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피고지고

장용림展 / JANGYONGRIM / 張容林 / painting   2015_1103 ▶︎ 2015_1115 / 월요일 휴관

장용림_달개비_소식_장지에 석채, 분채_38×45.5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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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5 잠월미술관 레지던스 입주작가展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전남문화예술재단_함평군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잠월미술관 ZAMWORL ART MUSEUM 전남 함평군 해보면 산내길 60(산내리 376번지) Tel. 070.8872.6718 www.zamworl.com

저만치 피고 지고... ● 시간은 늘 꽃그늘 아래로 흘러갔다. 꽃이 피는 아픔과 꽃이 지는 눈물겨움도 꽃그늘 아래서는 그렇게 그 흐름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순간들의 시간과 꽃을 바라보는 거리를 '저만치' 라고 가늠해 본다. 저만치... 정확히 그 거리를 헤아릴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는 지척의 거리다. 지나치게 가까우면 보지 못하고 오히려 놓치게 되는 것들이 많다. 저만치 한 호흡의 거리를 두고 들여다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정확하고 향기로운 거리인지도 모르겠다. 한지 문을 사이에 두고 미세한 한지 결을 따라서 번져오는 거문고의 묵직한 소리가 더 깊이 있게 들리 듯 '저만치' 라는 거리는 그만큼 적당한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장용림_달개비_저만치 피고지고_장지에 석채, 분채_45.5×53cm_2015
장용림_목화_바람이 부는 대로_장지에 석채, 분채_91×117cm_2015

지척의 거리를 두고 저만치 피고 지는 달개비와 목화를 바라보면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건너왔다. 두 꽃들의 시간을 함께 하는 일은 꽃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였다. 찰라, 그 짧은 순간에 피는 달개비 꽃과 두 번의 개화에서 지지 않는 꽃으로 피는 목화 솜꽃은 전혀 다른 습성을 지닌 꽃들이다. 그러나 내겐 두 식물 모두 마음의 풍경이 되어 주는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풀도 물주고 마음을 다해 키우면 꽃이 된다." 는 진리를 알게 해주신 어머니로 인해 달개비는 풀이 아니라 내겐 언제나 '꽃' 이였던 것이다. 달개비는 잎과 그 마디가 간결한 대나무를 닮았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꽃을 피우는 대나무"라고 말하며 아끼는 풀이였다고 한다. 아마도 달개비의 깨끗한 성정을 읽어냈으리라 여겨진다. 달개비는 줄기 하나만 던져놔도 어디든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뿌리를 내린다. 그 뿌리내림과 함께 마디를 키우고 긴장감이 느껴지듯 잎을 뻗어 살아가는 강함이 대나무와 흡사하다. 그러한 강한 생명력과는 다르게 푸른 입술을 지닌 쪽빛의 여린 꽃은 이슬 꽃이라고 불릴 만큼 해 뜰 무렵 잠깐 얼굴을 내비치는 순간의 꽃인 것이다. 꽃이 지는 그 짧은 찰라 마저도 보이지 않으려고 꽃받침 속으로 꽃잎이 녹아 스며드는 정갈하고 깨끗함은 닮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한다.

장용림_목화꽃이 피고_장지에 석채, 분채_50×60.6cm_2015
장용림_목화_소식_장지에 석채, 분채_38×45.5cm_2015

목화 꽃은 달개비 꽃에 비해 하루를 온전히 피는 꽃이다. 해가 뜨면 빛바랜 무명천의 그 빛깔로 환하게 꽃이 핀다. 그리고 미색으로 꽃빛이 옮겨가는 정오를 지나 해질녘이 되면 숨결 같은 연분홍의 꽃빛으로 숨을 거두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다. 그 마지막 숨결 같은 연분홍빛은 다른 꽃에서는 볼 수 없는 물기어린 분홍으로 젖어 있다. 공기 속으로 번져가는 분홍빛이 아니라 속으로 스미며 젖어드는 분홍빛인 것이다. 꽃 진자리에 목화 다래가 여물어 사십 여일을 익어 가면 그 시간의 무게에 숙여졌던 고개를 제 몸속의 물기를 거둬들이며 비로소 목화는 고개를 들어 또 한 번의 개화를 하게 된다. 목화 솜꽃이 피는 순간은 꽃이 핀다기보다는 꽃을 토해 낸다고 해야 될까, 숨결처럼 따스한 호흡의 목화 솜꽃이 허공의 빛깔로 제 자리를 밝히는 것이다. 시간의 한숨처럼 목화 솜꽃이 피는 순간을 바라보는 일은 식물의 꽃이라기보다는 무심한 사연을 듣는 일처럼 하염없다. 그러하기에 목화 솜꽃은 저만치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에 적당하다. 목화의 한 생이 고스란히 솜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장용림_Preghiera_기도_장지에 석채, 분채_60.6×73cm_2015

물기가 말라가는 생의 가장자리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들이 많아지는 철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버릴 줄 알아야 꽃은 다시 핀다고 했다.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은 목화 솜꽃도 피고 지는 아슬아슬한 경계의 행간에서 가장 견고한 바람으로 흩어지는 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 속에서 저만치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은 또한 멈춤이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멈춤 속에서 꽃이 피는 순간과 꽃이 지는 그 간극을 감지하듯 '꽃'의 흔적들을 더듬어 본다. (멀리 피어 있는 것들이 저만치 지고 있는 날에...) ■ 장용림

Vol.20151108c | 장용림展 / JANGYONGRIM / 張容林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