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적 공간_2015.12 Speculative Space_2015.12

안혜성展 / ANHYESUNG / 安惠晟 / painting   2015_1202 ▶ 2015_1208

안혜성_발현Ⅰ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관훈동 100-5번지) 3층 제3전시장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안혜성, 공간 속에 쌓인 시간의 층 ● 흔히 실내는 사람들에게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자기만의 공간으로 이해된다. 안혜성은 이점에 착안하여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오롯이 투영한다. 그러므로 실내란 작가의 기억의 공간으로 넘어가는 길목이자 '작가가 지나온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경계선'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안혜성이 실내를 통해 다루려는 것은 바로 '기억'에 관한 것이다. 본인의 기억의 자산을 예술의 소중한 밑거름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만일 기억의 사서함이 잠겨버려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백지상태의 마음뿐이라거나 머릿속의 잔상들이 미궁 속으로 사라져버렸다면, 이보다 큰 비애도 없을 것이다. "한 사물의 거리감은 흘러간 세월의 실제 거리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기억의 시력에 비례한다."(마르셀 프루스트) 어떤 사람에게는 기억이 긍정적일 수도 있을 것이며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다가오든 '기억의 시력'으로 살펴본 과거는 그 자신만의 고유한 것이요 소중한 추억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아마도 작가의 이런 의도가 잘 나타나는 작품으로는 「장밋빛 회상」(Rosy Retrospection)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두 마리의 새가 창문에 앉아 뒤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구도로 되어 있다. 흔히 새를 그리면 정면을 주시하는 모습을 취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반대로 되어 있다. 그런데 창문의 새가 앉아있는 것은 바로 얼마 전만 해도 그 새들이 과거에 있던 공간인 듯하다. 그러니까 새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는 답답하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차분히 그때를 돌아보면 소망의 빛줄기가 그 공간 안에 드리워져 있음을 노란 색면으로 암시하고 있다.

안혜성_발현Ⅱ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5

이렇듯 그의 작품은 기억을 단순한 회상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슬픔의 자리요 시련의 시기였더라도 그런 추억도 삶의 형성에 있어 귀중한 체험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장밋빛 회상」이 자아를 새에 비유한 것이라면, 「Through the Gates」, 「Longing」,「Hidden Space」는 우연치 않은 '내안의 보석'의 발견을 그려낸 것이다. 세 작품의 공간은 모두 실내라는 공통점을 지니는데 특히 계단을 소재로 한 「Longing」, 눈여겨보지 않았던 구석을 조명한 「Hidden Space」는 뜻하지 않게 보석과의 조우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두 작품에서 보석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모퉁이 또는 바닥이나 창문 틈에 끼어 있어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 한 우리의 눈에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소망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손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안혜성_발현Ⅳ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5

자신의 편의와 안전을 도모하고 싶은 심리, 즉 '요새심리'(fortress mentality)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기질적으로 '안전'을 선호하는 우리는 '모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마치 등에 떠밀리듯이 운명적으로 모험에 나서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 이때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장도에 올라야한다. 돌부리가 차이는 가파른 산길을 등정할 때도 있고, 깊고 으슥한 숲속을 헤맬 때도 있으며, 짙은 안개로 앞이 안보일 때도 있다. 두려움에 휩싸여 옴짝달싹 못하는 한, 우리는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광도, 햇살 가득한 초원의 경이로움도, 전혀 예상치 못한 비경(秘境)도 영영 누리지 못할 것이다. 모험을 두려움이 아닌 짜릿함으로 대신하게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스스로는 전혀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내 자신이 인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다. 전능자가 이끄시는 물살에 믿음으로 몸을 맡기기까지 모험은 최상으로 가는 길과 무관하게 여겨질 따름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궁극적 진리의 실재에 접목될 때에만 삶이 온전히 이해되고 해석될 뿐이다. 안혜성의 보석에는 모험이 단순히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여전히 미완의 보석은 곳곳에 남아 있지만 말이다.

안혜성_발현Ⅴ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5

보다 분명한 주제의식을 나타낸 작품은 「Through the Gates」를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는 여러 돌들이 어지러이 흩어져있는데 자세히 관찰하면 반은 원석, 반은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의 작품들이 보석의 발견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이 작품은 광석이 보석이 되어가는 영적인 과정을 묘출한 것이다. 금을 얻기 위해 뜨거운 불의 연단을 거쳐야하듯이 보석이 되어가는 과정도 수많은 연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람으로 치면 역경과 연단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성숙한 인격을 갖추는 것과 다름없다. 그의 그림을 보면, 값비싼 보석으로 탄생하기 위해 정교한 마찰과 세공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원석은 장인에 의해 여러 면으로 잘려나가고 세공될 때에만 보석이 될 수 있다. 이런 프로쎄스는 직접 어려운 상황을 체험함으로써 남의 처지도 이해하고 공감적 상상력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발현 7」(깊은 밤)을 보면 광석이 보석이 되어 유난히 깊은 밤에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밤이 깊을수록 별이 더 빛나듯이...

안혜성_발현Ⅵ_캔버스에 유채_117×80cm_2015

안혜성은 소설가들이 복선을 깔아놓듯이 작품에 복선을 깔아놓았다. 이것은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이며 따라서 감상자들은 작품을 볼 때 그가 깔아놓은 복선에 유의해야한다.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의 복선은 화면에 산재해 있는 '보석'이다. 「발현Ⅰ」, 「발현Ⅱ」, 「발현Ⅲ」,「발현Ⅳ」,「발현Ⅴ」,「발현Ⅵ」 등 거의 모든 작품에서 보석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같은 작품이 말해주는 것은 정말 소중하고 귀중한 것은 나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초자연적인 실재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체로 이 작품에서 보석은 창문 밖으로 혹은 창문 사이로 하늘에 떠있거나 땅으로 하강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천상의 은총이 내려지는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안혜성_장미빛 회상 Rosy Retrospection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15

서두에서 필자는 안혜성이 공간의 문제를 주요하게 다룬다고 언급했다. 그가 공간의 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영적인 체험을 담아낸 상징물로 바로 실내란 공간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가들이 영적인 문제를 다룰 때 추상적 이미지를 기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작가는 막연한 암시에 머물기 보다는 보석과 돌덩이, 창문과 계단, 조명등과 불빛, 모퉁이와 바닥과 같은 이미지들이 더 적합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구체적인 이미지는 사실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리라. ● 우리는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상실한 것의 목록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그중에 수정처럼 영롱하고 투명한 물처럼 '순수한 자아'도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그런 와중에 안혜성이 내안의 결정물(結晶物)중 무엇이 반짝거리는지, 어떤 것이 반짝거림을 멈추었는지 조명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안혜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심적 상태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내면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혜성_문들을 지나서 Through the Gates_캔버스에 유채_130×89.4cm_2015

그의 작품은 우리가 예술이 인생과 서로 분리할 수 없을 만큼 촘촘히 직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는 사실, 따라서 예술은 전인(全人)의 범주,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 서성록

Vol.20151202k | 안혜성展 / ANHYESUNG / 安惠晟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