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트라우마 Post Trauma

고 김근태 4주기 추모展   2015_1118 ▶ 2015_1206

오프닝 퍼포먼스 / 2015_1118_수요일_03:00pm_김월식

참여작가 김월식_김진주_김황_노순택 이부록_임흥순_전승일_조습

기자간담회 / 2015_1118_수요일_11:00am

공동주최 / (재)김근태의 평화와 상생을 위한 한반도재단(김근태 재단)_서울문화재단 협찬 / 라인미디어_세진사운드 기획 / 김근태를 생각하는 자발적 문화예술인 모임 근태생각(미술평론가 박계리_구정화)

관람시간 / 10:00am~07:00pm

서울특별시 시민청 갤러리 SEOUL CITIZEN HALL 서울 중구 세종대로 110 B1 Tel. +82.2.739.5811 www.seoulcitizenshall.kr

고 김근태 선생님은 이 땅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분단체제가 평화체제로 변환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 화두는 여전히 유효한가? 이번 전시의 화두이다. 통일은 대박이라 한다. 그렇다. 통일이 되면 대박이 날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 틈에 통일이 된 후의 미래에 시선이 꽂혀있는 듯하다. 그 무지개빛 통일을 누가 만들 것인가 물으면, 일단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된다. 지금이 모여 미래가 된다지만. 지금이 힘든 나에게 통일은 역시 절박한 물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분단 또한 내 문제가 아니다. 분단은 고리타분한 아버지들의 화두일 뿐이고. 우린 영어유치원을 다니며 성장한 세계시민일 뿐이다. 얼마 전 아들과 해외여행을 갔었다. 기차로 국경을 넘을 때. 아들은 동그란 눈을 하고 물었다. "왜 국경에. 철조망이 없어?" 기차 안에서 스스럼없이 외국의 아이들과 이야기하던 작은 키 아들의 질문은. 내 아들이 절름발이임을 깨닫게 했다. 분단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저 작은 아이에게도 투영되어 있었다. 스스로 겪지 않은 전쟁이, 전쟁의 상처가 내 안에 어떠한 경로로 들어와 어떻게 또아리를 틀고 있는지, 내 자식에게 우리의 역사적 트라우마는 어떻게 전이되어 있는지 들여다보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사회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 진입되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화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사회에 대한 논의들을 진행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화두에 어깨를 나란히 한 지 오래이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이분법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은 이제 촌스러운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는 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문화성을 논하는 것도 이젠 당연함을 넘어 식상하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면 꼬리뼈의 존재를 새삼 깨닫고 무척 아파하듯이, 우리에겐 자극이 가해지면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강력하게 튀어나와 동작하고, 극단적 이분법이 내 안을 장악한다. 자기 검열을 시작한다. 그리곤 금새 또 망각한다. 누군가는 집단적 방어심리라고 하고, 그것을 잉태하고 있는 것은 '전쟁'의 그림자라고 한다. ● 역사적 트라우마는 그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 발생한 사건에 의해 생긴 트라우마가,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특정한 집단의 심리적 상처로 전이된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트라우마는, 특정한 집단의 무의식 속에서 상처로 각인되어 있지만,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상처를 불러내는 현재적 요소 없이 작동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상처는 망각되어 있다가 불쑥 불려나오곤 하는 것이다. 극단적 이분법과 다문화의 다양성이 공존해야 한다고 외치는 공간.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이 혼종된 세계가 이 작은 한반도이다. 그 안에서 세계시민이었다가,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아직도 논해야 하는 분열적인 상황을 익숙하게도 넘나들며 산다. 그래서 김근태 선생님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 분단체제가 종식되고 평화체제가 필요함을 역설하셨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가 세계시민이 되는 길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는 과제는 먼 훗날의 통일이 아닌 지금의 내 삶과 맞닿아 있다. 내 안의 상처가 내가 만들지 않은 역사적 사건에 의해 아프다. 내가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이 내 안의 상처에 기안함을 인식할 때, 타인의 상처를 인정할 수 있으며, 서로의 상처를 공감할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될 수 있다. 평화는 그 과정에서 불현듯 다가올 것이다. 경협을 통해 평화가 올 것이라는 생각은 그래서 순진하다. 금전적인 부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김근태 선생님 말씀처럼 평화가 밥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 고 김근태 선생님의 저항방식은 끊임없이 사회적 물리적 폭력에 평화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죽음에 가까이 갔을 때, 김근태의 몸은 어눌했고 파킨슨병에 걸려 많이도 망가져 있었지만, 손이 떨리고 고개를 꺄웃거리며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그의 몸은 평화를 상징하는 몸이었다. 폭력에 폭력으로 행사하지 않고 평화로 대답하는 것은, 자신의 세대가 겪은 폭력의 상처를 다음 세대로 전이시키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와 관련된다. 민주주의를 폭압하는 폭력이나. 평화를 폭압하는 핵실험이나 그 핵실험을 반대하는 폭력적 기운들 모두가 김근태식의 평화적 방법으로 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그의 몸이 증언해준다. 상처 난 그의 몸을 지도자의 몸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우리시대의 한계를 기억하며, 외형은 멀쩡하나 상처 입은 몸을 갖은 우리들은, 오늘 이 전시를 통해 그를 기억하고자 한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서 분단의 극복, 평화체제의 확립은 여전히 필요한가? 민주주의란 수많은 선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갖고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평화는 그렇게 온다. 휘어지지 않는 정신을 품은, 부드러운 남자 김근태를 생각한다. 부드러운 직선 ● "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하늘 아래 / 사뿐히 추켜세운 추녀를 보라 한다 / 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 / 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 /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 / 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 / 몇 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 / 나도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채가 /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 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 / 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잡아 / 지붕을 받치고 있는 걸 본다 / 사철 푸른 홍송숲에 묻혀 모나지 않게 / / 담백하게 뒷산 품에 들어 있는 절집이 / 굽은 나무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본다 /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도종환) ● 이번 전시에는 김월식, 김진주, 김황, 노순택, 이부록, 임흥순, 전승일, 조습, 총 여덟 분의 미술가들이 함께 했다. 한반도의 상처와 치유, 평화와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전시 타이틀을 '트라우마'가 아닌 '포스트 트라우마'로 결정한 것은, 트라우마가 진행 중인 '인트라 트라우마(Intra-Trauma)' 상태가 아니라 트라우마가 끝난 '포스트 트라우마(Post-Trauma)' 상태에 집중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김근태 선생은 분단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의 상처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우리사회가 분단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전시에서 김근태 선생이 지키려했던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려한다. ● 여덟 분의 작가들 중 임흥순은 북한에서 온 가수 김복주와, 김월식, 이부록은 민청련의 2세들인 김은희, 이승민, 이준의, 김병민과 함께 작업을 하였다. 이들의 눈빛은 자주 젖었고, 조심스러운 몸짓을 하곤 했지만, 이들과 대화를 시작하면서, 이들이 보내준 글을 읽으며, 이들이 얼마나 건강한 청년들인지 알 수 있었다. 평화의 희망은 이렇게 온다. ●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다. 참여해주신 작가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김복주 선생님, 민청련 2세들, 공동주최로 함께 해주신 서울문화재단, 협찬해주신 네오룩, 세진사운드께 감사드린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저희들을 항상 믿고 후원해주시는 인재근 의원님을 비롯한 김근태 재단의 여러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전승일_전쟁놀이, My War_실험 애니메이션_00:04:00_2013
전승일_비상 飛上, Post-trauma, 시즌2, No. 25_드로잉_29×21cm_2014

전승일의 「전쟁놀이, My War」는 각종 신문과 잡지에서 '추출'한 사진과 텍스트 이미지들의 콜라주를 통해 자본과 전쟁의 광기로 인한 혼란을 담아낸 작품이다. 그리고 「비상」은 작가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트라우마의 극복과 치유를 예술적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다.

노순택_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바르르_장기보존용 안료프린트_108×108cm_2009

노순택은 고 김근태 전 의원을 인터뷰했던 기억을 더듬어 사진을 찾고자 하였으나 쉽게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용산 참사의 사진 속에서 우연히 그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바르르」는 그 사진과 짧은 에세이를 묶은 작업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항상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한결 같았던 고인에 대한 추모를 하고 있다.

조습_산수유_피그먼트 프린트_129×86cm_2013

조습의 「일식」 연작은 한국 현대사의 부조리와 모순 그리고 그 역사 속 야만의 기원을 찾고자하는 시도에서 제작되었다. 일식은 우리의 근대 국가가 탄생된 계기를 전쟁으로 보고, 전쟁을 겪으며 살육 되어버린 인간, 서로 죽이거나 죽임을 당해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도는 유령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작가는 분단이 현재 우리들 삶 그 자체라고 말하며, 이러한 상처받은 영혼들이 아직도 우리들 안에 내재화 되어 있다는 의심을 제기하고 있다.

김월식_받침 없는 섬 나여도_Ed. 1/3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5

김월식의 「민주주의의 불을 밝히는 성냥」은 고 김근태 선생님께서 사용하셨던 나무의자를 재활용한 작품이다. 대략 성인 2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이 나무의자에서 고 김근태 선생님께서 책을 읽으시거나 휴식을 취하셨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불을 밝히는 성냥」은 민주주의를 기념하거나 추념할 때, 또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 때 사용할 계획으로 제작되었다. 또 다른 작품, 「내일을 여는 서랍」도 고 김근태 선생님이 사용하셨던 가구를 활용한 작품이다. 작가는 민청련 2세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이들과 함께 협업하였다. 이 작품은 민청련 2세들이 가족으로써 지켜온 민청련 사건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민청련 2세들의 오늘의 이야기를 담고자 하였다. 그리고 「받침 없는 섬 나여도」는 받침이 없는 섬, 원칙이 없는 섬을 의미한다. 작가는 '남영동'에서 받침을 없애, '나여도'라는 가상의 섬을 설정하고, 이것으로 '남영동'을 상징화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여졌던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과 테러, 국가 권력의 폭력성을 시각언어로 번역하였다. 「받침 없는 섬 나여도」의 받침 ㅁㅇㅇ은 밝은 간판으로 제작되어 어두운 전시실을 밝히는 빛이 된다.

임흥순_북한산_C 프린트_140×200cm_2015

임흥순은 작품 「북한산」의 제작 계기를 김복주 1집에 실린 '보낼 수 없는 편지'라는 노래에서부터 찾고 있다. 김복주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해 현재 가수로 활동하고 여성이다. '보낼 수 없는 편지'(김복주 작사/작곡)에는 그녀가 임진강에서 북녘을 바라보며 느꼈던 고향, 부모님, 분단된 현실 등 복잡한 심정이 담겨 있다. 이 작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임진강을 대신해 북한산을 오르면서 독백하듯 이야기하는 김복주의 목소리와 산 중턱 바위에 올라 동료와 함께 '임진강'을 부르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또 다른 작품 「북한산」은 북한산 원효봉 부근에 오른 후 바라본 서울의 풍경으로, 정치, 이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인간의 불안, 슬픔과 연민, 고독, 현실의 이면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목 '북한산'은 보고 듣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김황_모두를 위한 피자_영화: 별삐쨔_혼합재료, 영상_가변크기_2009 (출연_용하役 육상엽 / 인경役 박희정 / 제작·연출_김황 / 촬영_신현규 / 극본_이지선)

김황의 「모두를 위한 피자_영화: 별삐쟈」는 일종의 디자인·다원예술 실험이다. 흔히 북한은 매체와 통신수단의 철저한 통제를 바탕으로 한 오랜 봉쇄정책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고립된 국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2008년 평양에 북한 최초 피자점이 문을 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황은 피자 만드는 법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 북한 암시장의 루트를 따라 북한 주민들에게 배포하였다. 그 후 약 6개월 동안 북한 주민들로부터 피자를 만든 사진, 여배우에게 보낸 팬레터 등의 피드백을 받았다. 그들은 김황의 동영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것은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선전인가, 아니면 우호적인 제스처인가? 모두를 위한 피자는 어떻게 디자인이 정치적 현상에 도전하여 사회 또는 문화적으로 기여 또는 충격을 가할 수 있는지 탐구한 작품이다.

이부록_평화램프_개성공단냄비_디프메트지에 실크스크린_109×78.8cm_2015
이부록_은희 리 무부 넥타이_혼합기법_36.85×27.64cm_2015

이부록의 「평화 램프」의 램프는 lamp의 등불이자 어떤 작동 상태나 과정 따위를 나타내 보이는 기계의 등이기도 하고, 고속도로가 입체 교차를 할 때, 인터체인지와 고속도로를 이어주는 ramp를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김근태 선생님이 쓰셨던 개성공단 생산 냄비를 모티프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작가는 냄비에 투영된 여러 가지 의미들, 예를 들어 남북경제협력의 흐름과 정치적 이해들, 온갖 이념들, 희망과 평화의 상징에 대하여 주목하였다. 「평화램프」는 일종의 초상 작업으로서 기호로 첨부된 역사적 인용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민청련 2세, 김병곤, 박문숙의 딸, 김은희, 이범영, 김설이의 딸, 이승민, 이을호, 최정순의 아들, 이준의, 김근태, 인재근의 딸, 김병민과 함께 협업하였다. 민청련 2세들이 부모님에 대한 기억과 유품에 대하여 쓴 글을 바탕으로 회화 작품을 제작하였다.

김진주_약속여는 중요, 약속여는중요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5

김진주는 고 김근태 선생님께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인용한 육필 메모에서 '약속'을 새롭게 발견하였다. 작가는 두 사람의 화자가 동시에 존재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관계, '약속'이라는 행위의 동력에 대해 주목하였다. 「약속여는 중요, 약속여는중요」 는 그러한 약속의 힘이 발현되는 몸짓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상자 안에 들어간 관객은 벽에 부착된 모니터 화면 속의 '약속한다.', '약속하지 않는다.'를 두고 양측으로 몸짓을 오가게 된다. 약속, 그리고 취소된 약속 사이를 오가는 몸짓과 이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이미지의 인터벌은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상자 바깥의 또 다른 관객에게 전달된다. ■ 근태생각

Vol.20151117i | 포스트 트라우마 Post Trauma-고 김근태 4주기 추모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