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ONE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조각대상展   2015_0825 ▶︎ 2015_1018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5_0825_화요일_04:00pm

참여작가 / 김태은_김홍석_박문희_송필_임선이_조보환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YANGJU CITY CHANGUCCHIN MUSEUM OF ART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211 Tel. +82.31.8082.4241 changucchin.yangju.go.kr

하나를 위한 하나, 예술을 향한 자기경쟁 『Seven-ONE』 - 조각대상 『Seven-ONE』의 서사 ● 『Seven-ONE』전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산하기관인 장흥조각레지던스의 4기 입주작가 공모프로그램 전시로 작가들의 2년간 입주결과를 선보임과 동시에 공정한 경쟁과 심사를 거처 최종 1인 '조각대상'을 선정하여 조각대상과 상금을 수여하는 예술상 제도이다. ● 양주시는 지난 2007년 장흥면에 위치한 부지면적 6,331m2의 야외수영장을 개조하여 장흥조각아뜰리에(건축면적 590.64m2)라는 명칭으로 미술창작스튜디오를 조성하여 역량 있는 중견조각가들의 창작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2년의 입주기간 동안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실내외 작업공간과 다양한 프로그램, 창작지원금 제도 등을 통하여 국내 유일의 조각전문 레지던스로 명성을 쌓아왔으며, 1기(2008-2009)부터 현재 4기(2014-2015)까지 총 28명의 중견작가를 배출하였다. 장흥조각레지던스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건립 이후 미술관 산하기관으로 신진작가를 지원하는 777레지던스와 연계하여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 참여한 4기 입주작가는 6년(2008-2013)간의 민간위탁 이후 양주시가 직접 레지던스를 운영하고자 2013년 10월에 공고한 "스튜디오 입주, 공모전시, 조각대상"이라는 파격적인 입주공모에 선정된 작가들로 2차에 걸친 10명의 심사위원들의 열띤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되었다. 이는 김태은, 김홍석, 박기진, 박문희, 송필, 임선이, 조보환이다. 작가 7인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2년간 레지던스에 입주하고 있는데, 이 중 박기진 작가는 2015년 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독일 베타니엔 레지던스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중도 퇴실하여 이번 『Seven-ONE』전시에는 6명의 작가가 참여하게 되었다. 전시의 명칭은 2013년 공모했던 이름 그대로 『Seven-ONE』으로 결정되었고, 1인의 조각대상이 선정될 예정이다. 조각대상 심사에는 전문가 심사와 관객들이 전시감상 후 가장 선호하는 작가를 선정, 투표하는 형식의 일반인 심사로 진행될 것이다.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조각대상 『Seven-ONE』은 입주작가의 2년간의 예술활동과 성과를 진지하게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자 『조각대상』을 향한 작가들의 열정과 투지가 깃든 프로젝트이다. 『조각대상』은 단지 입주작가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향후 조각분야 혹은 미술 전반에 대한 상을 수여하고, 공로를 치하하고자 하는 양주시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동시대 예술가와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예술정책은 지난 2015년 1월에 개최된 회화, 사진, 복합매체 분야 16명의 작품을 선보인 『신진작가기획전』(2015.01.27-04.12)과 그 맥을 같이하며 신진 및 중견 예술가들과 함께 현대미술의 가치를 확인하고 공유하고자 취지이다. 『Seven-ONE』은 기존 창작지원금 제도를 확대, 조각대상을 강조함으로써 향후 양주시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예술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지역의 미술관과 레지던스의 역할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미술창작스튜디오는 이제 단순히 창작공간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예술가들과 함께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가야 한다. 특히, 전통조각의 경계를 허물고 사진, 미디어, 복합매체를 통한 다양한 시도들을 통하여 예술의 가능성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조각대상 『Seven-ONE』이 '조각'의 개념을 넘어서 예술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예술가의 열정을 향한 『예술상』으로 기록되기를 염원한다.

김태은_주술적이거나 전기적인 저장장치(Magical electric supplier)_PVC 스피어, LED, 모터 레일

여섯 작가의 목소리 ● 미디어아티스트 김태은(1971-)은 전시와 영화감독, 뉴욕 패션위크 Live Visual Performance 연출과 같은 굵직한 기획과 뮤직비디오 감독, CF제작, 연극, 무용, 미디어아트, 전시기획, 테크놀로지 관련 강의 등 다양한 경력을 통해 예술작품을 선보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그의 작품은 관객과 직접 호흡하며 이 시대 예술의 조건과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그의 이러한 화려한 이력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사회와 기술, 인간을 향하는 그의 작품은 하나의 완결된 의미체가 아닌 다양한 이슈들이 얽히고설킨 다중집합체와 같이 복잡하다. 그러나 그는 기술적 메커니즘 뒤로 복잡한 관계들을 숨겨놓고 너무나 인간적이고 따뜻한 형상들을 내놓는다. 가령 「The Cake House」(2012)나 「Circle Drawing」(2006), 「The Red Halo」(2014)과 같이 아날로그적 감성이 묻어있는 작품들은 사람들이 쉽게 유혹한다. 마치 장난감 집을 보듯이, 레코드판을 만들 듯이, 예전 아케이드게임을 하듯이 사람들은 즐겁고 재미있게 작품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가 수많은 이해관계와 권력, 생산과 소비의 자본화의 물결, 사건과 사고로 이루어져 있듯이 그는 반짝이고 따뜻한 표면의 뒷면에 존재하는 통치의 시스템을 고발하고자 한다. 유희적 즐거움과 시각적 흥미 뒤편에 숨겨진 비판과 풍자를 담는 그의 작품은 가히 드로몰로지(Dromologie, 질주학, 경주학)라고 할만하다. 발전의 메커니즘의 경쟁체제에서 질주를 통한 가속도는 결투와 투쟁, 폭력과 권력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자본의 유혹은 미니어처 기차 길의 낭만의 표면, 혹은 피상성을 예찬한다. 김태은은 바로 이러한 최첨단 기술의 표면이라는 가면을 쓴 여러 욕망들의 지배를 인식하고 그 종속에서 벗어나야 함을 유희적이고 은유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김홍석_Voyage_대리석_110×220×28cm_2015

김홍석(1972-) 은 인체나 사물을 직접 조각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는데, 인체의 완벽한 아름다움이 아닌 구겨진 종이나 넘실거리는 파도와 같이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형상 속에서 작품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즉, 그는 대리석 특유의 단단하고 견고한 질감과 종이와 같이 섬세하고 순간적이며 치밀한 형상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과 극적인 조형미를 추구한다. 그의 작품은 언뜻 보기에 인체를 캐스팅한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세부묘사와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홍석은 미켈란젤로처럼 돌에 살아있는 생명력을 불어넣을 정도의 엄청난 조각적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완벽한 인체의 형상을 만들지 않는다. 그는 매끄럽게 다듬은 인체와 돌이 깎여진 거친 표면을 그대로 드러내어 대리석 자체의 단단함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김홍석의 이러한 표현은 돌 속에서 인체의 형상을 발견하는 로댕의 자세가 아니라, 인체의 아름다움과 완벽한 완성의 틀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그의 조각가로서의 자세로부터 나온다. '무심함' 그에게 대상은 무심하게 던져진, 그리하여 작품을 평가하는 특정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조각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인체여도 되고 돌덩어리여도 된다. 그의 작품은 관객들이 무심히 관조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준다. 그의 조각이 인체와 종이, 그리고 파도 등 다양 한 사물들로 향할 수 있는 이유 또한 사물에 대한 그의 자유로움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한 무심함을 만들기 위해 그는 마치 장인과도 같이 오랜 시간 하나의 작품에 매진한다.

박문희_Her Silence_FRP, FRP에 모래, 혼합재료_147×275×52cm_2015

그런가 하면 사물을 천으로 덮어놓아 생명체나 사람을 연상시키게 하는 박문희(1982-)의 조각은 사물과 예술의 개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최근작품 「그녀의 침묵」(2015)은 의자나 주전자 등의 사물은 마치 생명체가 죽어 소멸되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영국풍의 엔틱한 식탁과 의자, 그리고 꽃무늬의 고급 주전자가 부서지고 깨진 후 모래바람에 묻히고 퇴적되어 소멸해 감을 표현한 그의 조각은 사람이나 동물의 사체가 부패해가는 과정과 닮아있다. 사물과 생명체의 유사성을 통한 연상 작용을 강조하였던 기존의 작업과는 다르게 신작은 사물과 개념이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죽음의 허무함이라는 바니타스의 개념을 통해 인간문명의 소멸 혹은 쇠퇴를 보여준다. 그것은 영국을 상징하는 선진문화나 또는 전통미술의 개념, 기존가치의 권위가 허무하게 쓰러져 감을 상징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은 기념비가 되어 소멸의 순간으로 하나의 정물이 된다. 그의 사진작품 「세개의 진실」은 바니타스 정물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죽음은 과일이나 공과 다르지 않으며, 권위와 영광은 또한 무너짐과 소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물이 생명체가 되거나 사물이 개념이 되거나 그것은 여전히 말랑거리면서도 단단한 상징이 되어 현상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편견으로 달라붙어 있다. 그러한 편견의 견고함과 허무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박문희의 작품은 그렇기에 사물을 바라보는 또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한다.

송필_직립의 나날들-비만_브론즈_300×120×90cm_2015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송 필(1970-)은 커다란 돌덩어리와 한 몸이 된 낙타와 캥거루, 사슴 등 네발동물의 형상을 조각으로 제작한다. 자신보다 거대한 돌덩어리를 짊어진 동물들은 위태하지만 꼿꼿하게 자신을 곧추세우며, 복잡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투영한다. 그는 자연석을 칼로 자르거나 세로로 긴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마치 원시시대 거석문화의 기념비를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송필은 작품을 통해 '직립'이라는 단어를 표현하고 있는데, 직립은 인간이 문명을 만들고 의식주를 벗어나 인간 자신과 세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조건 그 자체를 상징한다. 그렇기에 수직으로 곧게 솟은 거석문화의 전통에서는 이상세계를 향한 인간의 염원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송필은 이러한 직립의 개념을 상징하는 무거운 거석을 네발동물의 등에 올려다 놓았다. 가분수가 된 낙타「Walking」(2014)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실크로드를 끊임없이 왕래해야 한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무수히 많은 낡은 신발들의 염원을 모두 짊어지고 위태로운 자신의 처지를 애써 외면하고 네발로 '직립' 해있다. 그 직립은 신작 「비만」(2015)처럼 끊임없이 팽창되는 인간 도시를 짊어진 길 잃은 산양처럼 매우 고독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거석과 직립, 자연과 인간의 문명을 짊어진 산양은 무덤덤하게 끊임없이 수직의 기념비가 되고자 하는 우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임선이_극점 2-3 Towards the Ultimate_라이트젯 C 프린트_150×112cm_2014

임선이(1971-)는 조각과 사진, 지형도를 조형화한 산수풍경을 선보인다. 그는 인왕산과 남산 등 등고선이 그려진 종이지도를 한 겹 한 겹 오려서 실제 산의 형상으로 제작하는데, 협곡과 패임으로 표현되는 네거티브 형식의 산수는 잘려진 종이의 푸른 등고선을 따라 긴장감을 주며, 음양의 전환을 상상하게 한다. 단지 종이로만 쌓여진 그의 산수는 위태롭게 협곡의 풍경을 드러낸다. 그의 협곡은 얇은 종이의 옆면과 옆면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등고선으로 실제의 산이 아니라 수치적 계산에 의한 형상이다. 그러나 그 형상은 실제의 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종이지도의 겹쳐짐이 수없이 커진다면 실재의 산과 같을 것인가? 과학은 실제 산을 측량하기 위해 지형의 높낮이로 특정의 등고선을 지정하였다. 그러나 그 등고선은 실재하지 않는다. 만약 수많은 등고선이 겹쳐진다면 실재 산과 같을 것이라는 확신은 제논의 역설과도 같이 큰 모순을 가질지도 모른다. 재현의 역사는 실재와 가상이 동일 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임선이는 바로 이러한 재현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얇은 종이지도를 자르고 잘라 종이 그대로 쌓아 올린다. 그러나 그 종이 퇴적층은 한 번의 바람에 의해 쉽게 흐트러진다. 산이라는 견고한 믿음은, 과학이라는 단단한 실체는, 인간 문명이라는 거대한 역사는 단 한 번의 지진에 의해 흔들린다. 그에게 산은 실체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 깊숙이 머물러 있는 순간이다. 그렇기에 그는 하늘로 치솟는 산이 아니라 아래로의 협곡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산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문명이고 과학이고 이성이다. 그는 산수를 돌아보듯 안개가 자욱한 「극점」을 거닐라고 말한다. 그 극점은 이성과 인간의 감각이 전환되는 그 찰나의 지점이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그의 작품은 붉은색에서 푸른색 지형도로 바뀌어 가는 것처럼 산의 지형을 해독하는 이성적 수치가 아닌 미학적 감각으로 수놓은 예술의 단단한 깊은 협곡을 유유히 거닐어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조보환_서양미술사#266_C 프린트, 디아섹, 아크릴_50×26×14cm_2015

조보환(1972-)은 사회의 여러 개념들을 시각화하고 다시 개념이 되는 지점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의 작품 「서양미술사 #」 시리즈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명화 비너스와 모나리자 등의 서구미술의 개념을 해체시켜 한국미술사와 한국의 미술세계를 대비시켰다. 픽셀화 된 투명 조각들은 동서양의 상징화된 예술이미지를 오가며 예술의 개념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루브르박물관의 보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갖는 미술사적, 문화적 가치는 아마 세계 제일일 것이다. 서구의 유명한 명화를 익히고 마치 그것이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한 서구식 미술교육의 현장, 수많은 미술학도들의 틈 속에서 조보환은 앞선 자들의 권위와 권력을 인식하였다. 그의 학창시절, 그러나 1990년대 한국의 미술현장은 모나리자가 아닌, 어정쩡한 근대의 역사를 경험삼아 서구식 현대미술을 흉내 낸 몇몇 유명한 작가들의 달콤한 결과물과 서구식 르네상스가 전통이라고 외치는 젊은 작가들이 만든 서구벤치마킹 그림들이 혼재된 시기였다. 물론 비약은 있겠으나 곰브리치가 미술의 역사는 서구이며, 가장 발전된 미술이다라는 점은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조보환은 이렇게 정체성을 찾지 못한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반성하기 위해 두 현상을 병치시킨다. 그는 네모난 투명 큐브로 만든 몇 층의 레이어로 덧붙여진 입체조각을 만들고 한 쪽은 모나리자를 한쪽은 1990년대 한국의 미술전시회 카탈로그 사진들을 붙였다. 「서양미술사 #630」의 작품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630개의 전시 카탈로그 사진들은 모나리자를 꿈꾸던 한국의 청년 혹은 중견 작가들이었고 여전히 모나리자를 꿈꾸고 있다. 밀로의 「비너스」와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 또한 한국의 국보나 보물,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들과 대치시켜 예술적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우리의 정신과 예술은 어디에 속해있는가 라고. 자신을 항한 채찍질, 조각대상과 예술 ● 현대조각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조각의 영역을 확장 혹은 해체되었듯이 조각은 단순히 전통적인 조각의 영역에 머물러 있기를 희망하지 않는다. 최태만은 그의 저서 『한국 현대조각사 연구』(아트북스, 2007)에서 "한국조각의 운동장력"을 설명하면서 4가지의 개념으로 조각의 영역을 나누고 있다. 이는 각각 '물질', '서술성', '개념', '구조'이다. 전통조각이 물질성을 유지하면서 재현의 영역에 속하거나 아니면 공간적 '장(site)'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이야기(서술)와 구조의 형식을 띄는가 하면, 반대로 개념성을 강조하면서 표현과 형식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나 탈매체로 드러나기도 한다. 조각의 영역을 이 네 가지로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분명 조각에 대한 근원적 의미들은 서로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왜 조각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왜 조각이 아니면 안 되는가? 『조각대상』은 조각에 대한 해묵은 담론들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에서 우리가 조각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지점이 과연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복합매체라는 명칭을 사용함에도 우리는 여전히 조각의 원근에서 시작한다. 선사시대 돌조각으로부터, 서구의 아르카익 시대를 거쳐 조각은 인류의 시작과 역사를 같이 했다. 전쟁과 파괴,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각은 자신의 긴 생명력을 연장시켰고, 또 현재에도 미래를 향한 수많은 조각들이 제작되고 있다. 또한 조각은 회화와 건축, 미디어와 영상의 기술적인 도움을 받으며 더욱더 그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조각은 단지 조각이 아니라 우리가 부르는 예술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으며, 또한 예술이라는 단어 속에서 순수한 조각의 개념만을 뽑아내기는 더더욱 어렵게 되었다. 『조각대상』의 제도는 견고한 조각의 영역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의 영역을 확인하고, 그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보기 위한 제안이다. 그 제안은 작가들에 대한 것이면서 동시에 관객들에게로 향한다. 조각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조각이라고 명명하는 예술에 대해 서로 고민하고 공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예술을 통한 이러한 고민과 공유가 우리들의 삶을 더 풍요롭고 가치있게 만들 것이다. ■ 백곤

Vol.20150825a | Seven-ON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