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창작문화공간여인숙 레지던시 입주작가 결과보고전

최은경展 / CHOIEUNKYUNG / 崔殷京 / painting   2015_1104 ▶︎ 2015_1115 / 월요일 휴관

최은경_밤 골목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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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1104_수요일_05:00pm

오프닝 토크 / 「군산의 시간」- 전시작가 작품 발표 및 질의질문

주최,주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전라북도_문화공동체 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군산 창작 문화공간 여인숙 Gunsan creative cultural space yeoinsug 전북 군산시 동국사길 3(월명동 19-13번지) Tel. +82.63.471.1993 cafe.naver.com/gambathhouse

로드 아트의 개성적 성취 - 2015년 최은경 개인전에 붙여 ● 글 제목의 로드 아트란 로드 무비에서 따온 말이다. 영어로 보통, 로드 아트라고 하면 길 위에서 하는 예술 작업, 그러니까 도로 위에 뭔가를 그린다거나 설치한다거나 하는 것과 같은 작업을 가리킨다. 하지만 나는 영화 장르로서의 로드 무비가 주로 다루는 것, 즉, 주인공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거나 여행할 때 벌어지는 사건들 및 마주치는 풍광들로 이루어진, 길 위에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서, 로드 아트란 말을 쓰고자 한다. 최은경의 작품 세계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의 로드 아트라고 부를 수 있다. ● 최은경은 현재 군산의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에서 아티스트-인-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잠시 살고 있는 군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최은경이 성취해 낸 아카이브 작업 "군산 픽션들"에 관해서, 최은경은 "작업 노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군산 픽션들'은 군산의 (첫)인상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보여주는, 정주민도 여행자도 아닌 상황과 그 마음의 수고로움을 위로하듯이 어떤 지향점을 잃고 싶지 않은 일종의, 마음의 이면지(裏面紙) 드로잉이다."

최은경_귀가길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5

"군산 픽션들"은 최은경이 군산 지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100개가 조금 넘는 사진 이미지들과 각각의 사진 이미지에 대해서 최은경이 붙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 "군산 픽션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디스플레이 되었는데, 하나는 제일 작은 방에서의 슬라이드 쇼였고, 다른 하나는 프린트한 책자 그 자체의 전시였다. "군산 픽션들"은 지난 6월-7월의 전시 때에도 관객들에게 선보였던 작품인데, 그 때에는 목탄과 라인테이프에 의한, 전시장 벽 위에서의 작업이 곁들여지기도 했다. ● "군산 픽션들"은 레지던시를 하고 있는 작가, 그러니까 최은경의 표현으로는 '정주민도 여행자도 아닌' 예술가의 내면에 투사된 바의, 오늘날 군산의 크로노토프(chronotope)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러시아 문예이론가 바흐친이 서구 소설 장르의 역사를 개척적으로 새롭게 써내려가면서 사용한 것과 똑같은 의미에서 '크로노토프(시공간)'란 말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최은경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작가가 시도할 수 있는, 해당 거주 지역과 결부된 여러 가지 가능한 작업들 중에서, 어떤 새로운 유형의 독특한 로드 아트 장르를 개척해낸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최은경_밤 산책_캔버스에 유채_112×146cm_2015

최은경의 아카이브 작업에 나타난 군산의 당대 이미지들과 거기에 덧붙여진 텍스트들은 단지 물리적이고 외면적인 것을 넘어선다. 최은경이 채집한 군산의 크로노토프 이미지들은, 일단 그 자체로, 군산 지역 곳곳의 역사적, 다시 말해서 시대사-공간사적 아우라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 그런데, 최은경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것들에다가 자기 자신의 오래된 예술적-개인사적 모티브 내지는 화두들을 투사하고 있다. 굳이 표현을 뒤집는다면, 최은경은 자기의 예술가적 내면 공간에 오늘날 군산의 크로노토프 이미지들을 투사시키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최은경이 "작업 노트"에서 '마음의 이면지'라고 표현한 것은 아마 이런 사정과 관련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일정 기간 동안 작가 최은경은 군산에 살아가고 있었던 것인데, 거꾸로 군산은 잠시 최은경에(게)서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최은경_안산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_80×100cm_2015

이번 2015년 11월의 전시에서 최은경은 여섯 점의 유화 최근작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도상적 제재나 제목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여섯 점 모두 길 위에서의 풍경을 다룬다. 2010년 초의 연작 풍경들과 비교해 보면, 당연하게도,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 우선 제목들은 다 '길' '골목' '산책'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중 네 점은 제목 앞에 '밤'을 붙이고 있고 "귀가길"도 제재라는 점에서는 밤 풍경을 다룬다. 이는 2010년 초의 '관청리' 연작들이 대개 낮 풍경을 다루고 있고 프레임 안의 오브제들이 종종 그림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었다는 점과는 대조적이다. 이번 전시에 내놓지 않은 미완성 작품들을 일단 괄호 안에 넣고 전시에 제출된 작품들만 가지고서 말한다면, 최은경은 요즘 밤거리 풍경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최은경_군산 픽션들_불탄 집_벽에 목탄, 라인테이프_230×240cm, 230×230cm_2015

한편,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우선, 내가 최은경식 스푸마토(sfumato) 및 최은경식 그리자유(grisaille)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그렇게 부르고 싶은 표현 기법들을 들 수 있다. 이들 기법은, 일단 종별적으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스푸마토 및 그리자유와 같다고 볼 수 있는데, 반면에, 탁하고 어두우며 납작하고 평면적이라는 고유성을 갖는다. 최은경의 이런 기법들에 의해서, 프레임 안의 개별적인 도상 형태들이나 오브제들은 그 윤곽이 불명료하게 표현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배경에 묻혀 버리고 만다. ● 언어학 쪽의 텍스트 이론에서의 개념들을 동원한다면, 최은경은 테마(Thema)와 레마(Rhema) 사이의 구분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처리한다. 혹은 체계-기능 문법의 용어들을 동원한다면, 토픽(topic)과 초점(focus)을 구별해서 다루지 않는다. 비슷한 얘기가 되겠지만, 게슈탈트 심리학 어휘를 쓴다면, 최은경의 그림에는 배경(ground)와 전경(figure) 사이에 명확한 형태적 차이가 없다. ● 최은경의 이전 작품들에 대해서, 보통 관객들로서는 전체적으로 다소간에 형태는 불명료하며 색감은 칙칙하다는 느낌을 갖기 마련이었다. 반면, 르네상스 화가들은 그러한 구분, 구별, 차이를 위해서, 기하학적 원근법과 대기 원근법, 키아로스쿠로, 테너브리즘(tenebrism), 토우널리즘(tonalismo) 등과 같은, 전혀 다른 계열의 테크닉들을 개발해서 써먹었던 것이다. ● 이번 전시작들에 대한 작가 자신의 설명에 의한다면, "밤 골목"(100호)는 작가가 살던 서울 쌍문동의 주택가 골목 사진을 구도의 기본 틀로 삼은 작품이다. 노란색과 빨강색이 주조를 이루는 "밤 교차로"(100호)는 거의 같은 구도의 공개되지 않은, 푸른색이 주조인 다른 작품과 색상 배치라는 점에서는 대조적인 작품이다. "귀가길"(60호)는 작가가 군산으로 돌아오는 길의 풍광을 그린 것이고, "밤 산책"(80호)는 군산 공단 근처의 밤 풍경을 제재로 삼았다고 한다.

최은경_군산 픽션들 이미지1_영상 슬라이드, 지면 작업_00:18:30, 21×14.8cm, 111p_2015

각각의 그림들로 보나 전체로 모아놓고 보나, 이번 전시에서 최은경의 로드 아트 그림들은 회화적 자유간접화법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해야 할 정도로 매우 특이한 표현적 개성을 보여준다. 최은경 작품들을 보자마자, 어떤 관객이든 간에 아주 직관적으로 최은경의 회화적 문체, 달리 말하자면, 회화적 지문이랄까 회화적 DNA를 바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최은경이 지닌 작가적 미덕 중의 하나다. ● 이번 전시의 길거리 밤 풍경 작품들의 준거점을 과거 작품들에서 굳이 찾으라고 한다면, 나로서는, 2010년에 작가가 "불"이라는 제목으로 그린 두 작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60호고 다른 하나는 120호인데, 나는 이 두 작품에서 '관청리' 연작의 정서적 통주저음을 이루고 있는 음울함의 지각을 마그마처럼 뚫고나오는 뜨거운 작가적 열정을 읽어낸 적이 있다. 물론, 이번 전시작들의 경우, 밤 풍경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은 인공 조명이라는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그런 점에서, 유산지를, 혹은 반투명한 유리를 덮어씌워 놓은 듯한 질감을 지니고 있는 "안산 가는 길"(40호)은 묘하다. 나머지 다른 것들과는 달리 낮 풍경을 다룬 것이라고 해야 할 텐데, 과거 작품들에 비해서 명도 및 채도가 비교적 높으며, 색상 배치도 그다지 퉁명스럽지 않다. 이 작품은, 당대 한국 사회 및 미술계에서, 노마지던시(nomasidency)의 체험을 매우 독특한 회화적 개성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최은경의 작가적 행로에서, 일정한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노마지던시란, 최은경을 위해서, 노마드의 그리스 어원인 노마스(nomas) 및 레지던시에서 접두사 re를 뺀 sidency를 합성해서, 내 스스로 만들어 낸 말이다. 아무튼 내가 만약 성직자라면, 최은경이 가고 있는 노마지던시의 길에 축도를 듬뿍 해주고 싶다. ■ 이재현

Vol.20151107g | 최은경展 / CHOIEUNKYUNG / 崔殷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