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범 金仁範 KIMINBEOM 가브리엘 GABRIEL 등작 燈酌 DUNGZAK

등작展 / DUNGZAK Cestlavie / 燈酌 / painting   2015_1001 ▶︎ 2015_1031

등작_20C 군중 20century crowd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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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작 플리커_flickr.com/photos/dungzak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8:00pm

프라미스랜드 부산시 중구 대청동 2가 30-15번지 B1 Tel. +82.51.244.6836~7 promiseland.co.kr

인생임에 C'est la VIE ● 1 : 태어난 날, 0세 파리 오페라 구역에서 1976년 01월 29일에 태어난 아이 / 지상에서 웃으며 웃던 아기들의 탄신일. / 04세 부산 문현동 성당의 청탑에 놀라 솟은 태양에 맞불로 담배 꽁초를 물고 / 오줌을 누다. 05세 유치원에서 가브리엘로 하느님의 이름을 새기다. / 태권도 훈련 / 06세 검은 푸름의 먹에 빠지다. / 08세 시를 쓰다. / 11세 골초가 되었고 롤러스케이트에 빠지고 코카콜라와 위스키를 마시며 /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재회하다. / 13세 한국의 교육에 질겁하다. 수학공부 끝냄 / 16세 그림을 그리기로 작정하며 색채를 연구하기 시작함. 피아노 연습 시작 / 18세 부산예술학교에 입학 / 집중적으로 화면을 구성하며 재료들을 연구함. 영화공부 시작 / 22세 국방의 의무를 시작하여 끝맺음. 군사 전술에 대해 공부및 연구 / 25세 부산대 정문앞 떡배와 꼬물상을 접음. 비즈니스 수업 마침 / 28세 강원도 하대리를 뒤로하고 고향인 파리로 돌아감. 영화공부 끝, 연구 진행. / 이해의 폭이 증가하여 예술의 다리에서 지내면서 몇군데의 아뜰리에를 놔두고 / 엘리제궁 앞에서 잠을 잠. 전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많은 약속들을 함. / 그리고 약속들을 지킴. 그림 200여점이 소장되었고 전시 예정이던 작품 82점 도난. / 31세 조울증으로 진단을 내리며 정신병원에 1년간 수감. 한국의 일부 의료계의 / 비루함에 웃음. 정신분석 공부 완료. / 32세. 겨울 밤 세상이 지옥임을 보고 대신 죽으려고 해운대 바다에 뛰어들었으나 / 파도가 밀어내어 살아남. 그 후 수덕사의 은하수를 보다가 부처님의 권유로 하산. / 헌법 공부 끝맺음 / 33세 제주도 서귀포에서 끝모를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함. 작품들 모두 도난. / 34세 시카고에서 팔린 15점의 그림값을 들고 도주함. 용서함. / 35세 암스테르담 재방문 그리운 암스테르담 보스 숲을 뒤로하고 / 예술 분야 전체를 집중 공부함. / 37세 상세불명인 조증의 여파로 매일 비타민으로 생각하게 만든 리튬들을 주입 / 기괴함의 정점에 올라감. 물리공학 공부시작 / 참, 26세에 서울 흑석동에서 화재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홍익대 정문앞 / 어린이 공원에서 1년간 꿈 사랑 희망 평화를 기초로 한 작업및 인간 분석. / 2005년에 김인범 金仁範 KIM IN BEOM에서 좋아하던 동료들이 불러준 / 등작 燈酌 DUNGZAK 으로 이름을 정하고 줄달리기 함. / 39세 현재, 민방위를 끝내고 동네 아저씨로 돌아옴, 혹독하게 자잘한 지저분한 / 일들도 많았고 아픔도 있었으나 기어이 살아남, 언어학 일단락 지음. / 호치민시에 방문한 38세의 여름은 캄보디아를 둘러 아시아의 빛을 발현하게 하다. / 작곡시작. 2015년 12월 독일 베를린으로 출국. / 더 이상의 설명보다 삶의 결실인 작품들로 호흡하며 살기를 원하다. 살아오면서 /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냅니다.

등작_스무송이 장미 twenty of roses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00
등작_입맞춤 kiss_캔버스에 유채_72.7×53cm_2003

2 : 올해들어 나도 헷갈린 것이 한국에서 그림 호당 얼마로 따지고 전시 공간에서 작품이 팔리면 그림값의 절반이나 삼십퍼센트를 수수료로 뗀다는 것이었다. 오래전 이십대에 인사동에서 만난 화랑계의 사람들 중 고 구본주 작가님이 나를 보고 피카소라면서 자리에 계시던 분들께 일어나서 나보고 인사하라는 소리에 인사동을 가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와 지금이 다를지라도 한 사람의 화가가 생을 꾸려가며 작품에만 몰두하기란 정말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건 자신의 작품이 호당 얼마이니 그 이하는 절대로 작품을 팔수 없다고 하고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예술을 떠나서 인기도와 이름값을 주장하는 사람은 미안하게도 한국을 넘어서 외국에서는 알려지기 어렵다. 경매에서 많은 돈에 작품들이 팔려도 머지않아 그 사람은 사라진다. 지금도 다양한 국적의 많은 예술가들이 인간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며 각자의 고유함으로 빛을 내려고 힘을 내고 있다. 물론 한국의 작가들도 자신만의 빛을 내고 있으며 노력이라는 말로는 표현 못할 힘들을 이루고 있다. 사실 가짜 예술은 극도로 피곤함을 일으키고 혐오감을 나에게 준다.

등작_미묘한 차이 27 nuance_종이에 수채, 연필_35×25cm_2005

3 : 몇년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포트폴리오를 보내달라고 해서 두번을 보낸후 큐레이터에게서 나에게 맞는 기획전을 언젠가는 열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정말 비밀로 메일함을 비워 버렸고 이름도 이제는 기억이 않난다. 내년부터 베를린에서 여러가지를 집중 연구및 패션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 굳이 뉴욕에 발걸음 할 이유가 없다. 사실 나에게는 작품들을 전시할 공간들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거리가 좋고 어디서든 즉석에서 전시를 할 수 있기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유명한 장소에서의 전시 필요성은 못 느낄것 같다. 암스테르담의 갤러리 링카(구 이스라엘 갤러리)의 마담과 자주 와인을 마시며 80살이 넘은 그녀와 나도 게으른게 좋다는 덕담?이 전시공간에 대한 욕구를 잃게 만든지도 모르겠다.

등작_cestlavie - nuance_종이에 수채, 연필_76×57cm_2006

4 : DUNGZAK Nuance Company 의 첫 공식 사업이 패션이 된 가장 큰 계기로는 10년 전 파리에서 비밀리에 일명 명품 패션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의 작품들과 나의 작품이 경매가 붙었을 때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미소를 보내며 나의 작품에 손을 들었던 일이다. 그때부터 패션디자이너들의 요청으로 정기적으로 그들의 패션을 점검해주는 점검원의 일을 했었다. 결론적으로 점검원의 댓가인 등작 미묘한 회사와의 파트너쉽들은 일단 미루어 놓았다. 패션을 혼자서 만들어내고 혼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나의 스타일에 맞다는 합의점에 도달해서 지금은 무척이나 마음이 편하다. 일을 할 때 꼼꼼하고 날카롭고 완전한 과정을 원하고 실행하는 나로서는 패션디자이너들과 매일 마다 함께 연구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각국의 패션 산업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의 솜씨는 모두 훌륭하지만 그 노동의 댓가는 사실 형편없다. 그것에 대한 구조개선을 찾을 시간이기에 일단은 혼자서 패션의 모든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고 전태일의 평화시장을 떠올리면 명품 브랜드의 CEO 들과 어울리며 놀 시간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등작_태어나다 诞 be born coloured pencils_종이에 수채_51×35.5cm_2012

5 : 요즘에 왜 내가 작업실을 연구실이라고 하고 예술 작업을 예술 연구라고 하냐면, 5월에 서울 성균관대 앞에서 보름동안 지낼 때 만난 한 과학가가 나의 대략적인 활동을 안다면서 요즘 등작 선생님 연구실이 어디냐 물어보며 연구하시는 일이 잘 되냐고 물었을 때 번쩍 뇌리를 때리는 것이 아! 이제는 예술을 놀이라고 생각하는 관계들은 정리를 해야겠구나! 예술가를 사칭하는 이들과 관계를 정리할 때가 왔구나! 는 것이었다. 그 이후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단호하게 관계들을 정리정돈 했다. 그리고 지금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것이 당연한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 등작

Vol.20151002a | 등작展 / DUNGZAK Cestlavie / 燈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