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이망우 樂以亡憂

유영미展 / YUYOUNGMI / 柳榮美 / painting   2015_1202 ▶ 2015_1208

유영미_망우_스테인리스망, 아크릴채색, 석채_118×180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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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120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H GALLERY H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10 2층 Tel. +82.2.735.3367 blog.naver.com/gallh

심층(深層)에서 표층(表層)으로 부유하는 물고기 ● 빈 화판을 펼치고 그 위에 고운 망사철망을 씌운다. 내 손은 부드러운 붓을 대신해 예리한 조각용 끌을 잡는다. 그리고 날카로운 끌날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촘촘하고 견고한 철망을 헤집는다. 철망과 끌날이 부딪는 소리는 나의 귀를 간질이고, 즐거운 비명을 질러댄다. 머리카락을 쭈뼛하게 만드는 비명의 전율은 고통의 카타르시스로 환원된다. 비명과 함께 어딘가에 숨겨 놓았던 사유들이 손끝을 진동시키며 요동쳐 솟아오른다. 끌날은 마치 나의 견고해진 의식을 헝클어버리듯 그물망처럼 잘 짜인 직조물위에 조심스럽게 상처를 낸다. 철망위에 상처의 틈새를 비집고 뿌연 물고기 형상이 부유한다. 하지만 아직 그 형상은 모호하다. ● 화면은 다시 어두운 회색조에 가까운 검은 색이나 푸른색으로 옷을 입는다. 바탕칠은 호수이기도 하고, 허무虛無의 우주공간을 연상시키기도 하면서, 심연의 모호한 형상을 표층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겠다. 노자가 말하는 현泫의 색이 바로 이런 색일 것이다. 태초의 우주는 아마도 회색조의 검은색이었으리라. 세상을 구별 짓고, 쪼개어 나누는 인간의 인식을 비웃듯이 태초의 우주색은 황홀恍惚하게 뒤엉켜 경계가 없는 색이 아니었을까? ● 불분명한 형상위에 색을 덧씌운다. 그리고 저부조의 효과로 물고기의 형상은 서서히 부유한다. 그 위로 금분을 덧칠하면서 불분명한 형상이 확연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그림의 전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는 그 옛날 포정庖丁이 해우解牛하고 난 듯 나는 흐믓한 미소를 머금는다. 요즘의 작업 습관이다.

유영미_망우_스테인리스망, 아크릴채색, 석채_37×127cm_2015
유영미_망우_스테인리스망, 아크릴채색, 석채_50×73cm_2015
유영미_망우_스테인리스망, 아크릴채색, 석채_53×53cm_2015
유영미_망우_스테인리스망, 아크릴채색, 석채_60×30cm_2015

완성된 화면에서는 헝클어진 의식의 틈을 비집고 부유하는 물고기는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듯 아가미를 벌리고 거친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지느러미와 꼬리는 한 창 독 오른 날카로운 가시를 송곳처럼 펼쳐든다. 작업에서 표상되는 물고기가 왜 이렇듯 거친 형상을 갖추게 되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떤 이는 아마도 "그림은 자신의 표상 이므로 당신의 심리가 독 오른 물고기로 표상된 게 아닐까?"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분명하게 말 할 수는 없지만, 무의식의 심연에 감추어진 욕망의 응어리를 들춰내듯이 화면위의 물고기는 나를 대신해 부유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화면에 버티고 세계를 응시하는 물고기는 경직된 듯 하면서도 수면 위를 유동하려 무진 애를 쓴다. 유동의 기세는 마치 제한된 화면을 박차고 뛰어 오를 듯이 바깥세상을 노려본다. ● 나의 요즘 작업은 한층 단순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얼마 전까지의 작업(Autism-我)에 등장했던 물고기를 가두는 모래시계나 특정 공간의 이미지는 사라져 버렸다. 불필요한 형상들의 배치가 가져오는 주제의식의 분란을 잠재우듯이, 이제는 단순한 검은 색의 배경과 부유하는 물고기가 화면 전체를 이룬다. 이전의 작업이 세상을 향한 무의식의 방어 본능이 표출된 형상화 된 공간이라면, 요즘의 작업 방식은 의식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도라고 하겠다. 하지만 아직은 심층의 잠재의식과 의식의 표층간의 경계쯤에서 배회하고 있을 뿐이다. ■ 유영미

Vol.20151202d | 유영미展 / YUYOUNGMI / 柳榮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