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artia_과녁에서 벗어나다

옥정호展 / OAKJUNGHO / 玉正鎬 / photography   2015_0818 ▶︎ 2015_0916 / 월요일 휴관

옥정호_훌륭한 자세(The Noble Pose)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1208h | 옥정호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CHOSUN 서울 종로구 북촌로 5길 64(소격동 125번지) Tel. +82.2.723.7133~4 www.gallerychosun.com

1. 영상 작업에 관하여 ● 난 그 두 동영상이 일종의 동전의 앞, 뒤. 또는 거울 상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헛된 비극의 제스처'와 '헛된 희극의 제스처'로. 그런데 이 제스처가 드러내는 것은 이 '세계의 비참'을 비참으로 증언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오는 그런 제스처에 대한 '엉성한 흉내'거든. 여기서 방점을 '엉성한'에 찍으면 두 동영상은 어떤 '미달'이 되겠지만, 방점을 흉내-제스처의 제스처로 읽는다면 사실의, 혹은 인물의 커리커춰가 아니라 커리커춰의 사실화가 될 수도 있다고 봐. 덧붙여 욕조에 들어갔다 나오는 얼굴, 발의 클로즈업은 이 세계에 개입하는 존재로서의 인물. 이 세계에 개입 당하는 인물의 초상이 되겠지. 그런데 이 장면은 전 전시에서 보여준 '우는 얼굴'의 클로즈업과 연결 되는 면이 있어. 한 단독자로서 이 세계에서 '예술가-되기, 그리고 예술가로 살기'라는 자의식과 나르시즘의 어떤 말 못할 덩어리. '나-작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고 싶지만, 사실은 그 테두리에 도달할 수도 없다는 절망감을 연기하기, 그리고 절망하기, 또 다시 그걸 희화화하고 희화화된 자신-김빠진 자신을 혐오하고, 사랑하기.

옥정호_훌륭한 자세(The Noble Pose)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5
옥정호_훌륭한 자세(The Noble Pose)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5
옥정호_훌륭한 자세(The Noble Pose)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5
옥정호_훌륭한 자세(The Noble Pose)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5
옥정호_훌륭한 자세(The Noble Pose)_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5

2. 사진에 관하여 ● 이 이상한 인물이 풍경에 개입하는 방식, 아니, 오히려 난입하는 방식은 예전의 그 무지개 같은 쫄쫄이 입고 무엇인가를 구성하려는 방식보다 진일보한 것이라고 생각해.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거의) 발기적, 으로 개입하는 이 인물은 (그것이 발기된 것이므로, 그런)남성기를 가만히 들여다 볼 때와 같이 혐오/코믹한 코드를 갖고 있어. 물론 그러나, 왜 이 인물이 그런 자세로 풍경에, 그것도 여러 가지 풍경-팔도유람 식 풍경에 개입하는지는 명쾌하게 설명될 수 없고, 이 설명하거나, 구성될 수 없는 '이물스러움'이 이 작업의 열쇳말이라고 여겨지기도 해. 그러니까 이건 초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현실 자체를 무화 시키는 개입/ 난입으로 이걸 통해 우리가 인지하는 이 세계란 대체 무엇일까를 물어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보여졌어.

옥정호_훌륭한 정신(The Noble Spirit)_단채널 비디오_00:03:15_2015
옥정호_훌륭한 정신(The Noble Spirit)_단채널 비디오_00:04:03_2015

그러니까 이 사진들의 질문과 각주 역할을 하는 동영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해할 수도, 익숙해 질 수도 없는 이 세계에 대한 (약간) 징그러운 스케치를 통해 아주 아주 보편적인 질문, 대체 이 세계란 무엇일까, 대체 우리들은 뭘 하는 걸까, 대체 어디에서부터 (작가는)시작해야 할까-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그만큼 절박한 질문이기도 하고. ■

* 이 글은 아는 동료와 함께 술자리에서 이번 작업에 대해 나눈 이야기 중 그 동료의 말을 복기하며 정리한 글이다.

Vol.20150818g | 옥정호展 / OAKJUNGHO / 玉正鎬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