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기록-하늘, 바다, 바람, 비 그리고 기다림

최정미展 / CHOIJUNGMI / 崔貞美 / painting   2015_0826 ▶︎ 2015_0915

최정미_깊이에 관하여 Concernant du profondeur_캔버스에 유채_72.7×72.7cm_2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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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82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시작 Gallery Si:Jac 서울 종로구 인사동 39번지 2층 Tel. +82.2.735.6266 www.sijac.kr blog.naver.com/gallerysijac

시간 속의 나를 대하며, 그 기억을 빛과 색으로 유희하다: 최정미 작가의 작품에서 강렬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보다 깊은 아련함이 있다. 그것은 외부세계를 작품으로 재현하고 예찬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작가의 인상(印象)이 내면의 심상(心象)으로 남아 시간의 기억에 의해 여과되며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형상사유와 추상사유의 공존을 통해 표현되는 몽환적인 실루엣이 작가가 경험한 시간과 기억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잊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희미해져 가는 것이다. 최정미 작가는 그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명확히 하기 위해 결코 인위적인 강렬함을 더하지는 않는다. 다만 캔버스 위에 흰색안료를 사용해서 빛을 더해주며 시간 속의 기억과 그 기억 속의 자연 풍광을 어루만진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캔버스 위로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며 시간은 바람처럼 흘러간다. 지나가며 헤어지는 바람이어도 좋고, 불어와서 만나는 바람이어도 좋다. 여름의 눈부신 햇살이어도 좋고, 어딘지 힘없어 보이는 겨울의 파리한 햇빛이어도 좋다. 시간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그렇게 놓아준다. 최정미 작가의 작품에서 다양한 색채와 반복적인 패턴의 붓질로 표현되는 빛, 바람, 대기, 물 등 자연물 가운데 빛과 바람은 그 자체로서 형체는 없지만 다양한 사물들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린다. 반짝이는 물결, 흘러가는 구름, 떨어지는 낙엽, 흔들리는 들풀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낸다. 대상을 통해 드러나는 빛과 바람의 존재는 어쩌면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는 작가의 내면과 많이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거울에 대상이 비친다고 해서 거울이 그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대상이 거울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그 대상이 소멸되는 것 또한 아니듯… 최정미 작가의 작품은 시간이 담고 있는 자연을 비치는 거울과도 같다. 그 거울에 비치는 작가의 기억과 시간은 색채와 빛으로 모습을 나타낸다. 모든 것들은 변해간다. 최정미 작가의 작품 또한 시간을 머금으며 변해간다. 끝을 알 수 없는 자연의 변화처럼 그렇게 세월을 품고 진행되어 간다. 영롱한 반짝임을 안으로 머금으며… ■ 신훈

최정미_선물 Le cadeau_캔버스에 유채_60.6×60.6cm_2014~15
최정미_느낌 Le sentiment_캔버스에 유채_72.7×72.7cm_2014~15
최정미_바다 La mer_캔버스에 유채_60.6×60.6cm_2014~15
최정미_hisoire de la lumiere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08~15
최정미_나르시스 Narcisse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08~15
최정미_하늘로부터 Du ciel_캔버스에 유채_117×72cm_2011~15

엠마누엘 칸트_판단력 비판: 아름다움이 제공하는 쾌감은 향락이 제공하는 쾌감이 아니며, 어떤 법에 순응하는 활동도 아니고, 관념들에 기대어 존중을 할 때의 명상이 제공하는 쾌감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관조에서 오는 쾌감이다. 가장 보편적인 경험은 판단 능력이 작동함으로써 지지를 받는데, 이 판단 능력이 발휘되는 과정에 힘입어 어떤 유용성이나 원칙에 의해서 유도되는 것이 아닌 아름다움이 제공하는 쾌감은 오성-개념 능력- 과 관련되어 있는, 상상을 통한 한 대상에 대한 보편적 이해- 직관 능력 -을 수반하게 된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제공하는 쾌감이 이런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개념들을 확립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들 중 하나인 미학적 판단은 재현 활동이 인식의 두 능력인 직관 능력과 개념화 능력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활동(즉, 주관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인지를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재현 속에 있는 상태를 쾌감과 함께 느끼기 위해서 이러한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 쾌감은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인 인식 조건들에 기초해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인식 능력들의 균형은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는 상식에도 필연적으로 존재한다_(Emmanuel Kant, Critique de la faculte de juger_1790_de Launay 역) 회화는 심정을 포함해서 그 표현내용으로 삼는다. 심정 속에 살아 있는 것은 비록 그 내용이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라 해도 역시 주관적인 방식으로 주어져 있다. 왜냐하면 심정의 느낌은 물론 보편적인 것을 내용으로 삼을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느낌으로 있으므로 보편성의 형태를 띠지 않고 자아가 특정한 주체로서 그것을 알고 느끼는 대로 현상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내용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려면 자아는 자아 스스로를 잊어야 한다. 그래서 회화는 물론 내면적인 것을 외적인 대상의 형태로 보이게 드러내지만, 그것이 표현하는 원래의 내용은 자아가 느끼는 주관성이다_(헤겔의 미학강의 3, p.347) ■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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