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경의 제주도그리기/Landscape in Jeju

김상경展 / KIMSANGKYUNG / 金尙景 / painting   2015_1111 ▶ 2015_1117

김상경_레몬빛하늘이 있는 거문오름_유채_53×91cm_2015

초대일시 / 2015_111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세움 아트스페이스 SEUM ART SPACE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소격동 73번지) Tel. +82.(0)2.733.1943 www.seumartspace.com

이 글은 김상경의 그림에 대한 해설서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깝다. 왜냐하면 작품이 어렵지 않아서 별도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림은 제주의 바다, 섬, 하늘, 해변, 구름, 나무, 꽃 등을 있는 그대로 그린 사생풍경화다. 색채나 형태가 현실의 그것과 유사하고, 대상들이 일점 투시 원근법에 의한 공간 안에 제시되어 있는 점도 무리없이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름있는 미술관이나 전시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매체 혹은 심오한 철학적 접근을 요구하는 작품에 부담을 느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편안히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다.

김상경_거문오름_유채_91×91cm_2015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해야 점이 있다. 자신을 온통 그림보는 행위 자체에 집중시켜야한다. 그림을 보고 난 후에 가야 할 장소나 오늘이 가기 전에 처리해두어야 할 일 등 늘상 해오던 일상적인 일들을 잠시 차단해 두어야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무관계적 인간(?)으로 만든 후라야 그림을 온전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 김상경 그림의 해석자로서 스스로의 경험을 그림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기 전에 감상자인 나의 경험을 그림에 투사해서 해석하는 일, 김상경의 그림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김상경_붉은거문오름_유채_91×91cm_2015

김상경이 처음 제주도를 찾은 것은 2010년이었다. 이 후로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는 제주도 여행은 거미줄처럼 얽힌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로 부터의 잠시간의 유예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의 '정지(pause)'가 거듭되면서 애초의 '떠나있음'은 제주에서 새로운 관계망-그림 그리기를 형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점까지 도달하게 했다. 2009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시야, 앞이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마음에 의사를 찾은 그녀는 뇌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9시간에 걸친 수술. 만약 잘못되면... 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겪어야했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 지독한 갈증이 찾아왔고 거즈에 적신 상태로만 허락되던, 입술에 살짝 묻혀주던 물의 맛을 그녀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건강을 되찾은 후 이듬해에 찾게 된 것이 제주도다. 수술 전과 후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진 않았더라도 제주가 주는 느낌이 여느 관광객의 그것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생각해보면 제주도는 사실 그녀가 찾기 훨씬 전부터 그곳에 있었다. 그녀가 거기 있던 제주, 살면서 여러 번 들었을 제주를 비로소 인식하고 그곳을 찾은 셈이다. 제주는 그때부터 그녀에게 의미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의미는 힘들었을 수술을 무사히 겪어낸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정도만큼씩 변해갔다.

김상경_따라비오름_유채_91×91cm_2015

김상경의 제주그림은 크게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는 제작 시기에 따른 것으로 하나는 2012년-13년에 그리기 시작한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2014년-15년에 시작한 작품들이다. 전자에 해당되는 작품들은 보다 일반적인 의미의 사생풍경화이고 후자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색채나 형태에 있어서 작가적 변주가 이루어진 그림이다. 주로 「거문 오름」시리즈가 후자에 해당된다. 전자의 작품들이 아직 회복하는 듯한, 긴장되고 움츠러든 정서가 느껴지는 것에 반해서 후자는 부드러우면서 긴 호흡의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색채와 붓질 역시 이전과 달라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김상경_한라산1_유채_90.9×72.7cm_2015

맨 처음 글을 쓰기 위해 그녀의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그림은 「비자나무」였다. 단풍이 든 붉으스름한 잎사귀의 나무 몇 그루와 낮은 돌담, 흙바닥, 그리고 뒤로 보이는 하늘을 그린 「비자나무」는 사생풍경화다. 그리는 이의 마음에 따라 색채나 선 혹은 공간의 변화를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그러나 성실하게 그려나갔다. 보는 이를 압도하기엔 부족한 작은 사이즈로 인해 더욱 더 친근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보는 순간 뭔지 모를 것이 마음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풍경화다... '그녀는 평범한 보통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고교 때 처음 학교 화단에 나가서 그린 유화가 풍경화였고 그보다 전, 중학교 때 어느 나른한 일요일 오후, 배나무를 수채화로 그리던 것이 풍경화였다. 일점투시원근법을 사용하는 전형적인 풍경화. 10여년 정도 서로 사느라 바빠서 거의 만나지 못했던 김상경이 아주 평범한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김상경_한라산2_유채_90.9×72.7cm_2013~5

김상경은 이 시기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든 수술 이면에 남아 있을 공포와 서러움, 분노 등을 치유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몸이 마음과 함께 온전히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나와의 대화 중에 어릴 적 참가한 사생대회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와 함께 갔던 사생대회, 네 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나 길지 않은 순간이나마 엄마를 독점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참으로 좋았다고 했다. 우유와 보름달빵을 먹었던 그 시간은 대회이기 이전에 엄마와의 즐거운 나들이였고, 제주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정다웠던 장면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림은 잘 그리고 못 그리고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독백처럼 평범한 풍경화를 그리면서 상처받은 몸과 큰 수술에 놀란 마음을 추스르지 않았을까. 사진처럼 그리는 기교도, 세상을 놀라게 할 컨셉도 없는 보통의 풍경화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평범함이 주는 위대함. 그녀는 평범했던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김상경_산방산_유채_45.5×53cm_2015

뒤이어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은 대체로 「비자나무」처럼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한 작품들이었다. 「돌문화공원」, 「한라산」, 「산방산」 등 주로 2012년-13년 사이에 시작한 그림들로 「비자나무」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처음 그림을 배우는 사람처럼 성실하게 그렸다. 이 들의 색채는 대체로 어둡고 차갑고, 그리고 무겁다. 푸른 계열의 색이 지배적이다. 우연히 그런 대상을 선택해서인지, 아니면 대상들이 푸르스름해 보일, 땅거미가 드리워지는, 시간에 그림을 그려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육중한 붓질과 함께 무거운 정서가 그대로 전해진다. 예를 들어 「산방산」은 중앙에서 살짝 비켜 위치한 산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비스듬히 역광을 받고 있어서 산을 받치고 있는 바다 위로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자연히 바다는 어두운 빛을 화면 앞까지 가져간다. 붓질은 짧고 넓어 면같은 선이 가로로 바다를 채운다. 무엇인가 묵직한 것을 들고 바닷 속 깊이 침잠하는 느낌이다. 삼방산의 다양한 모습 중 왜 그 장면이 그녀의 마음 속에 들어왔을까. 「한라산」도 그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푸른색은 시원하다기보다 축축하고 차갑다. 색채가 그래서인지 공간도 위축되고 긴장되어있다. 좁고 구불거리는 황토색의 길은 「까마귀가 있는 보리밭」에서 고호가 그린 유사한 색의 세 갈래 길을 떠올리게 한다. 위태롭고 힘들어 보인다.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하늘, 하늘의 중앙을 구름이 가로 지른다. 한라산의 장대한 풍경을 품고 있으나 두꺼운 구름이 공간을 누르고 있어서 탁 트인 공간의 시원함이나 호연지기가 느껴지기보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답답하다. 이 시기에 시작된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생각했다.'힘들었구나...'

김상경_비자나무_유채_33.4×24.2cm_2015

이에 반해 2014년 이후 시작한 그림들은 상대적으로 가볍고 대담하다. 「거문 오름」시리즈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우선 사이즈가 커졌고 알파벳 V의 형태로 좌우로 시선을 멀리 널찍하게 가져가고 있어서 시원해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색채다. 주로 등장하는 억새풀 덕분이다. 억새풀은 생김새 자체가 선이다. 부드럽게 휘어 갈필로 그은 무수히 많은 선들이 바람에 따라 시선을 이리 저리 이끌어간다. 쓰다듬을 수 있을 것같이 방향을 틀어 무리진 억새풀은 때로는 하얗게 때로는 노랗게 혹은 보랏빛으로 기운을 모아 어루만지듯 색을 바꿔나간다. 「산방산」조차도 이전에 비해 가벼워졌다. 전에 보인 역광이 사라져 산이 밝아지고 바다 위 그림자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전경에는 억새풀이 새롭게 자리하고 있어서 근경, 중경, 원경의 순서로 그림을 보게 한다. 멀찍이서 바라볼 수 있다. 여유가 생긴 느낌이다. 나아가 비교적 최근에 그려진 「거문 오름」에서는 보색대비를 통해 색상의 고유한 느낌을 강조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전면에 알파벳 V의 형태로 주어진 붉은 빛이 도는 분홍빛이 하늘의 푸른색과 만나 더욱 더 분홍색다워지고 하늘은 또 레몬 옐로우와의 대비로 파란 느낌을 강조한다. 레몬 엘로우의 귀환, 김상경이 즐겨 사용하던 색이다. 이 시기의 작품은 사람으로 치면 제법 화장을 하고 나온 느낌이다. 처음 제주를 그릴 때의 긴장과 불안, 몰려드는 피로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살짝 강화된 김상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상처가 아물어간다.

김상경_한라산_유채_33.4×24.2cm_2015

그녀는 10년 전 개인전(2004. 5. 3th Exhibition)에서도 유사한 변주를 보여주었다. 다만 그때는 색이 아니라 공간의 구성에 관련된 것이었다. 당시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은 주로 가족이었고 특히 두 아이의 엄마라는 위치에서 오는 갈등과 안타까움과 사랑이 주된 내용이었다. 모두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경우 여성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엄마'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롭게 생긴 정체성으로 남성화가가 결혼으로 가족을 형성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어 아버지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미술계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서의 화가를 반기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작가도 남성작가도 그보다는 좀더 보편적 인간을 그리기를 지향한다. 특히 여성 작가의 경우는 더욱 더 그러하다. 그림이 하찮게 여겨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김상경은 가족을, 자신의 아이들을 그렸다. 그건 당시 그녀의 삶의 주된 부분이 가족에게로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김상경은 그런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그림그릴 대상을 선택하는 태도는 일관되다고 할 수 있다. 그림이 될 만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그림으로 그린다. ● 이후 10여년 동안의 삶.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은 자랐고 그녀는 좁은 실내를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10년 전 그녀의 일상을 지배하던 하나의 프로젝트를 막 통과하는 지점에 와 있다. 이 지점을 함께 지나고 있을 그 누군가에게 김상경의 그림은 그녀에게 제주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허수정

Vol.20151111l | 김상경展 / KIMSANGKYUNG / 金尙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