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도 하는 것 Sometimes What's been forgotten

정재호展 / JUNGJAEHO / 鄭在祜 / painting   2015_1119 ▶︎ 2015_1204 / 일요일 휴관

정재호_First scent_리넨에 유채_150×140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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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1119_목요일_05:30pm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30pm / 토요일_10:30am~06:00pm / 일요일 휴관

카이스 갤러리 CAIS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92-13번지 1층 Tel. +82.2.511.0668 www.caisgallery.com

내 머리 속의 이미지 ● 정재호는 기존의 회화의 방식에서 벗어나 현실 속에서 시각적인 경험을 통해 축적된 이미지들을 컴퓨터 화면상에서 배치하고, 겹치고, 지우는 과정들을 통해 구현한 뒤 캔버스, 시트지, 디지털 프린트 등의 미디움을 사용하여 관객들에게 강렬한 시각적인 경험을 주는 작업을 해왔다. 이는 소재적으로 보았을 때는 주로 도시라는 작가가 현재 살아가면서 시각적인 경험을 하는 공간을 다루어 왔다. 그는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순간적으로 떠올라 사라져버리는 머리 속의 이미지의 파편들을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까? 라는 화두에 천착해오고 있는 작가이다. 따라서 그가 사용하는 시트지나 디지털프린트 들은 의식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가지고 있는 순간성과 강렬한 여운과 흔적들을 표상하는 도구로서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

정재호_Petty mood_리넨에 유채_180×170cm_2015
정재호_Blue structure_리넨에 유채_140×150cm_2015

우리는 짧게 살펴본 작가의 작업 특성들을 일단 인지하면서 이번 개인전에서는 이전 작업과 어떤 점들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지, 혹은 이전에 보이지 않던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비교해서 살펴보는 것이 그의 이번 전시를 파악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먼저 형식에서 보이는 변화를 살펴보자. 정재호작가의 이번 개인전에 눈에 띄는 점은 캔버스에 그린 페인팅 작업만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다양한 미디움을 다루던 작가는 왜 다시 캔버스에만 집중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디지털적인 이미지는 왜 사라졌을까? 이 점이 제일 눈에 띄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전까지 그가 사용하고 있던 방식은 이미 그릴 그림의 구성을 컴퓨터의 모니터에서 먼저 구현한 이후에 캔버스나 다른 미디움을 사용하여 작업을 완성시켜 왔다. 이런 작업 방식은 어찌 보면 컴퓨터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를 실체화시키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하나의 틈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완성된 이미지를 구현하는 과정 속에서도 계속해서 새로이 연상되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변화하는 이미지들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리 완성된 이미지를 그대로 옮기더라도 작가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기억과 상상들이 엇갈리면서 쌓여지는 순간적인 이미지들의 온전한 구현이 힘들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오히려 캔버스에 직접 그리면서 실제의 붓질에 의해 레이어를 쌓아나가고 또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옮겨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방식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화면의 표현도 강렬한 색을 쓰기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화면처리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지들이 서로 강렬한 힘의 균형을 잡아 긴장감이 넘치기 보다는 서로를 채워주고 보완해주는 유기적인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치 계속 작업이 끝나지 않고 아직도 진행될 여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정해지지 않은 미완의 작업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작업방식의 변화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라는 주체가 그림의 붓질을 멈추어야 할 시점을 결정하는 그 순간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작업에서 자신의 의지와 특색을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행위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화면을 채워나가는 행위 자체에서 자신의 의식을 제어하고 통제하려는 것이 그가 작업을 통해 구현하려는 목표지점으로 보인다.

정재호_Unuseful_리넨에 유채_140×120cm_2015
정재호_Boom_리넨에 유채_80×100cm_2015

그렇다면 이제는 그가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재에 대해 살펴보자. 그의 작업 전반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속도감이 느껴지는 도로와 자동차, 화려한 네온과 빌딩 등 도시에서 흔히 마주치게 되는 일상적인 풍경들을 소재로 삼아왔다. 물론 이러한 소재들은 작가에 의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역동적인 화면구성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단순히 도시의 이미지들을 소재로 하고 있지 않다. 소재 면으로는 두 가지의 시리즈로 극명하게 구분되는데 하나는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내는 작품들이다. 이는 시각적 경험으로만 축적된 기억이 아닌 촉각, 청각, 후각, 미각 등 모든 감각을 통해 연결된 기억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본인의 기억과 생관 없는 상상하고 있던 이미지들을 구현한 자동차 사고의 순간이나, 파편들이 날리는 장면, 조용히 정지된 풍경들을 그린 시리즈 들이다. 기억은 시간적으로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다시 생각해 내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 의식 속에서 특정한 이미지로 기억되며, 명확하기 하면서 왜곡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상상은 무엇인가? 상상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 이미지들을 그려보는 것이다. 기억과 상상은 의식 속에서 이미지로 구현되는 것, 부지불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개입으로 인하여 변화 가능하면서도 고정된 이미지들로 나타난다는 점은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상상은 실제로 벌어진 적이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기억과는 다르다. 하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드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나' 라는 주체에 의해서 생성되는 이 상상을 과연 실제라고 할 수 없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 두 가지의 소재로 작품이 구분되어 나타나는 이유이다.

정재호_Sleepwalk-1_리넨에 유채_46×38cm_2015
정재호_Sleepwalk-2_리넨에 유채_53×41cm_2015

지금까지 살펴 본 정재호의 작업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축적되는 기억과 끊임없이 연상되는 상상을 자유롭게 넘나들고자 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을 이야기하는 서사구조는 다만 시발점으로서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오히려 작가는 이러한 현상과 프로세스, 그리고 이들이 교차하는 알 수 없는 묘한 지점들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감각들에 대해 예민하게 포착하고 표현해내고자 애쓰고 있다. 그가 그려내는 복잡하게 보이거나 매우 단순하게 보이는 이 작업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공감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내면의 의식 속에서 기억과 상상을 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프로세스다. 우리는 하루 종일 멍하게 있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무엇인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또 기억하고 잊어버리고 의식하다가도 무의식 속에 감추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어느 찰나에 기억과 상상의 단편들이 튀어나올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것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등장하는 마들렌의 향기에서뿐만이 아니라, 불어오는 바람에, 차가운 눈을 만질 때, 따뜻한 차를 마시다가, 떨어지는 낙엽에서, 예전에 듣던 노래 소리에서 시각으로 저장된 기억들이 '나' 가 가진 모든 촉각, 후각, 미각 등을 통해 숨어 있던 시간과 공간을 넘어 소환된다. 그리고 상상은 실제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기억과 비슷하게 이미지들이 생성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이러한 상상과 기억의 경계를 서로 넘나드는 것이 인간의 의식 속에 저장된 이미지들이 나타나는 방식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사회의 시각적인 경험은 과도한 이미지와 환경들 속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우리의 도시환경들과 주변, 그리고 유행의 짧은 주기들로 이제는 어디서 변화가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시간과 공간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고 우리들의 기억도 흐릿해져 간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의 온전한 기억인 것인가? 아니면 상상인 것인가? 우리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그 흐릿한 경계의 지점을 정재호는 추상화 되어있는 이미지의 파편들 사이에 구상들이 드러나고 흐릿하면서도 명확한 어떤 대상들이 엉켜있는 모습으로 우리의 지금 현실의 풍경이자,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기억하고 상상하는 이미지들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정재호가 이번 전시 타이틀로 정한 『잊기도 하는 것』의 실체이며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우리들의 의식 구조이다.

정재호_Build_아사천에 유채_80×65cm_2015
정재호_잊기도 하는 것展_카이스 갤러리_2015

결국 정재호의 작업은 지금도 계속해서 '나'의 의식 속에 흘러가는 선형적인 시간 속에서 순환적인 시간이 만나는 기억과 상상이라는 접점들을 끊임없이 재 조합한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들을 파편들의 조합을 통해 고스란히 작업으로 재현해내고자 자신의 의식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고,'나' 라는 주체에 의해 재해석되는 이미지들이 더 이상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선형적이고 순환적인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프로세스들이 끊임없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은 정확하게 경계가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뒤엉켜 매우 빠르게 변화하여 그 특정 순간을 담아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이를 다시 회화작업이라는 외부에 실재하게 함으로써 우리들의 의식구조를 최대한 포착하려 표현해 내고 있다. 따라서 이는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의식구조에서 시작하였지만 그의 작업을 바라보는 관객들과도 이어져 또 다르게 파생되어 나가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어짐이 그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힘일 것이다. ■ 신승오

Vol.20151119h | 정재호展 / JUNGJAEHO / 鄭在祜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