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양식 The Fruits of the Earth

갈유라展 / KALYURA / 葛儒羅 / installation   2015_1123 ▶︎ 2015_1212

갈유라_지상의 양식 The Fruits of the Earth_프로젝트 진행과정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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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유라 블로그_www.kalyura.blogspot.com

초대일시 / 2015_1127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홍티아트센터 HONG-TI ART CENTER 부산 사하구 다산로106번길 6(다대포동 1608번지) Tel. +82.51.263.8661~3 hongti.busanartspace.or.kr

지상의 양식: 과거에서 현재를 관통하는 가치에 대하여 - 커뮤니티를 향한 수행적 발걸음 ● 갈유라의 작업은 타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야기를 찾아서 자신의 스튜디오를 떠나 외부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발걸음이 닿는 그곳은 작가가 거주하는(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위해, 혹은 프로젝트를 위한 임시거주의 형태로) 지역에서 한때는 그 지역 발전사의 주체로서 경험과 기억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다. 그렇게 그녀의 발걸음은 타인의 경험과 기억을 수집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정해진 지역의 커뮤니티로 향한다. 사연 수집을 위해 작가는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지역민들의 현재 삶의 터전을 방문한다. 과거에서부터 이미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고, 그래서 이제는 꽤 강한 유대감으로 뭉쳐진 이들은 외부로부터 유입된 이방인에 대해서 그가 어떠한 지위와 목적으로 방문을 하든지 간에 본능적으로 경계적 태도를 취하게되고 적대감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그녀는 타지 인으로서 인내심과 끈기를 가지고 그들을 마주해야 하며, 최초의 접근 방식에서부터 그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드러내는 방식에까지 아주 섬세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또한, 작가 역시 특정 지역에서 거주하는/ 했던 보통의 개인으로서 이러한 과정에서 얻게 된 이야기 속에 스스로를 정서적으로 몰입시키게 되지만, 동시에 개인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보편적 차원의 정서로 환기하고자 애초에 그녀 개인의 감정이나 주관적 시선의 잣대를 들이대길 거부하고, 객관적 시선의 유지를 위한 균형에 집중한다.

갈유라_지상의 양식 The Fruits of the Earth_새로운 가치 발견과정_2015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갈유라의 작업은 잊혀진 개인의 사연으로부터 시작하여 특정 지역의 발전사를 지탱해온 주체로서의 이야기로 확장되며, 이러한 개별적 파편들이 하나로 직조되어 우리의 근현대사를 반영하는 역사적 네러티브를 드러낸다. 이를테면, 전작인 「Great Palace (위대한 궁전: 허물어진 궁전)」 (2015)에서 충청북도 청주를 배경으로 지역경제를 뒷받침하던 연초제조창을 주시하고 그것을 둘러싼 개인의 기억들을 추적한다. 그리고 지난한 반복적 행위와 고뇌를 동반하는 추적 과정의 기록은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노동과 노동자, 지역 산업화의 궤적과 그에 발맞춰 변화된 노동의 형태, 그리고 그 변화에서 도태되고 남겨진 가치와 같은 사회적 차원의 영역에까지 점차 확대 조명한다. 동시에 그녀의 작업에서 동시대 예술로서 가치를 획득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과거 불확실한 주관적 사실로만 존재할 수 있었던 개별의 기억을 현재적 가치로 치환하는 장치에 있다. 그녀의 행위가 과거 개인사에 대한 대필자로서의 역할을 넘어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현실의 가치에서 예술의 가치로 가치변환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은 그녀가 특정하는 매개체에 있다.

갈유라_지상의 양식 The Fruits of the Earth_새로운 가치 발견과정_2015

그것은 커뮤니티와의 만남이 남긴 흔적인 동시에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던 과정과 행위를 예술적 행위로 치환하는 매개체이다. 「Great Palace (위대한 궁전: 허물어진 궁전)」에서 갈유라는 생산직 노동자와 그들의 노동을 '파뿌리'로 치환하였다. 담배제조공장의 현대화 계획에 따라 1999년 연초제조창 내 담배원료공장 폐쇄를 시작으로 문을 닫게 된 청주연초제조창과 담배제조의 노동 주체였던 지역민들은 연초제조창의 주변에 위치하는 재래시장으로 모여들었다. 즉 재래시장은 연초제조창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노동력이 유입된 오늘날의 현장이며, 시대의 흐름에서 소외된 기존의 노동을 다른 형태의 노동과 가치로 흡수, 환원하는 현장이었다. 작가는 이점에 주목하고, 재래시장에서 구한 파 뿌리를 넓은 연초제조창 내 중앙에 위치한 놀이터(작가는 이를 '궁전'이라 명명한다. 이것은 놀이터의 기이한 건축적 구조에서 기인함도 있지만, 동시에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된 놀이터의 모습이 과거 찬란한 권력의 상징에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에서 재배하고 그것을 요리하여 전시의 방문자들과 함께 나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21세기 자본』에서 얘기한 현대사회에서의 노동소득의 불평등 원리, 그것에 대한 사회적 승인과 시장의 규범을 의식하듯이, 갈유라는 파 뿌리를 통해 노동자를 은유하고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노동자의 역할과 대가의 불일치, 그리고 사회적 구조와 작동 메커니즘에 관한 작가의 비판적 시선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갈유라_지상의 양식 The Fruits of the Earth_수집된 오브제, 옛날화폐, 액자_54×31cm_2015

시대의 흐름이 그려낸 생경한 풍경화 ● 산복 도로 (山腹道路)를 사이에 두고 자리한 산 아래의 집들과 그것을 내려다보듯이 혹은 그 집들이 떠받치듯이 산 정상에 자리한 고층의 고급아파트가 주는 풍경은 단번에 갈유라 작가의 눈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어쩌면 마치 전작에서부터 이어져 온 사회적 구조 안에서의 노동 계급의 문제, 노동자들의 의무와 대가의 불합리, 현대의 사회구조의 작동방식을 재현해 놓은 실제적 풍경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고급 주거지와 그 한켠에 발전으로부터 도태된 낙후된 지역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압축성장과 그에 따른 도시발전계획이 만들어 놓은 한국의 익숙한 풍경일지도 모르지만, 앞서 말한 연유와 같이 적어도 작가에게 그것은 충분히 이질적이고 생경하며, 충분히 작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산복 도로는 부산의 원도심과 개항기부터 시작된 이방인이 모여듬으로써 형성된 부산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다. 평지가 비교적 좁고 산지가 많은 부산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며, 동시에 부산의 도심부로 유입된 외지인들에 의한 도시의 난개발을 보여주는 산동네의 모습에서 빠질 수가 없는 풍경이다. 특히, 작가가 현재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산복 도로와 매립지역, 산업공단이라는 여러 시대적 조건이 교차하면서 생겨난 그 풍경이 피부로부터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지역이다. 도시계발계획이 남긴 상흔을 그대로 간직하며, 자본과 권력의 이권 속에서 지켜낸 그들 삶의 퀴퀴한 흔적이 남아있는 곳. 갈유라는 그렇게 부산 다대포 지역의 커뮤니티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의 생활 전반에 스며있는 근과거의 물건과 그것에 얽힌 기억들을 소집하기로 한다.

갈유라_지상의 양식 The Fruits of the Earth_ 김창명선생님의 근현대사적유물, 가치측정 된 고(古)화폐_가변설치_2015

그녀는 본 프로젝트에서 그것을 근현대사의 '유물'로 명명한다. 그렇기에 『지상의 양식』은 일상의 물건을 유물이라 명명함에 따른 고고학적 접근, 일종의 근현대 유물의 발굴작업과도 같다. 이것은 지역의 전문가이자 근과거 물건의 현재적 가치책정이 가능한 고물상인의 동행으로 가능해진다. 그녀는 유물의 수집과정에서 고물상인과 함께 마을주민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특정 물건을 수집하기 이전에 그것의 가치를 책정하여 60-70년대 과거의 화폐로 지불하고 수집한다. 그렇게 수집된 유물은 원 소유주인 주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와 함께 전시장 안에 병치된다. 고전문학으로부터 차용된 특정 문장이나 단어, 표현은 실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위에 덧입혀지고 새롭게 각색함으로써 시대적 배경을 드러내는 단서로 기능하며, 각색된 허구의 이야기와 유물, 단둘만이 형성하는 연관성은 일견 느슨해 보이지만 그래서 더 능동적 해석이 가능한 여지의 틈새를 확보한다. 그리고 『지상의 양식』을 이루는 또 다른,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유물과 함께 나란히 놓인 고(古)화폐이다. 이것은 「Great Palace (위대한 궁전: 허물어진 궁전)」에서 '파 뿌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획득하고자 했던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현실의 가치에서 예술로의 가치로 가치전환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갈유라_지상의 양식 The Fruits of the Earth_새로운 가치 'a'의 자료 (할머니의 화분, 수확된 결명자, 말린 까마중, 손뜨개 수세미, 납땜한 공업생산품, 호박씨, 율피, 무형문화재 등재 신청자료, 손녀의 편지, 해바라기씨, 등)_가변설치_2015 갈유라_지상의 양식 The Fruits of the Earth_2007년과 2016년의 화폐 비교 자료, 화폐의 등급(보존)상태 기준도표, 고(古)화폐, 프로젝트 아카이빙자료_가변설치_2015

수집과정에서 원소유주에게 지급된 과거의 화폐는 전시장 안에서 유물과 함께 제시되며, 작가에 의해 근현대 유물이라고 명명되지만 사실 현재적 가치는 미비한 근과거의 일상용품-비효용 경제재(經濟財)에 시대적 가치를 지닌 유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기제인 동시에 상대적인 가치에서 현재적으로 유효한 가치를 부여하는 지점인 것이다. 근과거로부터 온 유물은 사용자의 기억이나 애착과 같은 정서에서 비롯되는 상대적인 가치만을 지니는 일상의 물건이며, 사실 매매가치는 없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지표화된 가치, 즉 '화폐'를 통해 교환하고 현재의 관점에서 그것의 가치를 책정하게 함으로써 특정 시대에 대한 공동의 기억과 경험을 환기하고, 과거로부터 현재라는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에 대한 재고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동시대 유통화폐(流通貨幣)로서의 가치는 아니지만 '화폐'가 가진 지표로서의 상징성과 함께 60-70년대 과거의 화폐를 특정함으로써 과거의 가치를 현실의 가치를 넘어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갈유라_지상의 양식 The Fruits of the Earth展_홍티아트센터_2015

예술노동의 사회적 교환가치라는 기치 아래 커뮤니티로 발걸음을 돌리는 갈유라의 작업은 사회적 예술 (Social-Engaged Art)의 선상에서 그 의미를 살필 수 있다.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은 사회적 예술이란 자본주의 시장에서 판단력을 잃어버린 '수동적 방관자'인 개인이 현실과 교감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공동의 작업을 통해 잃어버린 사회적 유대를 회복하는 개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마을의 지역민들을 방문하고 그들과의 협동을 전제로 하는 그녀의 행위는 개인의 기억에 귀 기울이며, 그것으로부터 공동의 기억 즉, 특정 시대의 맥락을 끌어내 다시 그것을 통해 동시대 진정한 가치를 공유하는 유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를 지나 현재를 관통하고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가치를 탐색하는 작가의 행위, 그 과정위에서 그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결국, 갈유라가 말하는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지상의 양식이란, 한국이 근현대사를 거치며 이룩해낸 거룩한 금자탑에 대한 찬사가 아닌, 그것을 묵묵히 지탱해온 평범한 이들의 노동이 만들어낸 무형의 가치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김성우

Vol.20151123f | 갈유라展 / KALYURA / 葛儒羅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