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페 우산

나빈展 / NAVIN / 娜斌 / painting   2015_0826 ▶︎ 2015_0831

나빈_아침 노랑_캔버스에 유채_60.5×60.5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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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빈 블로그_http://blog.naver.com/artist1112

초대일시 / 2015_082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 ~ 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ganaartspace.com

걷는 듯 천천히 그린다는 것 ● 자주 쓰이고 남용되어 왔다는 불편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들이 여전히 자신의 일상을 그리는 데는 단단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건 그림을 그리는 나빈도 마찬가지여서, 그가 가진 관심사의 대부분은 분명 일상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작가만의 특별한 일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그는 긴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갈구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나 홀로 감당하고 극복해야만 했던 불안의 시간들, 어느 날 그 아픔을 견디게 해준 누군가를 만난 환희, 이후 작가에게 일상이란 반드시 상투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체감케 했다. 일상이 하나의 시적인 풍경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그림으로 옮기고픈 깊은 갈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빈의 작은 그림은 나지막이 속삭인다.

나빈_빛,길_캔버스에 유채_45.2×65cm_2015
나빈_winter light(내가 널 지켜줄게)_캔버스에 유채_64×50cm_2015
나빈_조각_캔버스에 유채_47×52.7cm_2015

나빈의 그림은 밝은 듯 하면서도 어딘가 우울한 기운이 감돈다. 그건 전적으로 작가가 선택한 색채 때문이다. 작가가 주로 사용한 노랑과 그 반대에 놓인 파랑 또는 초록은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상을 소리 높여 말하지도, 그렇다고 뒤로 감추지도 않는 적절한 감정선을 유지한다. 에피소드처럼 단절화되어 있으면서도 그녀가 일상에서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짐작케 하는 이야기 역시 그림과 그림 사이의 파편화를 절묘하게 막는다. 누구보다 일상의 소소한 풍경이 소중했을 작가였기에 복합적인, 다중의 정체성을 갖는 일상의 이미지를 간취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힘겹게 회복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기억과 그의 살갗을 스친 생활의 발견. 커다란 그림이 미술관을 채우고, 작가가 온전히 이해했을까 의심스러운 거대한 이야기가 난무하는 지금-여기의 미술 속에서 나빈의 작은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행간'의 여운을 선사해준다.

나빈_병아리_캔버스에 유채_24.2×33.4cm_2014
나빈_둘_캔버스에 유채_33.4×24.2cm_2014_2014
나빈_선명_캔버스에 유채_31.8×41cm_2014
나빈_showcase_캔버스에 유채_34.2×100cm_2015

세계적인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은 언젠가 음악은 말하자면 '이동'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처럼 흘러간다는 생각을 평화롭게 받아들일 때 음악이란 그리고 인생이란 가장 행복하다고, 비록 그것이 반드시 좋은 방향이 아닐지라도 모든 것이 변하고 진화한다는 생각에 내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행복할 수 있다고 거장은 고백한다. 그건 미술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이에겐 고향이나 집처럼 편하게 느껴지지만, 또 어떤 이에겐 언제나 떠돌아다니는 듯한 정처 없는 공간이 미술이다. 분명한 건 미술을 하는 자는 미술의 공간에서는 힘겹되, 미술이라는 관념 속에서는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많은 자들이 미술을 영영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물질로 환산되는 스마트한 세상 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자신을 한탄하되 결코 넘어지지 않는 자들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여전히 미술의 눈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그런 믿음이 내게는 있다.

나빈_밤빛_캔버스에 유채_24.2×33.4cm_2014
나빈_한강진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5

현대 일본 영화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에세이집의 제목은 '걷는 듯 천천히'다. 새 영화를 만들 때마다 세인의 시선을 모으는 재주를 갖춘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강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면에서 숨쉬는 '일상'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의 영화를 기다리는 이유는 어떤 특별한 이야기에 끌려서가 아니라 일상을 풍성하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태도와 이야기보다 '인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철학에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 대한 그의 담담한 고백을 읽으며, 그리고 나빈의 그림 앞을 서성이며 나는 무엇을 그리는가도, 그것을 어떻게 그리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여전히 그린다는 것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결국 나빈의 그림은 자신의 내면적 체험과 감정을 탐구해서 어떤 보편성에 닿는다면 지극히 작은 일상도 얼마든지 미술과,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작가에게 이 책을 선물하려 한다. 지금처럼 그리면 된다고. 걷는 듯 천천히… ■ 윤동희

Vol.20150829g | 나빈展 / NAVIN / 娜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