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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5:30pm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LEE JUNGSEOP ART MUSEUM STUDIO GALLERY 제주도 서귀포시 이중섭로 33 (서귀동 514번지) 전시실 Tel. +82.(0)64.760.3573 culture.seogwipo.go.kr/jslee
책 오브제, 책의 아우라와 시대정신의 표상 ● 지금까지 작가 이지현의 작업은 대략 신문 작업, 한지 작업(여러 겹의 한지를 포개 바느질로 고정시킨 연후에 그 위에 그림을 그려 안료가 그 이면에까지 스며들게 한), 책 작업, 사진 작업으로 대별된다. 그 종류가 다를 뿐 하나같이 종이를 소재로 한 작업들이다.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작가는 그리기보다는 만들기에 주력해왔으며, 이는 그대로 작가의 작업이 갖는 특정성에 대해서 말해준다. ● 즉 작가는 이 종이 소재들을 흔히 그렇듯 그 위에 그림을 덧그리기 위한 바탕재로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조직을 파쇄해 형질을 변질시키는 것(이를테면 일종의 종이죽을 만들어 저부조 형태로 떠내는)에도 관심이 없다. 그런가하면 이 소재들은 동시에 매체들이기도 한데, 그 매체적 특수성을 드러내는 것도 관심 밖이다. 이를테면 신문에 내장된 일상성 담론과 사회학적 의미, 한지 고유의 물성(예외적으로 작가의 관심을 끌고는 있지만, 본격적이지는 않은), 책에 대한 의미론적 접근과 이해, 그리고 사진과 관련한 다큐멘터리와 가상적 리얼리티의 경계에 대한 인식 등등.
종이의 형질을 변질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매체적 특수성(아마도 일종의 개념미술로 나타날 만한)에도 붙잡히지 않는 어떤 지점, 자기가 둥지를 틀 만한 어떤 지점을 찾아냈는데, 철저한 수작업을 통한 공작성이 그것이다. 작가에게 수작업은 작업에 투자되어야 할 당연한 노동(물론 감각적 노동)으로서, 그 노동으로 인해 작업은 비로소 작업으로서의 당위성을 부여받게 된다. 작업이 종이의 형질을 보존하면서 진행되는 것인 만큼 어느 정도 매체적 특수성(이를테면 의미론적인 성질)도 함께 보장해주지만, 그러나 그 특수성은 공작성의 과정으로 인해 상당할 정도로 상쇄된다. 소재 고유의 형질(이를테면 종이)과 매체적 특수성(이를테면 신문과 잡지)과의 경계 위에, 어느 쪽으로도 환원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 모두를 아우르는 어떤 애매한 지점 위에 작업이 세팅되는 것이다. ● 이처럼 한지 작업의 예외성을 인정한다면 작가의 작업은 결국 신문작업과 책 작업, 그리고 사진작업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이 일련의 작업들은 재차 그 방법론에 의해 전작의 신문작업(붙이기)으로, 그리고 이후의 책 작업과 사진작업(뜯기)으로 묶여질 수가 있다.
신문작업. 작가는 전작에서 신문을 소재로서 차용한다. 신문을 잘게 오려 좁고 긴 띠를 만든 다음, 캔버스 화면을 버팀대 삼아 그 표면에 직각으로 붙여 세운다. 이 일련의 과정과 방법을 통해서 실내와 같은 일상적인 정경을 재구성하는데, 그 섬세한 세부와 치열함이 거의 편집증적인 수준을 보여준다. 흡사 빽빽한 미로처럼 서 있는 자잘한 칸막이들이 어우러져 의자가 되고 화분이 되고 커튼이 되고 책장이 된다. 여기에 그림자가 가세해 사물성을 강조하는 한편, 현실공간의 재현과 추상성(흑백 모노톤의 화면이 이런 추상성을 강화한다)과의 경계를 애매하게 한다. 그런가하면 디테일한 세부가 일종의 패턴을 만들어내면서 마치 화면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일루전적 효과와 함께 일종의 유사 입체감(혹은 공간감)을 자아낸다. ● 이런 일상공간의 재현과 공간감은 외관상 신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 자체 자족적인 존재성을 갖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작가의 작업에서 신문의 의미론적 특정성이 완전히 무의미해진다고는 말할 수가 없게 된다. 코에 닿을 듯 가까이서 화면을 보면 이런 일루전(멀리서 볼 때 보이는)은 사라지고 신문에 실린 기사의 편린들이 보이는데, 일관된 맥락 속에서보다는 그 맥락이 해체되고 분절되고 뒤죽박죽으로 재조합된 상태의 조각난 기사들이 보인다. 현실공간을 재구성하면서 덩달아 신문에 실린 기사를 함께 재구성한 것이다. 이렇듯 작가의 작업은 멀리서 보면 허구적 공간(재현 공간)이 보이고 가까이서 보면 파편화된 일상(엄밀하게는 일상의 정보)이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뒤죽박죽된 기사 조각이 정보와 의미의 불확실성(미디어를 통한 정보와 의미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에 대한 메타포처럼 읽힌다. ● 그리고 신문작업에서 확인되는 이런 긴장감, 이를테면 조형적인 프로세스와 신문의 의미론적 특정성과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인식은 그 소재와 방법론을 달리해 또 다른 형태로 변주 심화된다.
책 작업과 사진 작업. 작가는 근작에서 책과 사진을 소재로서 차용하는데, 책의 낱장이나 사진의 표면을 뜯어내고 이를 다시 재구성하는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가늘고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책의 표면을 낱낱의 조각들로 해체한 연후에 이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다. ● 이때 작가의 개인사 내지는 역사의식 내지는 특정의 주제와 유관한 책을, 새 책보다는 오래된 책을, 그리고 개인적으로 각별한 의미를 내장하고 있는 책을 선택한다. 이를테면 처음에는 국어, 국사, 도덕 같은 교과서로 작업을 시작해, 이후 점차 작가 자신과 같은 세대의 시간의 흔적을 내장하고 있는 60,70년대 서적이 주로 차용된다. 작가의 인격을 형성시켜준 책들이며, 작가의 개인사를 넘어 세대의 공통이념과 가치관을 엿보게 해주는 정전들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성경, 악보, 사전, 그리고 오래된 잡지 등이 선택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백남준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라이프지, 톨스토이의 『부활』, 박경리의 『토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 섹스피어의 희곡집, 반 고흐의 도록, 마릴린 몬로의 초상 사진 등등. ● 그리고 이따금씩 책 작업은 일종의 도서관 프로젝트의 형태로 확대 재생산되기도 한다. 도서관의 서가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의 정경을 사진으로 찍고, 그 사진 정보를 포토샵으로 작업해 주제별 라이브러리(이를테면 역사학, 인류학 등등)로 재편집한 사진을 소재로 작업한 것이다.
책이든 사진이든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포인트는 책의 활자 부분과 사진 이미지를 자잘한 조각조각들로 일일이 뜯어내는 일이며, 때로는 그렇게 뜯어낸 조각들을 조심스레 올려붙여 원형 그대로를 복원하는 일이다. 비록 원형 그대로를 복원했다고는 하나 그 자체가 원본과 같을 수는 없으며, 때로 작가는 부분 이미지를 복원하지 않은 채 내버려둬 오히려 자연스런 느낌을 의도적으로 연출하기도 한다. 이로써 원본에는 없는 어떤 질감이 생겨나고, 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흐릿하고 모호해진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작가의 작업은 말하자면 원본의 원형(원본성)을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원본의 이미지를 모호하게 하는 것이며, 이는 그대로 책과 사진의 의미내용을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내부로부터(아마도 진즉에 책이나 사진 속에 이미 내장돼 있었을) 어떤 아우라 같은 것을 표출시키려는 기획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 활자와 이미지의 실체를 겨우 식별할 정도로까지 해체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을 읽을 수 없는 책으로, 의미내용의 담지체를 물질적이고 질료적인 차원으로, 시각적 기호를 촉각적 기호로 그 존재론적 층위를 전이시켜놓고 있다고나 할까. 찢고 붙이기, 해체와 구축이 교차하는 과정을 통해서 책 본래의 원형을 해체하고 고유의 의미내용을 비워내 한갓 기호화된 사물(익명적인 책 오브제)로 그 정체성을 전복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책 속에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작가만의 책읽기에 비유할 수 있을 듯싶다. ● 책은 시공을 초월한 시대정신의 표상이다. 이런 책을 한 땀 한 땀 해체하듯 뜯어내는 행위야말로 책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행위(책과 감각적으로 만나지는 경험)이며, 이를 재차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과정은 책이 새로운 이미지로 재생되는 계기가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의 기록일 수 있으며, 나아가 활자나 이미지를 뜯어낼 때 생기는 보푸라기 같은 부유하는 이미지(모호한 이미지)는 곧 정체성을 상실한 채 부유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암시한다. 표면적으로 원본의 의미맥락을 해체해 익명적인 책 오브제로 그 정체성을 변질시키는 작가의 작업은 사실은 그 이면에서 이처럼 정체성 상실을 앓고 있는 현대인의 단면을 표상(그 자체 시대정신의 표상이기도 한)하고 있는 것이다. ■ 고충환
Vol.20150829e | 이지현展 / LEEJIHYUN / 李支鉉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