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하다

전영진展 / JEONYOUNGJIN / 全榮辰 / sculpture   2015_1204 ▶ 2015_1213

전영진_소방관_레진에 아크릴채색_76×29×28cm_2015

초대일시 / 2015_1204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요일_01:00pm~06:00pm

미광화랑 MIKWANG GALLERY 부산시 수영구 광남로172번길 2(민락동 701-3번지) Tel. +82.51.758.2247 www.mkart.co.kr

누군가 인생이 삶이 뭐냐고 물으면 순간 멍해지다가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이기 십상이다. 삶은 계란.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 같은 것. 인생은 등산과 같은 것 등등. 삶은 무엇으로든 명명 될 수 있다. 예술은 어떠한가. 예술은 뭔가로 명명되기 보다는 명명하는게 잘 어울린다. 몸매가 예술이다. 눈빛이 예술이다 처럼. 이렇게 약간 상반된 느낌의 두 단어가 가지는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전문적인 설명은 접어두고 지극히 주관적으로만 보자면 수동과 능동의 차이가 아닐지. 인생은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게 아니고 살아 진 것이 곧 삶인 것. 교과서 적으로 살아야 인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산다고 그에게 삶이 주어지지 않는건 아니다. 어차피 물리적으로 주어진 유한한 시간이 끝나면 누구든 하나의 인생을 마무리 짓는 법. 이렇듯 인생은 지극히 수동적으로 모두를 다 받아들이는 것. 능동적인 예술은 어떠한가. 인간이 창조했든 모방했든 모든 예술작품은 만든 것.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만든 것이다. 각자의 목적적과 의도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나의 작업은 이 수동과 능동을 잘 버무리고 싶다. 나는 살아지는 것이라고 단정지은 삶의 어떤 모습을 문학이나 음악이 아닌 조소로 능동적으로 표현하려 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본성인 그 능동성으로, 그래 의도적으로 나는 뭘 보여 주고 싶은 걸까.

전영진_금융가 김대리의 점심시간_레진에 아크릴채색_73×25×20cm_2015
전영진_아이안고 있는 아빠 Drawing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27×9×8cm_2015
전영진_도를 아십니까? Drawing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24×9×6cm_2015
전영진_자동차 정비공 Drawing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26×10×7cm_2015
전영진_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남자 Drawing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26×12×5cm_2015
전영진_1인 시위자 Drawing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26×10×9cm_2015
전영진_셀카찍는 여고생 Drawing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23×11×8cm_2015

인생이든 예술이든 아무 관심도 없을 누군가에게. 현실적인 구조에 투철하게 반항하면서 스스로 세상을 바꿔 보겠다거나, 작금의 구조를 조금도 바꾸고 싶지 않아서 끊임없이 권력에 매달리는, 설핏 보면 능동적인 삶으로 보이는 무리들은 아니다, 인간극장이나 병원24시류의 눈물샘 작극하는 삶도 아니고 전국노래자랑 처럼 마냥 즐거워 보이는 인생도 아니다. 물론 각각을 잘 버무려놓은 잘된 드라마나 영화같은 삶도 아니다. 왜 사람들은 극단적인 것만 기억하고 무력한 삶에 찰나에 자극을 주는 성공이나 고단한 일상에 잠깐의 위안을 주는 비극같은 것만 얘기하는가. 이딴거 말고 그냥 우리 곁에 무명으로 존재하는, 너무 자연스러워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수많은 그들은, 드라마 대본에는 존재하지만 아무도 기억못하는 행인1 행인2처럼 꼭 그렇게 잊혀져야 하는지. 부질없이 잊혀지는 것들을 팔아서 내가 잊혀지기 싫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각자의 의미로 필부(匹夫)필부(匹婦)를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쉬 잊혀지기 싫은 것처럼 그들도 그렇지 않을까. 기억에 꼭 의미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자본주의 만큼이나 불공평하다. ■ 전영진

Vol.20151208h | 전영진展 / JEONYOUNGJIN / 全榮辰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