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고개 너머, 1994 그리고 2015

스톤김_최재원 2인展   2015_1219 ▶ 2016_0110 / 일,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5_1219_토요일_04:00pm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 성북문화재단

문의 성북문화재단 정책협력팀 Tel. 070.8644.8065 성북예술창작터 Tel. +82.2.2038.9989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미인도 서울 성북구 동선동 3가 22-6번지 동선동고가차도 하부공간

'미아리'는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지만, 미아리고개 너머를 미아리로 부르던 언어 습관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지명이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미아리 점성촌', '미아리 텍사스' 등의 수식들이 많이 붙는 곳이기도 한만큼, 파란만장한 역사를 몸으로 겪었던 곳이기도 하다.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초까지는 공동묘지였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서울 최후의 방어지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고, 북한군이 북으로 후퇴하면서 민간인을 강제 북송하여 많은 비극이 연출되던 곳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몰려들었고, 도심 화재민들이 대거 이주하기도 했다. 60년대 도심개발이 진행되면서는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거주하는 달동네로 자리잡았다. 점성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양동과 종로 3가 등에 밀집되어 있던 점집들이 철거되면서 역학사들이 미아리고개 아래로 모여들게 되었고, 1970-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 70여 개의 점집들이 있을 정도로 호황을 이루다가 외환위기와 미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점집들이 헐리면서 쇠퇴의 길에 있다. ● 그간의 역사를 대변하듯 미아리를 상징하는 '미아리고개'의 고가도로 주변은 어둡고 불편한 환경속에 머물러 있었다. 2010년 미아리 고가도로를 중심으로 공공미술사업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2015년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미아리 고가도로 하부공간 자체를 일상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15년 9월무렵 기본적인 공사를 마치고,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들을 통해 그곳을 활성화시키고 있는데, 2015년을 마무리하면서 최재원, 스톤 김, 두 동갑내기 작가가 전혀 다른 시간과 상황 속에서 찍은 미아리 사진을 선보인다. 1994년과 1996년 사이, 재개발 중이던 미아리고개 현장을 일상처럼 다니며 사진에 담았던 최재원과 이전에 미아리를 접해 보지 못했다가 2015년 이방인으로 미아리 일대를 관찰한 스톤 김은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미아리와 마주한다.

최재원_MIARIGOGAE 「1994–1996」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1995, 2012
최재원_MIARIGOGAE 「1994–1996」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1996, 2012
최재원_MIARIGOGAE 「1994–1996」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1996, 2012

고등학생 시절 재개발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최재원은 당고개, 상계동, 행당동 등의 재개발 지역을 종종 다녔다. 그 중 미아리고개는 작가가 어린 시절을 살았던 곳과 멀지 않았고, 친구들이 살기도 했던 터라 익숙한 곳이었다. 그는 재개발이 시작되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미 그곳을 떠날 무렵, 재개발 현장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이곳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에 작가는 그곳을 깊이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미아리를 찾는 시간은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폐허가 되고 있는 현장, 그리고 그곳에 여전히 자라나고 있는 생명들과 보이지 않는 세계들을 사진에 함께 담았다. 결국 2년여의 산책은 여러 가지 상실감을 남기고 끝이 났다. 그곳에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미아리고개 대신 아파트로 지명이 대체되고 도시는 낯설어져 갔다. 여느 재개발 현장과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를 장면들은 최재원 작가의 기억과 함께 특별한 순간으로 남았다.

스톤김_희망철학관_피그먼트 프린트_101×150cm_2015
스톤김_미아리고개_피그먼트 프린트_101×150cm_2015
스톤김_미아리고개너머_피그먼트 프린트_60×93cm_2015

한편, 스톤 김은 우연한 기회에 미아리 고개를 찍게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미아리를 기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미아리에 대해서는 텔레비전 뉴스 종종 나왔던 미아리 집창촌 이야기 정도밖에 모를 만큼 철저하게 이방인이었다. 스톤 김은 점성촌, 미아리고개 같은 아주 기본적인 키워드만 가지고 한동안 이곳을 탐색했다. 미아리에 대한 자료를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았고, 직접 마주치는 이미지들을 담으려 했다. 2015년의 미아리고개는 이미 예전의 특징들을 많이 잃어가고 있었다. 점집들은 상당수가 사라졌고, 공동묘지였던 미아리고개 근처의 대학가는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유흥지역이 되었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도 서울의 어느 변두리동네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미아리, 이제 그 어디에도 미아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 두 작가가 각각 경험한, 어린 시절과 재개발 속에 사라져간 미아리, 그리고 도시화 과정에서 그 특징들이 희미하게 바래져 가는 미아리는 이 도시의 한 지층으로 쌓여갈 것이다. 기억에서 현실로, 그리고 그 어디에도 없는 미아리로... ■ 장유정

미아리고개 너머, 1994 그리고 2015展_미인도_2015
미아리고개 너머, 1994 그리고 2015展_미인도_2015
미아리고개 너머, 1994 그리고 2015展_미인도_2015
미아리고개 너머, 1994 그리고 2015展_미인도_2015

스톤 김 작가는 조선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국제사진센터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이 일을 계기로 디자인을 접고 2010년 뉴욕 에스브이에이(SVA, School of Visual Arts)에서 사진과 비디오 전공으로 석사학위(MFA)를 받았다. 뉴욕에서 국제사진센터와 뉴욕주립대학 아밀리에 왈라스 갤러리 등 수 차례 그룹전에 참여하다가, 2011년 귀국하여 활동하고 있다.

미아리고개 너머, 1994 그리고 2015展_미인도_2015
미아리고개 너머, 1994 그리고 2015展_미인도_2015
미아리고개 너머, 1994 그리고 2015展_미인도_2015
미아리고개 너머, 1994 그리고 2015展_미인도_2015

최재원 작가는 독일 쾰른 미디어아트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2011년 아르코미술관 '데페이즈망depaysement_ 벌어지는 도시'를 기획했다. 지역 문화 발굴 워크숍 '서울을 큐레이팅하다'에는 전문가 멘토로 참여했고 2012년과 13년에는 서울연구원의 연구 지원사업으로 '동시대 주거문화로서의 한옥'세미나를 주최하며 외교부, 서울시, 한국국제교류재단 등과 서촌, 북촌, 익선동에서 "흐르는 골목 Flowing Alleys"을 큐레이팅했다. 2014년 ITU(국제전기통신연합) 전권회의 계기 백남준 특별전 "Homage to Good Morning Mr. Orwell' 전시총감독을 맡았고 서울연구원의 '서촌 가꾸기 기본구상'과 구 구의취수장 (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재생 사업 등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현재 내년 개관 예정인 서울 도시재생 박물관의 학예사로 개관 전시를 총괄 기획하고 있다. ■ 미아리고개 너머, 1994 그리고 2015

Vol.20151219g | 미아리고개 너머, 1994 그리고 2015-스톤김_최재원 2인展