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옷의 표정

이재문展 / LEEJAEMUN / 李在紋 / sculpture   2015_0819 ▶︎ 2015_0824

이재문_자책(self reproach)_옷, 혼합재료_127×31×20cm_2015

초대일시 / 2015_0819_수요일_06:00pm

제7회 신진작가 초대展, 최우수 신진작가상 수상 기념展

주최 / 사단법인 한국조각가협회(이사장 한진섭) 주관 / KOSA space Gallery 후원 / 국제조각페스타 진행 / 이후창(사무국장)_최민아(큐레이터)

관람시간 / 10:00am~06:00pm

코사스페이스 KOSA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0(관훈동 37번지) B1 Tel. +82.2.720.9101 www.kosa08.com

헌옷의 감성과 형상의 함축성 ● 여기 첫번째 개인전을 앞둔 작가가 있다. 그는 개인전을 앞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작품이 많이 팔리기를 기대할까? 유명 평론가와 큐레이터들이 자신의 작품을 호평해주길 바라는 걸까? 언론이 개인전을 집중 조명해서 유명해지는 꿈을 꾸고 있을까?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작가에겐 돈, 인맥, 제도 등 미술과 현실 사이의 그 어떤 이야기도 본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생활인이 아닌 작가로서 가장 분명하고 절실한 현실이란 작업에 대한 내공을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던져 놓고 명료한 비평의 그물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 작가는 더 큰 바다를 볼 수 있다.

이재문_어리석은 기다림(foolish yearning)_옷, 혼합재료_80×80×60cm_2013
이재문_휴식(rest)_옷, 혼합재료_70×45×56cm_2015

이재문 작가는 주로 ‘헌옷’을 이용하여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2010년경 작업실에 널브러져 있던 낡은 작업복을 보면서 흥미를 느꼈다. 무언가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오래된 작업복이 주는 질감은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정서를 불러 일으켰다. 그때부터 그는 다양한 헌옷 조각들을 재료로 삼아 동물, 인물, 사물 등을 만들어왔다. 옷은 사람의 몸을 보호하는 기능도 하지만, 성별, 계급, 종교, 패션 등 다양한 문화의 맥락에서 보면 매우 중층적인 의미와 역사를 지닌 소재라고 할 만하다. 옷 중에서도 특히 헌옷엔 그 옷을 입었던 개인의 정서와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어서 정체성을 상징하는 사물로서 기능하게 된다. 이재문 작가의 경우엔 감성적인 소재인 헌옷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하여 그것에 담긴 개인사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재문_황혼의 꿈(Dreams of Twilight)-옷, 혼합재료_150×135×60cm_2012
이재문_마지막 선물(Last Gift)_옷, 혼합재료_100×110×40cm_2011

헌옷을 중심에 둔 작업방식이 구축된 2010~2013년 시기의 작품들은 일상의 체험이나 생각들을 주로 사실적인 기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황혼의 꿈(2012)」이다. 흰 눈밭에서 무언가 생각하는 자세로 앉아 담배를 피우는 노인의 모습은 일견 진부한 소재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노인은 특이하게도 허공에 뜬 깃털 위에 앉아 있다. 가벼운 깃털에 앉아 있는 깃털보다도 더 가벼운 인간은 무엇을 고뇌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노인은 작가 개인의 아버지에서 삶을 관조하는 보편적인 존재로 확장된다. 헌옷을 주재료로 삼아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대상이 서정적인 분위기와 이야기들을 함축적으로 품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이재문 작가의 장점이다. 이러한 특징들이 잘 드러난 또 다른 작품은 「어리석은 기다림(2013)」이다. 몸을 웅크리고 앉아 생각에 잠긴 소녀는 여러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이 순진해보이는 소녀는 오지 않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지친 나머지 쭈그리고 앉은 듯하다. 기다림과 체념이 교차하는 소녀의 자세를 통해 작가는 ‘순수’한 시절의 감성을 끄집어 내고 있다. 파스텔 색조의 몸체를 뒤덮고 있는 헌옷 조각들은 소녀의 작고 여린 감성들을 촘촘히 엮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어리석은 기다림」의 분위기와 상통하는 작품은 2015년작인 「자책」이다.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서 있는 소녀를 묘사한 이 작품에서는 헌옷을 다루는 기법이 상당히 발전된 점을 확인하게 된다. 강화플라스틱으로 제작된 기본 몸체 위에 붓터치처럼 덧붙여진 작은 천조각들은 소녀의 비에 젖은 모습과 상처받은 정서 상태를 회화 같은 분위기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재문_첫 울음(First Cry)_옷, 혼합재료_60×35×15cm_2012
이재문_악어의 눈물(Crocodile Tears)_옷, 혼합재료_120×120×30cm_2013

이렇게 인물을 다룬 작품들을 비중 있게 소개하는 이유는 이재문 작가의 작품들 중에 수작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대체로 앞에 언급한 인물상들이기 때문이다. 이재문 작가는 무엇보다도 인물을 다룰 때 가장 섬세한 감성으로 호소력 있는 작품을 보여준다. 특히 인물들이 취하고 있는 함축적인 자세는 관객의 서정적인 감정선을 건드릴 뿐만 아니라 인물들에게 스며들어 있는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물론 이재문 작가는 인물상 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을 시도해왔다. 그 중에서 「악어의 눈물(2013)」은 낡은 청바지를 매우 세련되게 이용한 기법으로 시선을 끈다. 한마디로 관객에게 의미보다는 시각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유희적 측면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어서 향후 새로운 작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그리고 2014년부터 이재문 작가는 단지 주변의 헌옷을 구해 작업을 해오던 방식을 탈피하여 특정인의 추억과 사연이 깃든 옷을 직접 기증 받아 그들의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형상화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기증자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작업을 진행시켜 나갔다. 작가가 다루는 재료에 대한 개념적 성찰이 발전해나가는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본다. 어느 미용사의 삶을 의자와 가위로 구성한 「휴식」,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생활과 희망을 화분 형태 속에 담은 「하모니」 등이 그러한 과정을 거친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아직까지 인물을 다룬 작품들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작가가 자신만의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좋은 밑거름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재문_행복한 졸음(Happy Drowsiness)_옷, 혼합재료_70×70×25cm_2012
이재문_소녀의 꿈(Girl's Dream)_옷, 혼합재료_120×60×47cm_2014
이재문_하모니(harmony)_옷, 혼합재료_75×50×30cm_2015

이재문 작가는 영화, 애니메이션, 간판, 신문배달 등 잡다한 일을 하며 현실의 생활에 굳건히 발을 디딘 채 작업에 매진해왔다. 그리고 2013년 6월부터는 광주 대인예술시장에서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에게선 예술가연하는 객기나 뜬구름 잡는 듯한 허위의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이재문 작가의 이런 현실 감각과 생활력이 그를 좋은 작가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주제, 소재, 작업 과정, 표현 방식 등 예술에 이르는 길은 수없이 다양하고 이재문 작가는 어느 길로 가야할지 여전히 모색 중이다. 풍부한 가능성을 가진 그의 작업은 앞으로 많은 변화를 겪으며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가 이번 개인전을 통해 첫번째 작업 시기를 차분히 정리하고 앞에서 평한 그의 장점들을 잘 살려 나간다면 좋겠다. 그의 진일보에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백종옥

Vol.20150819b | 이재문展 / LEEJAEMUN / 李在紋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