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寫像) Mapping

임상빈展 / IMSANGBIN / 任相彬 / photography   2015_0903 ▶ 2015_1001 / 일,월요일 휴관

임상빈_The Parthenon_람다 프린트_101.6×152.4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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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2015_0903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월요일 휴관

소울아트스페이스 SOUL ART SPACE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 해변로 30 엑소디움 Tel. +82.51.731.5878 www.soulartspace.com blog.naver.com/soulartspace

'사상'이란 원래 해석학 용어로서 수학에서는 함수 개념으로 쓰이며 'f(x)=y'의 식으로 표현된다. 이 용어는 하나의 데이터 집합(X)의 원소 x가 f의 처리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집합(Y)의 원소 y로 번역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x는 f에 의해 y로 변환, 대응되는 것이다. 디지털 그래픽 프로그램에서 '사상'이라는 용어는 3차원 대상을 평면으로, 혹은 반대로 2차원 이미지를 3차원 입체로 투사(mapping)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번 전시와 관련해서, 만약 x를 구체적인 하나의 풍경, 따라서 x들이 모인 집합 X를 세상 전체(the world)라고 말한다면, f는 세상을 보는 나만의 방식(a world view)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x(하나의 풍경)가 f(나)를 통하여 번안된 y는 하나의 작품(a work), 집합 Y는 나의 작품 전체(artwork)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세상을 보는 나의 방식(f)에 따라 주목하는 풍경(x)이 선택되고 각각의 작품(y)이 제작된다. 이번 전시는 크게 3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10점의 사진, 20점의 드로잉, 그리고 1점의 설치가 그것이다. 나는 사진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를 바라보며 그 매력과 불안감, 그리고 우리의 욕망을 표현한다. 한편, 나는 드로잉 작품을 통해 주변을 느끼며 에너지의 흐름을 표현한다. 또한, 설치 작품을 통해 이미지가 말소된 빔의 상태를 상상하며 그 개념을 표현한다.

임상빈_Ground Zero_람다 프린트_152.4×101.6cm_2015
임상빈_Cappadocia 3_람다 프린트_140.9×121cm_2015

1. 작품 감상 ● 전시되는 사진, 드로잉, 설치 작품은 서로 상이한 작품이다. 하지만 크게 보면 이 모든 작품들에 공통된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미적 감수성(aesthetic sensitivity)'의 고양을 통한 진정한 아름다움의 추구이다. (1) 아름다움의 추구 ● 나는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라 함은 크게 세 가지이다. ● 첫째, 아름다움은 창조적 생명의 질서이다. 생명의 경험은 언제나 아름답다. 생명력은 아무렇게나 흩어질 것 같은 혼돈의 카오스(어두움) 속에서 스스로 코스모스의 질서(밝음)를 찾는 능력이다. 나는 완성된 구체적인 모습을 계획하지 않고 작품을 시작한다. 따라서 처음에는 막막함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느낌의 '관성(inertia)'을 따라 조형요소들을 엮어가다 보면, 희한하게도 모든 것이 제 길을 찾아가며 결국 완성의 단계에 다다르는 경이로운 경험을 한다. 나는 작품을 제작하며 이러한 과정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 둘째, 아름다움은 유기적인 어울림의 매력이다. 아름다움(美)은 판단(眞: 맞다)이 아닌 욕망(快: 즐기다)과 가치(善: 좋다)의 문제이다. 미인의 얼굴과 같은 어울림의 현장에는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이 간다. 다양한 악기를 활용하여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처럼, 나는 작품을 제작할 때 화면의 조형요소들을 최대한 조화롭게 조율하여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 셋째, 아름다움은 온 몸으로 느끼는 총체적인 활동이다. 머리뿐 아니라 가슴과 배, 즉 오장육부와 사지의 근육으로 느껴야 비로소 그 절정감을 맛본다. 사실 넓게 보면 이지적 판단 또한 기질, 습관,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감각적인 태도의 하나이다. 결국, 지성(intellect)과 감수성(sensitivity)은 하나의 유기적인 활동을 지칭하는 다른 측면이다. 나는 작품을 제작할 때 사고와 감각, 즉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미적 경험을 중시한다. 물론 모든 아름다움이 동등할 수는 없다. 내가 추구하는 고차원의 아름다움은 크게 세 가지이다. ● 첫째, 고차원의 아름다움은 불변의 실체성이 아닌 변화의 지속성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은 마치 원래 있던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완결된 명사형이라기보다는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형용사적 진행 과정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만개한 꽃은 시들기 마련이다. 따라서 꽃을 미의 완성이라 한다면 그것은 너무 처연하다.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죽음을 초월한다. 결국,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세상풍파를 견디며 피어나고 있는 꽃의 생명력이다. 따라서 나는 작품을 제작할 때 사물 자체보다 그것을 아우르는 에너지의 진행 과정에 주목한다. ● 둘째, 고차원의 아름다움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찾아진다. 완벽한 조화의 상태는 변화의 가능성을 일체 배제한다. 하지만 변화(움직임)야말로 생명의 특질이다. 결국 진정한 아름다움은 기운이 생동할 때에야 비로소 발현된다. 이를 위해서는 긴장을 멈출 수 없는 부조화와 불균형의 불안감이 필요하다. 마치 협화음에 불협화음을 적절히 활용하여 묘한 선율을 만들어내듯이, 나는 작품을 제작할 때 이해할 수 있는 당연하고 안전한 모습에 과장•왜곡•변형 등의 방식을 활용, 위태로움과 불안감을 가미한다. ● 셋째, 고차원의 아름다움은 이성적, 논리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아름다움은 이미 존재하는 토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정합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실 본다는 행위는 안다는 인식작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고 싶은 만큼 본다. 보는 사람의 사상과 태도에 따라 똑 같은 사물이 아름답게도, 혹은 그렇지 않게도 보인다. 결국, 진정한 아름다움은 피부(외면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얻어질 수가 없다. 그것은 심오한 정신계(내면의 깊이)가 뒷받침되어야 지속 가능하다. 따라서 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위하여 나의 사상과 태도를 적극적으로 논한다. 때에 맞는 날카로운 비평은 조형의 아름다운 조화만큼이나 무척 아름답다. 다음 장에서는 사진, 드로잉, 설치 작품 순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이들을 아우르는 전시의 기획의도를 밝힌다.

임상빈_Panathinaikon Stadium, Athens_람다 프린트_93.9×153cm_2015
임상빈_Stairs at the Met Museum_람다 프린트_35.5×50.8cm_2014

2. 사진 ● 전시되는 사진 작품은 미국 예일대학교의 도서관,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911 현장, 두바이의 사막,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 그리고 올림픽 경기장, 터키 카파도키아의 풍경, 괌과 하와이가 혼재된 해변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도서관과 미술관은 문화 권력을, 맨해튼과 두바이는 거대자본의 풍경을, 그리스 아테네는 서구의 지성을, 터키와 괌 그리고 하와이는 자연의 상품화를 비유한다. (1) 나의 관심: 자본주의 풍경, 미디어 문화, 이미지 구축, 데이터베이스 활용 ● 내가 사진 작품을 통해 보이는 관심은 크게 네 가지이다. ● 첫째, 나는 현대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달콤함과 씁쓸함의 아이러니에 주목한다. 막대한 자본의 투입으로 크고 높게 만들어진 거대고층건물(megastructure)은 물질의 풍요와 상품의 향연, 그리고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또한 지구촌 관광지는 달콤한 휴식과 여흥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매력적인 풍경이지만 한편으로 알 수 없는 불안감도 느껴진다. 무한경쟁의 생존게임으로 자본에는 거품이 끼고 시장은 포화상태에 도달했다. 누구나 즐기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 둘째, 나는 미디어문화가 조장하는 인간의 욕망을 연민한다. 대중미디어는 교육과 홍보를 통해 지구촌을 균질화•표준화시켜 소비자 인구를 늘리고 자본 투자의 효율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였다. 이렇듯 미디어는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서로간에 '비교의식'을 조장하였고, 그 결과, 우리는 끝없는 욕망을 위한 채워지지 않는 결핍 혹은 과다한 잉여의 굴레로 몰리게 되었다. 이제 욕망은 우리 모두의 주인이다. ● 셋째, 나는 디지털이미지구축이 주는 몰입감과 진실성을 좋아한다. 이미지 처리 기술의 발달로 사진은 법적인 효력을 상실했다. 또한 보들리야르는 현대사회를 극실재(hyperreality)가 난무하는 시대라 지적하였다. 그는 걸프전의 TV 생중계를 예로 들며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이미지가 실재를 지배하고 대체하는 현상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예술로서의 이미지 구축은 사실의 재현이 아니다. 결국 그것은 다른 종류의 진실성을 드러낸다. 나의 세계관으로 표현된 인식의 풍경은 그 자체로 진실된 자신의 모습이다. ● 마지막으로 나는 작업을 위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방식을 즐긴다. 디지털 사진과 영상의 보급으로 앞으로의 정보는 영원히 생생할 것만 같다. 내가 축적하는 데이터베이스는 나의 작업에 훌륭한 원천이자 동기가 된다. 또한 인터넷 네트워크의 발달로 참조할 수 있는 데이터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마치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바다의 모습이다. 결국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것은 무한한 데이터베이스를 창의적으로 조직하여 새로운 데이터로 재구성하는 처리능력이다. (2) 표현의 방법론: 사진 촬영, 후반기 작업, 조형적 특성 ● 내가 사진 작품 제작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론은 크게 여섯 가지이다. ● 첫째, 나는 촬영시 사진의 질뿐만 아니라 양을 중시한다. 모인 이미지들이 추후에 어떻게 쓰일지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또한 나의 경험을 한 장의 사진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렌즈와 해상도의 한계가 크다. 따라서 나는 오랜 시간을 촬영지에 머무르며 풍경을 구석구석 관찰한다. 나만의 감각과 오랜 훈련을 통해 형성된 감수성은 현장에서 촬영할 대상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경험상, 생각보다 많이 그리고 꼼꼼히 찍는 것이 중요하다. ● 둘째, 나는 보이는 풍경뿐만 아니라 시선의 문제에도 주목한다. 풍경을 그저 대상으로만 취급하지 않고 상호간에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한다. 미술관에 가면 작품을, 해변에 가면 파도를, 관광명소에 가면 사람들을 본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수많은 시선들도 유심히 살핀다. 나만 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서는 내가 보는 풍경이 도리어 나를 보거나, 보는 나를 내가 다시 보게 되는 진귀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또한 촬영 후 사진을 검토하면서, 그 당시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나를 바라보던 시선의 존재를 그제서야 알아차리기도 한다. ● 셋째, 나는 후반기작업(post-production)에 오랜시간을 투자한다. 이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풍경의 몰입도를 높인다. 외장하드에는 작업화되지 않은 수많은 사진들이 내가 영감을 받기만을 기다린다. 나는 마치 전시기획자(curator)처럼, 때에 따라 적합한 이미지를 꼼꼼히 선별, 배치해보면서 나만의 콜라주(collage) 풍경을 구축한다. 따라서 사진을 찍은 시점과 작품으로 완성된 시점은 보통 상당한 시차가 있다. 또한 수많은 사진들이 작업화되지 못하고 결국 버려진다. ● 넷째, 나는 넓게 조망되는 광경과 높은 해상도를 선호한다. 이를 통해 멀리서는 광경을 조망하고 다가가서는 사물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피는 복합감상을 유도한다. 나는 보통 빈 화면의 중간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마치 도시설계사(city planner)처럼 사진 이미지들을 정교하게 이어 붙이면서 광경의 면적을 조금씩 확장하며 전체적인 구조를 정해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확장을 멈추고 구조를 마무리 지어야 할 지점을 파악하게 된다. 그 후에는, 나는 무대감독(stage manager)처럼 구체적인 이미지를 부단히 수정하며 해상도를 높인다. ● 다섯째, 나는 대립되는 요소들을 관계 맺고 충돌, 긴장시키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를 통해 서로가 강조되어 더욱 생동감 넘치는 화면이 된다. 나는 자연과 도시, 인간과 건축물, 전통과 현대, 실제와 가상, 구상과 추상, 사진과 회화, 전체와 부분, 아날로그와 디지털 등 대립항들의 만남을 한 화면 내에서, 혹은 이면화•삼면화 등의 다면화로 표현한다. 특히 다면화의 경우, 이미지의 환영(전체)과 물질로서의 사물(각 패널)의 관계를 긴장시키는데 탁월함을 발휘한다. ● 마지막으로, 나는 기념비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이미지를 선호한다. 이를 통해 관람객과의 대화가 한층 효과적이고 수월해진다. 주된 구조물을 넓은 장소의 중간에 정면으로 배치하고 수직•수평을 잘 맞추며 하늘 등 주변 환경을 조화롭게 배치시켜 주목도를 높인다. 또한 이미지의 피부를 아름다운 색•채도•명도•질감으로 덧입혀 조형요소간의 심미적인 조응성을 높인다. 나아가 아크릴이나 유화로 종이나 캔버스에 붓질한 흔적을 촬영, 사진 이미지에 덧입히는 회화적인 표현을 가미하여 매력적인 화면을 연출한다. (3)의미와 가치: 담론의 확장 ● 내가 사진 작품을 통해 제기하고자 하는 예술담론은 크게 네 가지이다. ● 첫째, 나는 자본주의의 욕망이 주는 환영과 좌절의경험을연민하며나만의비판적인시선으로 현대사회의 풍경을 담아낸다. 주변에 수많은 건물 숲이 솟아나며 경쟁한다. 어릴 때는 이 건물 중 몇 개는 훗날 내 것이 되리라 꿈도 꿨다. 한편, 1995년, 서울 한복판의 삼풍백화점 참사를 피하면서, 2003년, 뉴욕에 도착한 첫날, 미국의 역사적인 대규모 정전사태를 경험하면서 도시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나아가 1997년과 2008년, 거품경제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자본에 대한 욕망과 투기 중독을 목도한 경험은 아직도 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매혹적인 자본주의의 광경에 도취된다. 결국, 나는 도피하기보다는 이를 직면하고 인정함을 통하여 내가 사는 사회의 달콤함과 씁쓸함, 황홀경과 암울함을 표현하며 그것의 사회문화적인 의미를 성찰한다. 예를 들어 'Ground Zero'에서는 911 이후 다시 세워진 Freedom Tower를 통해 글로벌 패권주의와 거대자본의 현장을 목도한다. 'Desert'의 사막 뒤로 빼곡한 뉴욕 마천루들을 통해 지구촌의 균질화 문제를 제기한다. 'Panathinaikon Stadium'을 통해 꾸베르탱의 올핌픽 구호 'Citius, Altius, Fortius(더 빨리, 더 높이, 더 쎄게)'를 돌아보며 현대사회의 과도한 경쟁, 상업주의, 획일적 기준에 대해 고찰한다. 'Beinecke Library, Yale University'를 통해 지식 데이터베이스의 축적을 보여준다. 'Acropolis'를 통해 현대철학의 원류가 된 희랍사상을 돌아보며 기하학적, 수학적, 논리적, 과학적 이성에 대해 고찰한다. 'Stairs at the Met Museum'의 수많은 관람자들을 통해 미술관의 문화 권력을 보여준다. 유명한 관광지인 'Cappadocia'를 시선과, 'The Parthenon'을 입장티켓과 병치시키고, 'Sea-Land'에서는 해변을 뒤집어 보아 지구촌 관광문화를 성찰한다. ● 둘째,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언어가 중첩된 회화적인 디지털 사진을 지향하여 현대사회의 탈장르적 혼성문화의 경향을 보여준다. 나는 어려서부터 회화를 전공한 경험과 뉴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사진이라는 형식을 나만의 언어로 재창조해 왔다. 전통적으로 회화는 빈 화면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붓질의 흔적들을 중첩시키며 이미지를 구축한다. 또한 형태, 색상과 더불어 질감의 맛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물성을 강조한다. 이에 영향을 받아, 나는 찍는 사진이 아니라 만드는 사진을 지향한다. 예를 들어 나는 오랜 시간 여러 각도로 촬영하고, 이미지들을 섬세하게 선별, 연출한다. 풍경에 보이는 물체를 나의 의도에 맞게 재배치하거나 생략하여 구성의 묘를 살린다. 이미지의 작은 부분들을 마치 각각의 붓질인 듯 쌓아가며 이미지를 구축한다. 또한 실제 붓질의 이미지를 중첩하여 회화적인 질감의 맛을 살린다. 나아가 작품 이미지에 맞는 최적의 크기를 정하고 액자 형식을 다변화하여 특유의 물성의 맛을 보여준다. ● 셋째, 나는 데이터베이스를 적극 활용하여 후기정보화시대의 상호 참조적 경향을 보여준다. 사진을 촬영, 저장한 후, 마치 전시기획자처럼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끊임없이 참조한다. 또한 최소 픽셀 단위까지 모든 조형요소를 섬세하게 조율하여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 이상의 특별한 단계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때그때 결정되며, 작품마다 상이하다. 예를 들어 'Ground Zero'에서는 Freedom Tower를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였으나 하나의 각도만을 넣기로 결정한다. 'Desert'에서는 이전에 촬영했던 마천루 사진들을 합성한다. 'Panathinaikon Stadium'에서는 여러 지점에서 촬영한 후 하나의 지점을 선택한다. 'Beinecke Library, Yale University'에서는 사방을 촬영하였으나 일부만 남기기로 결정한다. 'Acropolis'에서는 원형계단을 여러 번 돌며 촬영한 후 선택적으로 이어 붙인다. 'Stairs at the Met Museum'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촬영한 후 재배치한다. 'Cappadocia'에서는 여러 지점에서 촬영한 후 선택적으로 이어 붙인다. 'The Parthenon'에서는 여러 유적들을 촬영한 후 재배치한다. 'Sea-Land'에서는 여러 휴양지를 촬영한 후 선택적으로 이어 붙인다. ● 마지막으로 나는 내 작품이 작가만의 협소한 정의와 주장을 넘어 보다 풍성한 담화체계로 읽히기를 바란다. 나는 답을 내리는 닫힌 구조가 아닌 다양한 질문을 하는 열린 담화를 지향한다. 작품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나의 의도가 불변하는 텍스트로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읽히는 방식은 그것이 놓이는 상황과 맥락, 그리고 작가로서의 나의 생각과 다른 이들의 감상과 비평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결국, 진정한 예술의 가치는 옮고 그름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달라지는 이해의 폭을 넓히고 공감의 깊이를 더하는데 있다. 따라서 작품을 넘어서는 풍요로운 인문학적 성찰이야말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고차원적인 아름다움을 발현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기제이다. 이를 위해 나는 풍성한 담화를 위한 사고체계인 '삼위론(Trinitism)'을 제안한다. 나는 이 사고에 익숙한 신인류를 '면인(Face Man)' 혹은 '호모트리니티엔스(Homo Trinitiens)'라고 부른다. 그들은 대결을 위한 점적인 입장(a point)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화를 위한 면적인 사고(a spectrum)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즉, 그들은 특정 사안을 파악할 때 단순히 하나의 입장만을 정하고 이를 고집하지 않는다. 다양한 관점들을 복수의 개념 축(X•Y•Z)으로 설정하고 이로부터 여러 가지의 구체적인 '삼위소(a T-unit)'를 형성, 사방으로 의미의 관계항을 만든다. 또한 자신이 만들어낸 사고의 면을 다른 면들과 겹쳐보고, 부단히 수정, 보완, 확장함으로써 자신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하며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심화한다. 나아가 책임 있는 판단의 소양을 다지고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으며 앞으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 마르지 않는 물처럼 미지의 세계로 내 작품을 열어놓고 싶다.

임상빈_Acropolis_람다 프린트_132×121.9cm_2015

3. 드로잉 ●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 작품을 사진 작품과 함께 전시한다. 드로잉 작품은 2008년 서울과 뉴욕의 개인전 이후 개인전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사진과 드로잉은 개념적인 대립항으로서 감상의 스펙트럼을 넓혀주며 서로의 개념을 명확하게 강조한다. 예를 들어 사진 작품이 실제로 있을 법한 극실재(hyperreality)를 만들어내어 '화면 안으로의 몰입감'을 중요시한다면, 드로잉 작품은 재현을 거부하고 우리 주변의 '에너지의 흐름과 자취'를 표현한다. 사진 작품이 유형의 세계에서 사물의 광학적인 피부를 채집, 조작하여 '유사 세계'를 창조해낸다면, 드로잉 작품은 이면의 변화•생동하는 '무형의 세계'를 드러낸다. 사진 작품이 기념비적인 형태와 색의 강렬한 명도•채도 대비로 '주목도 높은 광경'을 만든다면, 드로잉 작품은 오로지 검고 가는 선만을 사용하여 자국을 남김으로써 조용히 명상하는 듯한 '관조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사진 작품이 하나의 픽셀도 놓치지 않는 '밀도 있는 완성도와 총체적 완결성'을 보여준다면 드로잉 작품은 섬세한 선묘를 기반으로 정제되지 않은 자국 또한 드러내어 아직 생성중인 '미완의 상태'를 강조한다. 사진 작품이 세상의 다양한 풍경을 데이터베이스로 참조, 보여주고 싶은 풍경을 재구성함으로써 '사회문화적인 예술담론'을 형성한다면, 드로잉 작품은 비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빈 화면에 즉각적인 감각을 쏟아내어 독특한 '우주론 데이터'를 생산한다. (1) 자연의 기본요소 ● 전시되는 드로잉 작품 20점은 크기가 27x34.6cm 혹은 34.6x27cm, 매체는 pen on paper로 동일하다. 마치 주역이 만물의 기본요소로 8괘(땅, 하늘, 물, 불, 바람, 천둥, 연못, 산)를 제시하듯이, 나는 우리 주변의 기본구조를 드로잉 작품으로 보여준다. 건물 시리즈(Ground Zero, Twin Tower, The Trinity), 시선 시리즈(The Eyes, The Glasses, Within 5cm), 옮고 그름(O, X), 달과 해(The Moon, The Sun), 땅과 하늘(The Sea, The Sky), 비와 연기(The Rain, The Smoke), 바람과 주먹질(The Wind, The Punches), 삼위론(Trinitism), 별(The Star), 빛(The Light), 폭포(The Falls) 등이 그것이다. ● '건물 시리즈'는 끝없이 위로 솟아 올라가는 상향의 욕구를 X축(Ground Zero), X•Y축(Twin Tower), X•Y•Z축(The Trinity), 이렇게 3장으로 표현한다. 'Ground Zero'는 건물 한 채, 'Twin Tower'는 건물 두 채, 그리고 'The Trinity'는 건물 세 채가 함께 올라가는 광경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위압감과 더불어 위태로움을 드러낸다. 특히 상향의 욕망과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모든 선은 동일한 수평선에서 출발하며 각 건물의 중간은 펜이 낼 수 있는 가장 진한 색으로 그려진다. '시선 시리즈'는 본다는 행위를 보이는 풍경(The eyes), 보는 미디어(The Glasses), 둘러싸는 광경(Within 5cm), 이렇게 3장으로 표현한다. 'The Eyes'는 코의 보이는 면을 그려 시야를 시각화한다. 'The Glasses'는 안경테가 의식되는 상황에 주목한다. 'Within 5cm'는 안대를 통한 우주적 경험을 제안한다. 이 작품들은 사진 작품과 달리 풍경을 생략하고 시각 구조만을 부각시킨다. ● 대립항이 있는 작품으로는 긍정하는 기호(O)와 부정하는 기호(X), 음기를 응축하는 달(The Moon)과 양기를 분출하는 해(The Sun), 지기가 들끓는 바다(The Sea)와 천기가 들끓는 하늘(The Sky), 비의 길을 그린 비(The Rain)와 연기의 길을 그린 연기(The Smoke), 그리고 한쪽으로 불어가는 바람(The Wind)과 고정된 목표물을 연타하는 주먹질(The Punches), 이렇게 총 5쌍이다. 이 작품들은 각각 공통되는 구조가 있다. 'O'와 'X'는 삼각형, 'The Moon'과 'The Sun'은 원형, 'The Sea'와 'The Sky'는 지평선을 공유한다. 한편 'The Rain'과 'The Smoke,' 그리고 'The Wind'와 'The Punches'는 방향성(아래/위, 옆/앞)을 공유한다. 이 작품들은 대립항을 참조하면서 상대적인 에너지를 부각시킨다. ● 단독 작품으로는 담론을 풍성하게 하는 사고체계로 고안한 삼영론(Trinitism), 먼지와 같이 흩뿌려진 수많은 별들(The Star), 빛을 그리지 않아 표현된 빛(The Light), '건물 시리즈'와는 반대로 하향하는 중력 에너지를 발산하는 폭포(The Falls), 이렇게 4장이다. 'Trinitism'은 수많은 삼각형들을 겹쳐 전체의 질감을 드러낸다. 'The Star'는 종이를 우주, 점을 별로 간주하여 수많은 별을 그려낸다. 'The Light'은 종이를 빛으로 간주하여 전시장의 빛을 드러낸다. 'The Falls'는 나의 바램과 상관없는 자연의 무심함과 속도의 광포함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은 자체의 화면 속에 질서의 구조를 갖추고 각자의 에너지를 표현한다. (2) 기운생동의 미학 ● 나는 드로잉 작품에서 기운생동의 미학을 추구한다. 작품 제작의 주된 방법론은 크게 네 가지이다. ● 첫째, 나는 절제의 미를 활용하여 미적 감수성을 고양시킨다. 노자에 따르면 '빔'은 모자란 것이 아니라 앞으로 채워질 가능성을 지닌 상태를, 반면 '넘침'은 과도하여 본래의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나는 빈 화면을 '자연'으로 간주, 필요한 만큼만 선묘를 하여 여백의 묘를 살린다. 'The Star'에서는 끝없이 점 찍기를 포기하고 빈 공간을 드러낸다. 우주에는 별이 아무리 많아도 빈 공간이 훨씬 넓다. 'The Light'에서는 전시장의 빛을 느끼고자 중간을 비운다. 할로겐 조명은 동그란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낮은 색 온도로 인해 하얀 종이를 약간 노랗게 보여준다. ● 둘째, 나는 만물이 스스로의 생성과 질서의 길을 찾는유기체적 생명현상을 표현한다. 노자는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 했다. 나는 선묘를 축적하면서 서서히 화면에 질서를 불어넣는다. 'The Rain'과 'The Smoke'에서는 각각의 물 분자, 연기 분자가 움직이는 길을 화면의 시작부터 끝까지 따라 간다. 많은 길을 기록하다 보니 전체로서의 패턴이 생겨난다. 'The Wind'와 'The Punches'에서는 그리는 과정 중에 선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점차 공통된 길을 찾게 된다. ● 셋째, 나는 여러 조형요소들의 대립면을 긴장시켜 생성•변화하는 생동감을 표현한다. 주역은 하나가 압도적인 것은 길하지 않다고 하며 음•양이 균형 잡힌 유기체적 교호작용(Reciprocal action)을 중시한다. 'The Moon'과 'The Sun', 그리고 'The Sea'와 'The Sky'에서는 음각과 양각, 여백과 사물, 전체와 부분, 추상과 구상, 유기적인 선묘와 기하학적 형태, 그리고 섬세한 선과 성긴 선 등을 긴장시킨다. '건물 시리즈'와 'The Falls'에서는 정해진 영역만을 반복적으로 칠함으로써 칠해진 면과 비어있는 면을 긴장시키고, 출발하는 선의 위치는 통일하고 끝나는 선의 위치는 다르게 하여 시작과 끝의 상태를 긴장시키며, 계획적인 선의 겹침으로 만들어진 형태와 이를 위반하는 무질서한 선을 긴장시킨다. 마지막으로 나는 조화로운 화면 속에 부조화의 요소를 개입시켜 고차원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여 더 이상 관여가 불가능한 상태는 죽음을 의미한다. 반면, 완벽한 구성의 이면에 있는 위반의 요소를 드러내는 것은 살아있음의 쾌감이다. 'O'와 'X,' 그리고 'Trinitism'에서는 각각의 기본 도형이 반복, 중첩된다. 하지면 여러 도형은 제대로 닫히지 않은 미완의 모습이다. 또한 전체로서의 구조는 완결되어 있지만 채워 넣는 선은 빠르고 무질서하다. 나아가 화면은 점차 어두워지나 밝은 부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임상빈_Sea-Land 1_람다 프린트_86.3×76.8cm_2015

4. 설치 ● 나는 10점의 사진 작품, 20점의 드로잉 작품과 더불어 1점의 설치 작품을 전시한다. 설치 작품은 전시의 균형을 위반하는 불협화음으로 전시를 역동적으로, 그리고 예술담론을 풍성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1) 제3의 축의 개입 ● 전시장 한 구석에는 에너지 드링크 같이 생긴 병 하나가 라벨 없이 좌대 위에 무심히 놓여 있다. 병 안에 든 액체는 이번 전시의 사진 작품 테스트 프린트들을 갈고, 끓이고, 우려낸 초농축액이다. 그 옆에는 약의 효능을 설명하는 인쇄물이 쌓여있으나 글씨가 빼곡하고 작아 읽기 힘들다. 이 설치 작품의 제목은 '엑기스(The Extract)'이다. 이는 예술의 기력을 보충하는 보약을 의미한다. 보약(補藥)은 몸의 기능을 총체적으로 조절, 인체의 기운을 생동하게 하는 신비로운 약이며 저항력을 키워 주는 진정한 종합 비타민이다. 결국 이 작품은 전시라는 유기체 전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다. ● 이번 전시에서 사진, 드로잉, 설치 작품은 세 개의 주요한 개념적 축(X•Y•Z)을 형성하면서 감상과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 예를 들어 사진 작품이 광경 속으로의 '몰입'을 유도하고 드로잉 작품은 작동원리에 대한 '사색'을 유도한다면, 설치 작품은 인쇄물을 통해 '맥락'을 마련한다. 사진 작품이 사물을 '관찰'하고 드로잉 작품은 사물에 대해 '명상과 관조'를 한다면, 설치 작품은 사물로부터의 '거리두기와 보류'를 보여준다. 사진 작품이 이미지의 궁극적인 '완성'을 드러내고 드로잉 작품은 '과정'의 미학을 드러낸다면, 설치 작품은 이미지를 말소(sous rature)하는 '부정'을 암시한다. 사진 작품이 이미지의 '유희'를 느끼게 하고 드로잉 작품은 기의 작동 '원리'를 드러낸다면, 설치 작품은 빅뱅 이전의 모습으로 환원된 '원질'의 상태를 암시한다. 사진 작품이 보이는 '현상'을 표현하고 드로잉 작품은 보이지 않는 '관념'을 드러낸다면, 설치 작품은 표현을 소거한 '빔'의 상태를 암시한다. 사진 작품이 다양한 '비평적 시선'을 보여주고 드로잉 작품은 일관된 '주제의식'을 내포한다면, 설치 작품은 상관없는 '독자성'을 드러낸다. 사진 작품이 외부 촬영을 위한 '여행'을 느끼게 하고 드로잉 작품은 작업실에서의 '훈련'을 느끼게 한다면, 설치 작품은 어디선가 불현듯 드는 '깨달음'을 암시한다. 사진 작품이 그래픽 프로그램의 '기술'을 경험하게 하고 드로잉 작품은 유려한 '손 맛'을 느끼게 한다면, 설치 작품은 알 수 없는 '처리방식'일 뿐이다. 사진 작품이 픽셀 하나까지 조절하는 '철저함'을 보여주고 드로잉 작품은 손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면, 설치 작품은 사물의 '간명함'을 드러낸다. 사진 작품이 프린터와 인화지의 '차가움'을 느끼게 하고 드로잉 작품은 펜과 종이의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면, 설치 작품은 '무감정'의 개념만을 암시한다. 사진 작품이 프린트와 액자 등 '보존'을 위한 관례를 따르고 드로잉 작품은 가벼운 '재료'의 유희를 추구한다면, 설치 작품은 결국 '변질'될 운명인 용액의 무상함을 암시한다. 이렇듯 상호 비교를 통한 면적인 사고는 서로의 의미를 명확히 부각시켜주며 끝없이 확장 가능하다. 결국 사진, 드로잉, 설치 작품을 함께 보여주는 이 전시의 배면에는 다면적이고 복수적인 관계항들을 제시, 감상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풍성한 예술담론을 형성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나는 내가 보는 세상을 내 식으로 잘 표현하고 싶고,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수많은 관점이 끊임없이 교섭하며 의미가 무한히 확장되는 예술의 경연장을 마련하고 싶다. 현상과 관념, 부분과 전체, 가상과 실제, 표현과 재현, 감성과 이성, 시각과 수학, 인문과 과학, 사진과 디지털, 회화와 컴퓨터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져 탄생한 나의 작업은 현대사회를 다시 보고, 사회 구조와 우리의 존재를 질문하며, 새로움을 상상하고 즐기는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 임상빈

Vol.20150906e | 임상빈展 / IMSANGBIN / 任相彬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