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걷기

정진호展 / CHUNGJINHO / 鄭鎭虎 / photography   2015_1211 ▶ 2015_1219

정진호_서울 걷기_피그먼트 프린트_56×84cm_2015

초대일시 / 2015_1211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갤러리 브레송 GALLERY BRESSON 서울 중구 퇴계로 163(충무로2가 52-6번지) 고려빌딩 B1 Tel. +82.2.2269.2613 cafe.daum.net/gallerybresson

서울 무작정 걷기 ● 나는 거의 매일 목적 없이 걷는다. 몸의 건강을 생각해서 걷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4년이 넘었다. 서울의 거리와 뒷골목, 변두리 동네, 산동네를 무작정 걸었다. 아무 계획 없이, 특별한 순서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거닐면서 일상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장소와 낯선 공간 사이를 오가며, 서울을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고 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드 브르통(David Le Breton,2010:21)의 말은 걷는다는 것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세상을 느끼고, 사물들의 본래 의미와 가치를 새로이 일깨워주는 인식의 방식이다. 걷는다는 행위는 거리, 골목길 혹은 동네와 정서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고, 걷는 동안에 내 몸의 피부와 감각 기관은 끊임없이 사물과 공간에 반응하는 신체적 경험이기도 하다. ● 자동차,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에 의지하여 수동적으로 움직이던 내 몸이 걷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세계를 온전히 경험"할 수가 있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걸으면서 낯선 거리와 골목들, 낯선 얼굴들을 발견하고 한다. 나에게 있어 서울을 걷는 것은 이렇듯 미처 알지 못했던 장소, 호기심조차 없었던 도시의 구석구석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행위이다. 건축가 정기용은 서울은 단일한 하나의 도시가 아니고, 수백 개의 각기 다른 동네가 모인 집합이고 연대라고 했다. 각기 다른 동네의 분화와 집합은 서울의 다채로운 지형과 함께 천문학적인 수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길을 만든다. 어느 누구도 다 걸어볼 수 없는 서울의 미로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서울을 만나보고 싶었다.

정진호_서울 걷기_피그먼트 프린트_56×84cm_2015
정진호_서울 걷기_피그먼트 프린트_56×84cm_2015

걸으면서 발견하기 ● 걷는 사회학자 정수복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쓴 『베를린의 유년시절』의 한 구절을 빌려, 한 도시를 알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마치 숲에서 길을 잃듯이 헤매는 훈련이 필요하다. 헤매는 사람에게 거리의 이름들이 마치 잔가지들이 뚝 부러지는 소리처럼 들려오고, 움푹 팬 산의 분지처럼 시내의 골목들이 하루의 시간 변화를 분명히 알려줄 정도가 되어야 도시를 헤맨다고 말할 수 있다." 파리 전체를 걸으면서 파리의 역사적 유래와 흔적을 기록한 에릭 아장(Eric Hazan)도 도시에서 걷는 법에 대해 "어떤 도시든지 무작정 걸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도시 걷기에서 헛걸음은 없기 때문이다."(정수복,2015:172~173) ● 정수복은 한걸음 더 나아가, 무작정 걷되 이방인의 시선을 견지해야 된다고 한다. 이방인 산책자는 자기가 사는 도시, 구역, 동네, 마을, 단지를 조금 다른 눈으로 읽는다. 서울을 파리의 눈으로, 파리를 서울의 눈으로, 강남을 강북의 눈으로, 강북을 강남의 눈으로...교차시켜 읽으며 그곳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기록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서울에 살면서 한 번도 발걸음을 하지 않은 동네를 찾아다니고, 오래 동안 살아서 익숙해진 거리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이방인의 시선으로 걷고자 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서울에서 강북의 거리와골목 안 풍경은 유년기에 봐왔던 익숙하고 당연한 장소들이다. 다소 무질서하고 혼란스럽지만 인간스러운 장소이다. 에드워드 랠프(Edward Ralph)는 어떤 장소를 잘 알고 있고, 자신만의 장소를 갖고 있는 것을 인간답다고 표현한다.(조명래,2013:152) ● 서울 하늘 아래 외로운 섬처럼 고립된 한남동의 비탈진 동네의 좁디좁은 골목, 위태롭게 터를 잡은 낡은 집들은, 적어도 나에게만은 정겹고 인간다운 장소이다. 사회학자나 인류학자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나는 도시를 걷으면서 친숙한 공간들을 새롭게 보려고 노력하고 그 속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이해하려고 했다.

정진호_서울 걷기_피그먼트 프린트_56×84cm_2015
정진호_서울 걷기_피그먼트 프린트_56×84cm_2015
정진호_서울 걷기_피그먼트 프린트_56×84cm_2015

인간적인 장소 찾기 ●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e)는 "우리에게 말을 걸고 기억을 상기시키며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고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공간을 '장소'라고 정의했다." 이런 전통적인 장소는 '인간적인 장소'이고, 따라서 '기억'이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Helena Norberg-Hodge)는 서울을 보고 나서 서울이 600년 된 도시라는데 자기에게는 30년 된 신도시로 느껴진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서울은 '기억의 장소'를 많이 잃어버렸다. 서울을 서울로 만들었던 건물과 장소 등이 일제에 의해 파손되고, 전쟁으로 부서지고,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 철거되고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버렸다. 미래를 향해 바쁘게 달리는 서울은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었다. 강남은 새것, 번쩍거림, 편리함, 청결함을 추구하는 현대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기억이 없다. '기억의 장소'를 허물며 강남을 따라오기 바쁘다.(정수복,2015:172~173) ● 사회학자 정수복의 말처럼 서울에는 오래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오늘의 모습만 존재한다. 전통적인 장소라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과거 1960~70년대에 사회적 교류의 공간 역할을 맡았던 '골목길 공동체'가 사라지면서 서울은 친숙하고 유의미한 '장소'로서 인식할 만한 공간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 재건축과 재개발이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동안 아파트단지와 상가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새로운 도로가 생기고 거대 쇼핑몰들이 들어섰다. 눈에 익숙한 장소와 공간의 변화는 그와 함께 기억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인간적인 장소(전통적 장소)의 변형과 소멸은 무언가 다른 새로운 장소, 마르크 오제는 비장소(non-place)라고 표현한다. 그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주유소, 맥도날드, 24사건 편의점 등 획일적으로 디자인된 유용하지만 무의미한 공간을 장소가 아닌 비(非)장소라고 이름 붙였다.(정수복,2015:12) ● 서울을 무작정 걸으면서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 빌딩에 가려져 가쁜 숨을 쉬고 있는 오래된 동네와 골목에서 잃어버린 기억과 흔적들을 되찾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너무 친밀해져서 제대로 보지 못한 것들, 시시하고 하찮아서 보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보여주고 싶었다. ■ 정진호

Vol.20151211j | 정진호展 / CHUNGJINHO / 鄭鎭虎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