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reodium 스테레오듐

김범중展 / KIMBEOMJOONG / 金凡中 / painting.drawing   2015_1130 ▶︎ 2015_1212

김범중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1121h | 김범중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 cafe.daum.net/gallerydam

김범중의 전시 『Stereodium』은 종이 위에 연필로 그어나간 수많은 선들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형태이다. 선들은 뭉쳐서 각 작품에서 일련의 단위를 만들고, 이 단위들이 또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주름 속의 주름, 이 겹 주름의 세계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접혀지고 펼쳐질 시간으로 잠재한다. 종이 위에 연필로 그어진 모노톤의 작품은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다. 다소간 건조해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음악보다는, 단순한 물리적 음을 소재로 한다. 음의 다양한 진폭을 가지고 흐르다가 변형되는 상태를 강조하는 작품에서 음은 여러 상황 속에서 증폭되거나 소멸된다. 소리가 휘는 현상인 회절은 다양한 방향으로 굽이치는 선의 흐름으로 나타나며, 이는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인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던 흐름이 어떤 저항에 부딪히면서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은유이다. 우리는 공기의 흐름으로 결정되는 기후를 명확히 예측할 수 없듯이, 끝없이 설득당하고 변심하는 것이다. 음의 이러한 가변성은 종이와 연필이라는 한정된 조형적 수단을 선택하게 했을 것이다. 집약된 표현을 위해서는 내용과 형식 중, 어느 하나는 단순화될 필요가 있다. 음의 색은 다양한 명암을 가지는 필선의 밀도로 결정된다. 색-음이라는 공(共)감각의 관계 속에서, 소리는 블랙의 강약으로 조율된다. 다양한 명도의 검은 선들 사이나 주변에는 여백이 있는데, 그것은 소리와 침묵의 관계처럼 서로를 포함한다. 여백은 그저 중성적이거나 수동적인 바탕이 아니다. 밀고 당기는 잠재적 움직임들로 가득한 김범중의 작품은 여백 또한 분명한 형태 및 색채로 자리매김 된다. 그는 '여백도 그린다'고 말한다. 여백은 비대칭적으로 굽이치는 생명의 약동을 섬세하게 기록하곤 한다. 동시에 형태들의 외곽선을 둘러싸는 여백은 위아래의 방향감각도 교란 한다. 그의 작품은 파장을 가지는 소리가 그렇듯이 위아래가 따로 없는 것이 많다.

김범중_Stereodium_장지에 연필_120×160cm_2015

두꺼운 종이에 날카로운 연필로 긋는 선들로 인해 단색조의 화면은 촉각적이다. 짙게 강하게 그어진 부분은 탄소가루가 공중으로 곧장 날아가 버릴 듯하다. 그의 작품은 매끄러운 표면을 유연하게 활주하기 보다는 저항을 이겨내는 과정, 즉 긁거나 새기는 느낌으로 그려진다. 필사자의 손이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연필, 그리고 음이라는 유동성 간의 결합이다. 청각과 시각이라는 두 감각의 역학관계는 우연과 필연, 열림과 닫힘, 무한과 유한같이 대조되는 두 계열의 관계로 변환 된다. 종이와 연필로만 이루어지는 엄격하고 금욕적이다 싶은 제작방식은 모호한 섞임이나 혼재가 야기하는 느슨함 보다는, 이질적인 것의 부딪힘이 야기하는 긴장감에 호소한다. 소리로 친다면, 둔탁하고 뭉개지는 소리가 아니라, 소리의 가닥들을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섬세함이 있다. 글쓰기를 연상시키는 기본적인 재료, 하얀 바탕에 그어지는 검은 선들은 마치 흑백 사진이 세상의 색을 자기방식으로 소화하듯이 소리의 세계를 축약한다. 파여진 홈을 스치는 바늘에 의해 음이 재생되는 아날로그 스타일처럼, 어떤 물리적 표면을 '흑연 바늘'로 새기는 듯한 필선이다. 김범중은 '좋은 음은 단지 들리는 것이 아니라 새겨진다'고 표현한다. 우리의 일상어 중에도 '새겨들어라'는 표현이 있다. 그는 '대리석에 바늘로 새긴 것 같은 선명한 소리의 파장'을 평면에 새긴다. 가장 자연스럽게 잡게 되는 오랜 필기구인 연필은 손과 일체화 되어 집중과 몰입을 용이하게 하며, 작업 과정은 단순 노동을 넘어서, 부질없는 세속의 욕망을 무화하려 한다. 음이라는 소재와 작업과정 자체에 내재한 수행성은 시간을 매개로 한다. 그의 작품은 파장이 흘러가는 시간을 담고 있는데, 그 시간은 '외딴 곳에 유폐 되었을 때 날짜를 새기듯이', 시간을 축적한다. 작품은 긴 기다림의 고통을 충만으로 도약할 계기가 된다. 시작과 끝은 열려 있으며, 중간 과정도 단순 반복은 아니다. 그 점에서 그의 작품은 노동과 예술의 차이를 담보하고 있지만, 신심을 가지고 경전을 필사했던 수행자들 방식을 연상시킨다. 작품은 작업자를 포함한 변형의 장이다. 반복과 차이는 정지된 화면에서 운동감을 주기 위한 방식이다. 그것은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비슷한 것의 되돌아옴'(니체, 들뢰즈)이다. 묵직한 참조대상에 의존하는 재현과 달리, 한없이 가벼운 시뮬라크르의 형식은 공기처럼 공간에 편재하는 소리의 세계와 어울린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불명료한 소리의 속성을 명확하게 시각화하려는 작품들은 듣기와 보기 사이의 척력과 인력을 전제한다. 양 감각에는 배타적 간극과 상호적 끌림이 있다. 미세한 단위는 곧잘 머리카락 크기와 비교되곤 한다. 머리카락 같은 필선들이 보여주듯이, 정보란 '의미를 만들기 위해 데이터를 나란히 배열한 것'(알렉스 라이트)이다. 소리의 파장을 선으로 표현한 김범중의 작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명확한 시각의 언어로 번역한다. ● 종이 위에 연필이라는 그의 매체는 그리기를 쓰기의 과정과 중첩시킨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변형이다. 루소가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에서 말하듯이, 글쓰기(여기에서는 그리기에 해당)는 언어의 속성을 바꾼다. 그것은 표현성을 정확성으로 대체한다. 시각은 명료함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감각이다. 가령 소리라는 불확실한 현상을 표현한 그의 작품은 어떤 관객에게는 시선에 꽂힐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말할 때 감정을 표현하고 글을 쓸 때는 생각을 전달'(루소)한다. 그의 작품은 불명료한 것들을 명료하게 하려는 예술을 포함한 모든 노력들을 압축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명료함에의 의지를 불러일으킨 최초의 불명료함을 괄호 치거나, 반대로 표현불가능성을 외치는 맹목적 태도가 있을 수 있다. 어느 하나로의 환원은 손쉽다. 분업화와 더불어 온 언어의 분화과정은 소리는 단지 소리를 낳고, 그리기는 단지 그리기를 낳을 뿐인 동종번식을 횡행하게 하고, 그것이 각 매체의 자율성과 순수성을 보장하는 기준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새로움은 다른 영역 간의 만남에서 비롯되었으며, 동질성이 이질성에 개방하지 않을 때 동어반복적인 재현 체계만이 자동적으로 실행되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다. 물론 개방은 죽음을 무릅쓴 위험이며 도전이기도 해서, 실험이란 과학과 예술 같은 첨단 영역에서나 고무된다. 실험은 여유로운 놀이의 산물임과 동시에, 자연에서 벌어지는 실험처럼 극한적 상황에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예외적 방식이다. 김범중은 이 전시에서 두 개의 항을 분명히 한다. 공중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를 평면에 고정시켜 보겠다는 조형적 발상은 표현 불가능한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숭고한 노력을 낳았다. 소리는 소리대로, 쓰기-그리기는 그것대로 존재하지만, 이 분리된 것들 만났을 때 이도저도 아닌 제 3의 영역이 생겨난다. 김범중의 작품이 걸쳐있는 청각성과 시각성은 단순히 감각의 차이로 간주되기 보다는 역사적 차원에서 생각될 필요가 있다.

김범중_Eigen Frequency_장지에 연필_112×160cm_2015

루소는 『언어의 기원에 대한 시론』에서, 말이 잘 들리도록 하기 위해 모든 음을 약화시켰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에 의하면, 언어를 가장 힘 있게 하고 게다가 보통의 문장을 본래의 모습과는 달리 특유하게 만드는 것은 소리와 악센트와 온갖 굴절들인데, 그것이 종이 위에 고착될 때는 생략된다. 김범중은 말하는 목소리를 포함한 모든 소리들이라는 더 큰 범위를 대상으로 하지만, 음이 종이 위에 정확한 선으로 고착시킬 때 그 원천의 풍부한 표현성을 어떻게 살려 내는가 하는 동일한 과제를 안고 있다. 더구나 소리는 '정제되지 않은 음들, 아직 인식되지 않은 음들'(빅토르 주어칸들)임을 생각할 때, 그리고 '소리가 정적의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정적이 소리의 효과를 낼 수 있음'(루소)을 염두에 둘 때, 작가의 과제는 무한으로 열려있게 된다. 머리카락 같이 뭉쳐진 선의 흐름 외에 어떤 참조대상도 연상되지 않는 김범중의 작품은 음의 운동에 대한 기본 성격과 관련된다. ● 빅토르 주어칸들은 『소리와 상징』에서 음의 운동은 모든 것(사물과 그들의 공간)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음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 지각된다. 음의 가시화란 시간을 바라보겠다는 것과 같다. 음은 완전하게 되기 위해 시간을 요구한다. 음은 현재의 존재를 그치고 어떤 다른 것, 즉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출현하도록 하는 요구이다. 이러한 요구에 충실한 작품은 시간적 연장이 감각 자체의 요소가 되는 대상들이다. 그래서 '측정할 수 있는 시간' 즉 '공간화 된 시간'(베르그송)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루소가 '색의 효과는 영속성에 있으며 음의 효과는 연속성에 있다'고 하면서 미술과 음악의 차이를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루소에 의하면, 공기의 작용을 따르는 소리체는 끊임없이 크기와 음을 바꾼다. 음은 곧 사라진다. 그러므로 다시 생겨나는 음이 사라진 음과 동일한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한다. ● 김범중은 선의 율동을 통해 데생과 선율을 일치시킨다. 한 공간을 점유하고 포화시키는 색에 비한다면 선은 시간적이다. 그것은 색처럼 한 번에 모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연이어서 의식에 통과됨을 말한다. 시간은 부분들의 동일성을 알지 못하는 끊임없는 순간이며, 경험의 질서, 형식으로서의 시간은 사건들을 생산한다. 빅토르 주어칸들은 베르그송을 인용하면서, 쪼개질 수도 없고 잴 수도 없는 오직 즉각적인 감성으로만 체험되고 인지될 수 있는 시간 개념을 소개한다. 베르그송에게는 잴 수 있는 시간은 공간화 된 시간으로서 그 참된 본성을 희생한 시간이다. 참된 시간은 미래로부터 솟아올라 과거로 감겨들어가는 순간들의 연속이 아니다. 진정한 시간은 지속이다. 그래서 '우리의 내적 삶의 바로 그 유동적 시간', 또는 '우리 내면적 삶의 끊임없는 선율'(베르그송)이다. 그래서 『소리와 상징』은 시간이 언제나 새로우며 새로운 것 외에 어떤 것일 수가 없다고 결론 내린다. ● 선율적 지속성은 시간적 사건이 나타나는 장(場)과 관련된다. 빅토르 주어칸들에 의하면 시간적 형태로서의 선율은 방향 지워진 긴장으로 존재한다. 전체에 속한 부분들, 전체 형식의 요소들이 앞에 펼쳐질 때 그것을 아직 보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갈 때 그것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현존케 되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전체가 지나가 버리지 않고 함께 구축된다. 부분들의 합계 이상의 전체, 즉 형태(gestalt)라고 불리는 전체는 그 개개의 부분이 각각 개별적으로 그 의미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부터 얻는다. 당면한 현재, 보존된 과거, 예측된 미래는 개개 음을 음 형태의 의미 있는 부분들로 만든다. 그러나 선율 청취에서는 아무것도 기억되거나 예측되지 못한다. 음의 본질, 그 역동성은 바로 그 자체 거기에 없는 어떤 것과의 관계에서 존재한다. 우리는 앞으로 올 음을 향해서 그 쪽으로 향해 있으며 그것을 향해서 듣는다. 소리가 상징하는 여러 인문학적 맥락에서 보자면, 흑백의 계열로 이루어진 김범중의 형태들은 미지의 것으로 도래할 시간의 형태인 것이다. ■ 이선영

김범중_Flatrum_장지에 연필_112×160cm_2015

우리는 항상 대립군의 긴장속에 살고 있다. 유일무이를 부르짖지만 그것은 언제나 양쪽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스테레오듐으로 살아가게 된다. 두 세력이 충돌하고 그것을 이해시키고 화해시키려는 논리와 이론들이 쏟아지지만 결국 또 다시 이원론의 끝없는 프렉탈로 전개되고 우리에게는 어느 한편에 서있기를 강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존재적위상은 본질적이기보다는 전적으로 상반되는 관계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정신과 물질, 주관적인 것들과 객관적인 것들, 인간의 가치와 자연적 사실들, 전방위적인 이 모든 것들이 대립되는 경계와 긴장을 허물어뜨리고 섞이게 만들면서 충돌을 해결하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결정지으며 새로운 한쪽을 만들어 낸다. (작가노트 중) ■ 김범중

김범중

On show at Stereodium, a solo show by Kim Beomjoong are the forms of time rendered by countless lines. These lines create a unit in each work and the unit forms a flow. The world of pleats within pleats is immanent as a span of time that will fold and unfold in a limited space. A monotone work created with a pencil on paper is not a representation of music in painting. The primary subject matter of his work, that looks rather monotonous, is not music itself but its physical sound.In his work underscoring the state in which sound flows with a broad amplitude and is modified, sound is amplified or becomes extinct in multifarious situations. Diffraction or the bending of sound appears as the flow of the lines meanders in several directions, including something physical and psychological. This serves as a metaphor for a situation in which the flow to a direction changes when it meets some obstacle. As we cannot accurately forecast weather determined by the flow of air, we are constantly persuaded and change our minds. ● He has probably employed limited modeling means such as paper and pencil due the variability of sound. He is required to simplify content and form for intensive expression. The color of sound depends on the density of lines with a wide variety of light and shade. Sound is tuned by the strength and weakness of blackness in the synesthetic relation of color-sound. Spaces between black lines with a brightness of great diversity and blanks around them include each other as in the relation between sound and silence. The empty spaces are neither neutral nor passive. Such blanks in Kim's works filled with pushing or pulling potential movements clearly appear in form and color. "I paint even blanks," said Kim. He used to delicately document saltation through blanks. The blanks encircling the outlines of forms disturb our sense of up and down. Like sound waves, many of his works have no distinction between top and bottom. ● His monochrome images appear tactile due to lines rendered by a keen pencil on thick Korean paper. Carbon powder in the parts where lines are rendered thickly and potently seems to blow away into the air. His images are created through a process of overcoming resistance or a feeling of scratching or carving rather than any smooth application to a sleek surface. They spring from a combination of the pencil completely controlled by hand and the flexibility of sound. The dynamics between two senses, the senses of hearing and sight, is converted to the relation of two contrasting types such as accident and inevitability, opening and closing, infinite and finite. His facture that seems draconian and even ascetic, using only pencil and paper, depends on the tension caused by a clash of foreign factors rather than looseness deriving from some mixed existence or blending. If we liken his work to sound, it is not adull, crushed sound but a delicate sound whose strands can be counted. The black lines applied to a white ground reminiscent of the fundamental material of writing abbreviates the world of sound like a black-and-white photograph embraces all colors of the world in its own manner. ● United with his hand, a pencil facilitates concentration and immersion. He tries to emasculate earthly desires in his work process, transcending its trait as a simple labor. The subject matter of sound and the quality of ascetic practice involved in his work are carried out with time. His works hold the flowing waves of time and the time is accumulated as if "carving dates when one is confined somewhere." The beginning and end of his work remains open and the middle process of his work is not a mere repetition. ● In this sense, his work demonstrates the difference between art and labor but reminds viewers of ascetic practitioners who transcribed Buddhist scriptures with deep faith. A work of art can be a sphere of variation. Repetition and difference are ways to lend a sense of motion to static images. This is not a repetition of the same thing but a return of the analogous. Unlike any representation depending on heavy referents, the infinitely light form of simulacra matches with the world of sound ubiquitous in the air. His works are intended to visualize how the ambiguous trait of sound trying to spread into the air is based on the repulsive force and gravitation between hearing and seeing. The two senses of hearing and sight are exclusive or drawn to each other. His works illustrating waves of sound with lines interpret invisible things in visual language. ● He overlaps the process of painting with the process of writing with pencils on paper. He clarifies these two factors in this exhibition. His conception to fix sound to the plane surface brings about a sublime effort to represent the inexpressible. Painting and writing are existent as they are but when these separate elements meet, a third sphere emerges. ● Kim mates his sketches and melodies through the rhythm of lines. Line is more temporal than color. Unlike colors, lines are not given to us at a time but pass through our consciousness one by one. Time is a continuation of partial moments and, as the order and form of experience, brings about events. When parts that belong to the whole and elements of the entire form unfold, the whole is constructed in the final stage. The whole is more than the sum of its parts and is also called form (gestalt). Each part gains from the whole.The immediate present, the preserved past, and the predicted future make each sound a meaningful part of form. However, nothing is remembered or predicted in his accomplishment of melodies. ● The nature or dynamism of sound exists in relation with something that is not there. We turn towards the direction of sound to come. Kim's mainly black-and-white forms are those of time that will appear as the unknown in the context of humanities sound symbolizes. ■ Sunyoung lee

Vol.20151130b | 김범중展 / KIMBEOMJOONG / 金凡中 / painting.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