차분한 붓질을 하다가도 거친 붓질을 하고 싶은 날도 있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다양하게 존재하는 나와 나의 삶을 어떤 조건이나 규정없이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한다. 캔버스 화면 위에 올려진 이미지들은 그 다음 그려질 것들을 결정하는데 이 방식은 이전의 것에서 벗어나거나 새로운 것을 만나려는 시도들이라 할 수 있다. 매번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 이 그리기는 어두운 터널을 손으로 더듬어 가며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불안하지만 나를 더욱 감각적으로 만든다. 더불어ᅠ나를 지루하지 않게 하여 그리기를 지속시키며 결국 그것이 나에게ᅠ끊임없이 의미를 만들어 준다. ● 이미지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화면 위에 나열되고 쌓이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마치 물이 흘러 가는 모습과 흡사하여 '흐르는 그림(Running Painting)'이라 부르기로 했다. 고여있지 않으며 끊임없이 흐르는 물처럼 매번 새로운 나를 발견하면서 지속적이고 변화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 강원제

Vol.20150818f | 강원제展 / KANGWONJE / 姜元濟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