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zak C'est La Vie

등작展 / DUNGZAK Cestlavie / 燈酌 / painting   2015_1111 ▶︎ 2015_1130

등작_자화상 self portra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4×40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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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작 플리커_flickr.com/photos/dungzak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NC 갤러리 NC GALLERY 부산시 동래구 중앙대로 1325 이센타워 1층 106호 www.facebook.com/NC-Gallery-1522089244779642

연구 풍경 1 ● 색채를 연구해오면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인간은 태어났을 때 동일하게 인지되는 모든 색을 보고 느끼고 표현할 수 있지만 극단적인 현대의 사회 구조와 관계망에 의해서 색을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데 각 인간마다 차이가 나고 엇갈린다는 것이다. 또한 영혼이 메마른 화가들은 학습되고 연마된 색으로만 표현을 하고 그것을 시민들에게 주입한다. 오히려 화가가 아닌 순수한 아기들의 눈은 별빛 영롱한 우주를 늘 보고 있다. 내가 배워야 할 점이다. 2 ● 생명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에서 아마도, 구분하는 삶의 흐름에서 명확하다는 착각의 도취 안에서 불만족한 스스로를, 이해라는 울타리에 가두며 구원이라는 마취 속에 내버려두는. 그것을 '생명이 아닌 인간' 이라고 불러본다.

등작_숲 forest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3

3 ●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 중에 시인을 사랑한다. 한 언어가 닿지 않아서 며칠을 미쳐버린 오후 태양이 세차게 번개를 친 그 순간 비로소 시를 썼다. 언어의 창작은 고통의 산물이 다고 하는 것에도 동의하고 언어의 창작이 즐거움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에도 동의한다. 타자를 치는 속도로 나오는 나의 시들이 가끔 졸음에 빠지면 오히려 나는 기뻐하며 몽상을 즐긴다. 시는 학습되지도 않고 여러 번 고치는 것도 아니며 두고두고 다른 감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서도 표절은 표절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는 생각도 한다. 문학의 자유를 외치는 시대는 마감시간이 지났고, 문학의 순수성을 자랑하는 시대도 졸도했다.

등작_얼굴의 역사 history of fa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15

사랑이 나에게 오면 // 나는 사랑을 언어로 지하방에 새긴다. // 언어가 오면 // 시가 되길 바라며 공간에 나를 묶는다. // 노래로 찬양하는 모든 이야기들 // 우주라고 지칭한 시 안에 밀어 넣고는 // 그만 울음을 터트린다 장엄한 미사 // 시가 되길 원하던 과거의 빛나던 시절을 // 비록, 잊혀졌다 여길지라도 다시 열어둔다 // 내 곳간의 알음알음 부끄러운 것들을.

등작_풍경 landscap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15

4 ● 예술가, 구분하지 않는다. 당신이 예술가라는 사람을 만났다면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 예술가가 전날, 한 작품을 보라! 5 ● 사람을 만나는 속도는 무엇인가요? 재미로 이야기 하는 시간이다. 어떻게 한 시간 동안 만 명을, 만나서 각 개인과 대화를 깊이 나누었나요? 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상대방에게 물어야 할 이야기 같습니다. 네. 제가 물어보니 만 명이 모두 동일하게 당신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그 순간의 번쩍이는 순간순간만 기억합니다. 저는 상대방과 동시에 울었고 또한 상대방과 동시에 기뻐했습니다.

등작_자연 nature_패널에 아크릴채색_60×60cm_2015

6 ● 모국어로 한국어를 택했고 살아오면서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러시아어 독일어 아랍어 영어 등을 생활에서 자주 접하면서 언어에 젬병이 되는걸 택했다. 어느 날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의 말들을 벙어리 마냥 듣다가 갑자기 나도 모르게 각국의 말들이 술술 나와서 스스로도 당황했었다. 다음날 친구들이 영어로 네가 완벽한 현지인의 다양한 언어로 모두를 제압했다고 말하자 나는 순간 아무런 말도 못했다. 다시 모국어인 한국어로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친구들의 모국어들은 음악처럼 들렸고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지금도 영어를 쓰는 것조차 피곤하다. 지난 5월에 서울에서 중국 국적의 성균관대 유학생들과 놀면서 그들의 말들을 흉내 내다가 갑자기 한 유학생이 고대 중국어를 어떻게 아냐고 물었었다. 그때 알았다. 언어는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라는 걸. 그리고는 현재 한국말도 너무 빠르게 말하거나 너무 늦게 말한다. 자랑이 전혀 아니고 한국에서 영어 열풍으로 교육하는 지금의 현실로 보면 아마도 모국어를 상실한 외국어 습득은 뼈대가 없는 인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자신 있게 나에게 할 줄 아는 언어가 뭐냐 물으면 한반도 어를 공부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국어는 한국어이지만 그것도 아직 잘 사용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등작_당신에게 집중하고 있어요 deep focus on you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53cm_2015

7 ● 그림은 철저한 계산과 수학적 완성도에서 나온다. 감성을 흔히들 이성과 분리해서 생각을 하지만 논리적인 현상을 감성에 녹여서 그릴 때도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은 예술이 담당하는 행동과 정신 그리고 영혼의 일치와 두뇌의 핵을 조절하여 기민하게 이웃들의 아픔과 사랑에 함께할 때 가능하다. 단지 그림을 손재주로 알고 극도의 예민하고 순수한 감정의 발로를 단지 감성적인 것이라고 치부하면 화가는 될 수 없고 다만 기술자가 된다. 미술의 재료적 특성에만 주목하거나 새로운 듯 보이는 얼치기 개념미술에서 나오는 것을 선보이며 사람들과 호흡하고자 할 때 이미 사람들의 시각과 정신은 한 차원 높은 곳에서 그냥 바라본다. 만약 예술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예술은 목적을 상실했기에 아릅답다! 고 말할 수 있겠다.

등작_우리를 향해 기도합니다. pray for u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45.5cm_2015

8 ● 2015년 11월 10일 01시 28분 이후 올 한해 한반도에서의 공식적인 작품 창작과 연구는 끝을 맺습니다. 2014년 01월 01일부터 그려서 현재 포트폴리오에 남겨진 그림들이 379점입니다. 사진으로 남겨지지 않은 그림들도 상당수 있지만 379 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작년에 호치민시와 프놈펜에 다녀왔고 다음 달에는 베를린으로 출국을 하니 새삼 제 작품들을 소장해 주셔서 2년간 창작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고마움의 인사를 전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해서든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에 제 자신의, 제 자신만의, 예술을 새겨 넣는 시간들이 필요했고 다행스럽게도 지금 또렷하게 '하나의 힘'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사실 정착하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공간이 한국이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40년간 보아오고 느껴오고 부딪혔던 한국은 기쁨과 행복보다 상처와 절망감이 더욱 컸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이룬 예술품들을 이용가치만으로 접근하여 저급하게 이용하고 당혹스러웠던 예술가로서의 평가절하와 인간으로서 자존감의 상처는 앞으로 치유되기 보다는 비뚤어질 확률이 높기에 잠깐이 되었든 오래가 되었든 공간과 이웃과 친구들이 될 사람들의 변화가 필요하기에 해외로 나가려는 것입니다. 경험에 의한 예술 창작이나 연구도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지만 예술가로서 실패라는 것이 존재한다. 는 것을 신뢰하지 않고 그러기에 분명 환경의 다름은 숨 쉴 자유를 함께 주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 점의 그림을 그릴 때마다 한편의 시를 쓸 때마다 이미 이루고 있고 이루어 나가는데 유명한 예술가가 되어 아주 비싸게 작품을 팔면서 폼을 잡고 사는 것을 목표로 사는 건 끔찍하게 싫기에 한국에서 무명작가로 사라져도 별다른 감흥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한 작품을 이루어나가는 그 과정을 사랑하고 그 과정에 담긴 사람들과 존재들이 좋습니다. 그리고 한 작품에 모두 쏟고 곧바로 또 다른 작품을 찾아서 떠나고 다시 다르게 이루는 것이 행복하기에 웃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볼품없는 거리의 한 귀퉁이에 제 작품이 있거나 혹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의 작은방에 제 작품이 있거나 그럴지도 모릅니다. 0 ● Control is easy. So You deep say just NO! That's light One ■ 등작

Vol.20151111k | 등작展 / DUNGZAK Cestlavie / 燈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