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된 기억들 Imagined memories

권인경展 / KWONINKYUNG / 權仁卿 / painting   2015_1204 ▶ 2015_1226 / 일,월요일 휴관

권인경_상상된 기억들 1_한지에 수묵콜라주, 아크릴채색_125×187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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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경 홈페이지_www.inkyungkwon.com

초대일시 / 2015_1204_금요일_05:00pm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요일_예약시 관람가능 / 일,월요일 휴관

갤러리 아트비앤 Gallery artbn 서울 종로구 삼청로 22-31 2층 Tel. +82.2.6012.1434 www.artbluenett.com

미지의 기억으로 이끄는 다차원적인 선들 ● 권인경의 '상상된 기억들(Imagined memories)' 전에 등장하는 공간에는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단편들에 내장된 기억은 꿈처럼 생생하면서도 모호하다. 각 장면은 강렬하면서도 장면과 장면 사이의 인과 고리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과 고리가 분명하다면 기억이나 꿈도 합리화되어 현실 속에 자리 매김 될 것이다. 그래서 의미와 기능을 부여받을 것이다. 그러나 권인경의 작품에서 인과 고리는 생략되어 있고, 단편과 단편들은 직접 등을 마주 댄다. 연접하는 단편들은 사발팔방으로 강력하게 뻗어나간다. 곧잘 자기들끼리 알아서 뻗어 나아가는 상황에서, 의식은 조율의 역할을 할 뿐이다. 주도자보다는 조율자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권인경의 작품에는 세련됨과 완성미 보다는 야생성과 솔직함이 있다. 분업화된 사회에서 하나만 파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 보다는 자신의 본성에 따라가겠다는 선택이다. ● 권인경의 작품에서 꿈, 무의식, 광기처럼 흐름은 강력하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는 불확실하다. 대개 중력에 순응하는 방식이지만 장면들은 마치 지구별처럼 푸른색으로 채워진 공간에 떠있기 일쑤이다. 모호하지만 강력한 것, 그것은 예술을 닮았다. 이성이나 의식, 문명보다는 자연에 더 가까워지려는 선택이다. 종횡무진 뻗어나가는 힘은 화면 속에서 뜬금없이 출몰하는 물줄기나 수목 이미지와 비교될 수 있다. 사진에 모델링 페이스트가 사용된 「모호한 공간」 시리즈에서는 레이스와 같이 섬세한 그물망이 화면을 도포한다. 물줄기나 수목의 말단이 가닿는 곳처럼, 조그만 틈만 생겨도 무엇인가로 채워진다. 또 다른 기억으로 채워지기 위해 또 다른 공간이 생겨난다. 세포분열처럼 증식되는 기억은 기억을 특정한 과거의 재현에 한정하지 않는다. 이 유동하는 세계에서 고정된 한 지점을 전제하는 재현은 불가능하다. 재현된 것이 어느 한 토막 끼어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내 증식된 단편들의 범람에 의해 상대화될 것이다.

권인경_동시적 공간 2_한지에 수묵콜라주, 아크릴채색_64×130cm_2015

'상상된 기억들'은 기억의 유동성을 떠올리는데, 그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억이 희미해진다거나 기억의 조작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재현이 아닌, 생성을 말한다. 권인경의 작품에서 기억은 과거의 것일 뿐 아니라 미래의 것이고, 동시에 지금 여기를 새롭게 하는 힘이다. 이 작업의 계기는 지인의 심각한 트라우마로 부터 비롯됐다. 알라이다 아스만은 「기억의 공간」에서 충격과 기억의 관계를 말한다. 가령 강제수용소가 트라우마의 장소인 것은 그 곳에서 자행된 만행의 과도함이 인간적 이해력과 표현력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해될 수 있고 표현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트라우마가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환자'와 달리 단지 병을 앓고 있는 자가 아니라, 병을 극복한 자이다. 특히 작업을 통해서. 전형적인 '동양화'를 벗어나 뭔가 가득 쌓여있고, 또 작품의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질서화 되어 있지 않은 권인경의 작품은 편집증이나 분열증적 요소가 있지만, 거기에는 부정 보다는 긍정적 요소가 강하다. 도피보다는 전진을 떠올리는 경쾌한 에너지가 있다. ● 물론 상실감도 있다. 「의도하지 않은 상실」이라는 한 작품의 제목처럼, 상처-기억-상실감이라는 연결고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상실이 꼭 고난은 아니다. 종교학자 조너선 스미스가 「자리잡기」에서 말했듯이, 상실을 꼭 불화, 타락, 비존재라는 카오스로의 침몰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상실은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남아있는 현재를 조율하고 변화시키는 복합적인 과정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잃어버린 시공간은 변신의 과정을 통해, 그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서 타자-사물, 사람, 혹은 표지-안에 자리 잡음으로서 영원히 접근 가능하도록 남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공간은 이미 존재하는 것, 그리고 기억들을 호출하는데 사용되는 이미지들이 자리할 빈 장소들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 조너선 스미스에 의하면 장소는 선재하며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고 생각되지만, 공간은 단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투사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권인경_The mind map 1_한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64×130cm_2015
권인경_The mind map 2_한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64×130cm_2015

즉 자리는 수동적인 용기(容器)가 아니라 이식의 능동적 산물이다. 방향 설정은 우리의 몸과 관련된다. 몸은 방위를 설정해주고 자리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그래서 권인경의 「The mind map」 시리즈에 나타나 있듯이, 심리적인 지도가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인간이 위치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리를 존재하게 한다. 누구에게도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와 그렇지 않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 장소에 가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현재의 상황이 치유되거나, 반대로 덧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장소가 사라져도 기억은 남아있다. 시간과 함께 사라진 공간에 대한 기억은 더 강렬하다. 깊은 상실감은 사라진 공간을 지금 여기의 결핍을 치유해줄 대안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동력이 된다. 그것은 모든 민족들이 불러왔던 고향에 대한 노래를 생각해 보면 분명하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노래와 고향의 현실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조너선 스미스에 의하면 고향은 내가 태어난 자리나 내가 살던 자리로 가장 잘 이해되는 곳이 아니다. 고향은 기억이 머무는 곳, 공상들이 응축된 곳이다. 그래서 모든 참된 거주 공간은 고향의 속성을 지닌다. 권인경에게는 30년을 넘게 살아온 아파트가 고향이다. 그러나 대부분 아파트 같은 대형 주거공간은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이들이 한데 모여드는 곳이다. 각자 다른 고향이 있는 것이다. 같이 경험한 장소에 대한 기억도 각기 다르다. 기억은 꿈과 무의식, 취향과 성향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이다. 그러한 다름은 서로 다른 지향을 낳을 것이다. 「개인의 방」 시리즈에 나타나 있듯이, 각각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그것은 개인을 보호하기도 하고 소외시키기도 할 것이다. 권인경의 작품에서 이 이질적 차이의 힘은 다성음의 조화처럼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획일성의 상징으로 비판받는 아파트는 차이의 무대로 나타난다. 작품의 주요한 구성요소 중의 하나인 아파트는 그 아래의 오래된 마을을 도미노처럼 삼킬 듯한 리얼리즘적 관점이 있음과 동시에, 차이 또한 예시한다.

권인경_의도하지 않은 상실_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 아크릴채색_61×92.5cm_2015
권인경_잃어버린 My lost_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 아크릴채색_61×92.5cm_2015

한 날 한 시에 똑같이 만들어진 공간인 아파트는 달라지는 과정이 비교될 수 있기에 반복 속에서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역설적 장소가 된다. 아파트와 산동네, 그리고 산수가 함께 있는 풍경은 이질적인 것의 공존, 그리고 차이 속의 보편성을 말한다. 도시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연접되어 있는 상황은 흔하다. 그것은 혼돈과 활기를 주며 작품에 적극 도입된다. 작품 「동시적 공간」은 시점과 분위기가 다른 두 풍경이 위아래로 연결되어 있다. 졸졸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가 두 공간을 잇고 있다. 위와 아래는 유기적으로 섞이지 않고 단지 병렬되어 있다. 권인경의 작품에서 하나의 중심, 위계적 질서는 자리 잡지 못한다. 정적인 공간 그 자체보다는 기억과 관련된 공간, 즉 시간-공간을 표현함으로서 동적인 차원으로 끝없이 변주되기 때문이다. 위로 자라나는 성장의 이미지도 그렇다. 건물이 자라나는 듯한 작품 「증축된 건물」은 기형적으로 증축된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다. 결과는 기괴하지만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 하나가 생겨난 후 그 위로 덧대어지고 덧대어진 과정은 공간의 시간적 추이를 알려준다. 증축된 건물은 시간의 단면처럼 변형을 공시적 구조로 표현한다. 사이사이에 배치된 기암괴석은 이 느슨한 집적이 견고성을 획득했음을 알려준다. 얼기설기 확장된 구조도 시간이 축적되면서 오래된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권인경의 작품에서 무기물은 유기체처럼 자란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종에서 같은 종이 나오는 유기적인 성장이 아니다. 그리기와 꼴라주가 함께 하는 화면에서 다른 것이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작품 「의도하지 않은 상실」의 아래 부분은 기암괴석이지만 그 위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얹혀 있다. 여기에 서로 다른 시대의 기록들의 꼴라주가 가세하면서 간극은 더욱 많아진다. 작품 속 잠재적 간극은 시점은 물론 장면이 접히고 펼쳐지는 속도 차이에 의해 강조된다. 작품 「동시적 구조」처럼 하나의 풍경 속에 여러 도시가 복합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이질성의 공존도 더 멀리서 보면, 또는 더 먼 시간을 두고 보면 균질화 될 수 있다.

권인경_증축된 기억1_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 아크릴채색_92.5×61cm_2015

공간을 가득채운 빼곡한 차이들은 하나의 질감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을 잘 드러내는 것이 작품 속에 종종 나타나는 빈 의자들이다. 작품 「The mind map 1」에서 지도 모양 안의 공간에 자리한 집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게 하는 것은 밖에 있는 빈 의자다. 집과 집 사이에는 간격이 있지만, 집들과 의자가 사이에 놓인 간격은 더욱 크다. 부재하는 현존을 암시하는 의자는 도시와 도시적 삶을 조망하는 누군가의 자리일 것이다. 작품 「The mind map 2」에서도 지도형상으로 밀집된 집들을 언덕 위의 빈 의자가 내려다보는 시점이 있다. 산동네나 빌딩 숲 같은 밀집된 구조를 상대화하는 것은 그 안팎에 크고 작은 비중으로 배치된 자연이다. 밀집된 공간과 공존하는 것은 시원한 산수, 또는 여백처럼 텅 비워 놓은 공간, 때로는 아예 칠하지 않고 빈 바탕으로 남겨놓은 공간들이다. 작은 작품들인 「기억들 (Souvenirs)」 시리즈에는 캔버스 올이 다 드러나 있는 빈 바탕이 있는데, 그것은 기억이 완성되어야 할 미지의 것임을 알려준다. ● 일본의 쓰나미에서 영감을 작품 「기억상실(Black out)」은 망실된 기억을 형상화한다. 그러한 총체적인 파국은 개인의 트라우마를 넘어 집단적 경험으로 자리한다. 장소와 기억의 긴밀한 관계를 생각할 때, 기억의 상실 또한 쓰나미 같다. 마치 벽돌처럼 두텁게 만들어진 그림은 무너져 내린 건물을 다시 축조하기 위해 남아 있는 벽돌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알려준다. 벽돌은 드문드문 남아있다. 그것은 징검다리처럼 서로 다른 시공간의 블록을 이어줄 것이다. 단편들 간의 간격은 크지만 간격을 상실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도약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예술 또한 현실에서 불가능한 도약이 일어나는 장이다. 예술 속에서의 사건은 현실에서와 같이 재난으로만 간주되지 않는다. 간격은 끊어짐이지만 동시에 이어짐에 대한 기대를 가진다. 권인경의 작품에서 연결은 점에서 점이 아니라, 선에서 선으로 이어진다. 선의 이미지는 미세한 균열부터 거대한 산맥까지, 물줄기에서 도로까지, 전선에서 나뭇가지까지 다양하다.

권인경_신호들 1_한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12×44.3cm_2015 권인경_기억들 1 Souvenirs 1_한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53×45.5cm_2015 권인경_기억들 2 Souvenirs 2_한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45.5×53cm_2015 권인경_기억상실 Black out_한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9×35,5cm_2015

구조화된 선이라고 할 수 있는 창이나 문도 그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여기와 저기를 잇는다. 작품 「상상된 기억들 2」에서 화면을 가로지르는 밝은 선은 창틀이다. 창 안과 밖을 나누는 면은 쑥 빠져 있다. 여기와 저기로 마음껏 왕래한다. 마치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문 같은 역할은 거울 저편의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거울 저편에서 고정된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작품 「상상된 기억들3」에서 밝은 선으로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화면의 앞은 실내, 뒤는 풍경이다. 그러나 바깥의 산과 안의 수석 등, 안팎이 연결되어 있는 지점들은 여러 곳에 암시되어 있다. 각각 구획된 면에 해와 달이 하나씩 떠 있다. 각기 다른 시간대가 결정체의 조각들처럼 마주한다. 뭔가 가득히 있는 풍경은 뭔가 가득 쟁여져 있는 문을 열었을 때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다. 그러나 매우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는 권인경의 작품에서 무엇이 쏟아져 나올지 예측되지는 않는다. ● 어떤 창은 밤을, 어떤 창은 낮을 반영하는 등 멀리 보이는 창들에는 제각각의 시간이 들어차 있다. 때때로 창들은 한 벽에 걸린 서로 다른 그림들처럼 보인다. 그림 속에는 또 다른 그림이 있고, 풍경 속에는 또 다른 풍경이 있다. 작품 「두개의 문」에서 문이 열린 층에 있는 화분은 사람처럼 우리를 내려다본다. 작가는 화분이 자신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화분은 의자와 더불어 풍경과 마주하는 이의 시점을 공유한다. 그것들은 인간이 아닌 인간의 흔적이다. 미시적인 또는 거시적인 시공간 감각을 가지는 권인경의 작품에서 인간은 흔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인간은 재현된 하나의 도상이 아니라, 기억과 지각으로 시공간에 편재한다. 통상적인 시공간 감각과 무관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단편들은 가능한 모든 시점이 병렬되어 있다. 연속되는 '그리고'로 이어지는 병렬의 감각은 현대적이다. 작품에 편재하는 분절구조들은 각기 다른 단수들을 포함한다. '이질적 단수들이 연접'(들뢰즈)하고, 단편들이 배치되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영토는 지도를 그리며 나아간다. ■ 이선영

Vol.20151204b | 권인경展 / KWONINKYUNG / 權仁卿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